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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스크랩]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무기

작성자스토리|작성시간13.03.11|조회수3,870 목록 댓글 0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무기


1) 명량해전 참전 주요 무장의 깃발
전국시대에 벌어진 전쟁은 같은 일본인끼리 싸우는 내전이었므로, 상호 식별을 위해 문장(紋章) 같은 각종 상징물이 발달하게 되었다. 일본 중세의 영주들을 다이묘(大名)라고 하는데, 다이묘의 가문(家門)을 상징하는 문장을 가문(家紋)이라고 한다. 이 가문을 선박, 건물, 의복, 심지어 그릇에까지 그렸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각종 깃발들은 가문(家紋)의 그림을 이용해서 만드는 경우도 있으나, 가문(家紋)과 상관없이 독자적인 디자인으로 만든 경우도 많다. 군대에서 사용한 상징물은 크게 네종류로 나뉘는데 첫째는 군기(軍旗)이다. 군기는 소속 다이묘를 표시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깃발이다. 둘째는 본진기(本陳旗)이다. 다이묘가 전쟁에 참가했을때 다이묘 자신이 소속된 부대가 본진이다. 이 본진을 상징하는 깃발이 본진기이다. 세째는 우마지루시(馬驗, 馬印)이다. 우마지루시는 다이묘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한 깃발이다. 네째는 사시모노(指物)이다. 사시모노는 총이나 칼, 창, 갑옷 등에 소속을 표시하기 위해 새긴 일종의 마크이다. 다이묘가 아니더라도, 반독립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무장일 경우 독자적인 군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림 속의 청색바탕에 흰색 원 세개(紺地白餠)를 가진 깃발은 도도 다카도라 (藤堂高虎)의 본진기(本陳旗)이다. 군기일 경우 흰색 바탕에 검은색 원 세개(白地黑餠), 흰색 바탕에 붉은색 원 세개(白地朱丸), 흰새 바탕에 붉은색 원 다섯개(白地朱五丸) 등 여러 변형이 있다. 그림 속 도도 다카도라의 본진기는 깃대에 부착된 상태이며, 나머지는 깃발만 그려진 상태이다. 십자가처럼 보이는 깃발(白地筆文字)이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의 군기이며, 붉은색 바탕에 흰색 원이 교차된 깃발(紅地白輪違)은 와키자카 야스하루 (脇板安治)의 군기이다. 구루지마(來島) 가문은 원래 해적 수준의 용병집단으로 유명한 무라카미(村上) 수군의 일원이었다. 그림 속의 깃발은 그 무라카미 수군의 군기다. 만(卍)자기는 하치스카 이메마사(蜂須賀家政)의 본진기이다. 원래 만(卍)자를 새긴 깃발은, 일종의 용병집단인 하치스카당 (蜂須賀黨)을 상징하는 깃발이었다. 뒤에, 하치스카씨(蜂須賀氏)가 다이묘가 되자, 만자를 가문, 군기, 본진기에 사용하였다. 위 깃발들은 정확하게 명량해전 당시의 깃발이 아니며, 일부는 임진왜란 종전후에 사용된 깃발도 포함되어 있다.



2) 일본군의 갑옷

◆ 도세이 구소쿠 (當世具足)

임진왜란 당시를 포함해서, 전국시대 이후의 일본 갑옷을 '도세이 구소쿠'라고 부른다. '도세이(當世)'는 '최신, 현재'라는 의미이며, 구소쿠(具足)는 '완전히 갖춘 것'이란 의미로 갑옷과 투구 기타 신체에 부착하는 방호장비 일체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일본 고대 갑옷은 크게 단코(短甲)과 케이코로 나뉘어지는데, 단코가 한국의 판갑(板甲)에 해당하고 케이코가 한국의 찰갑(札甲)에 해당한다. 대략 8세기 무렵부터 단코가 완전히 사라지고, 케이코가 일본 갑옷의 주류가 된다. 이때부터 케이코가 분화, 발전되어 오오요로이(大鎧), 도오마루(胴丸), 하라마키(腹卷), 하라아테(腹當) 등 일본적인 양식의 갑옷이 탄생하게 된다. 

전국시대의 도세이 구소쿠는 주로 도오마루나 하라마키에서 변화, 발전된 갑옷이다. 대체로 도세이 구소쿠는 신체 전체를 방어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구성된 전신 (全身) 갑옷이면서도, 오오요로이(大鎧)보다는 신체 활동을 자유롭고 경쾌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도세이 구소쿠는 언뜻 겉모습이 도오마루나 하라마키와 유사하게 보인다. 하지만, 도세이 구소쿠는 갑옷에서 가장 중요한 구성 부분인 흉갑(胸甲)의 내부 구조가 사실상 판갑(Plate Armour)에 가까운 것들이 많다. 특히 난반도 구소쿠 (南蠻胴具足) 같은 갑옷은 이름 그대로 유럽식 판갑을 일본식 갑옷 양식과 절충한 것이다. 다만, 도세이 구소쿠 중에는 흉갑 방호재의 결합방법상 순수한 판갑(Plate Armour)에 해당하는 것부터, 보통의 소찰갑(lamella Armour)에 해당하는 것까지 여러가지 변형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일률적인 갑옷 양식이라고 단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다.



위 사진처럼 완전한 형태의 '도세이 구소쿠'는 다이묘나 주요 무장 등 극소수의 사람들만 입을 수 있는 초호화 갑옷이며, 그 중 일부는 실전용이 아니라 신사 등에 봉안하기 위해 만든 의장용 갑옷이다. 일본 갑옷은 갑옷 각 구성부분마다 고유의 명칭이 있다. 갑옷 1개의 완전한 부속명칭은 50여개에 달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일본 갑옷은 크게 여덟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① 머리에 쓰는 투구는 카부토(兜)라고 한다. ② 얼굴에 쓰는 가면은 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멘구(面具, 面頰)이라고 부른다. ③ 갑옷의 핵심적인 구성부분-가슴을 방호하는 흉갑(胸甲)은 도(胴)라고 부른다. ④ 흉갑 아래에 연결된 상갑(裳甲, 치마 갑옷)은 쿠사주리(草摺)라고 부른다. ⑤ 어깨와 팔 위쪽을 보호하는 상박갑은 소데(柚)라고 부른다. 사진 속의 갑옷은 소데(柚)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이다. ⑥ 팔목과 손을 보호하는 굉갑(肱甲)은 코테(籠手)라고 부른다. ⑦ 무릎 위에서 허벅지까지 보호하는 대퇴갑은 하이다테(佩楯)라고 부른다. 겉모습으로는 쿠사주리와 하나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별도로 분리되어 있다. 하이다테는 앞치마처럼 생겼으며 끈으로 허리에 고정을 시킨다. ⑧ 무릎 아래 정강이와 발목을 보호하는 경갑(脛甲)은 수네아테라고 부른다.

