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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상

산해경(山海經)과 조선천독(朝鮮天毒)

작성자통섭인|작성시간16.11.10|조회수276 목록 댓글 0

 

 

산해경(山海經)과 조선천독(朝鮮天毒)

 

산해경(山海經)은 사실상 황제(黃帝)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당시는 정확한 기록(記錄)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원문이 존재하지 않는다그러나 소문(素問)과 기백(岐伯)의 문답형식(問答形式)으로 되어있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은 한의계(韓醫系)에서 원서(原書)로 통하고 있다산해경(山海經)이 최초(最初)로 쓰여진 동기(動機)는 대륙(大陸)의 산야(山野)와 각지(各地)에 있는 산물(産物)動物 등을 두루 알기 위함이었고, 따라서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부족국가(部族國家)百姓들의 삶에 대한 조사(調査)가 진행(進行)되었던 것은 황제(黃帝) 때부터 라고 볼 수 있다.

 

산해경(山海經)은 비유적인 사서(史書)이다. 복희씨(伏羲氏)白蛇(흰 뱀)에 비유했고 最初正統國을 세운 桓仁天帝는 백견(白犬: 흰 개)에 비유했다. 황제(黃帝)의 아들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 BC. 2578)는 신라(新羅)의 최초시조(最初始祖)로서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상징했다. 신농씨(神農氏)의 부족(部族)이 호랑이라면 황제(黃帝)는 곰을 상징한 국가(國家)이다. 사마천 사기(司馬遷 史記)의 제왕편(帝王篇)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음을 본다.

 

곰이나 호랑이를 상징한 것은 적()에게 위엄 있게 보이기 위함이라고 쓰여 있다. 古代國家는 모두가 짐승을 國家의 징표로 使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전쟁(戰爭)터에 나가게 되면 곰이나 호랑이를 상징한 깃대를 앞세우곤 했다. 以上과 같이 古代國家에서는 신성한 짐승을 내세워 國家의 표상(表象)으로 삼았음을 볼 수 있다. 요즘처럼 라이온스니, 청룡(靑龍)이니, 백호부대(白虎部隊)니 하는 것도 모두 같은 의미(意味)이다. 곰과 호랑이가 굴속에 들어가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고 百日동안 기도(祈禱)하는 것은, 部族의 처녀와 호랑이 部族의 총각이 각각 다른 동굴이나 속에 들어가 선()하지 못하면 君臣으로서 대우를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史書에 기술(記述)된 글자 그대로 보고 해설(解說) 했기 때문에 三國遺事와 같은 史書를 신화설(神話說)로 매도하는 경향이 생겼던 것이다.

 

山海經에는 유독 짐승의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시대적으로 보아 上古代 社會에서는 우리가 보지도 알지도 못한 짐승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각 곳에 있는 짐승들을 짐승으로 記錄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짐승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은 그 時代에 있었던 부족(部族)을 대표한 짐승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東洋 三國인 한국과 大陸 그리고 일본의 學者들은 山海經을 해설(解說)하는 과정에서 모두 짐승으로 풀이했기 때문에, 古代史書山海經動物의 책이 되어버렸다. 山海經上古時代 國家들이 各 地域産物動物은 물론 어떤 부족이 어떻게 어느 곳에서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部族國家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國家가 이어 내려올 때마다 記錄하였던 史書이다.

 

그러나 時代가 변하고 國家가 바뀜에 따라 春秋時代를 거치고 다시 戰國時代를 거치면서 저마다 山海經을 다시 정리(整理)하고 교정(校正)을 보고 를 달았다.  나라 이후 즉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신라(新羅)를 거쳐 당()나라 나라를 거치고 다시 고려(高麗)를 거치면서 나라 청()나라 때까지 山海經를 달고 교정(校正)을 보아왔다. 나라때 유수(劉秀)가 총32편 이었던 山海經 18편으로 줄였고 ()나라 때의 곽박(郭璞)이 다시 18편으로 엮어 나라에 이르렀다. 그후 원가(袁珂)가 주()를 대폭 늘이고 다시 정리하여 산해경교주(山海經校註)를 내놓았다혹자는 산해경을 대할 때 마다 주()를 단 사람과 서문(序文)을 쓴 사람 표문(表文)을 쓴 사람 등이 너무 많아 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산해경은 이본(異本)이 아주 많은 책이다. 이에 그 대표적인 것들을 골라 간단하게 정리하고 소개한다.

 

산해경유수교상표(山海經劉秀校上表)

 

산해경유수교상표(山海經劉秀校上表)는 일명 상산해경표(上山海經表) 또는 일반적으로 산해경표(山海經表등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前漢말기에 유수(劉秀)가 기록한 것이며 내용은 아래와 같다.

 

原文 . 劉秀

 

侍中奉車都尉光祿大夫臣秀領校. 秘書言校秘書太常屬臣望所校山海經凡三十二篇. 今定爲一十八篇. 已定. 山海經者. 出於唐虞之際. 昔洪水洋溢. 漫衍中國. 民人失據. 崎嶇於丘陵. 巢於樹木. 鯀旣無功. 而帝堯使禹繼之. 禹乘四載. 隨山刊木. 定高山大川. 蓋與伯翳主毆禽獸命山川. 類草木. 別水土. 四嶽佐之. 以周四方. 逮人跡之所希至. 及舟輿之所罕到. 內別五方之山. 外分八方之海. 紀其珍寶奇物異方之所生. 水土草木禽獸昆蟲麟鳳之所止. 禎祥之所隱. 及四海之外. 絶域之國. 殊類之人. 禹別九州. 任土作貢. 而益等類物善惡. 著山海經. 皆聖賢之遺事. 古文之著明者也. 其事質明有信. 孝武皇帝時嘗有獻異鳥者. 食之百物. 所不肯食. 東方朔見之. 言其鳥名. 又言其所當食. 如朔言. 問朔何以知之. 卽山海經所出也. 孝宣帝時. 擊磻石於上郡. 陷得石室. 其中有反縛盜械人. 時臣秀父向爲諫議大夫. 言此貳負之臣也. 詔問何以知之. 亦以山海經對. 其文曰. 貳負殺窫窳. 帝乃梏之疏屬之山. 桎其右足. 反縛兩手. 上大驚. 朝士由是多奇山海經者. 文學大儒皆讀學. 以爲奇可以考禎祥變怪之物. 見遠國異人之謠俗. 故易曰. 言天下之至. 而不可亂也. 博物之君子. 其可不惑焉. 臣秀昧死謹上.

