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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스크랩] 영화 `명량`(鳴梁, Roaring Currents)의 역사적 고증관련에 대한 고찰

작성자통섭인|작성시간14.08.05|조회수944 목록 댓글 0


고증에 관한 제작진의 인터뷰 영상 및 제작기.

Contents

1. 개요
2. 역사적 사실 관련
2.1. 인물들의 호칭 관련
2.2. 교지의 시점 오류
2.3. 전투에 참여한 함선 숫자 관련
2.3.1. 개봉 전
2.3.2. 개봉 후
3. 복장 관련
3.1. 조선측 복장 관련
3.2. 일본군측 복장 관련
4. 전술 관련
4.1. 영화상에서 등장한 무기 목록
4.1.1. 승자총통, 조총의 미출현
4.1.2. 조총 만능설 관련
4.2. 폭발 관련
4.2.1. 개봉 전
4.2.2. 개봉 후
4.3. 선상 백병전 관련
4.3.1. 개봉 전
4.3.2. 개봉 후
5. 함선 관련
5.1. 세키부네의 크기 관련
5.2. 대장선의 내구도 논란
6. 일본어 대사 관련
7. 그 외


 

1. 개요

김한민 감독의 전작인 최종병기 활에서 보여준 상당히 공을 들인 고증에서 많은 사극팬들의 지지를 받은 바 있으므로, 그보다 더 많은 예산이 투입된 이번 영화가 더욱 더 사극팬들의 기대를 받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기대만큼 세밀한 고증에 있어서 오류가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으며, 영화적 허용으로 볼 수도 있을만한 요소로 보기에는 사실성을 떨어뜨리는 항목들이 많아서 따로 문서가 분리되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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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적 사실 관련

2.1. 인물들의 호칭 관련

  • 왜군 장수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관백이라 칭하는데, 히데요시는 관백 직함을 양자인 도요토미 히데츠구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상왕에 해당하는 태합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히데츠구는 이미 1595년에 역모 혐의로 제거되었지만 히데요시가 관백을 다시 겸임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유시점에서는 '태합 전하'로만 불려야 하는 게 맞다.
  • 극 초반, 배설이 이순신에게 따지면서 "통제공"이라 칭하는 장면을 제외하면, 시종일관 부하 장수들이 이순신에게 "장군"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고증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있었다.[1] 백의종군 후 복직된 이순신의 품계는 정 3품 '절충'장군' 이었으므로 극중 "장군"이라는 칭호는 고증 오류가 아니라는 의견이 있는데, 절충장군 또한 정3품 당상관 품계였으므로 "장군"이라는 호칭은 잘못된 것이 맞다. 단순히 품계명에 '장군'이라는 명칭이 들어간다고 해서 호칭도 '장군'이 옳다는 건 대체 무슨 논리야(...) 그런 식이면 정2품 상계 정헌'대부'는 호칭이 '대부'겠다? 일반적인 수군절도사들은 정3품 당상관이었기에 "영감"으로 불려야 고증이 맞는 것이다.

    실제로 이순신이 한산해전 이후 정2품 상계 정헌대부에서 절충장군으로 품계는 낮아졌어도 직함 자체가 "삼도수군통제사"였다. 품계 서열이 낮은 것은 정치적인 문제일 뿐이며, 해군참모총장 자리에 대장이 아닌 중장이 피치못할 사정으로 임명되었더라도[2] 아래 사람들은 직함인 참모총장으로 호칭할 것이기에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통제사에게 "장군"이라고 칭하는건 상당한 결례이다. 최소한 이순신의 휘하의 수군이라면, 극 초반 배설이 언급한 "통제공"이나 "통상", "영감", "통제사 영감" 등의 존칭[3]으로 부르고, 아랫 부장들을 "장군"이라고 불러야 지휘 서열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런 존칭의 어감 자체가 TV사극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겐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므로 각본상에서 의도적으로 친숙한 어감인 "장군"으로 호칭을 정했을 가능성이 높다.

2.2. 교지의 시점 오류

국왕 선조가 내린 수군 혁파 교지에 적힌 연도가 터무니없이 틀려버렸다. 교지에 나온 만력 30년은 1602년으로 7년 전쟁은 이미 끝났고 이순신은 시공을 넘어온 미래의 교지를 받은 게 된다. 1597년 정유는 실제로는 만력 25년, 조선의 기년법으로는 선조 재위 30년이므로 이 둘을 혼동해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고는 하지만 날짜도 틀린 것으로 봐서 (교지의 날짜는 9월 20일, 명량해전은 음력 9월 16일) 다른 교지를 보고 베낀 다음 본문만 수정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기본적인 사실에서 고증오류를 일으켜 버렸다. 교지의 년도가 틀렸음을 지적한 포스팅

일반인들 입장에서 한자로 쓰여진 교지의 내용을 세밀하게 읽어볼 사람은 별로 없을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작은 디테일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속설을 무색하게 하는, 사소하긴 하지만 다소 허탈한 고증오류인 셈.

2.3. 전투에 참여한 함선 숫자 관련

2.3.1. 개봉 전

영화 시놉시스나 포스터를 보면 12척의 판옥선이 330척의 왜선을 무찔렀음을 강조하고 있다. 난중일기의 기록에 의하면 아군의 참전숫자가 12척[4]이라서 그렇게 되었다는 제작사의 코맨트가 있었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적선단의 규모도 동 사료에 의해 133척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고려해야 할 점은 난중일기는 충무공의 시점에서 쓰여진 기록이므로 적선단의 규모가 133척이라는 기록은 충무공의 시야 또는 전투 종료 이후 전과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정리되었을 숫자로 보여지며, 일본측 기록에는 최대 333척까지 참여했다는 사료도 있으며, 이충무공 전서같은 사료에는 200척 이상 최대 330척까지 기록되는 점을 고려할 때, 꼭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는 구석이 있다.

또한 상업영화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아군의 숫자는 최대한 적게, 적군의 숫자는 최대한 크게 묘사해 명량 해전이 가지는 숫적인 열세를 극복한 위대한 전쟁이라는 극적인 효과를 노린 문구로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2.3.2. 개봉 후

아군의 12척이라는 숫자는 순수하게 전투에 참여한 판옥선의 숫자이며, 충무공은 해전 이전에 여력을 모아 1척의 거북선을 건조중이라는 설정이었다. 충무공도 이 1척의 거북선의 활약에 내심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출정 전날, 부하 장수 배설의 배반으로 허무하게 불타버리는 상황이 묘사된다. 실제로는 전라우수사 김억추가 1척의 판옥선을 이끌고 뒤늦게 합류했다고 전해지지만 영화적으로 각색한 부분.

왜군의 규모도 홍보물의 330척이라는 설정과는 다르게 실제로 스크린에 보여지는 함대 규모는 난중일기에 나오는 133척에 근접한 수준으로 묘사된다.[5]

3. 복장 관련

3.1. 조선측 복장 관련


감독이나 제작진의 고증관련 발언이 무색하게 충무공을 비롯, 조선군이 입고있는 갑주나 복장 양식에 상당한 고증오류가 존재하고 있다.

충무공의 갑주를 보면, 기존 창작물에서는 이순신이 조선 후기의 갑옷인 두석린갑을 입고 있던 적이 많던 것에 비해 당대에 널리 입었을 것으로 추정되는[6] 찰갑류와 두정갑을 표현한 것까지는 좋으나, 찰갑을 가죽끈으로 매듭짓는 수결법은 아예 고증이 안되어 있고[7] 찰갑의 모양 또한 그 어떤 유물이나 국조오례의 등에 있는 갑주 그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정체불명의 갑옷으로 묘사되어 있다. 유물이 몇점 없어도 당시의 회화나 유물 등이 남아있고 기록을 따져보면 어떤 갑옷을 주로 입었을지에 대해서는 추정이 가능하다.