◆ 일반 병졸용 갑옷 (오카시 구소쿠, 御貸 具足)
오카시 구소쿠(御貸 具足)는 '영주가 빌려준 구소쿠'란 뜻이다. 다시말해 다이묘들이 하급 무사~일반 병사들에게 지급하는 갑옷이 바로 오카시 구소쿠이다. 하급무사~일반 병사들을 아시가루(足輕)라고 부르기도하므로, 오카시 구소쿠를 아시가루 구소쿠(足輕 具足)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카시 구소쿠는 대량 생산되어 병사들에게 지급되는 갑옷이므로, 다이묘나 사무라이들이 입는 갑옷보다는 간단하게 만든다. 오카시 구소쿠는 흉갑(도,胴)과 상갑(쿠사주리, 草摺)만으로 구성되는게 보통이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언뜻 고대 일본의 탄코를 연상시키는 판갑(Plate Armour) 양식의 갑옷이다.



3) 일본군의 화약무기
일본군의 화약무기는 크게 총과 대포로 나눌 수 있다. 일본의 전통적인 분류법은 코쓰스(小筒), 나카쓰스(中筒), 오오쓰스(大筒), 이시히야(石火矢) 등으로 구분했다. 이중에서 코쓰스~오오쓰스는 총이며, 이시히야(石火矢)는 대포에 해당한다. 

◆ 총의 분류

1543년, 포르투칼을 통해 처음으로 조총이 일본에 전해졌다. 2년6개월 후에는 일본 자체 기술로 조총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코쓰스(小筒), 나카쓰스(中筒), 오오쓰스(大筒)는 발사하는 탄환의 무게로 구별한다. 1몬메(문)가 3.75g 정도되는데, 1~20몬메의 탄환을 발사하는 것이 코쓰스, 20~30몬메의 탄환을 발사하는 것이 나카쓰스, 30~200몬메의 탄환을 발사하는 것이 오오쓰스이다. 병법 유파나 사료에 따라 구별 기준은 조금식 다르다. 조총(鳥銃)이란 명칭은 조선과 중국에서 주로 사용한 명칭이고, 일본에서는 데뽀(鐵砲)라는 명칭이 일반적이다. 대략 코쓰스가 데뽀(鐵砲)에 해당하고, 나카쓰스가 오오데뽀(大鐵砲)에 해당한다. 

탄환무게에 따른 구분

  일본의 명칭

 조선,중국의 명칭

 탄환무게(문)

 탄환무게(g)

 총 구경 (환산)

    코쓰스 (小筒)

  데뽀 (鐵砲)

  조총(鳥銃)

 1~20몬메

 3.75~70g

 7.5~23.6 mm

    나카쓰스 (中筒)

  오오데뽀(大鐵砲)

         -

 20~30몬메

 70~112.5g

 23.6~27.0 mm 

    오오쓰스 (大筒)

            -

         -

 30~200몬메

 112.5~750g

 27.0~48.0 mm

    가가에노 오오쓰스 (砲大筒)

         -

 

 

 86.9 mm



가장 전형적인 조총은 구경 9~16mm에, 3~6몬메 (11.25~22.5g) 내외의 탄환을 사용한다. 일본의 한 유적지에서 출토된 수백개의 조총 탄환을 분석한 결과 탄환의 크기는 대부분 10.7~12.1mm 정도였으며, 그 중에서 11.6mm 탄환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각 박물관에 소장 중인 조선시대 조총은 대부분 구경이 13~16mm 정도이다. 일본의 일반적인 조총은 길이가 90~140cm 정도이며, 무게는 1.8~3.4kg 정도된다. 최초로 모방생산에 성공한 난반쓰스 같은 조총은 무게가 3~4kg 정도 되었지만, 그 이후 개량한 일본식 조총은 1.8~2.5kg 정도로 무게를 줄인 것들도 있다.

전형적인 조총은 주로 아시가루(足輕)들이 사용하므로, 아시가루 데뽀(足輕鐵砲)라고도 부른다. 이런 표준적인 조총이라면 탄환무게 따른 구별법으로는 당연히 코쓰스(小筒)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이런 표준형 조총을 나카쓰스(中筒)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사무라이들은 일반적인 조총보다는 조금 크고 무거운 사무라이쓰스(侍筒)를 사용한다. 사무라이쓰스는 주로 구경 19mm, 탄환무게 10몬메 내외의 탄환을 사용하므로, 일명 슈몬메쓰스 (10 몬메 조총)라고도 부른다. 10몬메 내외만 되어도 반동이 심하여, 발사할때 상당한 팔 힘이 필요했다고 한다.

특별하게 구경을 작게 만든 조총을 호소쓰스(細筒)이라고하는데, 구경이 7.5mm 정도이다. 이 호소쓰스는 훈련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화약을 적게 쓰도록 만든 조총이다. 말 위에서 사용하기 위해 34~50cm 정도로 짧게 만든 조총은 단쓰스(短筒, 馬上筒) 라고 부른다. 

