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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상

배달국의 환웅(桓雄)시대 역사

작성자변강쇠|작성시간17.02.02|조회수650 목록 댓글 0

 

배달국의 환웅(桓雄)시대 역사

5세 태우의환웅이 태호복희 황제이다

 

여호와(女媧)하느님은 다의발환웅 이시다.

5세 태우의 환웅이 태호복희 황제이다

염제신농은 안부련 환웅이시다.

신농과 헌원은 여호와 하느님 아들이다.

 

배달국의 환웅(桓雄)시대

 

신시역대기 배달(倍達)은 환웅(桓雄)이 천하 국경을 정하면서 있은 국호이다. 도읍한 곳을 신시(神市)라 하였는데 후에 청구국(靑邱國)으로 도읍을 옮겨 18세를 계승하여 1565년간 전했다.

 

배달국(倍達國)의 역대기(歷代記

 

1세 환웅천황(桓雄天皇) 또는 거발환(居發桓) 재위 94년 수는 120세 이다.BC3898

2세 거불리환웅(居佛理桓雄). 재위 86년 수는 102 BC3804

3세 우야고환웅(右耶古桓雄). 재위 99년 수는 135.BC3718

4세 모사라환웅(慕士羅桓雄). 재위 107년 수는 129.BC3619

5세 태우의환웅(太虞儀桓雄). 재위 93년 수는 110.BC3512

6세 다의발환웅(多儀發桓雄). 재위 98년 수는 110.BC3419

7세 거련환웅(居連桓雄). 재위 81년 수는 140.BC3321

8세 안부련환웅(安夫連桓雄). 재위 73년 수는 94.BC3240

9세 양운환웅(養雲桓雄). 재위 96년 수는 139.BC3167

10세 갈고환웅(葛古桓雄) 또는 독노한(瀆盧韓)재위 100년 수는 125.BC3071

11세 거야발환웅(居耶發桓雄. 재위 92년 수는 149.BC2971

12세 주무신환웅(州武愼桓雄). 재위 105년 수는 123.BC2879

13세 사와라환웅(斯瓦羅桓雄). 재위 67년 수는 100.BC2774

14세 자오지환웅(慈烏支桓雄) 또는 치우천왕(蚩尤天王). 도읍을 청구국(靑邱國)으로 옮김. 재위 109년 수는 151.BC2707

15세 치액특환웅(蚩額特桓雄). 재위 89년 수는 118.BC2598

16세 축다리환웅(祝多利桓雄). 재위 56년 수는 99.BC2509

17세 혁다세환웅(赫多世桓雄). 재위 72년 수는 97.BC2453

18세 거불단환웅(居弗檀桓雄) 또는 단웅(檀雄). 재위 48년 수는 82.BC2381

 

배달국의 환웅시대

 

[ 1세 환웅 거발환]:

 

[환국의 제 7세 지위리 환인(단인)]씨의 아들 거발환 환웅은 태어날 때부터 큰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천부 삼인을 계승하여, 계불(禊祓: 3上巳節(상사절날 재앙을 없애기 위하여 물가에서 여와(女媧)삼신에게 행하는 무당 굿 푸닥거리 행사를 행하고 거불단 환웅은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의 3대도를 수립하여,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본래 태어난 그 유래를 알게 하였다. 어느덧 인간 세상은 의식(衣食)의 일에만 편중하므로, 환웅씨는 무여율법(無餘律法) 4조를 제정하여, 환부(鰥夫:추기경)로 하여금 인간세상을 조절하게 하였다. [천부도 제 11]

 

무여율법(無餘律法) 4

 

첫째: 사람의 행적行蹟은 항시 맑게 할 것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귀生鬼가 되거나 번뇌하고 막혀서 마귀魔鬼가 되지 않게 할 것이니, 인세人世로 하여금 밝게 통하여 한 티끌도 막힘이 없게 하라.

 

둘째: 사람이 평생에 한 일은 사후에 공을 거론할 것이며, 공연스레 말들을 하여 생귀가 되게 하거나 헛되이 허비하여 마귀가 되지 않게 할 것이니, 인세로 하여금 널리 두루하여 한 티껄도 한이 남지않게 하라.

 

셋째: 완악하여 고집을 부리거나 탐욕에 집착하거나 삿되게 미혹한 자는 가리어 광야(曠野)에 머물게 하여 항시 그 행실을 덮을지니, 사특한 기운이 세상에 남지않게 하라.

 

넷째 : 큰 범죄나 과실을 저지른 자는 섬도(暹島)에 유배하여 죽은 후 그 주검을 불에 태워서 죄덩어리가 땅 위에 남지않게 하라.

 

환국의 제 7대 지위리 환인 말기(BC 3897)에 사람은 많아지고 강족은 소국을 침략하고 재물을 약탈하여 통치에 어려움이 많아 걱정이었다. 이에 지위리 환인(단인)이 삼위태백을 내려다보시고 누가 인간 세상을 널리 유익하게 할 수 있겠는가?

 

五加(오가: 牛加(우가), 馬加(마가), 狗加(구가), 猪加(저가), 羊加(양가)의 신하들이 모두 말하기를 庶子部(서자부)의 거발환 환웅은 용맹과 지혜를 겸비하고 인자하실 뿐 아니라 일찍이 인간 세상을 유익하게 할 뜻을 두고 있었습니다. 거발환 환웅을 태백산에 파견하시면 포악한 임금을 쉽게 평정하고 중생을 교화하여 인간세상을 널리 매우 유익하게 하실 것입니다.

 

마침내 환국의 제 7대 지위리 환인은 천부인 3개를 주시고 칙서에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세상은 사람과 만물이 이미 창조가 완료되었다. 그대는 수고를 아끼지 말고 神徒(신도) 3,000명을 통솔하고 지상에 내려가 소도를 설치하고 여와(女媧 :삼신 하느님)에게 제사지내는 일을 주관하고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366)으로 백성을 교화하여 만 자손들의 洪範(홍범)이 되어라.

 

이때 마고 삼신할머니 자손들의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홍인종, 남색의 5색 종족이 나누어 살고이었다. 5색 종족들이 아홉 지역에 나누어 살았기 때문에 풍속이 서로 다르고 업종도 달랐다. 혹은 척박한 땅을 개척하여 과수나무를 심거나 농사를 주업으로 삼았고 혹은 넓은 초원에서 목축을 주업으로 삼고 혹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주업으로 삼았다. 5색 종족이 아홉 지역에 나누어 살던 종족을 9()국 혹은 9()국이라 한다.