 

. 律坤

 

" 시중봉거도위광록대부(侍中奉車都尉光綠大夫)인 신() ()는 궁중(宮中)에 소장된 모든 서적을 책임지고 교정, 교감하고 있습니다. 교비서태상(校秘書太常)에 속해 있는 신() ()이 이번에 교감한 山海經은 모두 32편이었는데 18편으로 정리했습니다. 山海經이란 책은 본래 당우(唐虞요 임금 B.C.2357)와 순(B.C.2284) 임금 시절에 나왔습니다. 그 당시 大陸에는 대홍수로 인해 물바다가 되어, 나라 百姓들은 땅과 집을 잃고 산과 언덕으로 헤매다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B.C.2224)나라 임금의 아버지였던 곤이 치산치수(治山治水)를 하겠다고 자청했으나, 아무런 공로가 없어 임금은 곤의 아들인 우()에게 책임을 지게 했습니다. ()는 사승마(四乘馬)를 타고 이르는 마다 나무를 베어 높은 산과 큰 강을 정리했습니다. 벼슬아치들은 새와 짐승들을 몰아내고 山川에 이름을 붙이고 草木을 분류한 후 물과 땅을 구분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四方의 우두머리인 제후(帝侯)들이 일을 도왔으며 여러 지역에 사람의 발자취가 미치는 곳까지 정돈했습니다. 그리고 배와 수레가 잘 이르지 못한 곳까지 다다랐습니다. 안으로는 다섯 방향으로 산을 구별하게 하고, 밖으로는 여덟 방향의 바다를 구분하게 했습니다.

 

이곳에 있는 진귀한 보물과 기이한 물건들과 다른 지방의 강과 육지에서 나는 풀과 나무, 짐승, 곤충, 기린, 봉황이 있는 곳까지 그치지 아니했습니다. 또한 상서롭게 감추어진 곳과 바다 멀리 떨어진 외딴 나라들의 특수한 부족의 사람들까지 기록했습니다. ()는 대륙전체를 구주(九州아홉 고을)로 나누어 토지의 등급에 따라 공물(貢物)을 정했습니다. () 등은 물건이 좋고 나쁨을 구별하여 山海經著述했습니다. 山海經은 모든 성현(聖賢)들이 남긴 업적이며, 옛 일에 대한 기록이 명백합니다. 그러한 사실들은 뚜렷하고 믿음이 있는 記錄입니다. 전한(前漢효무제(孝武帝, B.C.140-135) 때 이상한 새를 바친 일이 있었는데 온갖 먹이를 주어도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동방삭(東方朔)이 그 새를 보고 말하기를 새의 이름과 먹이를 아뢰었는데, 그의 말 그대로였습니다.

 

효무제(孝武帝)는 동방삭(東方朔)에게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가를 물었더니, 바로 山海經에 나와 있었다고 했습니다. 전한(前漢) 효선제(孝宣帝, B.C.73-70)는 상군에서 크고 넓다란 바위를 깨뜨렸는데, 깨어진 곳에는 석실(石室)이 있었습니다. 그 석실 속에 두 손이 뒤로 묶이고 형틀에 매달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신() ()의 아버지였던 향()은 간이대부(諫議大夫)였는데, 석실에 묶인 사람은 이부(貳負)의 신하라고 아뢰었습니다. 그 일을 어떻게 알았는가 라고 하문(下問)하시자 山海經에 있다고 아뢰었다고 합니다. 山海經의 글 속에는 이부(貳負)가 알유를 죽였으므로, 천제(天帝)가 소속산(疏屬山)에서 이부(貳負)에게 오른쪽 다리를 반대로 하고 양손을 위로 다리와 함께 결박하여 죽인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때 효선제(孝宣帝)는 크게 놀라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조정(朝廷)의 선비들은 山海經을 기이하게 생각한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 후로는 문학(文學)을 하는 학자나 유학(儒學)을 하는 대학자들 모두 산해경을 읽고 배웠습니다. 이때부터 상서로운 일이나 괴이한 일에 대해서는 상세히 살폈으며, 먼 나라 다른 사람들의 노래나 풍속도 연고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고로 역경(易經)에서 말하기를, 천하에 온갖 만물이 깊고 번잡해도 어지러워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모든 이치(理致)와 사물(事物)에 박식한 君子는 미흡함이 없을 것입니다. () ()는 죽음을 무릅쓰고 삼가 아뢰옵니다.  “

 

위 내용에서 주목할 점은 때는 전한(前漢) 말기에 유수(劉秀)가 궁중(宮中)에 소장된 모든 서적을 책임지고 교정, 교감하면서 원래 32편이었던 산해경(山海經)18편으로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해경(山海經)을 새롭게 편집하는 과정에서 고조선(古朝鮮)의 역사가 축소되고 또한 엉터리로 기록되어 졌을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게 된다.