오오쓰스는 구경이 상당히 큰 총인데, 큰 것은 사실상 대포에 가까운 것들도 있다. 200몬메의 오오쓰스는 총 무게가 28kg 정도이므로, 손으로 들고 사격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받침대 같은 곳에 고정시켜서 사격하는 수 밖에 없다. 특히, 가가에노 오오쓰스(砲大筒)는 오오쓰스의 구경을 거의 대포 수준으로 크게 만든 것이다. 일본에서 장거리 저격용과 공성전에서 주로 사용했다. 외관과 구조는 조총과 유사하지만, 발사방식과 기능은 사실상 대포라고 할 수 있다. 가가에노 오오쓰스는 사거리가 거의 870m (8町)에 달하였다고 한다. 오오쓰스 자체는 임진왜란 이전에 개발된 것이지만, 대구경의 오오쓰스들이 출현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였던 것 같다. 

제조지에 따라 조총을 구별하는 방법도 있는데, 종자도(種子島)에서 생산된 최초의 조총은 난반쓰스(南蠻筒)라고 부르며, 그 이후 일본 중심지역에서 토착화된 조총은 사가이쓰스(堺筒), 구니토모쓰스(國友筒) 등 생산지역에 따른 구별이 있다. 난반쓰스만해도 당시 유럽식 화승총과 거의 동일하지만, 사가이쓰스, 구니토모쓰스는 일본식으로 부분적인 개조가 이루어졌다. 


◆ 조총 부속명칭

현대 한국용어(해설)

 일본 전통 용어

 한국 전통 용어

  영어

 ① 방아쇠

 히키가네(引金)

 궤(軌), 귀(鬼) 

 Trigger

 ② 가늠자

 前目當

 후조성(後照星)

 Backsight

 ③ 가늠쇠

 先目當 (照星)

 전조성(前照星)

 Foresight

 ④ 총구

 巢口

 총구(銃口), 전구(前口)

 Muzzle

 ⑤ 꼬질대

 가루가(朔杖)

 삭장(朔杖)

 Rammer, Ramrod

 ⑥ 화승

 히나와(火繩)

 화승(火繩)

 Match (slow match)

 ⑦ 용두 (≠공이치기)

 히바사미(火挾)

 용두(龍頭)

 Serpentine

 ⑧ -

 히아나(火穴)

 -

 -

 ⑨ 화약접시

 히자라(火皿)

 화문(火門)

 Pan (priming pan)

 ⑩ 점화구멍

 히구츠(火口)

 -

 Touch hole

 ⑪ 화약접시 덮개

 히부타(火蓋)

 화문개(火門蓋)

 Pan Cover

 총알(탄환)

 덴뽀교쿠(鐵砲玉)

 연자(鉛子),철환(鐵丸)

 bullet (lead ball)

 점화용 화약

 元藥

 문약(門藥),선약(線藥)

 -

 추진체용 화약

 上藥

 신약(身藥),총약(銃藥)

 -

 




히바사미(火挾)은 다른 말로 우치가네(中金)라고 부르기도 한다. 히구츠(火口)는 그림 속에서 잘 안보이는데, 화약접시(火皿)안에 뚫린 작은 점화구멍이다. 이 점화구멍(火口)을 통해 불이 총 속으로 옮겨붙는 것이다. 총열을 제외한 히바사미, 히자라, 히부타 같은 주요 금속 부품은 모두 놋(眞鍮)으로 만든다. 총열(銃身)은 철제이다. 조총의 성능을 좌우하는 부품은 총열이다. 일본도를 만들면서 발전한 제철 기술을 조총 총열 생산에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단기간에 조총 대량 생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총열은 넓적한 철판을 봉에 둥글게 감은후, 접합 부분을 용접해서 만든다. 조총의 탄환을 덴뽀교쿠(鐵砲玉)라고 부르는데, 실제 일본의 발굴사례를 보면 철제로 된 것은 소수이고, 70%이상이 구리나 청동제였다고 한다. 

총 몸체는 나무-주로 떡깔나무로 만들었다고 한다. 화승(火繩)은 목면(木綿으로 만든다. 화승은 도화선처럼 빨리 타 들어가지 않는다. 화승은 30분에 기껏해야 15cm 밖에 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조총 총구 바로 밑에는 꼬질대(朔杖)가 들어있다. 마치 M-16 소총 개머리판 안에 꼬질대가 들어 있듯이, 조총 총열 밑에도 꼬질대가 들어 있는 것이다. 이 꼬질대는 화약을 넣거나, 탄환을 넣을때, 혹은 폭발력을 강하게 하기 위해 총구 안으로 종이를 넣을 때, 청소할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조총에 사용하는 흑색화약은 대략 초석 7: 유황 3: 목탄 3의 비율로 섞어 만든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모자라는 초석(염초)을 충당하기 위해 전국의 마굿간, 변소를 뒤지는 소동을 벌였다고 한다. 흔히 흑색화약이라고 말하지만, 점화약 화약과 추진체용 화약은 조금 성분이 다르다. 점화용 화약(元藥)은 화약접시(火皿)에서 점화구멍(火口)을 지나 총 내부까지 좁은 구멍을 통해 불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므로, 입자가 작고 고운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점화용 화약을 세화약(細火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추진체용 화약(上藥)은 폭발해서 그 힘으로 총알을 밀어내는 역할을 하므로 입자가 거칠고 크다.

한국 전통용어는 한효순이 쓴 신기비결(神器秘訣, 1603년)을 참고했다. 한국 전통용어 중에 궤(軌)는 정확하게 방아쇠를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라 용두를 움직이게하는 부속장치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화승총의 원리상 Serpentine이나 히바사미(火挾)를 공이치기(Cock)로 번역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차라리 전통용어 용두(龍頭)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 조총 사격순서와 사격법

일반적인 조총 사격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왼손으로 총을 잡고 오른손으로 추진체용 화약(上藥)을 총구(巢口)로 넣는다.

② 같은 자세로 탄환(鐵砲玉)을 총구로 넣고, 꼬질대(朔杖)로 총알(鐵砲玉)을 밀어 넣는다. 

③ 오른손으로 화약접시 덮개(火蓋)를 열고, 화약접시(火皿) 속에 점화용 화약(元藥)을 넣는다.

④ 오른손으로 다시 화약접시 덮개(火蓋)를 닫는다. 

⑤ 불을 붙인 화승줄(火繩)를 용두 (火挾) 끝의 구멍(火穴)에 매단다.

