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샤먼부족의 케레이(겨레)들
▶ 제1부: 케레이의 탄생
▷ 설명: 왼쪽부터 까마귀, 카자흐스탄 카즈구르트산에 있는 방주 기념비, 케레의 파생단어, 케레이의 상징, 가축에 새기는 인두...
▷ 까마귀 = 샤먼
고대 샤먼들은 탱그리 (하느님)의 뜻을 듣기도 하고 자신의 뜻을 하늘에 전달하는 전령으로서 까마귀를 신성하게 여겼다. 까마귀를 신성하게 여기게 된 시기는 대홍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고대에 대홍수가 나서 인류가 전멸할 위기에 처했을 때, ‘누흐’라는 인물이 방주를 만들어 자신을 포함한 8명을 탈출시켰다.
폭우는 7년 7월 7일간 지속되었는데 폭우가 끝난 후, 누흐는 육지를 찾기 위해서 까마귀를 날려 보냈는데, 까마귀가 흙이 묻은 나뭇가지를 가지고 와서 육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이윽고 카즈구르트산에 정박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투르크인들은 까마귀를 신성한 새라고 여겼다. 따라서 고대 샤먼들은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까마귀가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샤먼들은 자신과 까마귀를 일치시켜 생각했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하면서 인류가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샤먼들은 까마귀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이에 따라 샤먼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새를 신성한 새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민족이 농경민족이 된 이후에는 일반서민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닭을 이용해서 제사나 의식에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대에는 까마귀를 사용했었다.
▷ 케레이 명칭의 유래
‘케레이’라는 명칭은 중세 몽골어로 까마귀를 뜻하는 ‘케레 (Кэрээ)’에서 유래했다. 한국어의 ‘겨레’라는 단어는 몽골어 ‘케레’의 파생어다. 한민족의 명칭에 ‘까마귀’가 들어가게 된 이유는 한민족의 기원이 되었던 부족이 샤먼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유목민 사회에서는 부족 별로 직업이 정해져 있었다. 지금도 몽골의 샤먼성지 홉스굴에 가면 이곳에는 조상대대로 샤먼을 해왔던 샤먼부족들이 운집해 있다.
한민족이 ‘백의민족’이라고 불린 이유는 우리가 흰 색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당시 유목부족사회에서 종교를 담당하는 부족이었기 때문에 흰 옷을 입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파미르에 살았던 삭족(색족)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시 삭족(사카족)의 사회에는 신분제도가 있었는데 신분 별로 서로 다른 색깔의 옷을 입었었다. 그 중 제사장 계급이 입었던 옷이 흰색이었다. 케레이의 명칭은 샤먼들이 전 세계 각 지역으로 이동해 가면서 언어가 변하면서 발음도 조금씩 변했으나 오늘날까지도 거의 비슷한 음가를 가지고 있다. (첨부한 그림 참조)
▷ 케레이 부족의 상징
고대 유목민들의 주식은 최초에는 ‘순록’이었으나 후일 남방으로 내려오면서 ‘양’이 주식으로 바뀌었지만 동물을 주식으로 삼아, 한 지역에 정착해 살았던 농경민족과는 다르게 목초지를 찾아 여러 곳으로 이동하며 살았다. 이로 인해 각 유목민족들은 한 장소에서 함께 양 유목을 하게 될 경우, 자신의 양과 상대방 부족의 양이 섞이면서 어느 것이 자신의 것인지 구별이 어려워 이를 구별할 필요가 생겼다. 이로 인해 생긴 것이 동물의 몸에 자기 부족의 상징을 표시해서 재산을 구별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케레이 부족들은 자기부족의 상징인 ‘까마귀’를 부족의 상징으로 삼았다. 그래서 ‘까마귀’와 ‘십자가’를 뜻하는 단어가 모두 ‘케레’이다. 이 상징과 단어는 서양에도 전달되어 오늘날 기독교에서 십자가를 cross, cruix 등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 제2부: 샤머니즘의 분화
▷설명: 4색 샤먼의 성지, 황도 12궁, 케찰코아틀, 예수, 몽골 샤먼, 한국 무당, 바이칼 주변의 무지개 관련 지명들과 신성지역
▷ 4종류의 샤머니즘
까마귀와 흰색은 전혀 색깔이 다른데 이는 어떻게 된 일일까? 샤머니즘에는 크게 4종류의 샤머니즘이 존재하는데 흑색, 백색, 적색, 황색 샤먼이다.