 

산해경(山海經)에는 조선(朝鮮), 숙신국(肅愼國), 맥국(貊國), 개국(蓋國) 등 동이계 문화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심지어 산해경(山海經) 자체를 동이계의 고서로 보고 있을 정도로 동이계 상고문화에 대한 풍부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 후 후진(後晉 AD.265-420)때에 기실참군(記室參軍)이었던 곽박(郭璞)이 산해경을 새롭게 편집하게되었는데 곽박(郭璞)은 산해경서(山海經序)에서 이 책은 世上에 나와 약 3천여 년간 내려 왔으나 나라 때 나타났다 곧 매몰되다시피 하였다고 실토하며 자신이 편집하게된 경위를 적었다. 산해경서(山海經序)는 곽박이 직접 쓴 것이고 상산해경표(上山海經表)는 유수(劉秀)가 기록한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산해경서(山海經序)

 

原文.郭璞

 

" 世之覽 山海經者. 皆以其閎誕迂誇. 多奇怪俶儻之言. 莫不疑焉. 嘗試論之曰. 莊生有云. 人之所知. 莫若其所不知. 吾於山海經見之矣. 夫以宇宙之寥廓. 羣生之紛員云. 陰陽之煦篜. 萬殊之區分. 精氣渾淆. 自相濆薄. 遊魂靈怪. 觸象而構. 流形於山川. 麗狀於木石者. 惡可勝言乎? 然則總其所以乖. 鼓之於一響. 成其所以變. 混之於一象. 世之所謂異. 未知其所以異. 世之所謂不異. 未知其所以不異. 何者? 物不自異. 待我而後異. 異果在我. 非物異也. 故胡人見布而疑黂. 越人見罽而駭毳. 夫翫所習見而奇所希聞. 此人情之常蔽也. 今畧擧可以明之者. 陽火出於氷水. 陰鼠生於炎山. 而俗之論者. 莫之或怪. 及談山海經所載. 而咸怪之. 是不怪所可怪而怪所不可怪也. 不怪所可怪. 則幾於無怪矣. 怪所不可怪. 則未始有加怪也. 夫能然所不可. 不可所不可然. 則理無不然矣. 按汲郡竹書及穆天子傳. 穆王西征見西王母. 執壁帛之好. 獻錦組之屬. 穆王享王母於瑤池之上. 賦詩往來. 辭義可觀. 遂襲昆侖之丘. 遊軒轅之宮. 眺鐘山之嶺. 玩帝者之寶. 勒石王母之山. 紀跡玄圃之上. 乃取其嘉木豐盍草奇鳥怪獸玉石珍瑰之器. 金膏燭銀之寶. 歸而殖養之於中國. 穆王駕八駿之乘. 右服盜驪. 左驂䱚耳. 造父爲御. 犇戎鳥右. 萬里長騖. 以周歷四荒. 名山大川. 靡不登濟. 東升大人之堂. 西燕王母之廬. 南轢黿鼉之梁. 北躡積羽之衢. 窮歡極娛. 然後旋歸. 案史記說. 穆王得盜驪騄耳驊騮之驥. 使造父御之. 以西巡狩. 見西王母. 樂而忘歸. 亦與竹書同. 左傳曰. 穆王欲肆其心. 使天下皆有車轍馬跡焉. 竹書所載. 則是其事也. 而礁周之徒. 足爲通識瑰儒. 而雅不平此. 驗之史考. 以著其妄. 司馬遷敍大宛傳亦云. 自張騫使大夏之後. 窮河源. 惡覩所謂昆侖者乎. 至禹本紀. 山海經所有怪物. 余不敢言也. 不亦悲乎. 若竹書不潛出於千載 以作徵於今日者. 則山海之言. 其幾乎廢矣. 若乃東方生曉畢方之名. 劉子政辨盜械之尸. 王頎訪兩面之客. 海民獲長臂之衣. 精驗潛效. 絶代縣符. 於戱羣惑者其可以少寤乎? 是故聖皇原化以極變. 象物以應怪. 鑒無滯賾. 曲盡幽情. 神焉廋哉. 神焉廋哉. 皆此書跨世七代. 歷載三千. 雖暫顯於漢而尋亦寢廢. 其山川名號. 所在多有舛謬. 與今不同. 師訓莫傳. 遂將湮泯. 道之所存. 俗之喪悲夫! 余有懼焉. 故爲之創傳. 疏其壅閡. 闢其茀蕪. 領其玄致. 標其洞涉. 庶幾令逸文. 不墜於世. 奇言不絶於今. 夏后之跡. 靡栞於將來. 八荒之事. 有聞於後裔. 不亦可乎. 夫蘙薈之翔. 叵以論乖天之淩. 蹏涔之遊. 無以知絳虯之騰. 鈞天之庭. 豈伶人之所躡. 無航之津. 豈蒼兕之所涉. 非天下之至通. 難與言山海之義矣. 鳴呼! 達觀博物之客. 其鑒之哉

 

. 律坤

 

세상에 山海經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 내용이 황당무계하고 괴이하면서 기이한 말들이 많기 때문에 의문을 갖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山海經眞實性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본다.

장자(莊子 BC. 365-290)山海經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人間이 아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므로 나는 山海經理解할 수 있다고 하였다. 宇宙本體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으며 뭇 生命體는 그 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많다.  이러한 現狀氣運이 왕성해지면 수많은 종류의 生命體가 곳곳에 나누어져 생겨나고 길러진다. 精氣가 서로 뒤섞여 스스로 격렬하게 움직일 때 혼령(魂靈)과 괴물들의 실체가 떠돌다 닿게 되면 그 形象이 나타난다.