투구에 있는 가리개는 두정갑 양식이고, 미늘에는 금형에서 찍어낸 듯한 도깨비 문양이 다닥다닥 박혀있다.[8] 게다가 허리띠는 작은 갑옷을 하나 덧대고 허리띠로 동여맨 중국식 갑주에서 일반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괴상망측한 변형형태이고,[9] 이순신 갑옷의 흉갑쪽 금박 용 문양 장식은 판갑옷에나 어울림직하며 장식이 과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의 방호력을 고려치 않은 듯한 장식인 것이다. 이순신의 식별성을 위해 저런 장식을 넣은 것 같은데 오히려 그 것 때문에 갑주 고증의 전체적인 질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허리띠의 플라스틱삘이 진하게 나는 도깨비 문양은 덤. 한국 갑옷에서는 포를 둘러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밑의 제작기 영상을 보면 책들을 수없이 뒤졌다고 나오는데 그 발언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고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갑주 고증에 대한 총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이 무슨 갑옷을 입었는지는 사료나 회화자료가 없기에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당대 수군의 보고나 기록에서 찰갑 기록이 많이 보인다는 점[10], 그리고 두정갑은 고려 때부터 원의 영향을 받아 쓰이고 있었다는 점[11], 무엇보다도 이순신의 5대손 후손이자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봉상 장군 갑주의 경우 두정갑이라는 점을 볼 때 찰갑이나 두정갑이 유력하다.

이런 지적에 대하여 의상감독은 사료를 기본으로 하지만 그림과 연기자의 액션과 영화적인 멋을 강조하였다고 답변하였다. 하지만 최민식의 카리스마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수 있음에도 고증을 반쯤 버리면서까지 주인공 보정을 줄 필요가 있었냐는 데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외에 부장들의 갑주에서도, 충무공의 그것보다는 정도는 덜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그렇게 당시 시대상에 맞는 복장 고증이 아니어서 다소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승병들의 복장 의 경우 불멸의 이순신 시절 수군복장에서 水자를 卍자로 바꾸어놓은 게 전부인 수준이고, 권율은 생뚱맞게 갑주에 중국식 피박갑주를 두르고 있다.

또한 일반 병사들이 전부다 갑주를 걸치고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세밀하게 기록된 사료가 없어서 확신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모든 선상 전투인원이 갑주를 제대로 챙겨입업을 정도로 당시 조선군의 보급수준이 좋았다고 보긴 힘들기에 온전하게 표현되었다고 보긴 어렵다. 그렇다고 드라마에서 보아왔던 포졸복에 덩그러니 水를 새겨넣어 수군임을 표시하는 것보다는 더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이건 엄밀히 말해 고증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에 가깝다. 당장 임란이 끝난 이후 기록에선 엄연히 '통제사의 병력도 갑옷을 입지 않고 싸웠다'고 하는 판에 전원 갑주 착용은 엄연한 고증 오류.

가장 큰 문제는 일반 병사들 전군이 두정갑을 걸치고 있는데, 오히려 장군인 이순신보다도 더 좋은 갑옷을 입고 있다는 점이 유머.오오 그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제 두정갑이 당시 비교적 신형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류라고도 볼 수 있다. 동래성 해자 발굴 등으로 밝혀진 바로는, 임진왜란때까지는 찰갑을 비롯한 조선 전기 무장이 상당히 많이 쓰였다는 게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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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본에서 후대에 그린 기록화인 조선전역해전도를 보면 조선 수군들이 죄다 두정갑을 입고있는걸로 묘사되어 있다. 후대에 그려진거라 고증 정확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고 여겨지지만[12] 이 그림을 보면서 조선 수군을 묘사할때 이런식의 중무장으로 묘사하는게 좋겠다! 는 일각의 의견이 있었고, 명량은 이에 부합되는 묘사를 보인다.

또한 조선군이 장비하는 환도도 길이가 카타나 수준으로 긴것은 둘째치고 패용까지 타치와 동일하게 칼자루가 전방을 향하며 날이 바닥을 향하도록 패용한다. 수많은 사극에서 전혀 고증되지 않았던, 딱 보기에도 타치나 카타나 패용과는 구분이 가능한 조선 특유의 환도 패용은 명량까지 와서도 고증되지 못했다.

복식은 아니지만 이순신 본선의 수(帥)자 깃발이 두어 번 등장하는데, 깃발의 帥자가 컴퓨터로 프린트한 글씨체로 보인다. 승리의 궁서체 다른 장수들의 소속을 나타내는 깃발들도 왠지 모르게 고딕체의 향기가...


어재연 장군기

하지만 대장선에 걸린 수자기만큼은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어재연 장군기에 맞추어서 고증한 것으로, 생각보다 현대적이다. 최근에 반환받아 매스컴을 탔으니 사람들 기억에도 남았을 것이고, 구한말이라 이순신이 활약하던 시대와는 거리가 있으나 어찌되었든 조선의 장군이 실제로 사용하던 깃발이라 이쪽에 고증을 맞춘 듯 하다.

여담으로 한국사극에서 많이 무시하는 깍지를 제대로 표현해 내었다 아마도 최종병기 활을 찍은 경험이 도움된듯 하다.


3.2. 일본군측 복장 관련

일본군측 무장의 갑주에 관한 문서
일본 장수들의 갑주를 일본에서 직접 제작해 들여왔다고 했는데, 갑주 고증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명량에서 나온 갑옷이 오오요로이라는 것인데 명량의 갑옷은 오오요로이가 아니다. 오오요로이라면 매우 큰 견갑이 있어야 하며, 전체를 찰갑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갑옷은 안나온다. 엉뚱한 태클이 계속 된 갑옷이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갑옷인데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투구에 날개장식이 있다고 하나 흉갑과 견갑만 봐도 오오요로이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더 문제인데, 이건 단순히 다케다 신겐의 갑옷에서 투구의 털장식을 검은 색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그 외 흉갑과 견갑을 도세이 구소쿠에 가깝게 바꾸었으니 오오요로이라는 지적은 틀렸다.

허나 도도 다카토라의 갑옷은 고증이 잘못되었다. 도도다카토라의 갑주 전국시대의 네임드인 다카토라의 갑옷고증이 틀린 것은 아쉬운 점이다. 다만 고증대로 하면 좀 개그스럽다(...)대나무 헬리콥터

4. 전술 관련

이순신의 대장선이 초반 홀로 역류에 견디며 분투하다가 아군이 합류하고 물살이 바뀌면서 몰아쳤다는 명량해전의 큰 얼개는 지켜지고 있으나,[13] 세부적인 면에서 지적을 받고 있다.

