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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화폐 정리 사업-구 백동화 교환에 관한 건

작성자스토리|작성시간16.08.25|조회수353 목록 댓글 0

 

 

화폐 정리 사업-구 백동화 교환에 관한 건

 

탁지부령 제1

구 백동화(白銅貨) 교환에 관한 건.

 

1조 구 백동화 교환에 관한 사무는 금고(金庫)로 처리하도록 하며 탁지부 대신이 이를 감독한다.

 

2조 교환을 위해 제출한 구 백동화는 모두 화폐감정역(貨幣鑑定役)이 감정하도록 한다. 화폐감정역은 탁지부 대신이 임명한다.

 

3조 구 백동화의 품질, 무게, 인상(印象), 모양이 소재가치와 액면가가 일치하는 화폐[正貨]로 인정받을 만한 것은 한 개당 금() 19리의 비율로 새로운 화폐로 교환한다. 이 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부정 백동화는 개당 금 1전의 가격으로 정부에서 사들인다. 만약 매수를 원하지 않는 경우 정부에서 절단하여 돌려준다. , 형태나 품질이 조악하여 화폐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사들이는 대상으로 포함하지 않는다.

 

43조에 따라 교부할 대금(代金)의 종류는 19051월 칙령 제3호 및 제4호에 따라 신 화폐 제일은행권 및 일본 화폐 중에서 금고(金庫)의 사정에 따라 정하도록 한다.

 

5조 화폐 교환소는 우선 다음의 장소에 설치한다. 경성, 평양, 인천, 군산, 증남포. 단 경성교환소는 오는 71일부터 업무를 시작하되 다른 곳의 교환소의 개시일은 추후 고시한다.

광무 9(1905) 624

탁지부 대신 민영기

관보3178, 1905(광무 9) 629

 

 

이 사료는 대한제국 경제를 침탈할 목적으로 대한제국에서 유통되던 화폐를 정리하고 새로 일본 화폐를 유통하는 것을 골자로 1905(대한제국 광무 9) 6월부터 실시한 화폐개혁 내용이다. 러일전쟁 중인 1904(광무 8) 8한일협정서가 체결되자, 일본은 이를 빌미로 대한제국 정부에 외국인 고문관을 고용토록 하였다. 이에 일본 정부 추천으로 대한제국 재정 고문으로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 1853~1926]가 부임하였다.

 

메가타는 대한제국의 재정이 문란한 이유로 정부의 잘못된 백동화 정책을 지적하고 그해 11월 전환국을 폐지하게 하였다. 또한 화폐 가격은 금을 표준으로 물가의 표준을 정하되 백동화 대신 다른 보조화를 발행하며, 화폐 정리 방법으로 한국의 화폐 체계를 일본과 동일하게 하거나 연동시키고,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 정부 또는 일본 정부의 보증을 받아 자금을 차입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는 규정은 대한제국 정부가 1901(광무 5)에 발표한 화폐 조례를 기본적으로 따르도록 하였다. 화폐 조례에 의하면 화폐 발행권은 정부, 정확히 말하면 탁지부에 있으며 일체의 사적인 화폐 발행은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기존 화폐 중 흠결이 있는 화폐에 대해서는 탁지부가 그 보상 원칙을 정하도록 되어 있다. 메가타가 탁지부의 실권을 장악했던 시점에서 화폐 조례실행은 일본에게 대한제국의 화폐개혁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한제국 정부는 19051화폐 조례 실시에 관한 건을 공포했으며, 화폐 정리에 관한 사무를 일본 제일은행으로 하여금 집행하게 하고 필요한 자금도 이 은행에서 차입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화폐개혁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구() 백동화 정리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는 1905629일 발표된 탁지부령 구 백동화 교환에 관한 건구 백동화 교환 처리 순서로 구체화되었으며, 7월 초부터 구 백동화 교환이 시작되었다.

 

백동화 회수는 탁지부에서 주관하며 교환 작업의 핵심인 백동화 교환가 감정은 탁지부 대신이 임명한 감정역(鑑定役)이 담당하도록 하였다. 정합한 백동화로 인정될 경우 개당 금 19리로, 부정 백동화는 1전으로 교환되었지만 이외의 경우는 교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당국의 화폐 정리에 대한 취지는 각 지방까지 충분하게 주지, 선전되지 못하였다. 이에 19095월 칙령으로 구 화폐의 공납 기한을 12월 말까지 연기하였다. 구 백동화 교환을 개시해 기한이 끝날 때까지 회수된 총 액수는 9,608,63664전이었다. 백동화는 모두 용산중앙금고 용해부에서 녹였고, 은은 일본 오사카 조폐국[大阪造幣局]으로 보내 신화폐 주조를 위한 재료로 사용하고, 기타 백동이나 동은 모두 매각 처분하였다.

 

교환가로 지급된 돈은 다이이치은행권 혹은 일본 화폐였으며, 이는 대한제국 재정이 공식적으로 일본에 점령되었음을 의미한다. 신화폐는 은행 및 각종 금융기관을 통해 무이자로 대부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유통, 보급하였다. 그 결과 유통된 신화폐의 양은 1910(대한제국 광무 15) 5월까지 4,358,487환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농촌의 자연 경제는 분해가 더욱 촉진되어 농민은 토지와 생활 재료 및 노동 수단으로부터 축출되고, 새로운 노동시장으로 추방을 당하였다. 또한 교환 과정에서 상인들 사이에 관행으로 처리하던 어음까지 일시에 현금으로 교환하라는 지침이 내려지면서 우리나라 상인들은 극심한 현금 부족 현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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