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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스크랩] 적에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나온 김응려의 공초 내용을 보고받다

작성자통섭인|작성시간15.02.27|조회수58 목록 댓글 0

선조 93권, 30년(1597 정유 / 명 만력(萬曆) 25년) 10월 20일(정축) 4번째기사
적에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나온 김응려의 공초 내용을 보고받다

 

 

최천건이 비변사의 말로 아뢰기를,

“청파(靑坡)에 사는 고(故) 정랑(正郞) 강경희(康景禧)의 처조카 김응려(金應礪)가 적에게 사로잡혔다가 돌아왔다 하므로 본사(本司)가 그를 불러서 왜적의 사정을 물어보았는데 그 공초를 서계합니다. 그가 공초하기를 ‘나는 나이가 19세이며 청파에 거주하였다. 임진년 5월에 용산(龍山)에서 사로잡혀 왜적을 따라 개성에 가서 간자(間資) 군대에 소속되어 경상도 서생포(西生浦)로 내려갔다가 그해 7월에 일본으로 들어가서 그 군대 비장(裨將)의 통인(通引)이 되어 안전 사환(眼前使喚) 노릇을 했다. 관백(關伯)이 중국에서 봉사(封使)를 미관(微官)으로 보내고 우리 나라에서도 중신(重臣)을 보내지 않았으므로 분노하여 지난 병신년 10월에 20만 명을 조발하여 금년 정월 13일에 부산에 도착했는데, 나도 그때 따라 나왔다. 금년 8월, 군사를 발동할 때에도 간자(簡資)를 따라 진천(鎭川)에 이르러 그의 분부를 받아 우리 나라의 사로잡힌 사람들을 거느리고 따라오다가 뒤에 떨어지게 되어 도망하였다.

 

일본 사람들은 장관에서부터 아래로 전사(戰士)에 이르기까지 모두 바다 건너와서 싸우는 것을 원망하면서 속히 싸워 생사를 결단내 본국으로 돌아갈 생각만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우리 나라 화살을 두려워하는데, 가등청정이 남원을 공략할 때 화살을 맞은 일은 왜중(倭中)에서도 말들을 하지만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지난해 8월에 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길이 내려앉고 집도 무너져 왜인들이 많이 사망하고 도성도 허물어져서 관백이 알몸으로 성을 뛰쳐나갔는데, 지진이 한 달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모우(毛雨)와 회우(灰雨)가 각각 3일씩 내리는데 회우가 올 때는 사람들이 눈을 뜨지 못하였으며, 지난해와 금년에는 연이어 풍년이 들었다. 우리 나라에서 사로잡혀간 사람들 중 장정은 군병이 되어 이번에 나왔는데, 우리 나라에 와 있는 사람의 3분의 1은 도망치고자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죽일까 두려워 그러지 못하니 만약 죽이지 않는다는 명령만 있으면 모두 도망해 나올 것이다.

 

이번에 나온 군사가 10만이라고는 하나 실은 그렇지 못하고 또한 모두 화살을 두려워하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이 먼저 겁을 집어먹고 교전도 하기 전에 무너지므로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칼을 쓰는 것은 그들의 장기이지만 말을 타지 못하므로 말에서 내린 후에야 싸움을 한다. 처음에는 서울로 침범하려고 하다가 서울이 비어 있다는 말을 듣고 날씨도 추워서 철수하였으며, 또 대도주(大島主)가 작년부터 반역을 일으켜 풍신수길(豊臣秀吉)이 군대를 움직여 토벌하고자 하므로 나온 군대들도 철수해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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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포도가 덩굴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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