4.1. 영화상에서 등장한 무기 목록

  • 천자총통
    판옥선의 주력 함포로 등장했다. 주로 무쇠로 만든 철탄을 사용하는 모습이며 해전장면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사실 조선 수군의 주력 함포는 지자총통 이하급의 현자총통과 황자총통이었으며 천자총통은 지나친 화약 소모 등을 이유로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나마 육군보다는 훨씬 많이 썼기 때문에 대장선에 천자총통이 주력으로 장비된다 하더라도 이상할것은 없다. 오히려 고증이 더 잘되었다고 볼수도 있는게, 권율 장군이 행주 대첩에서 쓴 천자총통도 사실 이순신이 지원해준 것이다.(...) 그만큼 조선 육군에서는 더더욱 희귀했던 물건.
  • 대완구
    대장선이 구루시마의 세키부네에게 포위되는 상황에서 근접한 적함에 비격진천뢰를 발사하는 화포로 등장한다. 임진왜란 당시 수군이 대완구를 사용한 것 자체는 맞지만[14], 문제는 대완구를 설치한 포차가 마반차라는 것. 마반차는 고종 5년인 1868년, 그러니까 흥선대원군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 비격진천뢰
    위에서 언급된 대완구에서 발사된 폭발형 포탄이다. 심지가 타들어가는 일종의 지연신관식 작동을 통해 근접한 세키부네에 발사된 이후 갑판의 틈을 통해 하부 격군실에 떨어져 시밤쾅!! 당연히 피격된 해당 세키부네는 걸레짝이 되어 침몰한다.
  • 신기전
    해전 초반부, 돌입해오는 구루시마의 1진이 천자총통의 집중포화에 엉키고 설켜서 진형이 흐트러진 순간 대장선의 사수들이 일제히 발사한다. 작중 등장한 무기는 소신기전에 가까운 형태로서, 작은 폭발통을 매달은 화살의 형태이다.
    그러나 발사 방법은 완전한 고증오류. 조선전역해전도에 그려진 잘못된 발사법을 그대로 답습했다. 신기전은 화살 뒤쪽에 활줄을 거는 오늬가 없어 보통 화살처럼 쏠 수 없으며, 철저하게 자체 추진력으로만 날아가는 로켓 무기다.

조선전역해전도에서 신기전을 활로 쏘려는 조선군. 그러나 이는 명백한 고증오류다.

조선시대 문헌에 그려진 신기전 그림과 대신기전 복원품.
실록의 세종 29년 기록에 신기전의 사용법을 봐도, 활로 쏘다는 기록은 없다.(링크에는 주화라 나오지만 바로 다음해인 세종 30년 주화의 공식명칭이 신기전으로 바뀌기 전 기록이라서 주화로 나오는 것 뿐이다.) 그렇다고 국내의 일부 네티즌들이나 서적에서처럼 제작진이 조선시대 사용한 불화살인 석류화전(石硫火箭)과 신기전을 헷갈렸는가 하면[15] 그것도 아니다.

조선시대 화살들 복원품. 한가운데 있는 천뭉치 달린 화살이 조선시대 석류화전이다.(천을 감싼 건 안에 화약뭉치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극중에서 화공선이 대장선을 향해 접근하자 사수들이 발사하는데, 신기전과 달리 화살 뒤 천뭉치를 감싼 게 분명하게 보인다. 특히 일본 화공선 위에 젖은 짚더미에 박혀 불이 꺼져버려 위력을 상실하는 장면까지 나와 의외로 화살을 자세히 볼 수 있다.

  • 조란환
    맨 처음 대장선에 접안해 승선하려는 왜병들에게 슬로우 모션으로 선사한 일종의 산탄이다. 수많은 쇠구슬 다발을 총통에 넣어 발사한 형태이며 원래대로라면 조란환에 피탄된 왜병은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찢겨져 고어물을 찍었겠지만 영화 등급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신체 손상은 거의 묘사되지 않고 피만 살짝 살짝 흩날리는 정도이다. 영화상에선 천자총통에서 발사된 것으로 나오지만, 그 어떤 구경의 총통에도 사용 가능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판옥선에 승선을 시도하는 왜병들을 상대로 자주 사용된 포탄이다. 심지어는 개인화기인 승자총통에도 장비되어 성벽에 쇄도하거나 배에 접현을 시도하는 왜군들에게 쏘아졌으며, 기록에는 불랑기포나 대조총에도 사용했다고 나온다.
  • 대장군전
    치열한 전투와중에 구루시마가 회심의 카드로 보낸 화공선을 발견하고 대장선에서 부랴부랴 대응책을 찾는 과정에서 이미 모든 포탄을 소모했다는 상황속에 무기고에 남아있던 대장군전이 턱하고 쓰러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나대용의 신중한 조준끝에 발사된 대장군전은 화공선에 명중하는 성과를 보였지만, 폭발이 아닌 관통이 목적인 무기이므로 이렇다할 저지력을 보여주진 못한체 화공선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주는데 그쳤다.[16]
  • 조총
    왜군의 기본 무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이 나온다. 여러모로 버프를 먹어서 손이 한방에 날아가기도 하고, 명중률은 저격수를 운용하기까지 할 정도... 아래의 조총 만능설 항목 참조.
  • 일본
    조총과 관련해 고증오류가 있다. 실제로는 조총 도입 이후에도 왜군들은 활을 조총보다 더 많이 사용했는데, 죄다 조총만 사용하고있다. 정작 주력이어야 할 일본활과 화살은 도도 다카토라의 지휘대 한쪽에 장식용으로 놓여있다.(...)
  • 오오즈츠(大筒)
    2인 1조로 운용하는 대구경 조총. 이순신을 엄호하는 방패병들을 말 그대로 날려버리는 위력을 보여준다.
  • 호로쿠비야
    대장선에 근접한 왜병들이 손에 들고 빙빙 돌리다가 던진 폭발형 무기. 파편이 날리는게 아니라 화염병과 비슷하게 착탄한 지점에서 화염이 피어오르는 일종의 소이탄으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하고는 고증이 안 맞는 부분으로, 실제로는 같은 시기 한국의 질려포통처럼 폭발하는 작렬탄이고, 내부에도 위력 증가를 위한 쇠조각이 있다.
  • 일본군의 대포
    와키자카의 기함을 보면 누각 좌우에 매달린 대포를 볼 수 있다. 실제로 사용되는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짧게 나와 확실하진 않으나, 매끈한 포신과 포신 뒤쪽 부분이 네모난 것으로 보아 불랑기포 항목에 있는 오토모 소린이 기증받은 서양 불랑기포로 보인다.

4.1.1. 승자총통, 조총의 미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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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해전 당시 사용되었던 것이 유력시되는 승자총통이 실제 발굴되었음에도, 정작 작중에서는 승자총통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 아쉬운 부분. 또한 백병전 비중에 비해 이순신 장군이 빗발치듯 쏟아부었다고 하였던 승자총통과 활 등의 투사무기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조선군이 원거리 화기로 총통과 완구, 활만 사용하나 시대적으로 조선군도 조총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시점이다. 참고로 이순신은 1593년 9월에 왜군의 조총 복제에 성공했고, 이순신 외에도 조선 내 각계의 조총 복제 노력과 항왜들의 지원으로 사극의 모습과 달리 임란 중반부를 거치면서 조선군도 어느 정도 조총을 사용했다.

