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의 전적과 양생론(養生論)
도교의 수련은 건강을 유지하여 장수를 누리기 위한 방법이므로 그것은 곧 양생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시습은 이론상으로는 불로장생을 꾀하는 것을 반박하였으나, 그의 잡저 〈수진(修眞)〉과 〈용호(龍虎)〉에서 도교수련법의 요체를 천명하였다.
〈수진(修眞)〉에서 ‘신선이란 양성복기(養性服氣)하고 용호를 수련해서 늙음을 물리치는 사람이다.’라고 전제하고 《양생결(養生訣)》을 인용하여, ‘본성을 기르는 사람은 늘 약간의 노력을 원하나 지나치게 무리한 행위를 억지로 하지 않는다.’고 일러 주고 기행좌와(起行坐臥)에 걸친 주의사항을 나열하였다. 그리고 모든 일에 걸쳐 과도한 짓을 하지 않으며, 자기의 정(精)을 동요시키지 않고 마음을 적묵(寂默)으로 돌아가게 하면 장생하게 될 것임을 말하였다.
《용호(龍虎)》에서는 수련해서 장생하는 것은 천지의 정기(正氣)를 훔쳐내는 것임을 말하고, 그 요체는 호흡을 통하여 음진양순(陰盡陽純)해짐에 있고 공행이 차면 장생초탈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러한 것은 결국 일종의 양생론이다. 한편, 주희(朱熹)가 《참동계(參同契)》와 《음부경(陰符經)》 같은 도서에 관심을 갖고 교주(校注)작업을 한 것 등에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까지도 그러한 부류의 도서를 기탄없이 열람하였고 도교적인 수련법에 대한 조예가 깊은 인사들도 나왔다.
이렇게 해서 일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심신수양, 건강관리, 또는 생활의 운치 등 다양한 의의를 도교적인 수련법에 부여하게 되었고, 동시에 종교적인 의의가 극도로 희석된 상태에서 수련적인 도교가 받아 들여지기도 했다.이이(李珥)도 도교적인 방법을 감안한 의약책을 피력하였다. 그는 도교의 연단·등선의 설은 믿지 않으나, 도교에서 개발한 창양(昌陽)·황정(黃精) 같은 연년익수(延年益壽:수명을 더 오래 늘여 나감)한다는 약물의 사용은 그것 나름의 이치가 있어 받아들일 만하다는 태도를 취하였다. 유교적인 효행이 강조되던 시대이므로 사친양로(事親養老:어버이를 섬기며 노인을 부양함)를 위하여 지식인들이 도교의 양생론과 의약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이황(李滉)도 이찬(李澯)의 8폭 양생설을 보고, 주희가 위백양(魏伯陽)의 《참동계(叅同契)》를 사랑하는 뜻을 알게 되었고, 자기인들 양생하여 지선(地仙)이 될 수 없겠는가 하였다. 당시 지식인들의 도교적인 수련법에 대한 의식을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정렴(鄭磏, 1506∼1549)은 《북창비결(北窓祕訣)》이라고도 하는 그의 저서 《용호비결(龍虎泌訣)》 제1장에서 내단을 수련하는 방법을 설명해 나가는 도중에 정기를 머물러 있게 하여, 풍사가 파고들지 못하도록 미리부터 방비하는 일종의 건강관리법과 양생법을 말하였다. 그리고 질병이 생겨난 뒤 의사를 찾아가 약을 쓴다 하여도 이미 늦는다고 하였다. 그 착상법은 근대의학적 처지에서도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 이러한 양생론이나 보건법은 확대 세련되어서 조선시대 의학의 기본 체계를 확립시키기에 이르렀고, 나아가서는 의학의 본의를 해명하는 데까지 전개되었다. 조선시대는 의서의 번각교주 및 언해가 정력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중 《동의보감(東醫寶鑑)》은 그 체계 정립에 도교의 철리가 솔직하게 받아 들여졌고, 후생과 실용을 존중하는 도교의 특성이 의약의 본의 천명에 적용되어 있으며, 심지어 도교 잡술에 속하는 방법까지 소개되어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내경편(內景篇) 집례(集例)에 “도교에서는 청정과 수양을 근본으로 삼고 의문에서는 약이(藥餌)와 침구로 치료를 한다. 이는 도는 그 정(精)을 얻었고, 의는 그 조(粗)를 얻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견해를 살린 정연한 구성 밑에서 동양의약에 흔히 있는 허황하고 공상적인 의학론은 극력 배격하고, 의학에서 추구해야 할 궁극의 이치를 파악하여 당시 의학계의 온갖 지식을 총집결하고, 그 의의의 해명에는 도교의 후생과 실용을 존중하는 정신을 취하여 편찬한 것이다.
내경편에서는 도서를 많이 인용해서 신형(身形)과 정(精)·기(氣)·신(神)을 설명하고 의자는 무엇보다도 이것들을 보양, 치료할 것을 강조하였다. 외형·잡병·탕액·침구 제편은 실제에 맞는 일반적인 이론과 공평한 치료방법을 제시하기에 힘썼다. 본말과 정조의 구분이 엄연한 체계에 따라 편찬된 의서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은 허준(許浚)의 주편으로 1612년(광해군 5) 내의원에서 그 초판이 간행되었다. 이 책의 편찬에 정렴의 아우 작(碏)이 참여하였으므로 정씨 형제의 도교적인 의학관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밖에도 조선시대의 의서 가운데 도교적인 관점에서 쓰인 것이 많다. 이종준(李宗準)의 《신선태을자금단방(神仙太乙紫金丹方)》, 박운(朴雲)의 《위생방(衛生方)》, 정유인(鄭惟仁)의 《이생록(頤生錄)》, 정사위(鄭士偉)의 《이양편(二養編)》, 이창정(李昌廷)의 《수양총서유집(壽養叢書類輯)》, 최규서(崔奎瑞)의 《강기요결(降氣要訣)》, 서유구(徐有榘)의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중 〈보양지(葆養志)〉 등은 다 그러한 의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