이때 山川의 아름다운 모양이 생기게 되고 나무와 돌들은 자태를 나타내는데 이것을 어찌 말로서 表現할 수 있으랴. 그러므로 상호간에 모순된 것을 통합하여 하나의 음향을 이루어 한 것을 變化시켜 한가지 形象으로 합쳤을 때 그것을 알지 못한 사람은 世上에 이상한 것도 그것이 이상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世上에 이상하지 않는 것도 그것이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物質의 그 모양자체를 본다면 이상할 것이 없으며, 내 눈으로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자기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며 物質自體로 보아서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북쪽의 호인(胡人)들은 베로 된 布木을 보면 삼()인가를 의심하게 되고 南方의 월인(越人)은 모직물(毛織物)을 보면 모피(毛皮)라고 놀라게 된다. 여러 사람들은 잘 보지 않고 눈에 익지 않은 것을 믿으려 하지 않으며 간혹 기이하게 들어온 사실은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지금 그것을 간략히 예로 든다면 의 불은 陰氣에서 發生하는 얼음물에서 생겨나고 氣運을 가진 쥐들은 火山이 있는 곳에서 자란다는 사실을 俗世에 사는 世上 사람들은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얘기가 山海經記錄되어 있다고 한다면 모두 괴이하게 생각한다. 이런 現狀은 괴이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을 괴이하지 않다고 여기며 괴이하게 여길 만하지 않는 것은 반대로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상하게 여길만한 것을 이상하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괴이하지 않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괴이하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처음부터 괴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이상하게 생각할만한 것을 괴이하지 않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애당초부터 괴이하게 생각할 것도 없는 것이다.

 

본시 그러한 것을 그렇다하고 그렇지 않는 것을 不可하지 않다고 한다면 不可한 것은 不可한 것이므로 이치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不可한 것은 不可한 것이며 不可하지 않는 것은 不可한 것이 아니다. 不可한 것을 不可하지 않다고 한다면 道理에 맞는 것이라 할 수 없다. 탁군( )에서 發行된 죽서(竹書)와 목천자전(穆天子傳)에 의하면, 나라때 목왕(穆王 BC.1001-947)西域으로 행차해 서왕모(西王母 BC.1052-947)를 만났다. 목왕(穆王)西王母에게 벽옥(碧玉)과 비단을 드리고 비단의 매듭 등을 바쳤다. 목왕(穆王)西王母는 요지(瑤池)의 연못가에서 만나 서로가 를 지어 往來하였는데, 그 내용과 言語 중에 볼만할 것이 있었다. 그리하여 영인(靈人)들이 살고 있는 西域의 영산(靈山)인 곤륜산(崑崙山)의 언덕에 올라, 헌원(軒轅)黃帝에서 놀면서 종산(鍾山)의 봉우리를 바라보고 제왕(帝王)의 보물을 갖고 놀며 西王母에 있는 돌에 文字를 새기고 仙人들이 살고있는 현포(玄圃)의 정상에 발자취를 남겼다. 그리고 곤륜산(崑崙山)의 진귀한 나무와 아름다운 풀과 이상한 새와 짐승 또한 옥돌과 진귀한 옥그릇들과 금고(金膏) 그리고 촉은(燭銀) 같은 보물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와 같은 진귀한 보물들을 中國에 퍼뜨리게 되었다.

 

목왕(穆王)은 여덟 필의 준마(駿馬)에 올랐다. 우쪽으로는 도려(盜驪)를 두고 가운데에 두 마리를 부리게 하고 좌쪽으로는 녹이( )를 바깥쪽으로 두 마리를 부리게 했다. 조보(造父)는 목왕(穆王)의 마부(馬夫)를 하고 분융( )을 오른쪽에 태워 萬里長程의 길을 쉬지 않고 달리게 했다. 목왕(穆王)全國 四方을 돌아다니면서, 닿는 곳마다 名山에 오르고 큰 을 건너기도 하였다. 동쪽으로는 大人들이 있는 에 오르고 서쪽으로는 西王母가 있던 에서 잔치를 베풀었으며 남쪽으로는 자라와 악어같은 것을 다리로 삼아 수레를 달리게 했다. 북쪽으로는 날짐승 털이 많이 쌓인 거리를 거닐며 즐거움과 기쁨을 마음껏 누린 후에야 돌아왔다.

 

