CAFE

정치외교

일청강화조약(시모노세키 조약)

작성자마이피|작성시간16.08.25|조회수213 목록 댓글 0

 

 

일청강화조약(시모노세키 조약)

 

1조 청국은 조선국이 완전무결한 독립 자주국임을 확인한다. 따라서 자주독립을 훼손하는 청국에 대한 조선국의 공헌(貢獻)전례(典禮) 등은 장래에 완전히 폐지한다.

 

2조 청국은 아래 토지의 주권 및 해당 지방의 성루(城壘)병기 제조소 및 관청 소유물을 영원히 일본에 할여한다.

 

1. 아래의 경계 내에 있는 펑텐 성[奉天省] 남부의 땅

……(중략)……

2. 타이완 전도(全島) 및 그 부속 도서(島嶼)

3. 펑후[澎湖] 열도(列島), 즉 영국 그리니치(Greenwich) 동경 119도에서 120도와 북위 23도에서 24도 사이에 있는 여러 도서

 

3 앞 조항에 게재하고 부속 지도에 표시할 경계선은 본 조약 비준 교환 후 곧바로 일청 양국에서 각각 2명 이상의 경계공동획정위원을 임명하여 실지(實地)에 대해 확정하도록 한다. 그리고 만약 본 조약에 정한 곳의 경계가 지형상 혹은 시정상(施政上)에 완전하지 않으면 해당 경계획정위원은 이를 개정할 임무를 가진다. 경계획정위원은 가급적 신속히 그 임무에 종사하고 임명 후 1개 이내에 이를 종료해야 한다. , 경계획정위원이 개정할 곳이 있을 때에는 그 개정할 곳에 대해 일청 양국 정부에서 인정할 때까지는 본 조약에 게재하는 경계를 유지한다.

4조 청국은 군비 배상금으로 고평은(庫平銀) 2억 냥()을 일본국에 지불할 것을 약정한다.

……(중략)……

 

5조 일본국에 할여된 지방의 주민으로서 위의 할여된 지방의 이외에 주거하려고 하는 자는 자유롭게 그 소유 부동산을 매각하여 퇴거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본 조약 비준 교환의 날로부터 2년간을 유예한다. , 이 연한이 만료됐음에도 아직 해당 지방을 떠나지 않은 주민은 일본국의 편의에 따라 일본국()민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일청 양국 정부는 본 조약 비준 교환 후 곧바로 각 1명 이상의 위원을 타이완 성()에 파견하여 성()을 양도받고, 본 조약 비준 교환 후 2개월 이내에 양도를 완료한다.

 

6조 일청 양국 간 일체의 조약은 교전으로 인해 소멸되었으므로 청국은 본 조약 비준 교환 후 신속히 전권위원을 임명하여 일본국 전권위원과 통상 항해 조약 및 육로 교통 무역에 관한 약정을 체결할 것을 약정한다. 그리고 현재 청국과 서양 각국 간에 존재하는 제반 조약장정을 일청 양국 간 제 조약의 기초로 한다. 또 본 조약 비준 교환일로부터 제 조약의 실시에 이르기까지 청국은 일본국 정부의 관리상업항해육로교통무역공업선박 및 신민에 대하여 모두 최혜국 대우를 부여한다. 청국은 그 외에 아래의 것을 양여하되 해당 양여 사항은 본 조약 조인일로부터 6개월 후에 유효한 것으로 한다.

……(중략)……

 

7조 현재 청국 내에 있는 일본국 군대의 철수는 본 조약 비준 교환 후 3개월 이내로 한다. , 다음 조항에 기재한 규정에 따르는 것으로 한다.

8 청국은 본 조약의 규정을 성실히 시행한다는 담보로써 일본 군대가 일시 산둥성[山東省] 웨이하이웨이[威海衛]를 점령하는 것을 승인한다. 그리고 본 조약에 규정한 군비 배상금의 첫 회와 그 다음 회의 불입을 완료하고 통상 항해 조약의 비준 교환을 완료한 때 청국 정부에서 위 배상금 잔액의 원금과 이자에 대하여 충분하고 적당한 약정을 수립하고 청국 해관세로 저당할 것을 승인할 경우 일본 군대는 위에서 언급한 장소에서 철수한다. 만약 또 이에 관한 충분하고 적당한 약정이 수립되지 않는 경우, 해당 배상금의 최종회 불입을 완료한 후가 아니면 철수하지 않는다. 아울러 통상 항해 조약의 비준 교환을 완료한 후가 아니면 군대를 철수하지 않는 것으로 한다.