 

첫째 황궁씨의 후손 黃夷(황이)의 피부색은 누르고 머리는 검으며 코는 높지 않고 평평하고 눈동자가 검다.

둘째 백소씨의 후손 白夷(백이)의 피부색은 희며 코가 높고 머리색은 회색이고 눈은 깊고 동자는 푸르다.

셋째 흑소씨의 후손 玄夷(현이)의 피부색은 검고 입술이 나와 있고 코는 낮고 짧으며 이마는 넓고 뒤로 비스듬하고 곱슬머리다.

 

넷째 赤夷(적이)의 피부색은 붉은 구리 빛이며 황이와 비슷하다.

다섯째 藍夷(남이: 風夷(풍이:여호와 종족)의 머리색은 짙은 갈색이며 곱슬머리이다. 모습은 황이와 비슷하나 코는 낮고 뾰쪽하다.

여섯째 陽夷(양이)와 일곱째 嵎夷(우이), 여덟째 方夷(방이) 아홉째 犬夷(견이)는 황궁씨의 후손 황이에서 나누어졌다.

 

황인종은 大荒原(대황원 : 천산)에서 살고 백인종은 사막 사이에서 살고 흑인종은 黑水賓(흑수빈, 하르빈)에 살고, 홍인종은 큰 바닷가 瀛海(영해)에 살고, 남색 인종은 여러 섬에서 살고 있었다. 5종족 중에서 환인이 다스린 황인종은 4지류로 땅이 가장 크고 사람도 많았다.

 

蓋馬山(개마산) 남쪽에 陽族(양족)이 살고, 동쪽에 干族(간족)이 살고, 粟末江(속말강: 송화강) 북쪽에 方族(방족)이 살고, 서쪽에 畎族(견족)이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 畎族(견족)盤固(반고:중국의 시조)는 기괴한 도술을 즐기며 거발환 환웅에게 찾아와 길 한쪽을 나누어 살수 있도록 간청하기에 허락하였더니 드디어 재물과 보물을 축적하고 10() 12()神將(신장)共工(공공), 有巢(유소), 有苗(유모), 有遂(유수)와 함께 三危山(삼위산)拉立(납립) 동굴에 도읍을 세우고 君主(군주)가 되었다. 이들 諸畎(제견)盤固可汗(반고가한(반고임금)이 다스렸다.

 

원년 갑자(BC 3897)에 환인의 명을 받은 환웅 거발환은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에 내려와 신단수 아래를 神市(신시)라 하였다. “환웅 거발환將帥(장수) 風伯(풍백) 釋提羅(석제라)에게 새와 짐승과 벌레들의 피해를 없애도록 명하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아직도 동굴 속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땅 밑에서 습기가 올라와 사람들에게 질병을 일으켰다.

 

또한 새, 짐승, 물고기 등을 급하게 쫓아 버려 도망쳐 숨어버리고 잡아먹는 일도 점점 불편하게 되었다. 이에 雨師(우사) 王錦營(왕금영)으로 하여금 사람이 살수 있는 집을 만들게 하고 소, , , 돼지, 독수리. 호랑이, 등의 짐승을 牧畜(목축:길러서)하여 이용하도록 하셨다. 雲師(운사) 陸若飛(육약비)에게 남녀의 혼례 법을 정하게 하였다.

 

환웅 거발환이 왕위를 계승하고부터 여호와 하느님(삼신 마고)”에게 제사 올리는 蘇塗(소도)를 설치하고 좋은 날을 선택하여 3,7일 동안 여호와 삼신할머니 에게 제사를 올리며 매우 신중 하시여 음식물도 禁忌(금기)하며 외부에서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닫고 주문을 외우며 스스로 ()이 있기를 축원하셨다. 질병이 있는 자는 약을 복용시켜 치료하고, 易學(역학)卦劃(괘획)을 만들어 國仙(국선)들에게 교육하였다. ()을 잡고 神命(신명)으로 운명을 점치는 신령한 철학자들이 모두 보필하고 있었다.

 

조서를 내려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온 남자와 여자로 하여금 天坪(천평: 길림 동쪽)靑丘(청구: 朝陽谷(조양곡) 북쪽에 있다)의 땅을 우물 井字(정자)처럼 평평하게 구획 정리를 하였다. 또한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의 五事(오사)를 주관하는 관청을 만들어 인간 세상에서 사람들의 생활에 매우 유익하게 하셨다. 환웅천왕은 천하를 평정하고 도읍을 神市(신시)에 세우고 국호를 倍達(배달)이라 칭하였다.

 

환웅 거발환은 처음 나라를 개국하고부터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 五訓(5)을 처음으로 중생들에게 강연회를 실시하였다. 이후부터 치우천왕이 토지를 개척하고 철광석을 제련하여 병기와 농기구를 만들어 산업이 크게 부흥하게 되었다. 지상 세계의 9환은 三神(3)祖主(조주: 인류의 조상)로 받들어 신봉하고 환웅 거발환을 지상 최고의 敎主(교주)로 받들어 숭배하여 세계의 모든 종교는 모두 한 원류이며 종교국가이었다.

 

敎主(교주)는 삼신(여와(女媧)할머니)에게 제사하는 蘇塗(소도)를 관리하고 국경을 책임지고 災禍(제화)가 발생하면 衆議(중의)에서 화백회의를 열어 의견일치로 다스렸다. 인간 세상의 만 중생을 교화하신 인류의 스승 환웅 거발환 . 사람이 ()으로 화하여 (부처:신선)가 될 수 있는 佛法(불법:선도법)을 가르치고 처음으로 삼신(여호와 하느님)을 숭배하는 神敎(신교:불교, 도교: 천주교의 모태)를 설치하고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大道(대도)五事(5)를 가르쳤다.

 

첫째 부모를 공경하라, 둘째.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라, 셋째 늙은 노인을 공경하라. 넷째. 어린이와 약자에게 은혜를 베풀어라. 다섯째 친구는 서로 믿음이 있어야한다.의 대훈을 삼신을 대신하여 처음으로 강연회를 실시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을 감화시켰다.