(이 단계까지가 사격 준비 단계이다)

⑥ 사격명령을 받으면, 오른손으로 화약접시(火皿) 덮개를 다시 연다.

⑦ 오른손으로 방아쇠(引金)를 당긴다. 

(방아쇠를 당기면, 다음 단계는 자동으로 진행된다) 

⑧ 용두(火挾)가 꺽어지면서 용두 끝 구멍(火穴)에 매달린 화승줄(火繩)이 화약접시(火皿)로 들어간다 

⑨ 화승줄의 불이 화약접시(火皿) 속의 점화용 화약(元藥)으로 옮겨 붙는다 

⑩ 점화구멍(火口)을 통과해 불이 총 내부로 타들어간다 

⑪ 총 내부의 추진체용 화약(上藥)에 불이 옮겨 붙는다 

⑫ 추진체용 화약이 폭발하면서 총알(鐵砲玉)이 발사된다. 

평상시에 총알과 추진체용 화약(上藥)을 섞어서 준비해 놓으면 ①~② 단계는 한꺼번에 처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종이나 나무 혹은 대나무로 만든 작은 통 10~30개를 준비해, 그 속에 미리 총알과 추진체용 화약(上藥)을 1발 분량식 넣어둔다. 사격시에는 통을 이용해 한꺼번에 총알과 추진체용 화약을 넣고, 개머리판을 땅에 부딪히면 된다. 실제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도 그런 방식을 사용했다. 이런 방식을 일본에서는 하야고우(早合)라고하는데, 숙련된 사람이라면 하야고우 방식으로 1분에 4~5발을 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위 순서에는 빠져 있으나, 일반적으로 화약을 넣고 총알을 넣은후, 종이를 총구 속으로 밀어 넣는다. 화약이 총구를 통해 흘러나오는 것을 방지하고, 폭발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이다.

위 순서에 화승(火繩)에 불을 붙이는 단계는 없다. 화승은 생각만큼 빨리 타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30분에 15cm), 보통 불을 붙인 상태로 둔다. 화승은 비유하자면 초처럼 타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향처럼 불꽃이 없이 타들어간다. 화승총의 화승을 마치 폭탄의 도화선과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조총 사격을 할때 방아쇠를 당긴후, 약간 시간이 흐른 후에 총이 발사되는 것은, 화승과는 상관이 없다. 화승이 타들어가서 화약에 점화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 붙은 화승을 물고 있는 용두가 화약접시 속에 들어가면서 화약에 불이 붙는다. 이 때문에 화승이 타들어가는 속도는 발사속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화약접시(火皿) -> 점화구멍(火口) -> 총내부까지 점화용 화약이 타 들어가는 속도 때문에 시간 지연이 생기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조총 사격시에 보통 왼쪽 손목에 화승을 감아두는 것 같다.

일본의 전통적인 조총 사격자세는 4종류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사격자세는 슬대(膝臺)인데, 현대의 '무릎 쏴 자세"와 완전 동일하다. 왼쪽 무릎을 세우고, 오른쪽 무릎은 바닥에 붙인체, 왼쪽 팔꿈치를 왼쪽 무릎 위에 놓고 쏘는 사격 자세이다. 가장 안정적이며, 명중율이 높은 사격 자세이다. 중방(中放)은 두 무릎을 모두 땅에 붙인체 쏘는 사격 자세인데, 총의 높이가 슬대(膝臺) 보다는 조금 높다. 입방(立放)은 '서서 쏴' 자세이다. 역슬방(逆膝放)은 슬대(膝臺)와는 반대로 왼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오른쪽 무릎을 세워서 쏘는 자세이다. 오른손잡이라면 이런 자세에서는 당연히 총구가 땅을 향하게 된다. 역슬방(逆膝放)은 성이나 배의 총구(狹間)에 총을 거치한후, 아래쪽으로 사격할 때 사용하는 자세이다.




◆ 조총 사거리와 관통력 

일반적으로 조총의 유효사거리가 30~50m라고 말하는 것은 관통력, 명중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이므로, 실제 50m 이상 탄환이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그 이상 거리에서 사람을 살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반적인 화승총이라면 최대사거리가 500~700m 정도 된다고 한다. 물론, 이 거리는 관통력을 무시한 단순한 '최대 탄환 도달 거리'이다. 일반적인 조총일 경우 200m 이상의 거리라면, 설사 사람한테 총알이 맞아도 거의 죽지 않는다고 한다. 조준한 목표를 맞출 수 있는 유효사거리는 100m 이내이며, 숙련된 사격자일 경우 100m 이내라면 10발 중 8~9발은 사람의 상반신에 명중시킬 수 있다고 한다. 실제 실험결과를 보면 30m 정도에서는 확인사살이 가능한 수준이고, 50m 부터는 대략 표적을 맞추긴해도 탄착점이 조금 분산되는 것 같다. 실제 일본에서는 50m 정도 거리에서 사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기 준

  거리

 최적조건에서 탄환이 가장 멀리 날아가는 거리

 500~700m

 총알에 맞았을때 사람을 살상시킬 수 있는 최대거리 

 200m 이내

 조준해서 숙련자가 사람 상반신에 맞출 수 있는 최대거리

 100m 이내

 조준해서 사람 상반신에 맞출 수 있는 일반적인 거리

 50m 이내

 조준해서 확인 사살이 가능한 거리

 30m 이내

 

위의  설명은 극히 일반론적인 이야기이며 조총의 종류, 표적의 성질에 따라 상당한 편차가 있을 것이다. 90년대 초중반 일본의 여러 관련 단체와 연구기관의 실제 실험 결과를 필자가 정리해 보았다.

