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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천국의 문과 불이문(不二門)

작성자스토리|작성시간16.06.30|조회수167 목록 댓글 0

 

천국의 문과 불이문(不二門)

 

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 이때 믿는다의 의미는 뭘까.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마태복음 721).“ 불교에도 문()이 있다. 불이문(不二門)이 그것이다. 그 문을 통과하려면 깨달음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둘이 아니어야 한다. 차안(此岸속세의 땅)과 피안(彼岸깨달음의 땅), 그 둘의 속성이 통해야 한다. 그래야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래서 불이문이다.

그럼 예수는 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라고 했을까. 거기에는 이치가 녹아 있다. 불이문(不二門)을 통과하는 방법과도 통한다. 우리는 땅에 있다. 아버지는 하늘에 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늘의 속성과 아버지의 속성은 통한다. 하늘이 곧 아버지니까. 그래서 아버지의 뜻에는 하늘의 속성이 담겨 있다. 그런 아버지의 뜻을 우리가 실행하면 속성이 바뀐다. 우리의 속성이 아버지의 속성을 닮아간다. 그걸 통해 간격이 좁아진다. 아버지와 나, 그 사이의 간격이 좁아진다.

예수는 아버지의 속성을 체화하라고 했다. 그것을 통해 속성을 바꾸라고 했다. () 옥한흠(1938~2010) 목사는 복음주의 영성을 지향했다. 생전에 그는 이런 고백을 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아멘!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하늘의 복도, 땅의 복도 다 받을 수 있다고 하면 할렐루야! 라고 합니다. 그러나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요, 구원도 확신할 수 없다고 하면 사람들 얼굴이 금방 굳어져 버립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를 지적하면 예배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집니다.”

옥 목사는 개신교계 안팎에서 지금도 가슴으로 존경받는 목회자다. 그의 목회와 설교는 늘 십자가를 찾았다. 서울 강남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대형교회(사랑의교회)를 일군 뒤에도 십자가 설교는 바뀌지 않았다. 그런 옥 목사도 죄를 얘기하고, 회개를 얘기하고, 십자가를 얘기하면 성도들이 불편해 하더라. 그런 성도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설교가 바뀌더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하느님 나라의 문은 좁다. 예수는 아예 좁은 문(the cramped gate)이라고 불렀다. 예수는 그 문으로 가라고 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오는 이들이 적다(마태복음 713~14).”

예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문은 늘 좁다. 문만 좁은 게 아니다. 거기에 이르는 길까지 비좁다. 그래서 찾아오는 이들이 적다. 궁금하다. 사람들은 왜 넓은 길을 선호할까. 왜 넓은 문을 좋아할까. 예나 지금이나 이유는 똑같다. 내려놓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 안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둔 것들을 몽땅 실은 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이 넓어야 좋고, 문이 넓어야 좋다.

좁은 길은 다르다. 비좁고 가파르다. 그곳을 지나려면 뭔가를 내려놓아야 한다. 무게를 줄여야 하니까. 가벼워져야 하니까. 그래야 지나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무게를 내려놓는 방식이 자기 십자가. 예수는 그걸 짊어진 채 나를 따르라고 했다. 우리의 눈에는 온통 가시밭길이다. 예수가 말한 좁은 길, 좁은 문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피하고 싶다. 굳이 이 길을 택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사서 고생일 테니까. 그래서 넓은 길이 좋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의 넓은 문이 좋다.

우리는 단 것만 좋아하고 쓴 것은 싫어한다. 입 안에 쓴 것이 들어오면 씹기도 전에 뱉어낸다. 그게 뭘까. ‘아버지의 뜻이다. 그 속에 하늘나라의 속성이 담겨 있다. 우리가 씹기도 전에 뱉어내는 것이 예수가 말한 천국의 문이다.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불이(不二)의 문()이다. 우리는 그 문 앞에서 서성인다. 그렇게 서성이기만 하는 우리를 향해 예수는 다시 말한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새인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마태복음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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