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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는가

작성자마이피|작성시간17.04.17|조회수93 목록 댓글 0

 

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는가

 

 

오늘은 부활절이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기독교는 부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한 때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스톤경과 길버트 웨스트는 자기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는데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하나는 예수의 부활이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의 변화였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뉴스이다. 이 부활 소식은 제자들에 의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지방으로 전파되었고 마침내 2000년이 흐른 후에도 우리에게까지 전파되었다.


기원 3046, 예수님이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이때 많은 군중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를 부르며 왕으로 환영했다. 저녁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 밤새 기도를 했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로마 군병들에게 체포되어 다음날 아침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정오에 십자가에 매달려 숨을 거뒀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 예수님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했다.


키케로라고 하는 학자는 당시 십자가형은 가장 잔인하고 소름을 끼치게 하는 사형방법이었다고 말했다. 본래 십자가 사형방법은 페르시아에서 유래되었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땅은 신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죄인이나 악한사람들의 시체로 땅을 더럽힐 수 없다고 생각하여 죄수들을 사형시킬 때는 십자가 형틀에 매달아서 극한 고통 가운데 죽게 하고, 독수리와 까마귀들이 날아들어 나머지 시체를 처리하도록 했다.


이 십자가 사형제도는 노예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한다는 판결을 받은 죄수는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가야 한다. 그 앞에서는 빨리 따라오라고 군인들이 채찍으로 때린다. 뒤에서는 몽둥이로 몬다, 이렇게 하면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여기 저기 돌아서 형장에까지 가도록 한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죄인들을 난장 돌린 것이다.


요세푸스라는 역사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에 큰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유다라는 사람이 로마제국을 반대해서 혁명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혁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로마군은 무려 2천명의 갈릴리 사람들을 죽였다. 2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십자가에 죽여 길거리에 쭉 세워 놓았을 때 그 비참한 죽음의 모습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같이 보게 되었다. 이렇듯 십자가는 고통스럽고 무섭다는 것을 예수님도 잘 알면서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갔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는가?


첫째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희생의 제물로 죽으셨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사유(赦宥)함을 받는 길이 열렸으며 공로 없이 의로워지는 길이 열렸으며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받게 되었다. 오늘 우리가 사랑하는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이다. 즉 나의 죄 때문에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셨다. 내가 지은 모든 죄, 그야말로 알면서도 일부러 지은 죄, 몰라서 지은 죄, 모든 죄를 깨끗이 용서하시려고 대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것이다.


둘째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우리의 고통을 담당하셨다. 예수님은 금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고, 높은 자리가 아니라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셔서 우리를 용서하고 사랑해 주셨다. 또한 육체의 고통도 담당하셨다. 십자가는 더없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정신적 고통이다. 채찍에 맞으면서 침 뱉음을 당하고 모진 조롱을 받았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이 길을 가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우리의 고통을 담당하셨다.


셋째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셨다. 죽음은 인류의 가장 큰 슬픔이다. 영과 육이 갈리는 것이 육신의 죽음인 것처럼, 우리 인간이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되는 것이 곧 죽음이다. 이 죽음은 죄 값으로 오게 되었고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죽음을 해결하시고 생명을 주셨다.


십자가가 무엇인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 열매를 맺듯이 잃어야 얻는 것이 십자가이다. 사랑 이전에 희생이 먼저 있었다. 부활 이전에 십자가의 죽음이 먼저 있었다. 먼저 수고가 있고 희생이 있고 그 다음에 생명이 있었다. 죽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죽은 것이 십자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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