 

 조총 종류

 거리

              표적의 성질

                              결      과

조총 구경 8mm

 30m

 160cm 크기의 사람 모양

 가슴 부위에 5발 명중

 50m

 가슴 부위에 1발 명중, 4발은 상반신으로 분산

조총 구경 9mm,

화약량 3g

 30m

 두께 2.4cm 나무판자

 관통 O

 두께 4.8cm 나무판자

 관통 O

 두께 1mm 철판

 관통 O

 두께 2mm 철판

 관통 O

 50m

 두게 2.4cm 나무판자

 관통 O

 두께 4.8cm 나무판자

 관통 실패 X (3/4 통과)

 두께 1mm 철판

 관통 O

 두께 2mm 철판

 관통 실패 X

 50m

 두께 1.2cm x 2장 전나무 판자

 관통 실패 X (3/4 통과)

표준형 조총

100m

 두께 3cm 나무판자

 관통 O

조총 구경 16mm, 6몬메

 30m

 대나무 다발 방패 (竹束),  대나무  30개를 둥글게 묶었음.  6개 정도만 관통하면 방패가  관통

 관통 실패 X (대나무 4개 관통)

조총 구경 19mm, 10몬메

 30m

 관통 O (대나무 6개 관통)

 
임진왜란 당시 일본 수군의 주력 무기는 다름아닌 조총이었다. 위 실험 조건 중에서 판옥선에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사례는 없지만, 대략적인 분석은 해볼 수 있다. 판옥선의 외판 두께는 대략 4치(12.26cm) 정도이다. 배의 주요 구성부분은 소나무로 되어 있고, 방패판은 소나무보다 더 강한 참나무 계통을 쓴다. 위 실험에 사용한 나무는 소나무보다 재질이 약한 전나무(檜木) 종류이다. 일반적으로 바다에서 25m 내로 접근할 경우 파도에 의해 배끼리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의도적인 접근전이 아니라면, 25m 이상 거리에서 교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면 해전의 통상적인 거리(25m 이상)에서, 일반적인 조총으로 사격하여 판옥선의 외판 두께 12.26cm를 관통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 대포류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의 일본 대포는 몇가지 다른 경로로 도입된 것이다. 첫째는, 남중국에 대한 해적질 혹은 상행위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도입한 대포다. 둘째는, 남만인(포르투칼, 스페인)들과의 무역을 통해 도입된 유럽식 대포다. 세째는, 이런 기술을 참고하여 일본에서 자체 생산한 대포다.

일본이 최초로 대포를 자체 제작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명종 1년(1545년)에 '왜인들이 화포를 조선에 헌납하겠다'고 자랑하는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일본인들이 이제 자신들도 화약무기를 가지게 되었음을 조선에 과시한 내용이다. 또한, 실록 명종9년(1553년) 12월조를 보면 사쓰마(薩摩州) 출신 왜인 노부나가(信長)가 우리나라에 망명하여 총통을 제작한 기사가 남아있다. 이로 미루어보아, 일본에서 조총을 도입(1543년)한 후 얼마되지 않아, 대포 제작 기술까지 습득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말해 일본은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대포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부분적인 생산 기술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포는 조총만큼 환영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임진왜란 이전에 일본이 대포를 대량생산했다는 기록도 없을 뿐더러, 임진왜란 당시에도 대포류를 대량으로 운용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만(주로 포르투칼, 스페인)으로부터 도입한 대포는 이시히야(石火矢:いしひゃ)라고 불렀다. 최초로 도입한 이시히야는 주로 한국이나 중국의 불랑기佛郞機)와 동일한 종류의 대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측 기록에서 이시히야가 최초로 보이는 시점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30여년전인 1560년 무렵이다. 이때의 이시히야는 자체 생산한 것은 아니고 단순한 수입품이었던 것 같다.

일본이 대포를 자체적으로 대량생산한 것은 임진왜란 종전 이후 1600년 부터이다. 현재 일본에 남아있는 일본산 대포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1611년에 제작되어 야스꾸니 신사에 보관 중인 대포인데, 전체 길이가 3.13m , 구경은 90mm 정도이다. 

일본의 대포나 총 중에 보히야(棒火矢:ばうひや)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화약무기는 대부분 철환(鐵丸)이나 돌을 발사하는 것이 보통이고, 화살 종류를 발사하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유일하게 보히야(棒火矢)는 대형 화살을 발사한다. 보히야 중에 작은 것은 조총의 형태로 제작된 것도 있고, 큰 것은 대포 형태로 제작된 것들도 있다. 일본에서는 주로 공성무기(攻城武器)로 많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일본서적에서는 이 보히야를 일본 고유의 무기인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일본의 보히야는 대형 화살을 발사하는 한국식 총통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이다. 당연히 보히야는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것들이다. 일부 후대의 보히야 중에는 화살 자체에 폭약이 충전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종류의 보히야는 일본에서 자체적으로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추정복원도가 제각각일만큼 그 실체는 불분명한 것들이다.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 수군이 장비한 대포라면 주로 이시히야(石火矢, 佛郞機)였을 것이고, 부분적으로 다른 종류의 수입품 대포가 뒤섞인 상태였을 것이다. 위 그림은 일본 배에 탑재된 화포를 보여주고 있다. 특이하게도 바닥이 아닌 배의 들보에 대포를 장착시킨 모습이다. 일본 전통 배의 선체가 약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탑재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4) 일본군의 냉병기 

◆ 칼

일본도(니혼도:日本刀)는 일본을 상징하는 무기이며,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만큼 유명한 존재다. 그러나, 일본군에서 칼이 차지한 비중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는 않다. 예를들어 세키가하라전투(關原合戰, 1600년) 당시 다테 마사무네 (伊達政宗)의 휘하 병력 2300명중에서 철포(조총)를 가진 병사가 1200명, 창(槍)을 가진 군사가 850명, 활(弓)을 가진 병사가 250명이었다고 한다. 즉, 조총이 52% 이상이고, 창이 37%, 활이 11%였던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당시에 칼을 가진 병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활이나 창을 가진 병사들도 칼을 보조무기로 휴대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칼 제작기술과 검술이 훌륭하게 발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하간 일반 병사들이 칼을 주력 무기로 휴대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도는 기본적으로 칼의 길이에 따라 노타치(野太刀), 타치(太刀), 우치가타나(打刀), 와키자시(脇差), 단도(短刀) 등으로 나뉜다.

  명    칭

           칼 날      길  이

                         특      징

 노타치 (野太刀)

 전체 길이 5~9尺 / 1.5~3m

 중국의 장도(長刀)에 해당.