……(중략)……

 

앞의 증거로서 양 제국의 전권대신은 이에 기명하여 조인한다.

메이지[明治] 28417, 즉 광서(光緖) 21323일 시모노세키에서 2통을 작성한다.

 

대일본 제국 전권변리대신 내각총리대신 종2위 훈1(從二位勳一等) 백작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대일본제국 전권변리대신 외무대신 종2위 훈1(從二位勳一等) 자작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

대청제국 흠차두등 전권대신(欽差頭等全權大臣) 태자태부문화전대학사(太子太傅文華殿大學士) 북양대신 직예총독 1등 숙의백(肅毅伯) 리훙장[李鴻章]

대청제국 흠차전권대신 2품정대(二品頂戴) 전 출사대신(前出使大臣) 리징팡[李經方]

일본 외무성, 일본외교연표병주요문서, 1966

 

이 사료는 1894(고종 31)에 시작된 청일전쟁을 종식시킨 청과 일본의 강화조약인 시모노세키조약의 일부이다. 일본은 이 조약을 통해 조선에 대한 청의 간섭을 완전히 배제시켰으며, 광활한 영토의 할양과 막대한 군비 배상금을 받아 낼 수 있었다.

 

18946월에 발발한 청일전쟁8월 평양 전투와 황해 해전을 거치면서 일본 쪽의 우세가 드러났다. 일본은 이 여세를 몰아 압록강을 건너 10월에는 랴오둥반도를 공격하였다. 위기를 느낀 청국은 전쟁을 마무리하기 전인 1895(고종 32) 1월 장인후안[張蔭桓]을 전권대신으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그러나 산둥반도 작전을 벌이고 있던 일본은 강화 조건을 유리하기 만들기 위해 교섭을 거부했다. 일본은 2월 중순까지 랴오둥반도를 완전히 장악하고, 타이완을 침략하여 협상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었다.

 

다급해진 청국은 휴전을 요청하는 한편, 리훙장[李鴻章]을 전권대신으로 시모노세키로 파견했다. 일본의 전권대신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였다. 협상 중간에 리훙장이 피습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랴오난[遼南]타이완[臺灣]펑후[膨湖] 등의 할양과 군비 배상금 3억 냥 등을 골자로 하는 내용의 강화조약이 323일 체결되면서 청일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조약 체결 일주일 만에 러시아가 독일프랑스와 함께 랴오둥반도의 반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른바 삼국간섭이었다. 이들 삼국은 일본이 랴오둥반도를 점령하면 조선의 독립은 유명무실해지고 유럽 각국의 상업상 이익이 방해되어 동양 평화에 장애가 된다며 랴오둥반도 반환의 이유를 들었다. 결국 청일 강화조약은 당초 합의한 대로 비준되었지만, 랴오둥반도는 1895(고종 32) 923일 청일 간 요동 환부조약(遼東還附條約)’ 체결로 청국에 반환되었다.

 

청일 강화조약 결과 일본은 조선에서 청국의 영향력을 배제시켰을 뿐만 아니라 청국에 대해 열강과 동등한 특권을 인정한 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됐고, 타이완펑후 열도 등에 대한 영토 분할로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했다. 특히 청국으로부터 받아 낸 군비 배상금은 금본위제 실시와 군비 확충을 위한 자금에 모두 사용하였다. 반면 청국은 삼국간섭의 대가로 독일에게 자오저우만[膠州灣]을 조차한 것(1897)을 시작으로 열강의 영토 분할 대상이 되고 말았다.

 

한편 조선은 조약 1조와 같이 청국과의 종속 관계가 완전히 폐지됨과 동시에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강화 교섭 당시 청국은 청일 양국이 공동으로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자는 안을 제시했지만, 일본이 이를 거부해 청국만 조선이 독립국임을 확인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결국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내정 개혁을 요구했고, 이러한 명분 아래 청일전쟁을 도발했음에도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조선에 대해 청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그 지배권을 확립했던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