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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스크랩] 명화 <최후의 만찬> 속 예수와 유다는 동일 인물?

작성자파워맨|작성시간13.07.06|조회수338 목록 댓글 0

 

 

명화 <최후의 만찬> 속 예수와 유다는 동일 인물?

명화 속 숨겨진 일화보다 흥미로운 성경 속 ‘마지막 만찬’의 비밀

 

 

 
▲ <최후의 만찬(460×880cm)>, 레오나르도 다 빈치,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1493~1498년경,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밀라노) 소장

 


[글마루=백은영기자] 세계적인 명화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은 이탈리아 화가인 레오나르 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그림으로 60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제1밀라노시대(1482∼1499)인 1493년에서 1498년에 걸쳐 완성한 그림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열두 제자와 함께 만찬을 나눈 데서 그 영감을 찾았다.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인 예수가 유월절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 떡을 떼고 포도주를 나누며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는 이 새 언약의 내용은 그 이면적인 뜻보다는 마지막 만찬을 함께했다는 표면적인 내용만이 부각되어 지금까지 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그림으로 혹은 소설로 때로는 영화로 재탄생되어 왔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와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론 하워드 감독의 <다빈치 코드(2006)> 등은 성경 속 마지막 만찬을 모티브로 탄생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전성기의 시작


<최후의 만찬>은 예수와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이라는 데서 그 모티브를 찾았다. 매우 낯익은 주제이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이 작품은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바로 이 <최후의 만찬>의 장대한 구도와 함께 시작됐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극찬을 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5세기 피렌체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전의 작가인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Andreadel Castagno)나 기를란다요(Ghirlandajo) 등에 의해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작품이 그려졌지만 이들 작품의 구도에서는 유다 한 사람이 식탁의 건너 편에 위치하고 있는 형태였다. 즉 유다의 배반에 초점을 맞춘 그림이었던 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에서는 유다를 제자의 무리에 포함시켰다. 열두 제자를 세 명씩 작은 무리를 짓도록 해 유다의 배반보다는 화면의 조형성에 더욱 역점을 뒀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해 대체로 알려진 이야기는 화면의 구도가 대단히 수학적인 구조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3개의 창문, 4개의 무리를 이룬 12제자 등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4복음서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 등을 각각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유네스코는 1980년 <최후의 만찬>과 함께 이 작품이 소장된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최후의 만찬> 속 예수와 가룟 유다의 모델이 동일인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1493년경부터 1498년에 걸쳐서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에 그린 벽화 <최후의 만찬>을 잘 살펴보면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를 찾을 수 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왼쪽에서 다섯 번째에 그려진 인물이 바로 가룟 유다이다. 그는 오른손에 은주머니를 들고 있고 왼손으로는 빵을 들고 있다. 몸이 앞으로 기울어져 있는 그가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가룟 유다다.

그 사실 여부는 정확하지 않지만 <최후의 만찬>에 얽힌 일화가 있다. 1491년 새로 지어진 수도원의 벽화를 그릴 유명한 화가를 찾던 로마 교황청은 당시 이태리에서 명성이 높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성서 속에 있는 예수의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 광경’을 벽화로 그려줄 것을 부탁한다. 다 빈치는 그때부터 실제로 그림의 모델이 되어줄 사람들을 찾아 다녔고 오랜 엄선 끝에 1492년 드디어 예수의 모습을 상징할 수 있는 선하게 생긴 19세의 젊은이를 찾게 된다.

이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 다 빈치는 6년 동안 예수와 11명의 제자를 다 그릴 수 있었지만,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만은 그 모델을 찾지 못해 그리지 못하고 있었다. 다 빈치가 가롯 유다의 모델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된 로마 시장은 “로마의 지하 감옥 속에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수백 명의 죄수들이 있으니 그곳에서 한 번 모델을 찾아보라”는 제안을 하게 됐고, 다 빈치는 그곳에서 가장 악랄한 모습의 한 죄수를 선택하게 된다. 그 사형수의 모습은 마치 1500년 전 유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은화 몇 개를 받고 예수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모습을 연상케 했고, 몇 달에 걸친 작업을 통해 유다의 모습을 완성한 뒤 “모델은 이제 감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통고를 하게 된다.

감옥으로 다시 연행되어 가던 죄수가 갑자기 다 빈치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계속 자신을 모르겠냐는 질문을 하자 다 빈치는 “난 당신 같은 사람을 내 인생에서 만난 적이 없소”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사형수는 다 빈치가 완성한 <최후의 만찬>을 가리키며 다음과 같은 말을 부르짖었다고 한다. “저기 저 그림 속에 그려진 6년 전 예수의 모델이 바로 나였소!” 6년 전 그렇게도 깨끗하고 선해보였던 젊은이가 로마 최악의 살인마가 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다 빈치는 이후로 예수에 관한 그림은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의 성경적 배경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26:26~29)”

<최후의 만찬>의 배경은 기독교의 경서인 신약성경 마태복음 26장과 마가복음 14장, 누가복음 22장에 기록되어 있는 마지막 만찬이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던 12제자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자신을 넘겨줄 것을 알면서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을 기념한다. 이 마지막 만찬 때 예수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고 말씀하신다. 이에 가룟 유다는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대답하신다.

예수를 랍비라고 부르며 따르던 가룟 유다. 은 서른 닢에 자신의 스승을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 팔아넘긴 자와 그 사실을 알면서도 함께 만찬을 나누는 예수의 모습은 세상적인 생각으로는 분명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죽음 앞에 담담할 수 있는 예수의 모습도, 자신의 죽음을 피하지 않았던 것도 모두 세상적인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 제자들과 나누던 마지막 만찬은 어딘지 모르게 숙연하고, 뭔가 모르게 애달프다. 만일 이 마지막 만찬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면 숙연함과 애달픔을 넘은 또다른 감정이 생겨나리라 본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는 어떤 의미이며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에서 나온 아버지의 나라는 과연 언제, 어디에 오는지 알게 된다면 <최후의 만찬>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생각도 달라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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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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