 타치 (太刀)

 2尺 이상 / 60cm 이상

 고전 양식. 칼날을 아래로 찬다.

 우치가타나 (打刀)

 2尺 이상 / 60cm 이상

 신양식. 칼날을 위로 찬다.

 와키자시 (脇差)

 1尺 이상~2尺 미만 / 30~60cm

 보조용. 경쾌하게 사용 가능한 가벼운 칼

 단도 (短刀)

 1尺 미만 / 30cm 미만

  





일본도 중에서 길이가 1.5~3m에 달하는 종류도 있다. 이른바 노타치(野太刀)가 그것이다. 노타치는 일본에서 카마쿠라(謙倉)시대 부터 전국시대까지 사용되었는데 문헌상 기록으로는 3m급(9척 3촌)까지 존재했다고하며, 현재 실물 유물로는 225cm(7척4촌)가 가장 큰 것이다. 중국이나 장도(長刀)도 이 일본의 노타치(野太刀)에서 유래한 것 같다.

우치가타나(打刀)는 일본도의 대표적인 양식이며, 전국시대~임진왜란 시기의 주력 칼이다. 단순히 카타나(刀)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치가타나(打刀)와 비슷한 칼로 타치(太刀)라는 칼이 있다. 타치(太刀)는 조금 더 고전적인 양식이며, 우치가타나는 비교적 새로운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타치는 우치가타나에 비해 평균적으로 칼날의 폭이 조금 좁고, 조금 더 굽어 있지만, 모든 타치가 그런 것은 아니다. 여하간 우치가타나의 길이와 날의 형태는 타치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우치가타나는 허리에 찰때 허리끈 사이에 칼집을 직접 묶고, 칼날이 위쪽을 향하게 찬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에 반해 타치는 칼집에 달린 두개의 끈을 이용해서 허리끈에 묶고, 칼날이 아래쪽을 향하게 찬다. 

와키자시(脇差)는 무로마치(室町)시대 말기부터 유행한 칼이다. 길이는 보통 30~60cm 정도이며, 50~60cm 정도의 대형 와키자시(長脇差)와 30~40cm 정도의 소형 와키자시(小脇差)로 나뉜다. 와키자시는 이름 그대로 허리에 언제든지 차고 다닐 수 있는 가볍고 경쾌한 칼이라는 점이 주된 특징이다. 와키자시는 원래 타치나 우치가타나와 동시에 휴대하는 보조무기로 출발한 것이나, 에도(江戶)시대부터는 점차 독자적인 무기로써의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과 군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와키자시는 어디까지나 보조무기에 지나지 않으며, 극단적으로 평한다면 독자적인 위치라는 것도 떠돌이 3류 무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와키자시는 할복시에 마무리용으로도 인기가 있었다. 

단도(短刀)는 30cm 미만의 작은 칼이다. 일반적으로 타치(太刀)를 사용하던 시대에는 단도를 보조용 칼로 차고, 우치가타나(打刀)를 착용하던 시대에는 와키자시(脇差)를 보조용 보조용 칼로 착용했다. 타치와 함께 찰때의 단도(短刀)는 단순히 카타나(刀)라고 부르기도 한다. 단순히 말해 단도라고 부르지만, 시대나 양식에 따라 수십가지의 다른 종류와 이름이 있다. 

일본도 수집가들이 일본도를 분류하는 방법은 상당히 복잡하다. 기본적인 분류 기준만 십수개에 달하며, 각 기준 아래로 수십개식의 종류가 있으므로, 이들을 조합한 전체적인 칼의 종류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된다. 그런 분류 기준들중 상당수는 칼 수집가들에게나 필요할 뿐, 전쟁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겐 그렇게 의미있는 것들은 아니다. 분류기준 중 비교적 중요한 것은 주쿠리쿠미 정도이다. 이것은 칼날의 형태와 단면 모양으로 칼을 구별하는 기준이다. 일반적으로 임진왜란 당시의 우치가타나(打刀)나 와키자시(脇差)라면 대부분 시노기-주쿠리(鎬造) 방식으로 제작되어 있다. 이런 모양의 단면은 베는 성능도 우수할 뿐만 아니라, 베고나서 다시 칼을 빼기도 쉬운 것이 장점이다.


◆ 창 

창을 일본어로 야리(槍)라고 한다. 조총편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당시 일본군 무장에서 창은 매우 중요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단순한 직선의 창날을 가진 창을 스야리(素槍)라고 한다. 양날을 가진 창(검신형 창)이든, 외날을 가진 창(도신형 창)이든 구별하지 않고, 가지 없이 직선의 창날을 가진 창은 모두 스야리에 속한다. 



가마야리(鎌槍)는 창날에 90각도의 가지가 붙어있는 창으로, 중국이나 한국의 극(戟)에 해당하는 창이다. 가지가 한쪽에만 붙어있는 창을 가타가마야리 (片鎌槍)라고 부르며, 양쪽에 가지가 붙은 창을 료카마야리(兩鎌槍)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료카마야리의 양쪽 가지 중에 하나는 꺽여 있는게 보통이다. 양쪽 가지가 똑같이 생겨 십자가처럼 보이는 창은 주몬지야리 (十文字槍)라고 부른다. 전국시대에는 가타가마야리가 주류였으나, 임진왜란 종전후의 에도시대에는 료카마야리가 더 많이 쓰였다. 임진왜란 당시 악명 높았던 가토 키요마사(가등청정)의 주무기도 바로 이 가마야리 종류였다고 한다.

낫처럼 생긴 날을 가진 창은 나이까마(雉鎌)라고 부른다. 날은 비록 낫처럼 생겼다해도 엄연히 창이므로, 자루길이는 3m에 달한다. 일본에서는 특히 해전에서 많이 사용했는데, 해전에서 사용한 나이까마는 자루가 10m 정도로 특별하게 길었다.

