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사학회에서 2012년 발표한 '임란직전 경인통신사행과 귀국보고 재조명'이란 학술자료에서 경인통신사문제,정사인 황윤길과 부사인 학봉 김성일의 역할등의 자료,천황과 관백과의 관계,,정하배와 영외배의 논란 ,츠루마츠 자료를 살펴봅니다....아주 귀한 자료를 구했는데...이배사(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까페에서 활동하고 계신 청주대 사학과 민덕기 교수님의 발표문입니다....
KBS드라마 '징비록'이 얼마만큼 역사자료를 고증했는가는 아래 자료중 '츠루마츠'자료를 보면 굉장하다고 할 수 있군요...
1591년 늦둥이 아들이 병으로 죽은 다음 날인 8월 6일 히데요시는 명나라침략 결의를 밝혔는데....중략...같은 8월 조선과의 교섭이 결렬되었음을 보고받은 히데요시는 나고야성곽의 축조를 규슈의 다이묘들에게 명령하고 있다....
자료를 삭제 해달라하시면 내리겠습니다.
히데요시의 답서중 조선의 사신들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표현들이 있었다...김성일이 중심이 되어 적극 그 수정을 요구한 표현은 각하,방물,입조入朝등이었다.이에 대해 현소의 황당한 변명이 이어지고..부분수정에 그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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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에의 정하배와 영외배 주장논리(서장관 허성과 학봉 김성일의 논리를 비교해본다)....음 사학과 교수님이라서 논리가 정연하시다...
그런데....저 시급한 시기에 정사 황윤길은 입도 벙긋 안하고 무엇했는지?...참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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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의 늦둥이 아들 '츠루마츠'가 죽은 다음날인 8월 6일 ,히데요시는 명나라 침략의 결의를 밝혔다.(아래)....
그리고...같은 8월 조선과의 교섭이 결렬되었음을 보고받은 히데요시는 나고야성곽의 축조를 규슈의 다이묘들에게 명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