4.1.2. 조총 만능설 관련

이순신의 배에서 초요기를 내걸 때 일본 측에서 조총으로 저격을 시도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 중반에 나오는 구루지마의 부하 저격수 '하루' 인데, 우선 당시 탄도학이 발전하지 못해서 조총의 명중률이 엄청나게 떨어졌다는 걸 생각하면 아무리 뽑고 뽑은 최정예 스나이퍼라고 치더라도 쏘는 위치가 바다 건너 구루지마의 배 누각 위에서 어떻게 저격을 그리 잘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시모 하이하? 대충 쐈는데 우연히 맞은거라고 보는 게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장전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17] 방패로 가리고 초요기를 게양하려는 조선군들을 하나하나 저격하는 신의 한수(...)를 보여 준다.[18] 다른 일본군들이 새총 쏘다시피 지향사격을 하는 것과는 영 딴판.[19]

또한 전투 초기 돌격해오는 일본 함대에게 포격하는 과정에서 포탄으로 공격해야 마땅할 정도로 먼 거리에서 조총을 사격하는 위엄을 볼 수 있는데[20], 조총에 각을 주어 사거리를 늘리는 운용은 실존했으나 그렇다고 그렇게 멀리까지 날리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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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의 곡사사격법에 대한 설명 이미지.

즉, 곡사사격이 언뜻 황당해보이긴 하나 사거리가 과장되었으면 몰라도 연출 그 자체에 오류는 없다.

일본군의 조총 사격은 대부분 판옥선의 선체와 방패에 막히긴 하지만 일부는 틈을 파고들어 사상자를 낸다.[21]

전반적으로 영화상에서 일본군의 조총 사격에 의한 피해보다는 선상 백병전에 의한 피해가 더 크게 묘사된다. 백병전을 하지 않는 나머지 10척 함선들은 인원 피해모습이 거의 없기 때문.

4.2. 폭발 관련

4.2.1. 개봉 전

예고편에서 등장하는 해전 장면중, 포탄을 맞은 세키부네가 화염을 내뿜으면서 산산조각나는 장면을 두고서, 당시 조선의 화포는 주로 철탄을 쐈기 때문에 저런 강렬한 폭발은 말이 안된다는 고증덕후들의 비판과 영화적 연출로 봐야한다는 의견 및 왜군 화약 보급선에 명중했기 때문이라는 반론까지 어우러져 키배가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폭발 그 자체를 두고 논란이기도 한데, 사실 화약 보급선에 맞았다고 해도 큰 폭발이 일어나는 건 어색한 일이기는 하지만[22], 조선 수군은 단순 철환만 쏜 것이 아니다. 당시 조선 수군은 조란환, 대장군전은 물론 '폭발'하는 파열탄인 비격진천뢰도 웅포 해전 등에서 사용한 기록이 있는 등 생각보다 다양한 탄종을 운용했으므로, 비격진천뢰가 화약 보급선(혹은 자폭선)에 명중했다면 충분히 폭발을 일으켰을 가능성은 있다.

4.2.2. 개봉 후

예고편에서 논란이 된 대폭발 장면은 구루지마가 회심의 카드로 준비한 화공선으로 밝혀졌다. 그 전 장면들에서는 철탄에 의해 관통되거나 먼지폭발을 일으키는 장면이 묘사되며, 백병전 상황에서 근접한 세키부네에게 비격진천뢰를 발사해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연출도 등장하는 등, 전반적으로 고증에 맞는 포격전을 묘사하고 있다.

구루지마가 보낸 화공선의 경우, 그 안에 가득 화약통을 채우고서 도화선을 이용해 자폭을 수행하려는 설정이며, 정작 대장선에서는 남아있는 포탄이 없어서 마지막 하나 남은 대장군전으로 대응을 하지만 치명타를 입히지 못해 위기에 처한다. 이를 뒤늦게 발견한 아군의 지원사격으로 대장선과 충돌하려는 순간 극적으로 피격당해 대폭발을 일으킨다는 설정이다.

4.3. 선상 백병전 관련

왠지 이 항목만 가지고서도 문서 하나로 분리할 분량이 나올것 같다.

4.3.1. 개봉 전

예고편에서 등장한 선상 백병전의 모습을 두고도 실제로는 조선의 수군은 근세적인 개념의 함포전을 주로 수행했고, 난중일기의 기록 등에서 아군의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상 백병전이 주된 전투의 양상이 아니었다.
실제로 거제현령 안위의 배에 적들이 올라와서 위태로운 백병전을 벌였으나 이것은 안위가 이순신의 엄명에 적진 깊숙히 들어갔다가 적선에 포위된 상태에서 벌어졌으며, 이것도 적선이 완전히 넘어온 것이 아니라 뱃면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위태롭게 막는 과정이었다. 때문에 백병전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공성전에 가까운 양상이다.[23] 실제로 난중일기에서 해당 부분을 올라오지 못하게 막았다.라고 하고 있으며, 이러한 안위의 활약을 보고, 충무공은 다시 배를 돌려 돌진해 전탄을 쉴새없이 퍼부었다고, 적고 있다.

근본적으로 거제 현령 안위의 함을 포위한 왜선 3척에 의해 안위의 전함이 위기에 처하자 이순신이 직접 대장선을 몰아 3척을 내리 연달아 깨트리면서 안위를 구출했다. 만약 안위의 함에 적병들이 탑승해 난전이 벌어졌다면 절대 3척을 연달아 내리 깨트리는 것만으로 안위를 구출할 수가 없다.

거기에 세세한 전개과정을 묘사한 난중일기에서도 적들이 대장선으로 올라왔다는 기록이나 내가 직접 싸웠다 같은 건 없기에 이순신이 칼을 휘두르며 백병전을 벌이는 장면은 전투과정에서의 고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술하듯이 실제 난중일기나 당시 문집만을 봐도 해류에 배가 휩쓸려 위치를 잃거나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일본함선과의 함포전으로 인해 당시 목격자들이 느낀 공포감을 제대로 연구했다면, 굳이 백병전 연출없이도 충분히 긴박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근본적으로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최대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의무가 있다. 또한 충무공이 현대해전의 개념을 열어제낀 인물인 만큼, 처음으로 현대해전을 제대로 묘사하는 작품이 되었다면 훨씬 의의가 높았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 기록을 따져도 백병전 자체가 일어났을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안위, 김응함의 함선이 대장선 곁으로 다가온 것은 대장선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장선이 올린 초요기를 보고 달려온 것이다. 거기에 달려와서 안위와 김응함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네가 내 칼에 죽겠느냐 물러난다고 살거 같으냐!라는 충무공의 일갈.
거기에 이 상황을 충무공은 뱃전에 서서 안위를 부르고, 김응함을 불렀다. 백병전 상황이라면 절대 불가능하다.

만약 백병전 상황이었다면 적을 앞에 두고 아군 장수 두 명을 불러다가 제대로 안 싸우면 군법에 따라 참수하겠다고 닦달하기는 커녕 초요기를 올릴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4.3.2. 개봉 후

백병전 장면의 경우 영화적인 장치로서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해전 도입부, 대장선에서는 포격전을 벌여 진입해오던 구루지마의 선봉을 저지하는 설정이지만, 난중일기에서 묘사한 홀로 남은 대장선의 극적인 연출을 위하여 후속 부대의 돌격을 포격전으로만 막지 못하고 작전상 후퇴하여 피섬[24]이라 불리는 무인도를 등지고 일종의 배수진을 치게 된다.
이 장면 자체가 총체적 난국의 시작이다.

근본적으로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은 스스로 내가 여기서 배를 물리면 진열이 붕괴되어 모든게 무너져 돌이킬 수 없다.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작전상 후퇴고 뭐고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고, 이순신은 오직 한척의 대장선을 가지고 역류하는 해류 속에서 적진을 향해 닥돌하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었다.