 

환웅 거발환은 웅씨국의 여황제(여호와 상제)의 딸을 왕후로 맞이하고 혼례의 법을 제정하고, 1년을 365일로 정하고 역법을 만들었다. 또한 화폐를 정하여 짐승의 가죽이나 경작한 농작물이나 가축을 매매하는 시장을 설치하고 九夷國(9이국)이 서로 교역하고 처음으로 세금을 부과하여 모든 제후국에게 조공을 받히도록 하시니 새와 짐승들이 무리 지어 춤을 추었다. 이때 貢壽(공수). 혹은 頭列(두열)이라고 하는 음악이 있었는데 군중들이 열을 지어 돌면서 소리 내어 노래 부르며 백성들은 삼신(마고 할머니)을 기쁘게 찬양하며 즐겁게 노래하였다.

 

후세의 사람들은 인류의 어머니 여호와 삼신과 인류의 스승 거발환 환웅에게 제사지내는 일은 끊어지지 않았다. 거발환 환웅의 수명은 120세이고 94년을 재위하고 정유(BC 3804)년에 황제에서 물러났다.

 

[ 2세 환웅 거불리(居佛理)] 원년 무술((BC 3803)에 재위에 올라 86년 계해(BC 3718)102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 3세 환웅 우야고(右耶古)]는 원년 갑자(BC 3717)에 재위에 올라 99년을 제위하고 임인(BC 3717)135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 4세 환웅 모사라(慕士羅)]는 원년 계묘(BC 3618)에 재위에 올라 107년을 다스리고 기축(BC 3512)129세로 돌아가셨다.

 

5세 태우의환웅이 태호복희 황제이다

 

배달국 제 5세 태우의환웅이 곧 태호복희(BC 3528-3413)황제이시다.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에서 배달국의 제 5세 태우의환웅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綱鑑金丹(강감금단)에서 태호복희는 원년 계유년에 왕위에 올라 93년을 재임하고 115세에 돌아가셨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상기의 태우의환웅의 재임 93년과 115세 돌아간 년대는 태호복희와 꼭 같다. 따라서 태우의환웅의 열 두 번 째 막내아들이 태호복희가 아니라 태우의환웅과 태호복희는 같은 인물이 된다.

 

원년 경인(BC 3511)에 태우의환웅(태호복희)이 제위에 올라 임금은 사람이 늙지 않고 오래 살수 있도록 반드시 黙念(묵념), 淸心(청심), 調息(조식), 保精(보정)의 술법을 가르쳤다. 이것을 불로장생법이라 한다.

 

태호복희(태우의환웅)은 어느 날 꿈에 三神(삼신)의 령이 몸에 감응하여 만물의 이치를 통철하게 되었다. 이에 三神山(삼신산)에서 제사를 올리고 河圖(하도)八卦(팔괘)를 얻었다.

 

셋 획은 끊어지고 셋 획은 연결되어 위치를 바꾸면 그 이치를 미루어 생각 할 수 있고 三極(삼극)의 묘리를 포함하여 그 변화는 무궁하였다.

 

태호복희 황제는 처음으로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 법과 짐승을 집에서 기르는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태우의환웅(태호복희씨)雨師(우사)의 직책을 맡아 六畜(6)을 길렀다.

 

神龍(신용:水神河伯(수신하백)이 날마다 열두 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河圖(하도)를 바탕으로 桓易(환역)을 만들었다. 당시 60갑자의 歲首(세수)癸亥(계해)로 사용했으나 세수를 갑자로 역법을 고쳤다. 후에 복희씨는 靑丘(청구)국과 樂浪(낙랑)국의 백성들과 有巢(유소),燧人氏(수인씨)와 함께 西土(서토:중국 곤륜산의 서쪽 서역국)에서 (:하남성 淮陽縣(회양현)으로 도읍지를 옮겼다.

 

복희는 神市(신시:천산 곤륜산)에서 출생하여 ()에 도읍을 정하고 震國(진국)을 개국하였다. 역대신선통감 권1 7절에서 太皥帝出乎震(태호제출호진 : 태호황제는 신시(곤륜산)에서 나와 동방에 (:震旦,震檀(진단)국을 건국하였다.

 

태호복희씨의 ()()씨이고 이름은 方牙(방아)이며, 혹은 蒼牙(창아)이고 이를 蒼精(창정)이라 하고 호를 春皇(춘황)이라 하였다. 또한 복희씨의 ()皇雄(황웅)이고 어머니는 華胥氏(화서씨)이다.

 

화서씨는 뇌택에서 나온 뇌신의 큰 발자국을 밟고 伏羲(복희)씨를 낳았다. 복희씨의 여동생 여호와 역시 ()씨이다. 복희와 여호와의 자손들은 風山(풍산)에서 나누어 살았기 때문에 성을 ()씨로 하였다. 역시 후세에 풍씨 성이 나누어져 (), (), (), (), (), (), (), ()씨의 여덟 가지 성씨로 나누어 졌다. 옛날에 복희와 여호와씨족이 지금 산서성의 濟水(제수)에 세웠던 나라 (), 宿(), (), (), 須臾(수유)족 등의 나라들이 있었다.

 

[삼한비기]에서 말하기를 복희씨는 왕위를 책봉 받아 무기를 쓰지 않고 西鄙(서비:돌궐족)의 한 ()을 정성으로 감화시켜 항복시키고 드디어 燧人(수인)씨의 뒤를 계승하여 황제가 되었다. 복희황제는 원년 계유년에 왕위에 올라 93년을 제임하고 115세에 돌아가셨다. 또한 荒史(황사)에서 말하기를 태호복희는 164년을 통치하고 194세에 죽었다. 그는 ()에 장례 하였다. 복희의 능은 지금의 산동성 魚臺縣(어대현) 鳧山(부산) 남쪽에 있다.

 

태호복희가 제위에 오른 계유년부터 임오년까지 16대 임금이 310년을 다스렸다. 복희가 물러나고 무진(BC 3407)에 복희황제의 여동생 여호와 상제가 배달국(진단국) 6세 다의발 황제에 오르고 그의 나이 130세에 돌아가셨다.

 

역대신선통감에서 옛적에 人皇(인황)9로 나누어 나라를 다스리고, 그의 아들이 10대를 다스리고 동방에 東戶(동호)씨가 일어나 동호씨의 17대에 이르러 皇覃(황담)씨가 250년을 다스리고 태백산으로 들어가 숨어살았다. 황담씨의 후손이 7대를 다스리고 有巢(유소)씨가 일어나 300년을 다스리고 그의 후손이 2대를 전하고 燧人氏(수인씨)가 일어났다. 수인씨의 뒤를 태호복희가 황제에 등극하였다.