나게야리(長柄槍)는 이름 그대로 자루가 특별하게 긴 창이다. 즉, 창날의 형태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창 자루의 길이로 구분되는 창이다. 나게야리는 보통 길이가 4.5~6.5m에 달했다고 한다. 나게야리는 특히 밀집대형을 형성한체 집단전투를 하는 방식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보통 자루가 긴 창은 해전에서 사용하거나, 혹은 집단운용하여 기병에 대항하는데 많이 사용되는게 보통이다. 일본의 나게야리도 주로 기병에 대항하는 용도로 사용된 것이다. 일본학계에서는 나게야리를 조총과 함께 전국시대의 전쟁 양상을 크게 변화시킨 중요한 무기로 간주하고 있다.

나기나타(雉刀)와 나가마키(長卷)는 칼과 창의 중간에 해당하는 무기이다. 나기나타와 나가마키는 외형상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구별하기 애매한 경우도 있으나, 대체로 나기나타는 창인데 날이 길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나가마키는 칼인데 손잡이가 길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마키의 경우 나기나타보다는 손잡이가 짧은 것이 일반적이다.

나기나타(雉刀, 長刀)의 경우 가마쿠라 바쿠후 시대부터 시작하여, 무로마치 바쿠후 말기까지 일본의 주력 창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남북조시대에는 기병전에서 큰 활약을 하기도 했다. 나가마키(長卷)도 나기나타와 비슷한 시기에 출현했는데, 원래 노타치(野太刀)에서 손잡이가 길어짐으로써 출현한 무기이다. 우리나라 기록에서 왜군이 큰 칼(대도,장도)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자주 보이는데, 이 기록상의 대도와 장도는 순수한 칼이라기보다는 나기나타나 나가마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창을 주무기로하는 아시가루를 야리구미 아시가루(槍組 足輕)라고 한다. 그림에서 보듯이 주무기가 창이라 할지라도, 칼을 보조무기로 휴대한다. 창자루(槍柄)는 생각보다 복잡한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그냥 나무를 잘라 만들 경우 강도가 약해서, 잘못하면 부러질 위험이 높다. 그렇다고 금속으로 만들경우 비용도 많이 들고, 너무 무거워 실용성이 떨어지게 된다. 일본의 창자루는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첫째, 중심부에 넣을 튼튼한 나무심을 만든다. 만들려고하는 창자루 굵기보다 조금 더 가는 나무자루를 사용한다. 둘째로 대나무를 세로로 잘게 쪼갠다. 세째로 쪼갠 대나무쪽을 나무자루 둘레에 붙인다. 세째, 대나무쪽을 고정시키기 위해 실을 튼튼하게 감고, 마지막으로 칠을해서 마무리한다. 이렇게 만들경우 일반적인 나무자루(木柄)보다 더 가벼우면서도 강도는 몇배나 강하게 된다.

◆ 활 

일본의 전통 활은 길이가 210cm가 넘는 거대한 장궁(張弓)이다. 영국의 장궁(Long Bow)에 대한 환상 때문인지, 장궁을 우수한 활로 착각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러나, 사실 장궁이라는 이유만으로 좋은 활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활의 사거리를 늘리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활의 크기를 크게 만드는 것이다. 영국의 장궁이나 일본의 장궁은 이런 식으로 사거리를 늘린 것이다. 보통 장궁의 경우 단일 재료. 혹은 비슷한 성질을 가진 재료를 복합해서 만들게 되므로, 재료상으로는 단일궁내지 복합궁에 해당한다. 이런 활은 별로 굽지 않고 거의 직선의 형태를 가지므로, 형태상으로는 별로 굽지 않은 활-직궁에 해당한다. 즉, 크기로는 장궁(張弓), 재료상으로는 단일궁(單一弓)내지 복합궁(複合弓), 형태상으로는 직궁(直弓)이 되는 것이다.

둘째는, 특수한 재료로 활의 탄력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활의 크기는 작더라도, 탄력이 강해 사거리가 크게 늘어난다. 보통 탄력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뼈나 뿔, 나무, 기타 유기질 재료를 복잡하게 가공해서 활을 만들게 된다. 이렇게 만든 활을 합성궁이라고 한다. 합성궁의 경우 탄력만으로도 사거리가 커지므로, 활이 그렇게 크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의 활-특히 조선시대의 각궁(角弓)이 바로 이런 활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 아시아 각국의 각궁(角弓)은 크기상 단궁(短弓)-재료상 합성궁(合成弓)에 해당하고, 형태상으로는 굽은 활-만궁(彎弓)에 해당한다. 

영국의 장궁(Long Bow)이 뛰어나다는 것은 같은 단일궁 중에서 작은 활인 단궁(短弓)보다는 큰 활인 장궁(張弓)이 뛰어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재료상 합성궁에 속하는 단궁(短弓)과 비교할 경우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실상 중세 영국의 장궁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활보다도 훨씬 원시적이고 조잡한 활에 불과하다. 영국이나 일본의 장궁(張弓)처럼 활의 크기를 키워 사거리를 늘리는 방식은, 활의 진동이 불규칙적이 되어 원거리 명중율과 관통력이 떨어지게 된다. 그점에서 재료상 단일궁, 복합궁에 해당하는 장궁은 재료상 합성궁에 속하는 단궁보다는 원시적인 활이라고할 수 있다. 특히, 말위에서 활을 쏘는 궁기병(弓騎兵)의 경우 크기가 작은 단궁-합성궁-만궁 계열의 활이 압도적 유리하다. 이 때문에 단궁-합성궁-만궁 계열의 활은 몽골이나 투르크 등 유목민족의 전통적인 주력무기가 되어 왔다.

크기와 길이에 따른 활의 분류

 장궁(張弓, Long Bow)

 단궁(短弓, Bow)

 재료와 제작법에 따른 활의 분류

 단일궁(單一弓, Self Bow, Simple Bow) -단순 활

 복합궁(複合弓, Built Bow, Laminated Bow) -겹활

 합성궁(合成弓,Composite Bow) - 합성활

 형태와 만곡도에 따른  활의 분류

 직궁(直弓)

 만궁(彎弓)

 

물론, 단궁-합성궁-만궁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각궁(角弓)이 장점만 가진 활은 아니다. 합성궁은 여러가지 성질이 다른 재료로 활을 만들게 되므로, 물고기 부레 같은 자연 접착제를 사용하게 된다. 이런 자연접착제는 온도나 습기에 민감하다. 온도나 습기가 높아지면, 접착제의 힘이 약해져 활의 강도가 떨어지게 된다. 