오히려 영화에서 억지로 백병전을 끼워넣음으로써 실제의 비장미가 떨어진 것이다. 작전상 후퇴를 할 여력이 있게 묘사된 영화와 달리 이미 붕괴된 대열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역류하는 해류를 거슬러 적의 진영 한 곳으로 자신과 부하들을 밀어넣는 실제 역사쪽이 훨씬 비장미가 넘치고, 위기를 알 수 있다. 제작진의 연구와 고증이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본적으로 그 원균에게마저 어떤 구체적인 위해행위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은 그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의 이순신은 김응함을 베어 효수하고싶다고 생각했고, 이는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고 위태로웠음을 알게해준다.

거기에 난중일기의 기록과는 달리 영화상에서 아군의 피해도 상당한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처절한 전투씬을 통해 관객들에게 명량 해전의 절박함을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의도로 보여진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난중일기에 적힌 대장선 피해는 사망자 2명, 부상자 3명으로 실제로 백병전 보단 공성전에 가까운 전개였을 가능성이 큼에도, 아무리 영화적인 연출을 위해서라지만 엄연히 사서에 저렇게 기록된 전투를 '대장선의 격군실에 물이 차 기동불능 상태가 된 채로, 왜군이 무더기로 승선해서 백병전을 벌이고 화포는 갑판에서 굴러다니며 병사들은 그 포에 깔려서 다치는' (영화에서 묘사된 해전의 모습) 처절한 난전으로 묘사한 것은 실책이다. 극적인 비장함은 고조시킬지 몰라도 이는 전투 자체의 성격을 아예 바꾸고야 만다.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에 비해 우위를 점할 수 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선박과 화기의 우위에 있다. 이순신의 공훈도 조선이 쌓아올린 이러한 성과 위에 비로서 자리할 수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제작진은 명량해전, 그리고 이순신과 참전했던 수병을 강조하기 위해 섣불리 일본 수군을 과장하고 조선군의 승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던 백병전을 강조함으로서, 승리의 숨은(그리고 상당 부분에서 '참된') 주역이었던 바로 그 조선 수군의 저력을 깔아뭉개는 묘사를 해버린 셈이다. 2차대전 전차전 영화를 찍는데 티거를 론슨 라이터로 묘사해버린 꼴이다.

그리고 아무리 영화적으로 극적인 연출을 가미하더라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대장선에서 한번은 공황에 빠진 병사[25]가 갑판위의 화약통에 불을 붙여 자폭하는 설정과 중후반부에는 상당히 과장된 거대한 회오리에 의해 구루지마 안택선의 충파공격에서 벗어난다는 설정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또한 회오리에 휘말려 너덜너덜해진 판옥선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초들의 어선 몇 척에 의해 구해진다는 설정도 작위적으로 보여지는 부분.

이러한 부분은 제작진의 사전 연구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건 몰라도 사상자가 실제 기록보다도 더 많이 나오는 연출을 한다는것 자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무리하게 삽입하여 생긴 인위적 고증오류라고 볼 수 있다.

난중일기 9월 16일자 기사를 읽어보면 충분히 백병전 없이도, 긴장감과 두려움이 가득찬 연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적선이 우리 배들을 에워싸자 여러장수들이 그 수에 겁을 먹고 도망갈 궁리만 했다.
  • 그래서 내가 탄 배를 앞으로 돌진시키며 지자포, 현자포 등 각종 총들을 우레같이 마구 쏘아대게 하니 군관들도 배위에 가득 서서 총과 화살을 빗발같이 어지러이 쏴 댔다. 그러자 적들은 머뭇거리면 나왔다. 물러갔다 했으나 몇겹으로 둘러 쌓여 어찌될지 알 수 가 없다.
  • 배를 돌려 중군장 김응함의 배로 가서 그의 목을 베어 매달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탄 배를 돌리면 여러 배들이 점점 더 멀리 물러날 것이다. 따라서 적선이 점점 접근해오면 끝장이다.[26]
당시 문집이나 기록들을 찾아보면 단순히 함포를 사격해서 왜선을 격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다. 근본적으로 단순히 적선들이 몰려오는 과정에서 대장선이 함포사격을 한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물살에 밀려서 제 위치를 잃기도하고, 함선의 화포의 응사력에 비해 적선의 돌격속도가 빨라 대처하기 곤란했다던지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백병전을 우선시 한 것은 무조건 맞부딪치지 않으면 긴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기존의 통념에 따른 편협한 연출이다.

애초에 백병전을 지나치게 중시한 결과 명량에서만 보여줄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의견도 나오는 판이다. 당장 적아군 할거없이 한데 뒤엉켜서 카메라 흔들며 싸우는 이런 씬은 한국 사극에 굉장히 흔하다. 반면 명량해전'이기에' 비로소 연출할수 있었던 전투씬은 따로 있었다. 당장 크게 두갈래로만 뽑아봐도 원거리에서 왜군을 격멸시키는 포격전, 그리고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차이에서도 오는 공성전에 가까운 접근거부 전투가 그것이다. 접근거부 묘사는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높이를 거의 같게 왜곡한 시점에서 이미 불가능했고, 포격전은 대장선의 최초 출진시 양현을 활용하여 최초 조우한 왜선들을 신나게 격침시키긴 했으나 그것뿐, 나머지 몇십분은 거의 백병전 일색으로만 전개되서 조선 수군의 특기였던 포격전은 명량에선 거의 '맛보기'로 전락했다는 평이다. 둘다 불리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상황을 타개해나갈수 있는 해결책이었는데, 명량의 전투 묘사는 적군에게 아무리 둘러쌓여도 칼로 다 베어가면서 이기는 충무공 킹왕짱이라 영화의 격에 맞지않게 전개가 매우 단순하며, 전투전개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아 현실성조차 떨어진다는 것.

근본적으로 해류가 원체 거세었기 때문에 격군들이 몇번씩 노를 놓쳤다던지 심지어 급작스럽게 놓쳐진 노에 의해 배가 순간적으로 롤링을 한다던지, 왜선이 대들보에 매달아 쏜 포탄이 위력은 적으나 최소한 충무공의 곁에 떨어져 위기를 고조한다던지 여러가지 선택지가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백병전이라는 고리타분한 방식을 선택한 것은 비난의 소지가 충분하다.

특히 이러한 백병전 연출 부분에 있어서 해전사 관련 및 화포 연구 관련 전공자들이 상당히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간혹 백병전을 옹호하기 위해 당시에 화포의 명중률이 상대적으로 낮았기 때문에 백병전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주장 역시 어폐가 있는 말이며, 충무공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발언이기도 하다.

이순신은 낮은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자주 화포 사격을 했을 뿐더러 항시 명중률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화망의 구성과 뭉쳐있는 적을 우선적으로 타격하는 등 최대한 명중률을 높이는 훈련을 포함해서 어떤 경우라도 최대한의 명중률을 확보하기 위해 학익진과 같은 포위섬멸 진형을 선호했다. 특히 명량 해전에서 화포 명중률을 운운하는 것은 당시에도 일자진을 굳이 선택한 이유가 함선을 나열해서 함포사격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수단이라는 점을 무시하는 주장이다.

거기에 명량해전 당시에 좁은 해역으로 몰려들어오는 일본수군에 대해서 조선수군이 최고의 명중률을 보였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학계에서는 이견이 없다.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는 사극에서 백병전씬이 대열싸움이 아니라 개싸움으로 연출되고 날아차기와 벽타기같은 과장된 액션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밀한 고증을 원하는 입장과는 무관하게 제작에 관여하는 업계 관계자나 스폰서측은 '연출하기 쉽고 눈에 쉽게 띄는 확실한 볼거리'를 찾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백병전은 극적 연출과 다양한 볼거리를 위한 의도적인 고증 무시로서 인정될 수 있으나 불가피한 선택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백병전 없이도 세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전투를 표현할 수도 있었음에도 그러하지 않은 점은 상업성을 중시했거나 혹은 감독 역량이 그에 미치지 못했거나, 혹은 둘다인 상황이라 할 수 있다.