흑색 샤먼은 북방 샤먼이고 백색은 남방, 적색은 동방, 황색은 서방이었다.
이 네 종류의 샤먼 중에서 가장 강력한 샤먼은 흑색 북방샤먼이었는데 그 이유는 북위 66.6도에 가면 샤먼의 중심별인 북극성이 90도 위에 위치하기 때문에 흑색샤먼은 신의 뜻을 가장 가까운 장소에서 전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의 역할은 유라시아 국가가 부패하여 폭정을 일삼을 경우, 군대를 이끌고 평정한 다음, 새로운 왕을 앉혀 세상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적색샤먼은 무사계급으로 이루어진 샤먼으로 종교적 성격을 지닌 정치지배자들 이었다.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하고 적색을 자신 이외에 쓰지 못하게 한 것은 아마도 이러한 전통과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방샤먼은 백색샤먼으로 학문과 의술을 담당했다. 황색샤먼은 파미르 일대의 샤먼으로 백색샤먼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일어난 투르크계 황제헌원, 소호금천이나, 당나라 등등 투르크계의 지배자가 ‘황색’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보는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샤머니즘의 철학이 크게 네 종류로 나뉘는 이유는 바로 자연의 봄-여름-가을-겨울의 천문현상에 비유해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샤머니즘의 철학사상은 그리스의 4원소(물-불-바람-흙)이나 동양의 4원소(수-화-목-토), 사상의설(태양, 태음, 소양, 소음)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샤머니즘은 고려중기 이후 유교에 의해 탄압을 받으면서 4종류의 샤머니즘이 무너지면서 ‘무속’이라는 형태로 하나로 통합되면서 그러한 구별 없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까마귀 = 무지개
고대 샤머니즘에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또 하나의 수단으로서 무지개가 있었다. 샤먼들은 무지개를 하늘의 탱그리와 만날 수 있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의 몸을 오방색으로 치장해서 자신을 무지개처럼 보이게 치장했다. 오늘날의 한국 무당도 무지개 색깔로 옷을 입는데 이러한 의상의 전통은 고대에 무지개를 보며 신과 대화하려 했던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상은 유대교에도 영향을 끼쳐 ‘야곱의 사다리’로 묘사를 한다. 여기서 ‘사다리’는 ‘무지개’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의 노아도 대홍수 이후, 하나님을 만날 때 무지개가 떴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러한 내용들은 모두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몽골인들은 한국인들을 ‘구린(Г??рин, 고려)’라고 부르는 것 말고 ‘솔롱고스(Солонгос)' 라고도 부르는데 몽골어로 무지개는 '솔롱고(Солонго)인데 여기에 민족명을 나타내기 위해 복수형 어미 '스 (с)'를 붙여서 한국인을 부른다. 이는 한민족이 탱그리를 모시던 제사장 계급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 제3부 : 신과 인간의 연결을 뜻하는 상징들
▷ 설명 : 천사, 야곱의 사다리, 천수관음상, 아텐 (Aten)신, 은하수, 자기장, 나무, 일출, 티베트 국기, 전시안
▷ 까마귀
전편에서 언급했다시피 새는 하늘과 땅을 자유로이 날아다니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새는 하늘의 전령이라고 생각했다. 초기 샤머니즘에서는 ‘새’ 자체로 신성시 했으나,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는 단계에 들어서자 새의 형태를 그대로 쓰지 않고 인간이 날개를 단 모습으로 묘사되면서 ‘천사’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다. 또한 인간이 죽으면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조장(鳥葬)을 했는데, 이는 새가 자신의 육신을 먹고 하늘로 올라가 탱그리에게 가기를 바라는 바램 때문이었다.