 

여호와(女媧)하느님은 다의발 환웅이시다.

 

 

 

 

원년 계해(BC 3,418)에 태호복희 황제의 아우 여호와(女媧:여왜)께서 배달국 황제에 올랐다. [배달국 제 6세 환웅 다의발]은 복희 황제의 여동생이며 또한 부인이다. 환웅 다의발(여호와) 황제는 98년을 재임하고 경자(BC 3321)11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단군조선 47대사]

 

[역대신선통감과 강감금단]에서 태호복희가 죽은 후 그의 여동생 여호와가 무진(BC 3407)년에 왕위에 올랐다. 또한 복희 황제가 돌아가신 후 여러 신하들이 여호와를 임금으로 받들고 그를 女皇(여황)이라 불렀다.

 

그 시대 栢皇(백황) 선인이 衡山(형산:안휘성)에서 살았는데 祝融(축융:공공의 아버지)의 자손 莫坏(막배)여호와 황제에게 신하로 추천하여 여호와 황제는 막배와 함께 백성을 다스렸다. 또한 冀州(기주)의 백성을 救濟(구제)한 뒤에 柳城(유성:하남성)에 도읍을 정하고 笙簧(생황:음악기구 거문고)을 만들었다. 여호와 황제는 15년을 재위하고 나이 143세에 돌아가셨다.

 

여호와 상제가 돌아가자 여러 신하들이 柏皇(백황)을 임금으로 삼았으나 백황은 왕위를 버리고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다시 창힐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나 창힐 또한 막배에게 왕위를 맡겼다. 여러 신하들이 莫坏(막배)를 임금으로 삼았으나 막배 또한 왕위를 사양하였다. 막배는 축융의 자손이다. 또한 무진년에 일어난 女媧(여호와) 황제부터 共工(공공), 栢皇(백황).無懷(무회)등 임오년까지 15대의 임금이 194년을 다스렸다.는 기록도 있다.

 

帝王外紀(제왕외기) 路史(로사)女媧(여와:여호와)에 대하여 安登(안등), 女登(여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女登(여등:여호와)은 염제신농의 어머니이다. 三皇記(삼황기)에 염제신농씨의 성은 ()씨이며 어머니는 女登(여등:여호와)이며 有媧(유왜)씨의 딸이다. 小典(소전:복희)씨의 부인 女登(여등:여호와)神龍(신룡:)이 감응하여 염제를 낳았다.

 

염제는 사람의 몸에 머리는 소같이 생겼다. 염제는 姜水(강수)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씨라 하였다. 安登(안등)女登(여등)女媧(여왜 : 여호와)는 같은 사람이다. 현세의 사람들은 도저히 납득 할 수 없겠으나 여호와는 인류를 위하여 하루에도 열두 번 여러 몸으로 變身(변신)하게 된다.

 

염제신농은 안부련 환웅이시다.

 

원년 입술(BC3239)년에 배달국 제 8세 안부련 환웅(염제신농)이 황제의 제위에 올랐다. 73년 갑술(BC 3167)에 소전(少典:복희) 황제의 명을 받아 강수(姜水)에서 군사를 감독하였다. 소전의 아들 신농씨가 곧 제 8세 환웅 안부련 이시다. 안부련 환웅 신농씨는 일찍이 백가지 풀을 가지고 약을 만들었다.

그 후 열산(烈山)으로 옮겨와 살면서 백성들이 필요한 물건과 서로 바꾸어 사용하게 하므로서 교역이 활발하여 생활이 편리하였다. 신농씨(안부련환웅)는 강수(姜水)에서 살았기 때문에 성을 강()씨라 하였으며 복희씨의 여동생 여와(女媧:여호와)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안부련 환웅 염제신농 임금은 73년을 제위하고 수명은 93세이시었다. [단군조선 47대사]

 

예기(禮記)35제는 복희(여호와)-염제신농-황제헌원을 3황이라 하고, 소호금천-전욱-고신-당요제-우순을 5제라 한다. 복희 시대를 상고시대라 하고,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의 대를 중고시대로 잡고 있다.

 

동쪽 震方(진방)陳國(진국:진단국)을 개국한 風夷(풍이,남이)족이 곧 태호복희와 여호와의 종족이다. 그의 아들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은 藍夷(남이:셈족:묘족)족에 속하며 세계에서 제일 최대의 흥성 강국이 되어 천하를 다스리게 된다.

 

 

▲ 배달국 제8세 안부련 환웅(염제 신농)

 

복희씨와 여호와의 맏아들 염제신농(BC 3218-3078)은 원년 계미(BC 3218)火德王(화덕왕)으로 ()에 도읍 하였다. 지금의 開府(개부:태원)이고 陳州(진주)이다. 염제신농은 복희가 도읍한 ()에서 도읍지를 曲阜(곡부)로 옮기고 140년 동안 재위하고 죽었다.

 

震國(진국,陳國)은 제 1세 복희와 여호와께서 개국하고부터 제 2세 맏아들 염제신농이 계승하고 제 3帝臨魁(제임괴), 4帝承(제승), 5帝明(제명), 6帝宜(제의), 7帝來(제래), 8帝衰(제쇠) 炎帝楡罔(염제유망(BC 2968)에 이르기까지 무릇 530년이고 염제유망이 멸망한 후에 황제헌원씨가 일어났던 것이다.

 

염제유망의 정치가 쇠약해 지자 청구국의 치우천왕은 81명의 형제를 거느리고 葛盧山(갈로산)에서 쇠를 캐어 창과 투구와 갑옷 등 처음으로 쇠로 병기를 만들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1년 동안에 모두 9제후의 땅을 함락시켰다. 다시 병기를 정비하여 空桑(공상)을 점령하여 12나라를 합병하고 제후로 삼아 공상에서 위세를 떨치자 황제헌원의 군사와 전투가 벌어졌다. 치우의 성은 ()씨 이므로 염제신농의 후손이 된다.

 

司馬貞(사마정)이 쓴 사마천 사기의 3황 본기 부록에서 태호복희의 성은 ()씨이고 수인씨의 뒤를 이어 天皇(천황)에 올라 111년을 재임하고 다음 복희의 여동생 여호와가 木德王(목덕왕)으로 제위에 올랐다.