5. 함선 관련

5.1. 세키부네의 크기 관련

영화상에 등장한 왜군의 함선은 크게 기함격인 안택선과 주력 전투함선인 세키부네 두 종류다. 이 중 안택선은 판옥선과 비등한 크기로 묘사되어서 큰 문제는 아니지만, 자주 등장하는 세키부네의 경우 판옥선의 여장(갑판에 설치된 난간처럼 보이는 것)과 높이차이가 별로 없을정도로 상당한 높이를 가지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판옥선은 해상의 성벽과도 같을 정도로 왜병 입장에서는 백병전을 벌이기 이전, 판옥선에 승선하는 과정부터가 상당한 난관이었을 정도로 두 함선의 체급차이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영화상에선 세키부네도 중대형 함선으로 등장한다는것.

영화상에선 판옥선에 근접한 세키부네에서 갈고리를 던져서 거리를 좁히고 널판지 비슷한 나무 사다리를 걸어서 승선을 시도하는데, 기록으로 보자면 두 함선간의 높이 차이 때문에 보통은 왜병이 길다란 사다리를 타고 수직에 가깝게 기어 올랐다고 하며, 이런 왜병을 저지하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창을 쑤셔대거나 길다란 장검으로 댕겅댕겅 하거나 활을 쏘거나 돌을 던지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저지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영화상에선 세키부네에서 판옥선으로 도선하는 왜군에게 조란환으로 영거리 사격을 할 정도로 두 함선의 높이차가 없다!

아마도 하위 항목에서 언급될 논란의 백병전을 염두에 두고 실제의 크기보다 다소 과장하여 함체를 키워서 제작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렇다곤 해도 조선 수군 VS 일본 수군의 백병전 양상에서 번번히 벌어졌던 선상 공성전 혹은 판옥선 레이드를 기대했던 역덕들에게는 매우 실망스러운 부분.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높이/크기차이로 인한 전력의 우위가 가장 크게 드러났던 해전중의 하나가 명량해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기도 하다.

5.2. 대장선의 내구도 논란

일종의 주인공 보정이라고 보여지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이순신이 탑승한 대장선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순수히 영화상에 묘사된 해전의 과정에서 이순신의 대장선은 구루시마 함대의 끈질긴 대공세를 계속 이겨내는데, 처음 선상 백병전 과정에서 PTSD에 빠져 이성을 잃은 병사가 장루 근처의 화약통에 불을 붙여 대폭발을 하는데도 그 여파를 받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판옥선의 갑판은 멀쩡했다. 특히 해전 클라이막스에서 구루시마가 보낸 화공선이 거의 충돌 직전 아군의 지원사격에 또다시 대폭발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심각한 타격을 입는것으로 묘사된다.

화공선 이전에는 멀쩡했던 판옥선의 외형이, 폭발 이후에는 좌현 격군실 중앙부분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설상가상으로 선체 하부에 물이 들어차 다급하게 물을 퍼내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에 구루시마 안택선의 충각공격이 시기 적절하게 발생한 대형 회오리에 의해 막히긴 했으나, 심한 데미지를 입은 판옥선 선체는 회오리에 휘말린 와중에도 몇번이고 안택선과 접촉이 있었다. 또한 아군의 지원으로 안택선이 침몰한 이후에는 정작 대장선은 회오리에서 자력으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심대한 손상을 입어 선상의 장수들이 이순신을 바라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이 또한 천행으로 묘사한 어민들의 도움[27]으로 위기를 극적으로 빠져나오며, 이후 합류한 아군 선단과 함께 바뀐 조류를 타고 왜군에게 일제히 충각술을 시전하는데 다른 아군 함선들은 원래 단단한 판옥선에 이렇다 할 전투도 하지 않아 멀쩡하지만, 이미 자력으로 회오리를 벗어나기도 어려운 지경의 처절한 상태의 대장선이 아무렇지도 않게 적선단을 들이받는 충각을 보여주는 것은 역시 그런 주인공 보정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 다만 멀쩡한 상태의 판옥선이라 해도 회오리를 벗어나는건 불가능했는데 외부의 도움으로 벗어날수 있었다는 상황으로 볼수도 있다. 실제로 대장선은 마지막까지 격노꾼들이 노를 저을수 있을 정도로 항행능력 자체는 멀쩡했다.

이순신이 탑승하는 대장선은 처음부터 크고 단단하게 설계되었었고, 그렇게 두들겨 맞았음에도 구멍이 뚫릴 정도의 큰 피해를 입은것은 좌현 중에서도 한군데 뿐이며, 나머지는 거의 멀쩡하게 남아 있었으니 정면충돌로 세키부네를 가라앉히는것은 말이 안될 정도는 아니다. 한선과 왜선은 크기차이 이외에도 배의 제작방식과 구조 때문에 왜선이 내구도에서 상당히 불리했으니. 거기다가 실제 역사에서는 영화에서 상대한것보다 훨씬 많은 적선을 대장선 혼자서 격침시키다시피 했으니 판옥선의 실제 내구도는 영화에 나온것보다 더했을수도 있다는점이 포인트.(...) 에에이, 조선의 배는 괴물인가!

6. 일본어 대사 관련

감독의 전작인 최종병기 활에서도 거의 사어에 가까웠던 만주어를 잘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므로, 이번 영화에서도 왜군측 등장인물들은 몰입감을 높이기 위하여 모두 일본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일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아는 관객 입장에서는 어설픈 일본어 억양으로 인해 몰입감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이 일본어 대사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티저에서 류승룡이 'リシュンシンはワシが捕まえろう'라는 대사를 치는데, 捕まえよう를 써야 한다. 화자의 의지를 나타내는 조동사 う는 5단활용[28], よう는 상1단,하1단, 변격활용 등의 미연형에 붙기 때문.[29] 게다가 捕まえる라는 동사 자체가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의미[30]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영 미묘한 부분. 저런 상황이라면 '적장을 토벌하다' 내지는 '물리치다' 정도의 의미를 갖는 동사 討つ 내지 討ち取る를 써야 했다. 정 포박한다는 뜻을 살리고 싶었다면 적어도 捕えよう라고 표현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만주어는 심지어 원래 쓰던 민족들마저도 잊어가고 있는 언어라 잘 살려냈다고 평가받았지만,사실 알아들을 사람도 거의 없고 국내에 일본어 능력자가 쫙 깔린 상태에서 오류가 많은 일본어 대사는 상당한 불만과 비판을 받고 있다. 거기에 일본어 능력자들에 따르면 류승룡의 발음이 심각하게 어눌하고 부정확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중.[31]

시사회에 참가한 일본인 관객으로부터는 류승룡의 어색한 일본어 발음 때문에 많이 깨고[32], 일본 수출은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여기 다만 일본어 발음의 문제와는 별개로 일본 극우계가 '별것 아닌 사건' 정도로 치부하면서 덮으려 드는 임진왜란 관련 작품이고, 내용면에서도 일본인이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전개는 없다시피 하므로 애초에 일본에 수출될 가능성은 낮다.

