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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스크랩] 전라좌수영과 전라우수영 개털리다....

작성자변강쇠|작성시간12.12.10|조회수645 목록 댓글 0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불과 5년전.... 

<정해왜변>이라 불리우는  대형 왜변이 발생했었다...  이른바  <손죽도 사건>이다... 



                                                                   <위 그림으로 손죽도가 어디 있는지 알수 있다> 



이미  1570년부터  전라도 순천 관할부 왜구침범을 시작으로  

전라도 지역에 대한 왜구들의 침략과 약탈은 비일비재해왔다...


그러던 1587년(선조 20) 봄, 처음에 왜선 몇 척이 녹도 근처에 나타났다가 

얼마 안 되어 수십 척이 손죽도를 침범했다...  1592년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니까 불과 5년전 일이다. 


당시 순천에 있던 정기명의 보고에 의하면  침략한 왜선은 약 30여척...  실록의  기록은  왜선 약 20여척으로 보고된다.


그럼  사건을  순차적으로 나열해 보자....



                                                           < 당시 녹도진 만호 이대원 장군의 사당>



1587년 2월 총병력 1천명 이상, 30여척의 일본함대의 선발대 2척이 흥향현 녹도진 앞바다에  나타났다... 

급작스러운  왜선 출몰에  직속상관인  전라좌수사  심암에게  보고하지 못하고  휘하 병력만을 이끌고 녹도진 만호 이대원이 급히 출동한다....


이때  용력이 출중한  녹도 만호 이대원은  휘하 병사들의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두어  왜구들의 목을 베었고  상관인 전라좌수사 심암에게  전과 보고와 함께  수급을 바친다... 


@@@@@  전라좌수군과  전라우수군의 참패 @@@@@


열받은 쪽발이들이 며칠뒤 ..

손죽도를 점령하자 1영(좌수영), 5관(광양, 순천, 흥양, 낙안, 보성), 5포(녹도, 발포, 사도, 여도, 방답)의 전라좌수군이 일제히 출동했다. 


심암은 후방을 맡으면서 이대원을 최전방에 세웠다. 이때 이대원은 지금 날이 저물었고 또 군사들도 적어 덮어놓고 출전하는 것은 무모할 따름이니, 

군사를 더 많이 모으고 선단을 크게 지어내일 아침 날이 밝은 다음에 효과 있게 치자고 심암에게 진언했다. 


그러자 심암은 도리어 협박까지 하면서 즉각 출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에 이대원은 곧 이어 응원군을 거느리고 와 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수일 전 전투로 피로에 지친 수하군사 100여 명을 이끌고 출전했다. 적군은 많고 아군은 적은 상태에서 손죽도 해상에서 3일간 전면전을 펼쳤다. 심암은 쳐다만 보고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당시  조선수군의  위용...  판옥선의 크기가 다양함을 알수 있다...큰고을 배는 크게 만들고 작은고을의 배는 작게 만들었다> 





이당시  용감한 이대원만  앞장서서  돌격하고  다른 장수들은  구원병을 보내지 않고 구경만 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생전 처음 보는 조총에서  비처럼 퍼부어대는 철환이 두려워 비겁하게  구경만 했다는걸 알수 있다.... 


마침내 이대원은 중과부적과 무원고립 및 화력열세 상태에서 모든 군사를 잃어버렸고 배조차 남김없이 깨지고 말았다. 


결국 이대원은 혼자서는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칼을 들어 자기 손가락을 잘랐다. 

그리고 속저고리를 벗어서 그곳에 손가락 피로 최후의 절명시 한 장을 써서 하인에게 주며 

고향에 돌아가 장례하라고 말했다. 

그 후 붙잡혀 항복하라고 위협을 받았으나 굴복하지 않자 왜인들은 그를 배의 돛대에 묶어 놓고 사정없이 때렸다. 


그러나 이대원이 죽을 때까지 그의 입에서 꾸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손죽도 뭍으로 끌려나와 수하 병사들과 함께 살해당하여 22세의 청년 장군은 목숨을 잃었다.....(연경재전집 이만호유시)




<당시 왜구들의 함대진형도...  가운데에 영주급 왜구가 타는 대형전함 안택선이 있고, 주변으로 주력전선 세키부네가 포진한다>


이대원이 죽자 전라좌수사를 포함한 다른 장수들은 뿔뿔히 흩어져 달아나버리고....

이렇듯 전라좌수군을 가볍게 격퇴한 왜구들은 손죽도에 이어 강진 해역을  약탈한 후 현재 강진 마량을 거쳐 현재 완도까지 넘어갔다. 


이들의 공격으로 가리포 수군은 주둔지를 점령당하여 병선 4척을 빼앗겼고 

가리포 첨사 이필은 왼쪽 눈에 화살을 맞고 퇴각,  

전라우수사 원호(元壕)까지 출동했으나   전선 5척만 잃고 말았다.     

이후  왜구들은 전라우수군까지 괴멸시켰다.


왜인들은 흥양에서 강진에 이르는 도서와 수군진 및 연해지역을 조선인 협력자들(친일파)의 지리정보를 토대로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사람을 납치하며 군선을 나포한 후 이를 끌고 침략 5·6일 만에 돌아갔다. 


이것이  이른바 정해왜변이며, 전라좌수군과 전라우수군 모두 참패하였으며,  

불과 임진왜란 5년전의 일이다. 


정해왜변은 이른바  임진왜란의 전초전이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의 방비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미니게임이었던것이다.



                                                           <조선수군의 주력함  판옥선의  위용>  


이렇게 전라도 수군이 개털린지 4년뒤 전라좌수사로  이순신이 부임하고,  이순신은  정해왜변 당시 털렸던 부대의 장수들을 자신의 주변에 포진시켜  일본수군의 특징과 전술을  주도면밀히 연구하고,  마침내, 거북선과 다양한 전술과 병법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1년뒤  임진왜란이  개전되자...  

무적의  전라좌수군 신화를 만들어내며, 7년간 단 한번도 패하지 않는... 

전승의  무적 이순신 함대 신화를 이룩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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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이종격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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