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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쟁

이순신의 한산대첩. “이순신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작성자짜르르|작성시간18.07.04|조회수238 목록 댓글 0


이순신의 한산대첩. “이순신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이순신이 보낸 장계는 7월 20일경 임금이 머무르는 의주에 도착했다.

이 무렵 의주의 조정은 침울했다. 명나라 장수 조승훈이 평양에서 왜적과의 싸움에서 대패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이순신의 장계가 도착했다. 의주의 조정은 몇 시간 시차를 두고 벌어진 소식에 지옥과 천당을 경험했다.

임금과 대소 신료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의주 조정에 파견 나온 명나라의 사신들에게 눈치를 보며 기가 죽어 있다가 보란 듯이 가슴을 펴며 으쓱거렸다. 이순신의 수군이야말로 조선을 대표하는 군대이자 최강의 군대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이날 조정과 백성 모두는 온종일 왜군을 격파한 무용담을 즐겼다.

한편 이순신의 장계가 의주에 도착한 비슷한 시기에 왜군 수군의 참패 소식이 일본 본국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전해졌다.

이즈음 한산도에서 대패당한 왜군 1함대 사령관인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는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바다로 뛰어들어 무인도에서 사흘간 미역만 뜯어 먹다가 구조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볼 면목이 없어 부산에 눌러앉아 눈치만 살폈다. 총사령관이었던 구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직접 쓴 보고서를 들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려고 했지만, 주위 장수들의 만류로 부산에 머물렀다.

불같은 성격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직접 대면보고를 한 인물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였다. 그는 조선 수군과의 첫 해전인 옥포해전에서 이순신에게 참패를 당한 왜군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친분이 두터워 직언할 수 있는 왜군 중 몇 안 되는 장수였다. 보고서는 구키가 쓴 것을 위주로 수군 재건을 위한 건의 내용을 담았다.

일본 나고야에서 머물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도도 다카토라에게 수군이 참패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도요토미는 믿기지 않는 듯 얼굴이 일그러진 채 억지로 화를 삼켰다.

“조선 수군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인가?”

“솔직히 말씀드려서 그렇습니다. 지금 상태로서는 도저히….”

도도는 고개를 숙인 채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뭐야? 조선과의 전쟁을 포기하란 소리인가?”

“아닙니다. 그렇진 않습니다. 여기, 구키가 작성한 보고서가 있습니다만 지금 상태에서는 조선 수군을, 아니 조선의 이순신을 이길 수는 없다고 봅니다.”

도요토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도도는 등줄기에 식은땀을 느끼며 처분을 기다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20여 년에 걸친 일본의 전국시대를 마무리 짓고, 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난세의 영웅’이었다. 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골 농부의 의붓자식으로 태어났다. 얼굴 생김새도 원숭이처럼 못났지만, 주위 사람을 매료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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