메인 예고편과 티저 예고편에서 등장하는 구루지마 미치후사(류승룡 분)의 대사 중 "조선은 내가 먹을 것이다"라고 언급하는 부분이 있어 논란이 되었다. 일본 다이묘들이 개인적으로 군대를 운용하는 경향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모리 다카마사라는 히데요시의 군감까지 참가하는 전투에서 이런말을 했다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잘 해봐야 준장 정도 계급인 자가 국가 원수의 명령을 받고 적국을 침공했을 때 "이제 이 나라는 내가 먹겠다"라고 발언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 따라서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는 본국에서 파견한 정치장교가 있는 상황에서 고증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실제 영화상에선 사석에서 자신의 심복과 "관백은 곧 죽을테니 내가 조선을 먹튀하겠다..."식으로 말하는, 그러니까 저 말도 안 되는 의도로 말한 게 맞았기 때문에 오히려 잘못이 아니게 된 대사다. 전국시대를 지나온 일본 다이묘라면 타국에 영토욕과 야심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작중 모리 다카마사가 아예 안 나오기도 하고.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거북선을 '메쿠라부네(めくらぶね[盲船], 눈먼 배)'라고 불렀는데, 작중에서는 거북선을 메쿠라부네가 아니라 '깃코센/기코센(きっこうせん/きこうせん[亀甲船])', 즉 한자식 이름인 '귀갑선(龜甲船)'이라고 부른다.

7. 그 외

  • 최근 사극의 유행이라서 그런지, 백의 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백성들의 의상 색감이 굉장히 화사하다.
  • 수군이 신호를 보낼 때 신기를 현대 군대가 수기를 흔드는 방향으로 신호를 보내듯이 일정한 형태로 흔든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흔드는 모습으로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참조링크
  • 영화 오프닝 장면에서 파직당하고 한양으로 압송된 이순신이 고문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정탁이 올린 <신구차>를 보면 이순신은 정강이를 때리는 고문인 형신(刑訊)을 한 차례 당했다. 형신에 대한 자세한 설명 포스팅 사극에서 주인공이 큰 고통을 받는 고문하면 떠오르는게 단근질 아니면 주리틀기 일색이라 그런 듯
  • 작품 초반에 적장들의 회의과정에서 전격전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전격전이라는 용어 자체가 근대에 나온 것이기에 이 또한 오류이다.
  • 해전 종료 후, 아들과 함께 거북선 건조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나온다. 기록에 따르면 통제영이 설립된 이후 파악된 거북선의 숫자는 3척이었고, 위대하신 원균삽질덕에 모두 사라졌고, 이후에 등장하지 않음으로 볼 때,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는 장면이다. 프리퀄을 예고하는 에필로그에서 나온 거북선은 한산도 대첩에서 명백하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당연한 장면이지만, 후속격인 노량에서 거북선이 등장하는 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대목.
  • 출정하기 전날 밤에 여러 지휘관들이 상념에 잠겨서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왔는데, 어떤 지휘관이 곰방대를 물고 담배를 피고 있었다! 담배가 임진왜란기에 조선에 유입되었다는 학설을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시 왜구들 사이에선 곰방대까지 보급된 상태였다 하니, 왜구들에게서 얻은 것으로 피웠다는 식으로 커버는 가능하다. 제대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광해군 시기부터.
  • 같은 장면에서 안위의 뒤에 거제현령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巨濟縣令을 巨濟令으로 잘못 썼다.(...)
  •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거북선이 철갑선이 아니라 나무로 상판을 덮고 창날이 튀어나온 형태로 표현된다. 상판에는 검은 칠을 한 목재를 사용했다. 돌격선으로서 철갑선이라면 너무 둔중하지 않겠느냐는 주장을 채용한 모양이다. 용머리도 수직 누각형이 아니라 수평형. 용머리 자체가 기계장치로 돌출과 수납이 가능한 구조로 표현해놨다. 또한 용머리에 포가 장비되어 있다.
  • 영화상에서도 이순신이 사용하는 검에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33] 라는 유명한 문구를 새겨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문구가 새겨진 검은 2m에 가까운 장검[34]이며 이순신이 실전에서 사용한 검에 그 문구가 새겨져 있는 것은 고증오류라고 볼 수 있으나, 대중들에게 이순신의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데 상징적인 문구라서 새겨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오류로는 이순신의 전투용 칼이 좌대에 놓인 것. 조선시대에는 좌대에 칼을 놓지 않았으며, 현대에 좌대에 칼을 놓는 것은 일본에서 들어온 검도 영향이다.
  • 전투가 끝나고 수봉이 이순신에게 토란을 건내는 장면이 나온다. 모양만 봐선 감자 같지만, 당시에는 감자가 전파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여 토란으로 대체한 것.
  • 전투가 끝난 후 격군들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우리가 고생한걸 후손들이 모르면 그건 호로자식이다' 라는 대사가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호로자식이라는 말 자체는 속설과 달리 병자호란 이전부터 쓰였던 욕설이기에 시기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 울둘목에서 대장선이 닻을 내릴 때, 닻의 모습이 현대의 배에서 보이는 서양식 스톡 앵커다.

조선시대 닻은 이렇게 생기거나, 아니면 적당한 크기의 돌에 줄을 감은 돌닻(정碇)을 사용했다.