史記記錄된 설에 의하면 목왕(穆王)은 도려(盜驪)와 녹이( ), 화류(  )라는 名馬를 얻게되자, 조보(造父)를 앞세우고 서역(西域)을 돌면서 사냥을 하고 西王母를 만난 후 즐기느라 돌아올 것을 잊었다고 한다. 죽서(竹書)에도 같은 記錄이 있으며, 좌전(左傳)에는 목왕(穆王)이 자기 마음의 뜻대로 하기 위해 天下의 곳곳에 닿는 곳마다 수레바퀴와 말 자국을 남겼다는 竹書記錄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초주( )라는 大學者識見있는 理解할만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穆王이 하는 일에 평소 못마땅하게 여기고 사고(史考)에서 하기를 망령됨을 명확하게 했다. 사마천(司馬遷)은 또한 대완전(大宛傳)에서 한 것을 보면, 장건(張騫)이 대하(大夏)使臣으로 간 후 黃河源流를 탐색했지만, 世上에서 말하는 곤륜(崑崙)이라는 산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적고 있다. 우본기(禹本紀)山海經에 나오는 괴물(怪物)에 있어서는 나 자신 감히 말할 수 없으므로,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는가라고 되어있다. 만약 竹書가 감추어진지 千年後世上에 나타나 오늘날에 증거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山海經의 이야기는 영영 모르게 되고 폐기되었을 것이다. 동방삭(東方朔)이 필방(畢方)의 이름을 훤히 알았으며, 유자정(劉子政)은 도계(盜械)의 죽음을 알았고, 왕기( )는 양면(兩面)의 손님을 만나보고 어민(魚民)이 장비(長臂)의 옷을 손에 넣었던 얘기들을 상세히 음미하고 살펴본다면 時代하고 지났어도 부()를 매달아 둔 것처럼 一致할 것이다! 의혹을 품은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러한 까닭에 성천자(聖天子)는 조화(造化)原理대로 自然의 길을 따르게 되며, 陰陽變化物質形象形成한 후 괴이한 일들에 대처하며 심오한 理致에 막힘이 없도록 했다. 따라서 깊은 自然眞理에 순응하면서 그 을 다한다면 인들 그 眞實을 어찌 숨길 수 있으랴. 그러므로 은 그러한 眞實外面하지 않고 숨길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하건데 이 책은 世上에 내려오면서 黃帝(BC.2679), 堯舜(BC.2357-2284), (BC.2224), (BC.1122), (BC.221), 三國(高句麗·百濟·新羅 BC. 231-57), . 後晉(BC.206-AD.265)七代歲月을 거쳐 약 3천여 년간 내려 왔으나 잠깐 나라 때 나타났다 곧 매몰되다시피 하였다. 山海經의 속에는 山川의 이름과 장소와 위치 등이 잘못된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現在의 명칭과는 一致하지 못하며, 先賢들의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아 드디어 소멸될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眞實存在한 책을 世上사람들이 잊는 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주석(註釋)을 달아, 막힌 곳을 소통시키고 황폐한 곳을 열어, 그 오묘한 뜻을 이해시킴과 동시에 심오한 이치를 깨닫게 하므로서 깊고 얕음을 나타내게 했다. 뛰어난 문장(文章)世上에서 없어지지 않고, 진귀한 말들이 오늘에도 끊어지지 않는다면, 하후(夏后) 임금의 업적은 장래에 있어서 잊혀지지 않고, 世界 곳곳에 관한 일들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된다면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自然本體를 본다면 우거진 숲속에서 다리를 박차고 작은 새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 오르는 오묘한 理致를 그 누가 알 것인가? 얕은 물가에서 노는 작은 벌레들은 뿔 없는 이 하늘을 오르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장엄한 음률이 진동하는 天上의 뜨락에 속된 악공이 발을 디딜 곳이 아니며, 건널 곳 없는 나루터에 알지도 못한 뱃사공들은 건널 곳이 아니다. 天下道通者가 아니고서는 山海經의 심오한 뜻을 말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 通達하고 박식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거울처럼 볼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하건데 이 책은 世上에 내려오면서 黃帝(BC.2679), 堯舜(BC.2357-2284), (BC.2224), (BC.1122), (BC.221), 三國(高句麗·百濟·新羅 BC. 231-57), . 後晉(BC.206-AD.265)七代歲月을 거쳐 약 3천여 년간 내려 왔으나 잠깐 나라 때 나타났다 곧 매몰되다시피 하였다. 山海經의 속에는 山川의 이름과 장소와 위치 등이 잘못된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現在의 명칭과는 一致하지 못하며, 先賢들의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아 드디어 소멸될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眞實存在한 책을 世上사람들이 잊는 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주석(註釋)을 달아, 막힌 곳을 소통시키고 황폐한 곳을 열어, 그 오묘한 뜻을 이해시킴과 동시에 심오한 이치를 깨닫게 하므로서 깊고 얕음을 나타내게 했다. 뛰어난 문장(文章)世上에서 없어지지 않고, 진귀한 말들이 오늘에도 끊어지지 않는다면, 하후(夏后) 임금의 업적은 장래에 있어서 잊혀지지 않고, 世界 곳곳에 관한 일들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된다면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

 

조선천독(朝鮮天毒)에 관한 몇 가지 주요한 내용

 

山海經海經卷十三

山海經第十八

 

海內經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

 

동쪽 나라 안과 북쪽의 모퉁이에 있는 나라 이름은 조선(朝鮮)이며 조선은 천독(天毒)이며, 그 사람은 물이 있는 곳에서 살고 사람을 사랑하며 가까이 한다.

 

郭璞云: 朝鮮今樂浪郡也.珂案: 朝鮮已見海內北經

 

곽박이 이르기를 조선은 지금의 낙랑군이다라 하였다. 원가가 생각건대 조선은 이미 <해내북경>에 보인다.

 

郭璞云: 天毒卽天竺國, 貴道德, 有文書.金銀.錢貨, 浮屠出此國中也. 晉大興四年, 天竺胡王獻珍寶.王崇慶云: 天毒疑別有意義, 郭以爲天竺國, 天竺在西域, 漢明帝遣使迎佛骨之地, 此未知是非也.珂案: 天竺卽今印度, 在我國西南, 此天毒則在東北, 方位逈異, 故王氏乃有此疑. 或者中有脫文, 未可知也

 

곽박이 이르기를 천독은 곧 천축국이니 도덕을 귀하게 여기고 문서와 금은 돈과 재물 등이 있고 불타가 그 나라에서 나왔다. ()나라 대흥(大興, 東晉,AD.318321) 4년 천축(天竺)의 호왕(胡王)이 진귀한 보물을 바쳤다.라고 하였다. 왕숭경이 이르기를 '천독'은 아마도 별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곽박은 '천축국'이라 여겼으나, 천축은 서역에 있으면서 한 명제 때 사신을 보내 부처의 뼈를 맞아들여 온 곳인데,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알지 못하겠다라고 하였다. 원가가 생각건대 천축은 곧 지금의 인도로서 우리 나라의 서남쪽에 있으며 여기서 말하는 천독은 곧 동북쪽에 있으니 방위가 사뭇 다르기에 왕숭경이 그러한 의심을 품게 되었다. 혹은 그 문귀 가운데 탈락된 문장이 있거나 잘못 전해진 글자가 있다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郭璞云: 偎亦愛也, 音隱.王念孫云: 宗炳明佛論<弘明集卷二>引作偎人而愛人, 又引注文: 古謂天毒卽天竺, 浮屠所興.』」 郝懿行云: 愛之, 藏經本作愛人, 是也.列子<黃帝篇>: 列姑射山, 有神人, 不偎不愛, 仙聖爲之臣.義正與此合. 袁宏漢紀云: 浮屠, 佛也; 天竺國有佛道, 其敎以修善慈心爲主, 不殺生.亦此義也, 玉篇云: , 愛也.本此. 又云: 北海之偎, 有國曰偎人.偎人爲國名, 義與此異.珂案: 宋本·吳寬抄本正作偎人愛人