 

태호복희와 여호와가 동방의 陳國(진국)을 맏아들 염제신농이 계승하고 마지막 염제유망이 멸망한 임술년 다음해 계해(BC 2962)黃帝有熊氏(황제유웅씨(BC 2692-2592)土德王(토덕왕)으로 제위에 올라 涿鹿(탁록)에 도읍지로 정하고 熊國(웅국)이라 칭하고 100년을 재임하고 나이 111살에 죽었는데 橋山(교산)에 장례했다.

 

태호복희와 여호와의 둘째 아들 황제헌원(황제유웅)은 부인이 4사람이고 아들이 25명이 있었다. 황제의 맏아들은 玄囂(현효:소호)이며 둘째 아들이 昌意(창의)이다. 창의의 아들이 顓頊(전욱)이다. 즉 전욱고양(BC 2513-2436)의 할아버지가 황제헌원이다. 昌意(창의)의 어머니는 촉산씨의 딸로서 이름은 女樞(여추)이다. 전욱은 ()임금의 조부가 된다.

 

전욱이 老童(노동)을 낳고 노동이 ()()를 낳았다. “천제 다의발 환웅(여호와 상제()에게 명령을 내려 하늘을 들어 올리게 하고 ()에게 명령을 내려 땅을 아래로 억누르게 하여 땅이 噎鳴(열명)을 낳았다. 열명은 서극에 살면서 해와 달과 별들의 운행을 주관하는 신이다.

 

전욱고양은 冀州(기주), 兗州(연주), 靑州(청주), 徐州(서주), 荊州(형주), 楊洲(양주) 梁州(영주), 예주, 옹주,九州(9)로 나누었다. 후세에 (:BC 2255-2208) 임금은 9주와 幽州(유주),幷州(병주), 營州(영주)3주를 더하여 12주로 만들게 된다.

 

冀州(기주:하북성,산서성,하남성, 황하북쪽과 만주 요녕성 요하 서쪽의 땅)淸州(청주:산동성과 요녕성 동쪽 땅)은 너무 넓어서 기주 동부 恒山(항산:하북성)의 지역을 나누어 병주라 하고 기주 동북부의 의무려산(요녕성과 열하성 사이)의 지역을 유주라 하고 청주 동북부 요동지역을 영주라 하였다.

 

황제의 아들 靑陽少昊金天(청양소호금천 BC 2598-2514)씨는 계묘년에 진단국(배달국) 왕위에 올라 83년 간 통치하고 100살에 죽었다. 雲陽(운양)에 장례하였다. 창의의 아들 전욱고양은 정묘년에 왕위에 올라 78년 간 재임하고 91살에 죽어 澲陽(업양)에 장례 하였다.

황제의 맏아들 현효(소호)의 아들이 帝嚳高辛(제곡고신:BC 2435-2365)이고 고신왕이 바로 제곡이다. 그의 이름을 준() 또는 高辛(고신)이라 하고 사람들은 고신왕이라 불렀다. 고신왕은 을유년에 왕위에 올라 70년을 통치하고 105살에 죽었다. 頓丘(돈구)에 장례 하였다.

 

고신왕은 4사람의 부인이 있었다. 고신왕(황제의 증손자)의 첫째 부인은 유태씨의 딸로서 이름은 姜源(강원)이다. 강원은 后稷(후직)을 낳고 후직이 곧 ()나라 시조가 되었다. 둘째 부인은 有娥(유아)씨의 딸로서 簡狄(간적)이며 (:)을 낳았다. 설은 (:()나라 시조가 되었다. 셋째 부인은 陳鋒(진봉)씨의 딸이며 이름은 慶都(경도)이다. 이 경도 부인이 낳은 아들이 防勳(:방훈)이며 곧 ()나라 임금이 되었다.

 

넷째 부인은 娵訾(추자)씨의 딸로서 아들 常儀(상의) ()가 왕위에 올라 9년을 재임하고 백성들로부터 쫓겨나고 경도 부인이 낳은 唐堯帝(당요제) 임금이 갑진(2358)에 왕위에 올라 BC 2258년까지 100년 동안 재임했다. 그러나 虞舜(우순:BC 2255-2208)임금이 병신년(BC 2285)부터 28년 동안 요임금의 나라를 섭정하고 병술년(BC 2255)부터 계유년(BC 2208)까지 50년 동안 재위하고 110살에 죽었다. () 임금은 高叟(고수 : 유호씨(有戶氏))의 아들이다.

 

고수는 高矢禮(고시례)의 친형이다. 고시례는 환웅천왕의 신하로서 主穀(주곡)을 담당하는 農士(농사)이다. 유호씨(고수)의 아들 순이 檀朝(단조:단군조선)에서 벼슬을 하지 않고 이웃나라 唐堯朝(당요조)에서 벼슬을 하므로 父子(부자)간에 서로 의견이 달라 화목하지 못하자 작은 아들 ()을 사랑하고 순을 죽이고자 하였다.

 

순이 아버지의 뜻을 배반하고 唐堯(당요)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자 요임금은 ()을 신임하고 왕위를 물려주었던 것이다. 요임금은 순에게 일을 맡기고, 두 딸로 유혹하게 하니, 순이 곧 미혹하여졌다. 유순은 일찍이 (조선)의 천부도의 법을 집행하는 환부가 되어 있었으나,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무절제한 생활로 요의 두 딸을 밀취(密娶)하고, 어리석게도 요에 붙어 협조하였다. 순이 왕위에 오른지 61년째 蒼梧(창오)의 들판에 도망치다가 우 임금의 신하에게 해를 당해 죽었다.

 

중국사에서 태평시대로 유명한 () 임금은 여호와의 둘째 아들 황제헌원의 5대손이며 성은 伊祁(이기)이다. ,순임금을 중국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으나 요순임금이 어찌 중국의 조상이 될 수 있겠는가? 요순임금은 우리나라 환국시대의 제후이다. 또한 요순임금 시대를 인간이 가장 살기 좋은 태평시대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 기록된 태호복희(노아)의 홍수시대이며 잦은 전란과 괴물들이 출현하여 사람들에게 해를 끼쳐 백성들의 생활이 매우 어려운 시기에 高叟(고수)의 아들 순임금이 요나라를 섭정을 맡았다.

