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발도의 기록은 과장된 것일까
고려말기 이성계가 활약하던 시절, 이성계의 적수(여기서는 외적)중에서 가장 강했던 적수를 꼽으라 한다면,
아기발도(아지발도)일 것입니다.
(중략) 갓 십오륙 세 되는 적장 하나가 용모가 수려하고 비할 데 없이 용맹스러웠는데, 백마를 타고 창을 휘두르면서 돌진해오니 그가 가는 곳마다 아군은 감당을 못하고 쓰러졌다. 아군은 그를 아지발도[阿只拔都]라 부르며 다투어 피했는데 태조가 그 자의 무용을 보고 아깝게 여겨 이두란에게 생포하라고 명령했으나(하략)
위 내용은 고려사 변안열 열전에 수록된 내용인데요 고려사 절요, 조선왕조실록 태조총서에 나오는 아기발도와 관련된 기록도 거의 똑같습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사료들이 조선에서 편찬한 사료이니 만큼, 이성계의 무용을 '부각'시키려 했다는 점이 없었다고는 못할 것입니다(실제로 이성계가 싸운 기록들을 보면 거의 무협지를 방불케하죠 진실을 떠나서 굳이 이런 내용까지 적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 것도 있을 정도).
하지만 이성계가 싸운 세력이 왜구뿐만이 아니라, 홍건적 두령들, 여진족 호발도, 삼선 삼개, 원의 나하추 등의 여타세력과도 줄기차게 싸웠는데, 유독 아기발도의 경우에만 용모가 수려하고 용맹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붙여넣은것은 특이할 만한 점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런 아기발도를 쓰러뜨린 이성계가 더 대단하다(이두란과의 콤비플레이를 보면 이것도 완전 무협지죠)라는 인상을 주기위한 장치일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겠습니다만은, 아기발도와 황산대첩과 관련된 내용이 조선에서 언급이 됩니다.
전조가 방어할 때에 진(鎭)을 설치한 것은 신이 잘 알지 못하나, 그때에 아지발도(阿只撥都)가 20세 가량으로 적장이 되었는데, 그 당시에 만인(萬人)을 대적한다고 일컬었습니다, 태조(太祖)께서는 모략(謀略)이 세상에 으뜸이었으며, 이두란(李豆蘭)이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 늘 수종(隨從)하였는데, (중략) 발도는 무용(武勇)이 남보다 뛰어나 우리 나라 사람들 역시 두려워했습니다. 지금 국가가 당당하지만 왜인을 접대하는 일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실수가 없어야 하니, 소소한 폐단을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그 사이의 이해(利害)를 널리 의논하여 좋은 계책을 취해야 합니다.”
중종7년 2월 13일
전조의 일로 보더라도 왜구들이 교동(喬桐)에까지 들어 왔었고, 강화(江華)와 운봉(雲峰)에서의 싸움 때는 성무(聖武)하신 태조(太祖)가 계신 데다 또한 이두란(李豆蘭)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아기발도(阿只拔都)와 같은 천하의 기이한 무재(武才)로도 패전(敗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었다면 위태했을 것입니다
중종 39년 5월 27일
상이 이르기를,
선조 25년 11월 25일
고(故) 재상 이준민(李俊民)은 이야기가 변방의 일에 미치자, 말하기를 ‘상께서는 왜국을 근심하십니까? 왜인은 근심할 것이 못됩니다.’ 하였다. 내가 무슨 까닭이냐고 물었더니, 준민은 짧은 옷소매에, 단검(短劍)을 들고 맨발로 달리는 것은 잘하나, 그 밖에 다른 장기는 없으니 어찌 적(賊)이 될 수 있겠습니까. 신의 외숙 조식(曺植)도 항상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였다. 내가 ‘그렇다면 아기발도(阿只拔都)가 있는 것은 어쩐 일이냐?’ 하니, 말하기를 ‘아기발도는 주객(主客)의 형세를 헤아리지 못하고 적국에 깊숙이 들어왔으니 어찌 태조의 절제(節制)하는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호걸이 아닙니다.’ 하므로, 나도 그렇다고 답하였다
선조 26년 6월 17일
기본적으로 왜적과 관련된 내용이 나올때 아기발도를 언급하는 것인데요(선조대기사는 임진왜란중의 내용이죠), 공통된 내용이 아기발도가 무재에 능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조선 후대에 와서도 아기발도는 '강한 왜적'의 대표적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죠. 물론 임진왜란 후에는 바뀌지만요.
정조대의 기록을 끝으로 아지발도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왜구침입이나, 황산전투의 기억도 희미해졌기 때문이죠
황산 비각(荒山碑閣)을 개수(改修)하였다. 전교하기를,
정조 13년 6월29일
고려말 아기발도가 이성계의 적수중에 유일하게 용맹하다고 평가를 받은 이유는, 과장이라기 보다는 황산전투가 이성계의 뇌리에 가장 인상이 남은 전투였기 때문이 아닐까(죽을 고비를 넘기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