 

곽박이 이르기를 '' 역시 ''의 의미이다. 음은 隱偎反이다라고 하였다. 왕념손이 이르기를 종병의 명불론(홍명집 권2 원가 주석)偎人而愛人으로 인용되어 있으며, 또 주석의 문장을 인용하여 예전에 말하던 천독은 곧 천축으로 불타가 일어난 곳이다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학의행이 이르기를 '愛之'장경에 본디 '愛人(남을 사랑한다)'으로 되어 있으니 그것이 옳다.열자·황제편에 이르기를 열고사산(列姑射山)에 신인이 있어 가까이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며, 선인과 성인들이 그에게 신하 노릇을 한다하였는데 그 의미가 바로 여기와 부합한다. 원굉의한기에 이르기를 부도는 부처이다. 천축국에 불도가 있으니 그 가르침은 착하고 자비심 있는 마음을 닦는 것을 위주로 하며 살생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역시 여기서의 뜻과 같다.옥편를 말한다고 한 것은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또 이르기를 북해의 모퉁이에 외인(偎人)이라는 나라가 있다라 하여 偎人을 나라의 이름으로 여겼으니 그 의미가 여기와 다르다라고 하였다. 원가가 생각건대 송본과 오관의 필사본에는 '偎人愛人'으로 바로 되어 있다.

 

 내용 중에서 천독(天毒)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곽박은 천독(天毒)이 곧 천축국(天竺國)이라했고 왕숭경은 천독(天毒)은 곧 동북쪽에 있으니 방위가 사뭇 다르기에 의심을 품었으며 천독(天毒)은 아마도 별도의 의미가 있을 것이 라고 하였다. 혹은 그 문귀 가운데 탈락된 문장이 있거나 잘못 전해진 글자가 있다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였다.

 

아래 글은 현 '사단법인상고사학회' 이중재회장의 저서 '完譯板 山海經에서 주요내용을 발췌하고 일부는 本人이 편집한 글이다. 

 

동해지내(東海之內), 즉 동쪽의 나라안이란 대륙의 중부를 뜻하는데 그 다음 문장에서 북해지우(北海之隅)라고 한 것은 좀 말이 맞지 않다. 다시말해 대륙의 중부에서 북쪽의 모퉁이로 옮겨갔다는 말인데 이것은 조선(朝鮮)을 동북삼성(東北三城)쪽으로 몰아 부쳤음을 알 수 있다.  기록에 의하면 나라 임금 때의 일 이므로 그 당시 조선은 천독이라 하였고 조선의 도읍지는 낙랑군(樂浪郡)의 땅이었다. 조선을 천독국이라 한 것은 천독국(天毒國)'하늘의 독이 있는 나라' 라는 뜻이 있음으로 당시로 말하면 최첨단 무기와 최고급 인력들이 포진해 있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수련을 통하여 얻어지는 도통(道通)으로 인해 무한한 지식과 지혜가 넘쳐났던 것이다.

 

본래 상고 때 부터 고조선국을 일명 동이국(東夷國)이라하였다. 그것은 BC.8937년 반고환인씨(盤古桓因氏) 이후부터 점차로 동으로 이주해 왔기 때문이며 동이(東夷)는 구리()를 생산하여 각종 청동기와 철제 무기를 가장 먼저 사용하였고 그래서 '구리(九黎)'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동이(東夷)는 철을 잘 다루어서 지어진 이름이기 때문에 동철족이라고도 하였다.이러한 東夷의 막강한 힘과 기술은 바로 주변의 위협이 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朝鮮天毒이라 한 것이다.  

 

조선국(朝鮮國) 천독(天毒)의 사람들은 물이 있는 곳에 살았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하백족(河伯族)이란 말이다. 다시말해 강을 끼고 도시를 발전 시켜 왔기 때문에 고대 황하문명이 인류 최초로 발전한 이래 줄곧 조선은(朝鮮) 발전하여 천독(天毒)이 된 것이다. 후에 천독(天毒)이란 명칭은 천축(天竺)으로 발전 되었을 것이라고 곽박(郭璞)은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동이(東夷)의 일부 세력이 천축(天竺)으로 되었고  동이(東夷)는 구이(九夷)로 나누어져 대륙전체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수경주소(水經注疏)의 하수(河水)편에서는 천축제국(天竺諸國)은 은()나라 백성들이 남쪽 또는 서역쪽으로 가서 천축국(天竺國)을 이루었다고 적고있다.

본래 천축국(天竺國)은 인도(印度)에 없었다는 사실을 정사(正史)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천축국(中天竺國) 사람들은 은()나라 백성들 이라고 적고있다. 그렇다면 석가(釋迦)의 선조(先祖)는 은()나라 였음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조선국인 천독은 은()나라에서 일부 뿌리를 내리고 천축국(天竺國)의 강역이 점 점 커지면서 다섯 천축국(天竺國)으로 나뉘어져  . . . . 중앙의 오천축국(五天竺國)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천축(天竺)의 대표적인 큰 나라를 일컬을 때 오천축국이라 하지만, 소천축국(小天竺國)은 수십 나라가 있었다.

 

()나라의 요사겸(姚思廉)이 지은 양서(梁書)에 의하면 중천축국(中天竺國)은 대월지국(大月支國)의 동남으로 수천리(數千里) 떨어진 곳에 있는데, 그 지역은 3만리(三萬里)이다. 일명 신독국(身毒國)이라고도 한다. 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천축국(天竺國)은 중국대륙 남부의 동쪽에서 서역까지 길게 분포 했었음을 알 수 있다. 천축국(天竺國)나라때 번성하였다가 後漢 이후에 점차 사라졌는데 그 존속년대가 짧았기 때문에 현재 역사에서 비중있게 다루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혜초의 여행지를 따라 천축국의 위치를 살펴보면 과연 태국 . 동남아 . 스리랑카 등지에서 수 많은 천축국의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산해경은 철처하게 동이족(東夷族) 입장에서 쓰여진 사서라고 보아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외에 특이한 해석으로 규원사화(揆園史話)가 있다.