 

대홍수로 인한 인류의 재앙을 만나 도산국제회의 에서 단군의 아들 부루 태자로부터 天符王印(천부왕인), 神針(신침), 皇鉅宗(황구종)의 삼보물을 虞舜(우순)司祭(사제) ()에게 주어 홍수를 다스리게 하고 虞舜(우순)唐堯朝(당요조)를 섭정을 맡아 다스리므로서 비로소 요순시대는 태평시대를 이루어 졌던 것이다. 따라서 요순태평시대가 아니라 단군왕검의 태평시대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복희와 소전은 같은 사람이다.

 

8세 환웅 안부련(安夫連)이 원년 임술(BC 3239)에 제위에 올랐다. 73년 갑술(BC 3167)少典(소전:복희) 임금의 명을 받들어 姜水(강수)에서 군사를 감독하였다.[삼한관경 본기 제4]에서 (:황제헌원)씨는 소전(복희)에서 분파되었다.

 

안부련환웅 말기에 소전(복희)의 명을 받아 姜水(강수)에서 군사를 감독하였다. 少典(소전)의 아들이 신농이다. 신농은 일찍이 약초로 수많은 약을 만들었다. 뒤에 烈山(열산)으로 옮겨 낮에는 교역을 하여 사람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신농씨는 姜水(강수)에서 살았기 때문에 성을 강씨라 하였다.

 

복희씨의 여동생 女媧(여와:여호와)의 뒤를 이어 염제신농이 진단국(배달국) 왕이 되었다. 少典別孤(소전별고)에서 말하기를 公孫(공손:황제헌원)은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하여 軒丘(헌구:지명)에 유배시켰더니 후에 헌구 땅이 軒轅(헌원)에게 소속되었다. 또한 대변경에서 말하기를 염제신농은 少典(소전: 복희)씨의 아들이다. 또한 補史記(보사기)에 이르기를 염제신농의 아버지는 少典(소전:복희)이고 어머니는 유와씨의 딸 안등(여호와)이다. 그의 어머니(여호와)神龍(신룡:복희)이 감응하여 염제를 낳았다. 염제는 사람의 몸에 소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염제신농은 나무를 다듬어 호미와 쟁기를 만들어 밭을 갈아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고 약초를 두드리면 그 약초의 독성 유무를 알 수 있는 赭鞭(자편) 채찍으로 약초를 감별하여 백가지 약초로 각양 각색의 약을 만들어 신농은 의약의 시조가 되었다. 또한 다섯 줄의 弦瑟(현슬:거문고)를 만들어 사람들을 가르치고 시장을 열어 교역을 하였다. 또한 그는 8()64()도 만들었다. 염제신농은 처음에 (: 태호복희와 여호와의 나라)을 계승하고 뒤에 曲阜(곡부:산동성)에서 살았다. 120년을 재위하고 죽었는데 長沙(장사)에 장례 하였다.

 

염제신농은 본시 열산(안휘성 서북)에서 출생하였기 때문에 左氏(좌씨)가 말하기를 열산씨의 아들이라 하고 또한 厲山(여산)씨라 하였는데 이 사람이 뒷날 천하를 통치하였다. 염제신농은 奔水(분수)씨의 딸 聽詙(청발)을 부인으로 삼고 아들 ()를 낳았다.

 

신농과 헌원은 여호와 하느님 아들이다.

 

 

 

복희씨는 안휘성의 烈山(열산)에서 살았으므로 열산씨라 한다. 또한 뒤에 厲山(여산)으로 옮겨 살았으므로 여산씨 또는 少典(소전)씨라 하였다. 이 소전씨(복희)有娥(유아)씨의 딸 女登(여등,任似(임사:여호와)을 왕비로 삼아 아들 둘을 낳았는데 맏아들 石年(석년)이 뒷날 염제신농이고 둘째 아들 늑이 뒷날 황제헌원이다.

 

()나라 潘光祖(반광조)가 지은 강감금단에서 염제신농에 대한 기록이 있다. 소전국(복희)의 왕은 有娥(유아)씨의 딸 女登(여등,任似(임사), 安登(안등)을 왕비로 삼았다. 안등(여호와)神龍(신룡)이 감응하여 烈山(열산)에서 맏아들 石年(석년:염제신농)을 낳고 姜水(강수:섬서성 기산현 서쪽)에서 길렀기 때문에 성을 ()씨라 하였다. 석년(염제신농)火德(화덕)으로 임금이 되어 복희를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렸기 때문에 炎帝(염제)라 불렀다. 火德(화덕)은 관명이다.

 

염제는 열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열산씨, 여산씨, 또는 連山(연산)씨라 하였다. 염제신농이 멸망한 뒤에 (), (), (), (),(), (), (), (), (), (), () 등은 모두 다 ()씨 성의 후손들이다, 염제신농은 아들 다섯 명과 딸 하나를 두었는데 딸의 이름이 女娃(여왜)이다. 또한 염제는 이미 陳倉(진창)에서 살았는데 群臣(군신)들이 제왕으로 옹립하였다.

 

補史記 三皇本紀(보사기 삼황본기)에서 [初 神農之同母弟最 其嗣少典國君 世爲諸侯以 公孫爲弟 九傳至 啓昆 北遷於熊 今開封新鄭因 改國 曰有熊] 처음 신농은 어머니(여호와)와 아우(황제헌원)와 같이 있었다. 少典國(소전국) 임금(복희)이 돌아가자 신농의 동생 公孫(공손:황제헌원)이 제후가 되었다.

 

()나라는 지금의 하남성 우현에서 일어나 9세대를 전하고 啓昆(계곤 :() 임금의 아들) 시대에 이르러 헌원은 북쪽의 ()에서 지금의 開封(개봉) 新鄭(신정:하남성)으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有熊國(유웅국)으로 고쳤다. 유웅국의 임금 헌원은 자기의 부인 附寶(부보)를 데리고 남쪽의 衡山(형산)에 있는 그의 형 염제신농의 능에 항상 참배하고 幡冢(번총)에 있는 그의 아버지 태호복희의 능에도 부보와 같이 참배하였다.

 

[복희와 여호와의 둘째 아들] 황제헌원의 출생은 어느 날 하루 저녁에 하늘 복판에 북두칠성을 에워싼 금빛을 보고 황제헌원을 임신하여 24개월 만에 有熊(유웅: 하남성 신정)의 남쪽 헌원(하남성)에서 낳았기 때문에 軒袁(헌원)이라 이름 지었다. 헌원은 姬水(희수) 강 위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다시 성을 고쳐 ()씨라 하였다. 이때 염제신농은 琢鹿(탁록)에 피난 와 있었다. 이 시대는 蚩尤(치우)가 악한 제후들을 침략하여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져있었다.