▷ 무지개
비가 온 뒤, 날이 개면 태양이 뜨면서 무지개가 나타난다. 고대인들은 태양을 탱그리의 오른쪽 눈으로, 달을 탱그리의 왼쪽 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양이 뜨면서 무지개가 나타나면 무지개를 통해서 탱그리에게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인들은 무지개가 하늘로 오르는 천국의 계단이라고 생각해서 무지개가 뜨는 장소나 방향을 신성하게 여겼다. 유태인들은 엘로힘(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천국으로 올라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손
손은 햇살을 인간의 형상을 빌려 묘사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불교의 천수관음상이다. 이집트의 태양신 아텐(Aten)인데, 두 신상의 모습은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햇살을 손으로 묘사했다. 이는 만물이 태양의 접촉으로 생명이 소생하듯이 신의 은총(햇살)로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 종교지도자들이 종종 신도들 머리에 손을 얹는 행위를 하는데 이는 햇살이 대지를 비추는 현상을 의인화한 행동이다.
▷ 은하수(물)
은하수는 무지개의 보다 더 큰 개념으로 은하수를 타고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종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죽음의 강(황천강, 요단강, 죽음의 강) 등등을 건너간다고 말하는데 이는 은하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고대인들은 인간의 죽으면 은하수를 타고 황소자리에 있는 플레아디스(천국)으로 영혼이 간다고 믿었다.
▷ 불
불은 햇살과 마찬가지의 의미로 번개가 나무에 치면 불이 붙는다. 그래서 불은 지상으로 강림한 탱그리라고 생각해서 유목민들은 천막의 한가운데에 항상 모닥불을 켜 놓았다. 여기서 인간이 죽으면 영혼을 다시 하늘로 올리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온 불을 이용해서 다시 하늘로 승천하기 위해 화장(火葬)을 하는 풍습이 생겼다. 또한 샤먼들이 사용하는 각종 도구들은 모두 번개를 맞은 나무를 재료로 해서 만든다. 번개를 맞은 나무를 재료로 사용하는 이유는 신에게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나무(바람) = 향
나무는 지구자기장의 형태를 그대로 나타내며 성장한 물체이다. 자기장의 흐름 즉 바람은 나무의 성장과 흐름과 유사하기 때문에 아시아에서는 나무로 유럽에서는 바람으로 묘사했는데 이는 자기장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래서 하늘과 연결하는 매개로 나무 앞에 제단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고 향을 피워 하늘과 연결을 시도하기도 했다.
▷ 산(흙)
산은 하늘에 가장 가까이 위치한 땅이기 때문에 고대인들은 산에 올라가서 제사를 지내야만 탱그리에서 보다 더 자신의 소원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제4부 : 서방의 까마귀 부족 카라이트 (Karaite) 유태인...
▷ 설명 : 실크로드, 천상열차분야지도, 순록서식지, 4대 샤먼성지, 바이테렉, 종교통합 서명 실크로드를 따라 케레이들은 동서로 넓게 퍼져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신전을 건설하고 각 지역에 종교적 중심지를 건설했다. 당시 신전의 역할은 종교적 역할뿐만 아니라 각종 문물을 전파하고 기술을 전파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티베트에서 가져 온 선진 과학기술을 전파해 주어 각 지역의 문명을 발달시켰다.
당시 케레이들은 실크로드와 초원의 길을 각각 황도와 은하수라고 생각하고 태양이나 별들이 이동하듯 스스로를 일체화시켜 이동했다. (天人合一)이들은 바이칼 호수의 소욘(соён)산을 북극성으로 여기고 반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순례 생활했다.
‘소욘’은 바이칼 퉁그스족 언어로 ‘순록’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고대 이 지역에 살았던 키르키즈족(객현한국: 키르키즈의 고대 표기는 ‘게쿤’이었다.) 사람들은 소욘산을 ‘졸본산 (북극성산)’ 이라고 불렀다. ‘순록 = 북극성’이 한 지명에 동시에 있는 이유는 북위 66.6도에서는 지상에서 90도 직각으로 북극성을 볼 수 있는 위치인데 이곳이 순록 서식지이다.
