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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상

일월성신(日月星辰), 사상(四象)이란?

작성자스토리|작성시간19.03.21|조회수835 목록 댓글 0


일월성신(日月星辰), 사상(四象)이란?

 

()의 네 가지 상()은 곧 원()()()()이고, ()()()()은 곧 춘()()()()이며, ()()()()은 곧 동()(西)()()이다. 소자(邵子)황극경세(皇極經世)연역도(衍易圖), “처음에는 태양(太陽)태음(太陰)소양(少陽)소음(小陰)이 하늘의 사상(四象)이 되어 동()에 속하고, 소강(少剛)소유(少柔)태강(太剛)태유(太柔)는 땅의 사상이 되어 정()에 속하였으며, 그 다음에는 일()()()()과 수()()()()의 유()도 모두 이로 인하여 네 개로 나누어 분배하였다.”고 했다.

 

대개, 하늘의 사상은 바탕이 되어 그 용()은 곧 한()()()()가 되었고, 땅의 사상은 바탕이 되어 그 용은 풍()()()()가 되었다. ()는 동하므로 변하고, ()은 정하므로 화()한다. 야가 변하면 정()()()()가 되고 우뇌가 화하면 비()()()()이 되니, 이는 모두 천지가 낸 것들이다.

 

하늘의 변함을 인하여 감()하는 것은 이 이()()()()가 되고, 땅의 화로 인하여 응()하는 것은 색()()()()가 되니, 이것은 기()의 용에서 나온 것이다. 기화로 말하면, ()()()()는 하늘에 속하고 세()()()()은 땅에 속하며, 치화(治化)로 말하면 황()()()()는 하늘에 속하고 <()>, <()>, <()>, <()>, <()>, <춘추(春秋)>는 땅에 속하니, 모두 천지의 사상을 인해 제각기 나뉘어져 서로 교역(交易)하게 되는 것이다. 천하의 변함을 이로 미루어 다 할 수 있다.

 

모든 물건이 상()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자고 깨는 것은 낮과 밤의 상과 같고, 낮과 밤은 보름과 그믐의 상과 같고, 보름과 그믐은 봄과 가을의 상과 같고, ()과 백()은 물과 불의 상과 같고, 물과 불은 해와 달의 상과 같고, 해와 달은 하늘과 땅의 상과 같으니, 모두 양의(兩儀) 음양(陰陽)와 사상에서 법을 취해서 상이 된 것이고, 양의의 의()와 사상(四象)의 상()도 또한 의표(儀表)와 법상(法象)을 취함이니, 만물의 효칙(効則)하는 바를 뜻한 것이다.

 

하도(河圖)의 반은 기(13579의 홀수를 말함.)이고 반은 우(246810의 짝수를 말함.)니 양의를 나눈 것이고, 동서남북은 사상을 나눈 것이다. 123456789가 서로 안과 밖이 된 것은 팔괘(八卦)의 사귐이고, 중앙에 510이 놓여 있는 것은 태극(太極)의 원기가 있는 곳이다. 소자는, “양의(陽儀)에서 나온 것이 하늘의 사상이 되고 음의(陰儀)에서 나온 것이 땅의 사상이 된다.”고 했고, 주자(朱子), “이태(二太 태양(太陽) 태음(太陰))에서 나온 것이 하늘의 사상이 되고, 이소(二少 소양(少陽) 소음(少陰))에서 나온 것이 땅의 사상이 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두 사람의 뜻이 다 통하지만 주자의 말이 더 긴밀하다.”고 했다.

 

소자는 양의에서 나온 것으로 음양(陰陽)을 삼고, 음의에서 나온 것으로 강유(剛柔)를 삼았으며, 음양 이의(二儀)를 나누어서 기()와 질()에다 분속하였다. 주자는 이태(二太)의 순수하여 나뉘지 아니한 것으로 음양을 삼아 기()에 붙였고, 이소(二少)의 섞이어 문채를 이룬 것으로 강유를 삼아서 질()에 붙였다.

 

청 나라 목당(穆堂) 이불(李紱)이 사상을 풀이한 것이 있어 그 말이 매우 기괴하므로 아울러 기록하여 그의 이론을 표시하니, 그 말은 다음과 같다.