 

황제헌원는 少典(소전:복희)의 아들이고 성은 ()씨이고 후에 성은 公孫(공손)이다. 少典國(소전국)의 임금이 소전(복희)이며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은 다 少典(소전:복희)씨의 아들이다. 또한 소전국 임금의 둘째 아들 헌원의 호는 有熊氏(유웅씨), 縉雲氏(진운씨), 帝鴻氏(제홍씨), 帝軒氏(제헌씨)이며 황제는 후에 有熊國(유웅국)의 임금이 된다.

 

황제헌원은 土德(토덕)의 직위를 받았는데 흙의 색은 황색이므로 黃帝(황제)라 칭하였다. 황제는 白民國(백민국)에서 출생하였는데 ()임금에 이르고 ()임금 시대에 ()에서 苗族(묘족)과의 전쟁에서 죽었다. 단군왕검의 외 할아버지 황제헌원이 전쟁에서 돌아가자 드디어 단군은 천하를 하나로 통일하게 된다.

 

소호금천(BC2698-2514)씨는 태호복희와 여호와의 손자가 된다. 소호의 어머니 嫘祖(누조: 황제헌원의 부인)는 큰 별이 무지개처럼 華渚(화저)의 물가에 내려와 몸에 감응하여 소호를 낳았다. 소호의 이름은 (), 또는 ()이며 성은 (), 또는 ().

소호는 할아버지 태호복희의 법을 통달하였기 때문에 소호라 한다. 소호는 金德(금덕)의 직위를 받았기 때문에 색은 백이고 서쪽을 관장하며 금천씨라 하였다. 소호는 窮桑(궁상)에서 帝位(제위)에 올라 뒤에 동쪽의 曲阜(곡부)로 도읍을 옮겼다. 후세의 사가들은 태호복희가 도읍한 ()을 복희의 터라 하고 소호가 도읍한 곡부는 소호의 터라 하였다. 후세에 순임금이 이곳에 살았다.

 

여호와 상제는 5제를 다스렸다.

 

복희시대부터 제왕의 호는 五行(오행:木火土金水(목화토금수)의 방위에 따라 동서남북과 중앙을 다스리게 된다. 木神(목신) 태호복희는 동방을 다스리는 靑帝(청제)이고, 炎帝(염제)는 남방을 다스리는 火神(화신)이고, 水神(수신) 共工(공공)은 북방을 다스리는 黑帝(흑제)이고, 金神(금신) 少昊(소호)는 서방을 다스리는 白帝(백제)이며 土神(토신) 황제헌원은 중앙의 황제가 되어 천하 사방을 다스렸던 것이다.

 

배달국 제 5세 태우의 환웅(태호복희)은 경인(BC 3511)(:진단)국을 개국하고 동방의 상제에 올랐다. 東邦(동방)木神(목신) 복희는 靑帝(청제)로서 木神(목신) 句芒(구망:종손자)을 보좌관으로 삼고 12천리의 동방을 다스리고, 火神(화신) 신농은 炎帝(염제)로서 祝融(축융:공공 아버지)과 함께 12천리의 남방을 다스리고, 金神(금신) 소호는 白帝(백제)로서 蓐收(욕수)를 보좌관으로 삼아 서방을 12천리를 다스리고, 水神(수신) 전욱은 黑帝(흑제)로서 玄冥(현명)風神(풍신) 禺强(우강)을 보좌관으로 삼아 북방 12천리를 다스리고, 土神(토신) 헌원은 黃帝(황제)로서 后土(후토)를 보좌관으로 삼아 중앙을 다스리고, 神母(신모) “ 여호와 는 복희를 보좌하고 五帝(5)를 다스렸다.

 

복희는 계유 원년(BC 3528)부터 홍무원년무신까지 4,896년이고. 2005년은 5533년이다.

신농은 계미 원년(BC 3218)부터 홍무원년무신까지 4,586년이고, 2005년은 5223년이다.

황제는 계해 원년(BC 2698)부터 홍무원년무신까지 4,066년이고, 2005년은 4703년이다.

소호는 계묘 원년(BC 2598)부터 홍무원년무신까지 3,966년이고, 2005년은 4603년이다.

전욱은 정묘 원년(BC 2514)부터 홍무원년무신까지 3,882년이고, 2005년은 4519년이다.

제곡은 을유 원년(BC 2436)부터 홍무원년무신까지 3,804년이고, 2005년은 4441년이다.

제요는 갑진 원년(BC 2357)부터 홍무원년무신까지 3,725년이고, 2005년은 4362년이다.

단군은 무진 원년(BC 2333)부터 홍무원년무신까지 3,690년이고, 2005년은 4338년이다.

洪武元年戊申(홍무원년무신)은 서기 1,368년이 된다.

 

요임금은 고신왕의 아들이다

 

 

 

唐堯帝(당요제:BC 2357-2263)는 고신왕의 막내아들이며 이름은 放勛(방훈)이며, 혹은 伊祁氏(이기씨)라고 한다. 陶唐氏(도당씨) 부락의 추장이다. 이로 인해 唐堯(당요)라고 불렀다. 九夷族(구이족)의 자손이며 黎國(여국:치우천왕)의 변란시에 제위에 올랐다.

 

요임금은 검소하고 소박하며 백성들을 잘 다스려 중국 역사상 聖君(성군)으로 받들고 있다. 요임금의 집은 기둥과 대들보는 모두 산에서 베어온 거친 나무 그대로 집을 짓고 풀잎을 엮어 지붕으로 삼았다. 음식은 야채국과 거친 밥을 먹었고 몸에 걸친 옷은 마옷을 입고 날씨가 추우면 사슴 가죽을 걸쳐 추위를 막았다. 그릇은 흙으로 빚은 공기와 사발뿐이었다.

 

요 임금의 신하로 農師(농사)의 직책을 맡은 후직, 工師(공사)의 직책을 맡은 ()와 법관의 직책을 맡은 皐陶(고도), 樂官(악관)의 직책에 오른 (), 司徒(사도)의 직책을 맡아 종교 교육을 관장한 (), 司馬(사마)의 직책에 올라 軍政(군정)을 관장한 ()이 있었다. 이 신하들은 모두 다 초인간적 신령들이다.