 

규원사화(揆園史話) 단군기(檀君紀)

 

譯註 김성구(金聲九)

 

山海經所謂: 北海有國, 名曰朝鮮, 天毒育也其人, 水居偎[]也人...

 

산해경(山海經)에 이른바 북해에 나라가 있는데 조선이라 이름한다. 하늘이 그 사람들을 길렀고 물가에 살면서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인용하였으며 여기에서 은 기른다는 뜻으로 쓰였다. " 노자에서 亭之毒之(양육하고 기른다)라 하여 '자라다' 혹은 '기르다'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亭毒''亭育(양육하다)'과 통용되어 쓰인다.... ''은 본디 '기르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기 주석의 왕숭경도 의심하였듯이 '천독''천축'으로 간주하는 것은산해경이 일정한 방위별로 나누어 서술한 지리서임을 감안할 때 문제성을 지닌 해석이다. 그에 비해규원사화''의 본 뜻에 의거하여 해석하였으니 바른 것임을 알 수 있다. " 

 

以下 筆者

관련문구는 老子 51장에 있다. 인터넷검색결과 아래와 같이 나왔는데...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 莫不存道而貴德.

도생지, 덕축지. 물형지, 세성지. 시이만물, 막부존도이귀덕.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도지존, 덕지귀, 부막지명이상자연.

 

故道生之, 德畜之, 長之育之, 亭之毒之, 養之覆之.

고도생지, 덕축지, 장지육지, 정지독지, 양지복지.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원덕.

 

하지만 최근에 대만에서 발견된 노자 친필본 도덕경에는 문제의 부분에 글자가 다르다.

 

道生之德畜之, 物形之勢成之, 是以萬物尊, 道貴德道尊, 德貴夫莫之, 爵而常自然故,

 

道生之畜之長之育之成之熟之養之覆之

도생지축지장지육지성지숙지양지복지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元德.

 

그러나 해석에 있어서는 기른다, 양육한다 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 고대에 독()'뭔가를 다독거린다' '살펴준다' 天毒의 경우 '하늘이 보살피다' 라는 뜻으로 쓰였을 가능성은 충분해 졌다.

 

etc.

 

 

律坤 李重宰著民族史284

 

東夷 朝鮮人들이 너무도 영리하고 용맹스럽고 지혜가 있어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별명처럼 불려진 것이 신독(身毒) 또는 천독(天毒)이다. 그리고 후일 천축(天竺)으로 불려져 中天竺·北天竺·西天竺·南天竺·東天竺으로 불리게 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광동성(廣東省) 지방의 천축산(天竺山)에서 유래되어 청해성(靑海省)이 있는 곳으로 갔다는 기록도 보이나, 본래 天毒·身毒은 곤륜산을 배경삼아 천산산맥 등지와 타림 분지 등 여러 곳에서 수렵을 했던 용맹스러운 묘족(苗族)의 후예였다.

 

고대 조선의 강역

 

山海經

 

卷七  海外西經

海外自西南陬至西北陬者.

 

해외의 서남 끝에서 서북 끝까지이다.

 

海外는 현재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하여 동양의 끝과 유럽의 끝까지를 말한다. 서쪽과 남쪽 그리고 서쪽과 북쪽의 끝인 구석진 곳까지를 말한다. 이 말은 고대사회의 강역을 표시한 것으로, 서북쪽 구석까지라면 프랑스스페인포르투칼모로코덴마크폴란드노르웨이스웨덴필란드모스크바 즉 소련 등지를 뜻한다. 그리고 서남쪽 구석진 곳이라면 아프리카이란아프카니스탄파키스탄인도버마타이베트남캄보디아말레이시아싱가포르필린핀인도네시아 등의 지역을 말한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上p535.

 

 

卷八  海外北經

海外自東北陬至西北陬者.

 

해외의 동북쪽 구석에서 서북의 구석까지이다.

동북의 끝이라고 한다면 일본에서 서백리아(西伯利亞)까지이며, 서북의 끝이라면 포르투칼에스파니아벨기에덴마크스웨덴필란드모스크바까지를 말한다. 그렇다면 고대 황제(黃帝 BC 2679)전후에는 전 대륙이 壇君의 강역이었음을 말한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上p611.

 

卷九  海外東經

海外自東南陬至東北陬者.

해외의 동남 모퉁이에서 동북 모퉁이까지 이르는 지역이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上p670.

 

卷十  海內南經

海內自東南陬以西者.

 

해내의 동남 모퉁이에서 서역의 지역이다.

海內라고 하는 것은 나라 안이라는 뜻이므로, 海內東南이라고 한다면 나라 안의 동남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고대사회에는 대륙을 나라 라고 보았기 때문에, 나라 안의 동남이라면 대륙의 동쪽과 남쪽의 끝을 말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산동성(山東省), 강소성(江蘇省), 절강성(浙江省), 복건성(福健省), 광동성(廣東省) 등을 말한다. 그리고 서쪽 모퉁이까지라고 했으므로 신강성(新疆省) 끝까지를 뜻하고 있다. 즉 소련령이었던 타시켄트와의 접경지대를 말하고 있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下p17.

 

卷十一  海內西經

海內西南陬以北者.

 

해내의 동남 모퉁이에서 서역의 지역이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下p63.

 

卷十二  海內北經

海內西北陬印者.

해내의 서북쪽 모퉁이에서 동쪽의 지역이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下p124.

 

卷十三  海內東經

海內東北陬以南者.

 

해내, 즉 나라 안의 동북 끝에서 남쪽의 모퉁이까지이다.