역전(易傳), ‘역에 태극이 있어 이것이 양의를 생하고 양의가 사상을 생하고 사상이 팔괘를 생한다.[역유태극 시생양의 양의생사상 사상생팔괘(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하고, , ‘()에 사상이 있는 것은 보여 주는 바이다.[역유사상소이시야(易有四象所以示也)]’고 했는데, 공소(孔疏)에서는 역유태극절목에서 이미 천지가 양의가 되고, 목이 사상이 되었다.’ 하고, ‘역유사상(易有四象)’에 이르러서는 장씨(莊氏)의 실상(實象)가상(假象)의상(義象)용상(用象)의 설도 쓰지 아니하였는가 하면 하씨(何氏)의 천수상(天垂象) 이하의 사사(四事)도 쓰지 아니하고, 유독 모든 선비의 칠(七八九六)의 설을 취해서 사상에 해당하게 하여, 동일한 사상에서 먼저는 사행(四行 (水火金木))을 쓰고 뒤에는 사수(四數 67 89)를 썼으니, 다 정견(定見)이 없어서 ()을 잘 밝히지 못한 것이다. 또한 천지의 기()는 상()을 말하면 다 볼 수는 있고 그 질()은 없는 것이니, 신 등은 하늘에 있어 상을 이룬 것이고, 목은 질()이 있는 것으로 땅에 있어 형()을 이루는 것으로 상()에 둘 수가 없으며, 6789는 수()이고 상()이 아니니 공소(孔疏)의 두 가지 말을 다 쓸 수가 없다. 주자는 본의(本義)를 지으면서 소씨(邵氏)의 팔괘 차서의 도()를 취하여 음양으로 양의를 삼고 태양소음소양태음으로 사상을 삼았는데, () 나라 이후 내려오면서 정확한 해석이라고 받들었다. 그러나 나는 반복해서 생각하니 또한 미흡하다. ()은 하늘에 있는 상과 사람에 있는 상 둘이 있으니, 하늘에 있는 상은 모두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보이는 것을 상이라 이르고, 음양은 볼 수 없는 것이니 도()이지 상이 아니다. ()일음일양(一陰一陽)이 도이다.”고 하였지만 옛적부터 음양으로 상을 삼은 자는 있지 않았다. 또 이미 음양으로 양의를 삼고 또 음양의 태소(太少)로 사상을 삼았으니, 이는 양의가 사상을 생한 것인데 음양이 음양을 생한다고 하면 가하겠는가?

음양으로써 음양을 생한다면 다시 어떤 음양이 있겠는가?

음양이 태()와 소()로 나누어졌다고 이르면 옳거니와 음양이 태()와 소()를 생했다고 이른다면 옳지 못하다.

태양으로 소양을 생하고 태음으로 소음을 생했다면 어째서 생()을 분()이라고 쓰지 않았는가?

지금 다른 사람에게 시험삼아, ‘음양이 태양소음을 생하고 소음이 소양태음을 생한다.’고 한다면 실소(失笑)하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

그 실소라는 것은 어떤 실소인가? 내가 그 실소함을 보고도 실소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태양(太陽), 소음(少陰), 소양(少陽), 태음(太陰) 네 가지는 비로소 한서(漢書)율력지(律曆志)에 나타내서 사시(四時)사방(四方)사덕(四德)과 사시는 춘()()()()이고, 사방은 동()(西)()()이고, 사덕은 원()()()()인데, 어찌 ()의 사상에서 상을 취한 것이 아니겠는가? 권형(權衡)과 규구(規矩)를 짝[]했고, 권형과 규구만이 ()의 수()가 아니겠는가? 일찍이 팔괘를 생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이 말을 인용한 것이 율력(律曆)을 해명한 것이라면 팔괘(八卦)에 무슨 관련이 있어서 다시 그 팔괘를 생한다고 논했는가?

 

()에 비록 음양은 말했으나 일찍이 태소(太少)를 나누지 않았으니, ()에 없는 것을 구태여 ()으로써 말할 수는 없다. ()에 없는 것을 후유(後儒)들이 많은 말을 지음으로써 이것이 ()을 해설하는 데에 한 실마리가 되었다. ()에는 태()와 소()를 표시해 놓은 것이 없으나 그 7896이 곧 경중(輕重)과 태소(太少)에서 이미 은연중에 표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97에서 이미 양의 태소를 나타내었고 86에서 이미 음의 태소를 보였으니, 음양과 태소의 분별이 유독 송() 나라로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한 나라 율력지(律曆志)에 이미 나타내었고, () 나라 때는 돈을 던져서 점을 친 것이 이미 그 징후가 있었다. 가공언(賈公彦)이 낸 의례(儀禮)주에는, ‘3이 적은 것으로써 중전(重錢)을 삼으니 중전은 9이고, 32로 교전(交錢)을 삼으니 교전은 6이고, 2가 많고 1이 적은 것으로 단전(單錢)을 삼으니 단전은 7이고, 2가 적고 1이 많은 것으로 절전(折錢)을 삼으니 절전은 8이다.’고 하였는데 한(漢唐) 이후의 역가(易家)들은 이미 이런 논설이 있었다.

또 전(), ‘()에 태극이 있어서 이것이 양의를 생하고 양의가 사상을 생한다.’ 하였으니, 이는 대개 모두 성인이 ()을 지은 후에 있는 것으로서 양음(陽陰)으로 의상(儀象)을 삼은 것이니, 어찌 성인이 ()을 짓기 전이라 해서 천지에 음양과 태소가 없었겠는가?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상은 ()의 사상이 아니고, 반드시 사람에게 있는 상을 성인이 세운 것이니 바로 이것이다.