일본은 동북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합성궁을 사용하지 않은 국가로 남았다. 일본이 왜 합성궁을 사용하지 않고, 복합궁에 만족했는지는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다. 습기가 높은 일본 기후 때문에 합성궁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전통적인 복합궁들도 나무끼리 접착할때 아교를 사용하므로 습기게 약한 것은 합성궁과 마찬가지다. 활이 주력 무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복합궁에 만족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카마쿠라바쿠후~남북조시대까지의 일본 사무라이들은 활을 주력 무기로 사용한 궁기병들이었다. 

일본 학자들은 자신들의 활이 우수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거창한 오오요로이 갑옷를 입은체 2미터가 넘는 활을 들고 말위에 탄 일본 궁기병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희극적인 모습이다. 물론, 일본 활을 단순하게 원시적인 활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적어도 전국시대 이후의 일본 활은 비록 선진적인 합성궁 단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시적인 단일궁도 아니며 최소한 복합궁 중에서는 최고 수준에 도달한 활이라고 할 수 있다. 

합성궁은 뼈나 뿔 + 힘줄 + 나무 등 성질이 다른 세가지 이상의 재료로 만든 활이며, 복합궁은 성질이 유사한 재료로 여러 층을 합쳐 만든 활이다. 일본 전통 활은 대부분 나무 + 대나무의 조합이며, 이것은 전형적인 복합궁이다. 한국 활 중에서 각궁과 향각궁은 합성궁이며, 목궁이나 죽궁은 복합궁이다.

일본에서는 자신들의 전통 활을 설명하면서 흔히 합성궁(合成弓)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일본의 합성궁은 한국의 복합궁(複合弓)을 포함한 의미로도 사용되는 개념이므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일본 전통 활은 어디까지나 복합궁(Laminated Bow, Built Bow)이지 합성궁(Composite Bow)이 아니다. 

일본 활은 중심점이 독특하게 설정되어 있다. 활을 잡는 부분을 중심으로 활 위쪽이 더 길고 아래쪽이 짧다. 일부 학자들은 말 위에서 큰 활을 사용하기 위해 이렇게 불균형한 모양이 되었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는 틀린 주장이다. 기마 풍습이 없었던 3세기 무렵의 일본 활도 지금 처럼 위가 길고 아래쪽이 짧은 활이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왜) 병사들은 투겁창, 방패, 목궁을 사용한다. 목궁의 아래는 짧고 위쪽은 길다 (兵用矛楯木弓. 木弓短下長上)" 라는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短下長上은 2000여년을 이어온 일본 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활은 시위의 중앙에 화살을 끼워서 사용할 수 없다. 화살이 활을 잡은 왼손에 부딪혀 버리기 때문이다. 이걸 피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활의 아래쪽을 짧게하고 위를 길게 하여 힘의 중심점을 바꾼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활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위의 한가운데서 약간 위로 화살을 끼운다.

 주요 일본 전통 활

 현대적인 분류

 유효 사거리

 특징

마루키 유미 (丸木弓)

 장궁, 단일궁

 ~70m

 순수하게 나무로 만든 원시적인 활

후시다케 유미 (伏竹弓)

 장궁, 복합궁

     -

 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일본 최초의 복합궁

시호다케 유미 (四方竹弓)

 장궁, 복합궁

 ~180m

 전국시대 유미구미 아시가루의 주력 활

시게토 유미 (重藤弓)

 장궁, 복합궁

 ~200m

 전국시대 사무라이들이 많이 쓴 활

히고야미 (弓胎弓)

 장궁, 복합궁

 ~220m

 일본 복합궁 중에서 가장 발전한 양식





마루키 유미는 나무를 잘라 만든 단순한 활이다. 마루키 유미는 재료가 되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마유미 (檀弓:박달나무 활), 쿠와유미 (桑弓:뽕나무 활) 등 10여 종류로 나뉜다. 

후시다케 유미 (伏竹弓)는 일본 최초의 복합궁이다. 마루키 유미는 자연의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여 활의 몸체를 만들지만, 후시다케 유미는 나무에 대나무를 접착하여 만든 활이다. 후시다케 유미가 최초로 개발된 것은 헤이안(平安) 시대 중기 무렵이었다고 한다. 

최초의 복합궁이 만들어진 이후 여러가지 변형이 만들어졌는데, 대나무와 나무를 결합하는 방식에 따라 여러 종류 (三杖打弓, 竹四杖打弓 , 四方竹弓, 繼木弓, 弓胎弓)로 나뉜다. 전국시대의 유미구미 아시가루(弓組 足輕)들이 주로 사용한 활- 다시 말해 활 전문 병사들이 주로 사용한 활은 시호다케 유미(四方竹弓)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사용한 활도 대다수는 이 시호다케 유미였을 것이다. 시호다케 유미는 중심부는 나무로 되어있고, 바깥은 대나무로 완전히 둘러싼 활이다. 시호다케 유미가 최초로 개발된 것은 무로마치(室町)시대이다. 

사무라이들이 주로 사용한 활은 시케토우 유미(重藤弓)이다. 이 시게토 유미의 기본적은 제작법은 후시다케 유미나 시호다케 유미를 비롯한 기타 합성궁과 유사하다. 다만 겉에 칠을 한후 실을 감고, 그 위에 다시 등나무를 감아 강도를 보강한 것이 특징이다. 칠을 하는 방식과 등나무를 감는 방식에 따라 여러 변형(二所藤, 本重藤, 村重藤, 塗籠藤) 들이 있다. 이렇게 칠을 하는 이유는 일본의 복합궁들도 합성궁처럼 습기에 약하기 때문이다.

히고야미(弓胎弓)는 활 몸체의 중심부에 들어가는 나무가 잘게 여러쪽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히고야미는 탄력이 좋아, 일본 활 중에서는 가장 긴 사정거리(최대 사거리 400m, 유효사거리 220m)를 가진다. 히고야미는 중심부에 들어가는 나무쪽의 수에 따라 여러 종류(三本,四本,五本 등)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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