  • 이순신과 아들 이회가 식사를 하는데 겸상을 한다. 훈훈하고 좋아 보이는데 이게 왜 문제인가 하면,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부자간의 겸상은 금기였기 때문. 심지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짓을 해도 아버지가 겸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참작되여 형량이 준 일도 있다.* 거기다 밥을 한 술 뜨려고 할 때, 이순신은 숟가락으로 먹지만 이회는 젓가락으로 밥을 뜨려 한다. 지금은 크게 뭐라 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1980~90년대만 해도 젓가락으로 밥을 떠먹는 것은 식사예절에 크게 어긋나는 행동이었고, 지금도 한일 양국의 식사예절을 논할 때 한국인은 숟가락 일본인은 젓가락 차이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온다.
  • 작중에서 왜군 장수들 사이에서 구루지마 미치후사와 해적 출신 수군을 해적 출신이라며 은근히 깔보는 분위기가 흐르는데, 실제로는 일본 수군 중 해적 출신들은 상당히 명성이 높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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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조선시대 '장군'이라는 칭호는 사실상 첨절제사나 만호에게나 붙일 수 있고, 정3품 이상인 당상관부터는 쓰지 않는 호칭이며, 무관 역시도 2품으로 승진하면 문반 품계인 '가선대부'를 받기 때문에 장군 칭호를 쓰지 않는 것이 원칙. (2품부터는 무관 역시 문관의 품계를 받는다는 것은 고등학교 국사책 부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이것이 2품 이상의 관료부터는 무관과 문관을 구분하지 않고 임용한다는 의미인지는 전문가 분들이 확실히 서술바람. 다만 무관 관직일 수밖에 없는 포도대장이 종2품의 관직이었고 요즘의 정부부처 장관에 해당하는 판서 역시 조라는 명백한 무관 전용 관직이 따로 있음에도 정2품인 것을 보면, 2품 이상의 관직에는 무관과 문관을 구분없이 인용하는 것은 아닌 듯, 참고로 이순신은 한산도 해전 이후 그 품계가 정2품 상계 정헌대부까지 올라갔다.)
  • [2]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는데 대한민국 해군 제 19대 해군참모총장 김홍렬 제독으로,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군 수뇌부 숙청 때 해군참모총장과 해군중장 3명이 모두 해임되면서 소장이던 김홍렬 제독이 참모총장에 임명되었는데, 전쟁시 외에는 2계급 특진이 안되는 군 인사법 규정 상 2년 임기 중 첫 1년은 중장 계급으로 참모총장에 재직했고 1년을 채운 후에야 대장으로 진급하여 다음 1년간은 대장 계급으로 재직했다.
  • [3] 대감으로 칭하는 것 또한 복직 직후의 이순신에게는 맞지 않다. 대감은 정2품 이상 당상관의 호칭이다.
  • [4] 이 부분 역시 아군 함선은 12척이 아니라 13척이 맞다라는 의견도 있다.
  • [5] 왜군은 선봉 구루지마, 중군 와키자카, 후군 도도로 나뉘며, 각 제대별로 기함격인 안택선 1척에 약 30여척 내외의 세키부네로 구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 [6] 왜냐하면 조선 초중기 갑주 유물이 몇 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류성룡 찰갑 이전 800년 동안은 갑주 유물 자체가 거의 없다. 정말 몇 점 안된다.
  • [7] 의상감독의 답변에 의하면 시간과 비용, 재질의 문제로 그대로 묘사하지는 못했다는 답변을 했다.
  • [8] 문양을 넣은 찰은 발해 시대 유물은 있으나, 조선시대에는 찾을 수 없다. 멀리서 보면 쭈글거리는 느낌이 오히려 찰갑보다 지갑의 느낌을 준다. 지찰갑도 있었으니 나름 고증 자체는 소 뒷걸음질치다 쥐잡은 격으로 맞추었나?
  • [9] 조선시대 무관의 복식 중 광대라고 하여 비슷한 게 있으나, 극중에 나오는 것처럼 무식하게 넓고 투박하지도 않고, 테두리에 털이 달리지도 않았다.
  • [10] 당대에 일반화된 갑옷은 두정갑이니 두두미갑이니 이런 명칭을 살리지 않고 단순히 갑으로 표기했는데 조선 전기는 찰갑, 후기에는 두정갑을 갑으로 지칭했다.
  • [11] 성종대 국조오례의에도 두정갑이 등장한다
  • [12] 후대에 그려진 서양의 십자군 기록화가 죄다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는것으로 묘사되는 그림이 존재하는것처럼. 참고로 십자군 시대에는 사슬갑옷이 대세였지 플레이트 아머같은건 아직 없었다.
  • [13] 특히 전투 초반에 대장선이 역류에 거스르는 상황에 있었음은 2011년에 나온 비교적 최신 학설인데 이를 전면수용하였다.
  • [14] 비격진천뢰가 대완구용 포탄이다.
  • [15] 이런 오류가 널리 퍼진 이유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신기전과 같은 무기를 화전(火箭)이라 부르고, 우리나라도 종종 화전, 혹은 신기화전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 [16] 물론 대장군전이 관통하는 과정에서 포로 격군을 결박했던 쇠사슬이 파손되면서 임준영의 행동에 제약이 다소 사라졌으며, 그로 인해 화약통을 물에 빠트리면서 대장선에 위험을 신호했고, 이를 알아차린 준사에 의해 다음 대처가 진행되도록 한 상황을 이끌어냈다.
  • [17] 제작한 총마다 영점이 크게 차이가 날 테지만 그런 거 없다. 물론 그 총들이 다 하루꺼라서 하루 자신이 각 총들의 특성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보면 문제는 없지만.
  • [18] 게다가 이순신도 저격하려고 했다.
  • [19] 여담이지만 이전에 명량해전을 다뤘던 김경진소설 격류에서는 일본 제일의 저격수가 이순신을 저격하려고 특별히 고용되어 참전, 조선 대장선의 장수를 저격 사살하였으나 이는 이순신을 보호하기 위해 미끼 역할을 했던 순천 감목관 김탁이었고, 저격수는 분노한 순천 부사 우치적의 애기살 역저격으로 죽는 묘사가 있다.
  • [20] 마치 유탄을 쏘듯 각도를 재서 곡사로 퍼붓는다. 흠좀무.
  • [21] 투구를 쓴 병사가 머리를 들었다가 헤드샷 당하는 장면이나 50구경 기관총도 아닌데 조총 탄환에 손목이 날아가는 장면이 다소 오버스럽긴 하다. 특히 그정도 곡사로 쏠 정도의 거리면 조총 유효사거리조차 지난 시점일텐데 이러면 부상자조차 내기 힘들다. 특히 영화의 조선 수군은 갑옷으로 중무장했기 때문에 이런 사격으로는 전혀 피해를 줄수 없다.
  • [22] 아부키르만 해전에서 불타던 오를레앙호가 대폭발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이건 타닥타닥 불타다가 폭발한 것이다. 다만 서양 배는 너무 두꺼워서 포탄이 도저히 하부까지 뚫고 들어갈 수 없었던 점도 감안해야 한다.
  • [23] 실제로 판옥선보다 높이가 한참 낮아 왜군이 쉽게 도하할 수 없다. 뛰어넘은 다음 뱃면을 타고 올라와야하는데, 주로 이 과정에서 왜군들의 대부분이 창이나 대겸에 의해 대부분이 제거된다.
  • [24] 사실 이게 또 오류인데, 피섬의 유래가 명량해전에서 죽은 일본군들의 피로 붉게 불든 것처럼 보인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해전 당시에 피섬이라고 명명할 수가 없다.
  • [25] 엔딩 크래딧에서도 공황에 빠진 병사로 등장한다.
  • [26] 특히 이 부분은 상당히 유의해서 읽어야하는데, 여태까지 전투 상황에서 이순신이 아군 장수를 처벌. 그것도 참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싶었다고 스스로 말한 경우가 없었다. 심지어 원균을 가리켜서도 쳐죽이고 싶다느니 목을 매달고 싶다느니 등등 구체적인 위해행동을 하고 싶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은 게 이순신이다. 때문에 전투 상황의 긴박함을 넘어서서 평소의 이순신이라도 하지 않을 선택을 생각하게 만들만큼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27] 이 장면도 억지인 부분인게, 거대한 판옥선을 어민들이 작은 고깃배를 끌고나와 그것도 갈고리를 걸고 사람의 힘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단 이에 호응해서 남아 있던 노를 필사적으로 저은 장면도 나왔으니 아주 말이 안되는 장면은 아니다.
  • [28] 帰ろう、書こう、待とう 등
  • [29] 見よう、しよう、変えよう 등
  • [30] 捕まえる는 (손으로) 붙들다(도망치는 대상을) 붙잡다는 의미라 '내 손으로 쓰러뜨리겠다' 내지 '목을 치겠다'는 의미에는 부합되지 않는다.
  • [31] 제작보고회 자리에서 류승룡은 직접 일본어 구사에 관해 "외국인이 한국어를 발음할때 느껴지는 어색함이 있는것처럼 자신의 일본어 발음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양해를 바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이것도 배우로서 적절한 언사라고 보기는 힘들다. 거기다가 출연 배우중엔 네이티브 스피커인 일본출신 오타니 료헤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32] 다만 발음 문제만이라면 어차피 일본은 수입하는 외국 작품들은 대부분 더빙을 적용하는게 일반적이므로 이게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다.
  • [33] 삼척서천(三尺誓天)-석자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동색(山河動色)-강산이 떨고, 일휘소탕(一揮掃蕩)-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혈염산하(血染山河)-피로 강산이 물들도다.
  • [34] 현충사에 보관된 이 장검은 실전용 검이 아니라 의식용 보검에 가까웠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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