 

전에, ‘성인이 상을 세워서 뜻을 다하고, 괘를 설치해서 정()과 위()를 다했다.[성인입상이진의 설괘이진정위(聖人立象以盡意 設卦以盡情僞)]’라 하였으니, 이것이 곧 상이 괘를 생하여 ()이 있게 된 것으로서 곧 설시(揲蓍 시초를 세서 점치는 일)법이다. 대연수(大衍數) 50이 뒤섞이어 하나가 되면 이른바, ()에 태극이 있다는 것이고, 그 쓰임은 49인데 49가 쓰이게 되면 그 하나는 체()가 된다. 하나는 체이고 하나가 용이면, 이른바 태극이 양의를 생한다는 것이다. 나누어서 둘로 하는 것은 양의를 형상한 것이고, 하나를 거는 것은 삼재(三才 ()()())를 형상한 것이고, 넷으로 뽑는 것은 사시(四時)를 형상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를 손가락 사이에 돌리는 것은 윤월(閏月)을 형상하는 것이니, 이른바 양의가 사상을 생한다는 것이다.

 

네 번을 지어 ()을 이루고, 열여덟 번을 변해서 괘를 짓는다. 비록 열여덟 번을 변하나 짓는 법은 다 넷으로 형상하므로 이른바, 사상이 팔괘를 생한다는 것이니, 이것이 설시(揲蓍)의 법이다. 그러므로 역이 있다.’고 한다. 만일 범연히 음양(陰陽)의 두 기화(氣化)에 미친다면, ()태극이 있고 ()에 사상이 있다.’고 이르지 못할 것이다.

 

유목(劉牧)이 역수(易數)의 구은도(鉤隱圖)를 지으면서 이미 공소(孔疏)의 두 가지 잘못된 해설을 논박했으나, 또한 사상을 나누어 둘로 만들고 천일(天一)지이(地二)천삼(天三)지사(地四)로써 양의가 생하는 사상을 삼는가 하면, 길흉(吉凶)회린(悔吝)변화(變化)강유(剛柔)로써 역유사상소이시지(易有四象所以示之)’의 사상으로 삼으니, 그 말이 또한 억지이다.

 

천일(天一)지이(地二)천삼(天三)지사(地四)가 사괘(四卦)라면 옳거니와 어찌 능히 팔괘의 길()()()()이 네 가지를 생했겠는가? 역유사상(역유사상)과는 거리가 멀어서 서로 연속하지 못하니, 역유사상이 된다고 지적할 수 없으며, 길흉(吉凶)회린(悔吝)변화(變化)강유(剛柔)도 역시 이 장에 절실하지 못하다.

 

지금 상고해 보니, 역유사상(易有四象)이 양의생사상(兩儀生四象)과 함께 한 장이 되어서 위에 이른, ‘사상이 팔괘를 생하고 팔괘는 길흉을 정한다.[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는 것과 아래에 이른, ‘()에 사상이 있는 것은 보여 주는 것이고, ()를 붙이는 것은 고하는 것이며, 길흉으로써 정하는 것은 결단하는 것이다.[易有四象所以示也 繫辭焉所以告也 定之以吉凶所以斷也]’라는 것과 글 뜻이 서로 연속하는데 어찌 나누어 두 가지로 해설하겠는가?

 

그 밖에 횡거(橫渠) 같은 이는 우번(虞翻)의 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사시로써 사상에 짝지웠으니 역시 사괘(四卦)를 생할 수 있는 데만 그쳤고, 자암(紫岩)은 공소(孔疏)의 두 설을 겸용해서 관통을 시켰으나 오행(五行)에서 하나를 뺐으니 마침내 자연의 사수(四數)가 아니고, 주자(朱子)의 발명도 역시 태극을 대연수라고 일렀으나 50을 말하지 않고 49로 하였으니 태극은 이미 그 하나가 동()했으므로 혼륜(渾淪)의 상이 아니며, 소식(蘇軾)은 상하로써 양의를 삼고 사방으로 사상을 삼았으므로 또한 광범해서 적절치 못하니, 지금 모두 논할 것이 못 된다.

 

주역(周易)이치는 밝히기 어려운 것이다. 본조(本朝) 강희(康熙) 연간에 주역절충(周易折衷)을 어찬(御纂)함으로부터 비로소 정론(定論)이 있으나, 사상의 해설에 이미 본의(本義)의 두 획()이 태소(太少)를 나눈 것을 취하였고, 또 겸하여 강절(康節)의 음양강유(陰陽剛柔)의 설을 채택했고, 또 서재한(徐在漢)의 감상(坎象)이상(离象)의 설을 채택했은즉, 비록 하나로 절충(折衷)하였다 하지만 중론을 겸존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 이것이 이른바, ‘변동이 많아서 전요(典要)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미 내가 본 것이 있어서 써 두고 주역(周易)을 배우는 사람의 일해(一解)가 되게 하는 바이다. 나는 생각하건대, 그 말이 조궤(吊詭)하나 대략을 논한 것이 일가(一家)의 수()에는 갖췄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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