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로 점철된 이순신의 애국
애국을 하면 오히려 고통스러워지는 우리 역사의 비극
동양인들이 흔히 하는 말로 일승일패(一勝一敗)는 병가상사(兵家常事)라고 합니다. 전쟁에서 한번 지고 한번 이기는 것은 늘 있는 일입니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것이 전쟁이지요. 아무리 장수가 뛰어나도 전력이 약하면 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전략이 탁월해도 지원병이 제때 도착하지 않으면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계에 속한 이야기입니다.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인간계를 초월한 외계인 수준이셨습니다. 인간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만, 외계인 이순신은 항상 이겼습니다. 지원병이 거의 없었는데 계속 이겼습니다. 대부분 전력이 약한 상태에서 스물세 번 싸워서, 스물세 번 모두 이겼습니다.
▲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항상 이겼습니다. 지원병이 거의 없었는데 계속 이겼습니다. 대부분 전력이 약한 상태에서 스물 세 번 싸워서, 스물 세 번 모두 이겼습니다. 출처: 한산대첩 장면을 그린 민족기록화(김형구 그림)
이처럼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면, 당연히 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모함을 받아서 역적으로 몰리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다행히도 무혐의로 풀려나 복직되었습니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쓰신 <난중일기(亂中日記)>를 보면 반복되는 대목이 있습니다. “상투를 풀고 머리를 빗었다.” 조선 시대에는 머리에 상투를 틀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감거나 빗을 때는 상투를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장군이 상투를 풀고 머리를 빗었다는 이야기가 너무 자주 나옵니다. 장군이 싸움은 안하고 머리만 단장하는 것 같습니다. 장군이 아니라 미용실 주인 같아요. 왜 그러셨을까요?
<난중일기>의 문장을 다시 인용합니다. “상투를 풀고 머리를 빗었다. 식은 땀이 한사발이나 나왔다... 고름이 한 사발이나 나왔다.” 고문을 당해서 몸이 망가지니, 머리에서 식은땀이 나옵니다. 때로는 고름이 나옵니다. 상투 안이 땀과 고름으로 가득차면 가려워서 견딜 수 없습니다. 그때마다 이순신 장군이 상투를 풀고 머리를 빗었습니다. 그러면 땀이 한 사발씩 나오고 고름이 한 사발씩 나왔습니다.
▲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명칭은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이다. 부록인 서간첩 1책과 임진장초 1책 포함해서 9책으로 되어 있다.
이 무렵의 <난중일기>에 자주 나오는 단어가 웅크릴 “축(縮)”자입니다. “위축된다”고 말할 때의 “축”자입니다. 원래 소화 기관이 약하셨던 분인데, 고문을 당하고 나서는 계속 배가 아픕니다. 음식만 먹으면 구토를 하거나 설사를 합니다. 그래서 식은땀을 흘리고 고름을 쏟으면서 배를 움켜쥐고 어딘가에 웅크리고 앉아서 신음합니다.
이순신을 보면, 한 시대의 애국자가 겪어야했던 몸서리치는 고독이 느껴집니다. 목숨을 바쳐서 나라를 구했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오해받고 비난받고 고문당합니다. 애국자가 박수를 받아야 하는데, 애국을 하면 오히려 고통스러워지는 우리 역사의 비극입니다.
그 비극이 오늘도 이어집니다. 북한 동포를 구출하고 종북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 지금도 목숨을 내놓은 애국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 언론과 국민들은 그들을 향하여 박수를 치기는커녕, 갈채를 보내기는커녕, 오히려 손가락질을 합니다. 극우 세력이라고 하고 수구꼴통이라고 하고 개독교라고 하고 심지어 이단이라고 합니다.
애국의 길은 언제나 고뇌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조선의 애국자 이순신은 피고름을 쏟아내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웅크리고 앉아서 번민하고 신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뇌하면서도 애국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소장에게는 배가 아직도 열두 척이나 있나이다”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
이순신이 고문당하고 백의종군을 하는 동안, 조선 수군(水軍)이 참패를 당합니다. 칠전량 해전에서 원균(元均)이 이끄는 주력 부대가 모두 궤멸당합니다. 그러자 이순신을 싫어했던 선조 임금이 할 수 없이 이순신을 삼도 수군통제사로 복직시킵니다.
그 때, 다시 해군 최고 사령관이 된 이순신이 거느렸던 병력이 몇 명일까요? 군관 9명, 군사 6명, 도합 15명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해군 총사령관이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이 고작 15명이었습니다. 배는 단 한 척도 없었습니다.
몸이 망신창이가 된 이순신이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무너진 해군을 재건합니다. 싸울 수 있는 배가 한 척이라도 남아있는지 샅샅이 뒤지면서 수소문을 합니다. 그랬더니 기적처럼 남아있는 배가 있었습니다.
▲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군은 남아있던 함대 169척중 경상 우수사 배설이 지휘하던 배 12척을 남기고 모두 침몰해 버렸다.
임진왜란 당시 해군 지휘관 중에 배설(裵楔)이란 자가 있었습니다. 역사서에 배설이라는 주어가 나오면 동사는 항상 “도망쳤다”입니다. “경상 수사 배설이 도망쳤다”는 얘기가 반복되지요. 그런데 비겁한 배설이 기가 막힌 공헌을 합니다. 칠전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전별당할 때, 배설이 도망치면서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배 열두 척을 끌고 갔습니다. 그 덕분에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었습니다.
이순신이 그 정보를 입수하고 배를 내놓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랬더니, 배설이 배째라는 식으로 나옵니다. “배들을 보내주면 나 도망쳤다고 죽일 것 아니냐, 못 보낸다. 내 신변과 안전을 보장해라” 하면서 버팁니다. 이순신이 거의 한 달을 설득해서 드디어 배 열두 척을 확보했습니다.
▲ 이순신에게 당해왔던 것을 복수하려고 전투함 133척이 쳐들어옵니다. 133대 12면 하나마나한 싸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대승을 거둡니다. 사진은 명량해전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일본군이 대대적으로 공격합니다. 그동안 이순신에게 당해왔던 것을 복수하려고 전투함 133척이 쳐들어옵니다. 133대 12면 하나마나한 싸움입니다. 그래서 선조 임금이 이순신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해전을 포기하고 해군도 포기하고 육지에 올라와서 육군으로 싸우라고 권유합니다.
1597년 선조 30년 9월, 이순신이 임금에게 답장을 보냅니다. 거기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전하, 소장에게는 싸울 수 있는 배가 열두 척 밖에 없나이다”라고 했으면, “불멸의 이순신” 같은 드라마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순신은 이렇게 썼습니다. 상유십이(尙有十二) 미신불사(微臣不死).
“전하, 소장에게는 싸울 수 있는 배가 아직도 열두 척이나 있나이다. 미천한 신하이오나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미신불사를 보통 순신불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순신은 죽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한 나라와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열두 척 밖에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열두 척씩이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지도 않고 아무것도 못해냅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서 결국은 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