 

특히 법관의 직책을 담당한 ()는 그의 얼굴빛은 푸르고 초록빛이 감돌아 마치 오이 껍질과 같았다. 또 입은 돼지주둥이와 같이 길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러나 법관으로서 심리를 할 때는 추호도 인정에 구애됨이 없이 공명정대하게 사건을 처리하였다. 제 아무리 해결하기 어렵고 의심되는 사건일지라도 일단 그의 손에 들어가면 즉시 한 점의 의혹이나 이의도 없이 총명하게 처리하였다.

 

그는 해태라는 외 뿔난 신령스러운 양을 한 마리 기르고 있었다. 외 뿔이 달린 그 양은 고요가 법관으로서 심리를 할 때 해태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고요의 일을 도와 주었다. 이 양의 모습은 몸에 기다란 푸른 털로 뒤덮여있고 몸집은 거대한 곰과 흡사하였다. 여름에는 늪가에서 살고 겨울에는 소나무와 측백나무 숲에서 살며 성품이 충직하고 정직하였다. 만약에 사람들이 언쟁을 하며 다투면 이치에 맞지 않고 그릇된 쪽을 자신의 외 뿔로 떠밀었다.

 

말 모양의 입을 가진 고요가 사건을 심리 할 때 분쟁 당사자 쌍방을 법정에 불려 들어오면 이미 이 양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알고 가려내 주니 간단히 심리를 마칠 수가 있었다. 즉 분쟁 당사자 쌍방을 불러놓고 고요가 해태에게 명령만 내리면 즉시 그릇된 쪽을 뿔로 떠받았기 때문이다. 고요는 자기의 일을 도와주는 양을 각별히 보호하였다.

 

요임금의 樂官(악관) 직책을 맡은 ()는 산천 계곡의 소리를 모방하여 大章(대장)이라는 악곡을 지었는데 악곡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평온하게 되어 사람들이 사소한 일로 싸우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항상 돌맹이 세 개를 가지고 다니며 박자를 쳐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주었다. 또한 돌맹이 몇 개로 박자를 맞추고 연주 할 때는 각양 각색의 새들과 짐승들이 그 아름다운 음율에 맞추어 신명나게 춤을 추었다, 한다.

 

요임금이 제위에 오른 후 재위 만년에 祗支國(지지국)에서 重明鳥(중명조)라는 새를 바쳤다. 중명조는 일명 雙睛鳥(쌍정조)라 불렀는데 눈 하나에 눈동자는 두 개가 있고 새의 형상은 닭과 비슷하고 울음소리는 봉황새와 비슷하고 때때로 깃털이 모두 빠졌는데 그때는 알몸뚱이로 하늘을 날아다녔다고 한다.

 

이 새는 사악한 요괴들과 승냥이나 호랑이 같은 사나운 맹수들도 쫓아 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먹이는 먹지 않고 오직 玉膏(옥고)만 먹었다. 지지국에서 바친 중명조는 다시 자기의 고국으로 날아간 후 1년에 겨우 서너 차례 날아왔다가 어떤 때는 수년이 지난 후에도 날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중명조가 날아오기를 손곱아 기다리며 늘 문 앞을 깨끗이 쓸고 중명조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애타게 기다렸다. 사람들은 새가 돌아오지 않자 나무나 금속으로 새의 모양을 새겨서 문 위에 달아놓으면 요괴와 악마는 중명조로 알고 무서워 멀리 달아났다고 한다. 그 당시 槐山(괴산)에는 약초를 캐는 偓佺(악전)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 노인은 늘 仙藥(선약)을 먹기 때문에 온 몸이 흰털로 뒤덮여있고 두 눈은 모두 사각형처럼 네모나게 생겼다. 비록 나이는 많았으나 몸이 날렵하고 건강하여 달리는 말과 같았다. 그 당시 요 임금은 하루 종일 국사에 매달려 근심 걱정으로 수심이 가득하여 늘 찡그린 모습이 눈썹사이의 ()자 모양을 이루어 펴질 날이 없었을 뿐 아니라 몸도 쇠약하였다. 요임금의 쇠약한 모습을 보다 못한 약전 노인은 몹시 가엾게 여기고 즉시 산에서 딴 잣을 가지고 요임금에게 바치고 복용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요임금은 약초를 캐는 노인의 호의를 거절 할 수 없어 받아 들었으나 매일 국사에 바쁜 나머지 그 잣을 먹을 여유도 없었다. 그 후 잣을 다른 사람이 먹게 되었는데 그 잣을 먹은 사람은 2,3백세까지 살았으나 요임금은 겨우 백살 밖에 살지 못했다.

 

요임금은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백성들을 위하여 노심초사하며 국사를 돌보아 그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은혜를 감사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80세 된 어느 노인은 한 길에서 나무토막을 던지는 擊壤(격양)이라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격양이라는 놀이는 위는 뽀쪽 하고 아래는 넓게 깎은 신발 모양의 나무토막 2개를 가지고 하나는 땅위에 놓고 다른 하나는 손에 들고 3,40보 떨어진 곳에서 던져 땅위에 놓인 나무토막을 맞추는 놀이였다.

 

천진난만한 그 노인은 날마다 이 놀이를 하며 신명나게 놀고 있을 때 마침 구경꾼 중에서 한 사람이 격양을 즐기고 있는 노인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아...! 정말로 우리 요 임금의 성덕은 위대하도다.... 라고 외쳤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노인은 힐끔 그 사람을 돌아보고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구먼 매일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들어가 쉬며 내 손으로 직접 샘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밥을 먹는데 요임금이 무슨 은덕을 나에게 베풀었단 말인가? 이렇게 반문하자 그 사람은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임금은 열 명의 아들이 있었다. 맏아들 丹朱(단주)不肖(불초)하고 성품이 괴팍하고 행동이 거칠어 요임금은 단주의 성품을 바로 잡아 보고자 <바둑>을 가르쳤으나 못된 성품은 고쳐지지 않아 요임금은 왕위를 ()에게 물려주기로 작정하고 요임금은 자신의 두 딸 娥皇(아황)女英(여영)()에게 시집보내고 아울러 자신의 아들 아홉 명을 순과 함께 생활하도록 하여 진정으로 순의 덕행이 뛰어 나고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인가를 알아보도록 시험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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