海內란 바다 안이 아니라 나라 안으로 보아야 한다. 나라 안이란 고대부터 天子가 도읍했던 서경(西京) 즉 현재의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을 기준한 것이 海內 즉 나라 안이다. 서안(西安)에서 동북 끝에서 남쪽 끝까지의 강역(疆域)을 뜻한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下p196.

 

卷十八  海內經

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 天毒. 其人水居. 偎人愛之.

 

동쪽 나라 안과 북쪽의 모퉁이에 있는 나라 이름은 조선(朝鮮)이며 조선은 천독(天毒)이며, 그 사람은 물이 있는 곳에서 살고 사람을 사랑하며 가까이 한다

 

律坤 李重宰 譯 山海經 下p555.

 

經度 80°에 걸려있는 것이 和田, 和田의 옛 地名伊甸園이다. 伊甸園于闐 于田 그리고 현재의 和田으로 地名이 바뀜. 經度 80°를 기준으로 해서 동쪽을 동이국이라고 한다.

 

山海經에는 남쪽에서 북쪽 끝까지,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전부 다 朝鮮이라고 하였음. 산과 바다가 있는 곳은 전부 朝鮮 즉 전 세계가 朝鮮. 고대에는 전 대륙이 조선이다. 라는 글자에서 위에 있는  은 공간세계의 사방팔방을 나타내고 가운데  은 태양을  밑의 은 태양 아래 사방팔방을 의미하고  은 비춘다는 뜻으로 공간세계나 태양이 있는 곳이나 태양아래 모두를 비춘다는 의미.  은 물고기와 양이 사는 곳. 五大洋 六大洲 . 山海經이라는 뜻도    는 물고기를 뜻하기에 五大洋 六大洲 전 강역이 朝鮮이었음을 의미한다.

 

天帝菀國(紀元前 數萬年前)때는 세계를 九部族으로 나누어서 통치를 해 왔는데 九部族때 즉 桓因天皇의 아버지때 和田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점차적으로 동으로 동으로 이동해 오는 과정에서 지금의 甘肅省 燉煌에서 BC 8937桓因天皇은 처음으로 국가 즉 神市를 건국하면서 인류 최초로 불을 사용하였다. 구약성서 창세기편에 보아도 天帝菀國때 부싯돌을 가지고 불을 사용했다고 하나,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불을 사용한 것은 桓因天皇때 정식으로  神市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사용하였다는 뜻에서 불빛 돈(), 빛날 황() 를 써서 燉煌이라 하였다. 또한 神市는 신의 도시 즉 신의 사람이 세운 도시로 神人(또는 眞人)이란 5,6번 이상 한 사람이 세운 도시 를 正統國이라고 한다. 壇君朝鮮 1期 桓因(BC8937), 2期 有巢桓雄(BC 3898) 때 까지는 燉煌에서 다스리다가 3期 堯임금(BC2357)都邑을 지금의 섬서성 서안에다가 왕검성을 세움. 이곳이 최초의 平壤이다 이곳에서 지금의 山西省 洪同縣(옛날에는 阿斯達)으로 즉 BC 2357년의 都邑地平壤에서 25년 만에 都邑地阿斯達로 옮기는 시기가 BC 2333년 이다.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는 壇紀는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들이 壇君이라고 하는 분이 바로 임금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檀君''日帝에 의해서 歪曲된 것이고 本 字''이다. 壇君이란 하늘에 祭祀를 올리는 君主이기에 사상적 의미가 전혀 없는 박달나무 단() 가 아니라 제단 단() 로 표기해야 한다.

 

後漢東夷전에 보면 '王制云.東方曰夷.夷者柢也.' 왕의 제도가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서 최초로 생겨났는가, 동방에있는 동이들로부터 생겼다. 바로 동이야 말로 인류의 뿌리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高句麗史 特輯

 

鐵器文化中國보다 韓國이 앞선다.

 

"...山海經海內經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天毒其人水居?人愛之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 나오는 天毒東晋郭璞(276324)은 부처가 태어난 天竺國의 옛이름으로 해석함으로써 당시 中原에서 보아 東海의 안쪽 北海의 모퉁이에 있는 朝鮮天毒(인도의 古名)이 같은 方向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였고 심지어 방향이 다른 나라를 같은 방향에 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게 하므로 인하여 朝鮮天毒이라는 글자 사이에 어떤 글귀가 빠진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까지 提起하게끔 하고 있다. 그러나 觀點을 달리하여 보면 天毒帝王敬稱을 의미하고, ‘康熙字典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다스린다(:治也)’는 의미가 있는 바 天毒帝王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의미가 있는 단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장의 해석은 東海의 안쪽, 北海의 모퉁이에 나라이름이 朝鮮이라 하는 나라가 있는 데 帝王이 다스리는 나라로서 그 백성들은 물가에 살며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帝王이 다스리는 나라의 그 帝王은 누구일까? 말할 나위 없이 朝鮮王 檀君王儉이 아닐 수 없다"

 

 

천축국(天竺國) : 범어로는 Sindhu. 파사(波斯)에는 Hindu. 희랍어로는 India(國名) Indus(河名) 구칭(舊稱)에는 신독(身毒신독(身篤현신두(賢腎豆) 등이니, 천축(天竺)이라 번역하였고, 신칭(新稱)은 인도(印度인특가(印特伽) 등이니, ()이라 번역하였다일설에는 B.C. 20세기 경 아리아족이 서북쪽인 중앙아시아로부터 남하하여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밀고원을 넘어 지금의 인더스평원에 들어서자 그 푸르게 초목이 우거진 평원과 양양하게 흐르는 강물을 보고 경탄하는 소리를 발한 신두(Sindhu., 큰 바다의 뜻)라는 말이 이 강과 이 지방의 이름이 되고, 이것을 중국에서 신두(辛頭신독(身毒현신두(賢腎頭천두(天豆) 등으로 음역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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