그래서 순록을 주식으로 북위 66.6도에 살았던 유목민족들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순록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록왕은 북극성에서 내려온 신의 아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순록 = 북극성’이라는 생각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양을 주식으로 하면서 남방으로 내려간 이후에도 이들은 바이칼 호수의 소욘산을 (순록산)으로 부르며 신성시 하였다.
북극성의 몽골어는 ‘촐몬(чолмон)’, 키르키즈어 ‘졸본(жолбон)’, 카자흐어 ‘숄판(шолпан)’, 한국어 ‘주몽(朱蒙: 북극성의 아들)’, 히브리어 ‘솔로몬’ 등등의 파생어가 나왔으며 ‘샤먼’이라는 단어도 북극성을 뜻하는 ‘촐몬’의 파생어이다. 즉 ‘샤먼’은 북극성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자라는 의미이다. 서쪽의 북극성 솔로몬 성전이 있었던 모리야(Moriah)산의 카라이트 유태인들 또한 샤먼과 동일한 사고방식과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같다고 생각하는데 유대교는 기독교와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인도-유럽어족인 로마제국의 황제가 정치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인도-유럽어족이 아니었던 유태인들의 종교관과는 전혀 달랐다.
콘스탄티누스황제의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한 기독교 창시는 중근동판 동북공정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유태인들은 2,000년간 유럽인들에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절대로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 가면 ‘바이테렉’이라는 생명나무 기념탑이 있는데 이곳에는 세계평화와 종교통합을 기원하며 전 세계의 종교지도자가 통합에 힘쓸 것을 맹세하며 서명한 기념물이 있는데 여기에서도 유태교는 기독교와 정반대의 위치에서 불교, 힌두교, 도교들과 함께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태인들이 생각했던 하나님 (야훼)란 무엇이었을까?
▶ 제5부 : 히브리문자와 야훼
▷ 설명 : 수메르문자, 페니키아문자, 히브리문자, 아버지(히: 아브), 어머니(히: 엠), 아들(히: 벤), 하느님(히: 야훼)...히브리문자의 기원은 페니키아 문자였다.
페니키아문자의 기원은 수메르 문자였다. 따라서 수메르 문자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구약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 유태인들은 서양인들이 신봉하는 성경책을 인정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서양인들이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임의로 해석해서 본뜻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유태인 정치인들 중에는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두고 기독교도들은 이들을 사탄이라는 둥, 푸른색 외계인이라는 둥 별의 별 소리를 다하는데, 만약 중국인들이 동북공정으로 고조선-고구려를 중국사로 편입한 다음에 한국인을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에 속한 민족이라고 부르면 친일파 후예들 외에 순순히 받아들일 한국인이 몇 명이나 될까?
▷ 히브리문자
히브리문자는 영어의 알파벳처럼 각각의 발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와 동시에 각종 물건을 상징으로 하고 있다. (첨부그림 참조) 쉽게 생각하면 한자와 같다고 보면 된다. 한자가 ‘음’과 ‘뜻’을 동시에 포함한 문자이듯이 히브리문자도 동일한 구조로 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 원래 한국에서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었는데 히브리인과 일본인은 지금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아버지를 뜻하는 히브리어 ‘아브’를 현재의 히브리문자로 보면 발음밖에 인식할 수 없는데 원래의 문자인 수메르어로 보면 ‘소(권위를 상징)’와 ‘집’으로 구성된 문자임을 알 수 있다. 즉 ‘아버지’란 ‘집에 권위를 가진 자’라는 의미이다.
‘어머니’인 ‘엠’은 ‘소’와 ‘물(연결, 여성을 상징)’을 결합해서 만들어졌다. 즉 ‘권위 있는 자와 연결된 여자’가 어머니라는 의미인 것이다. ‘아들’ ‘벤’은 ‘집’과 ‘씨’로 구성되어 ‘집안의 씨(후손)’이 아들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한자에 익숙한 사람이면 히브리 단어의 이러한 구성이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단어 구성은 전혀 서양적이지 않고 동양적이다. 한자는 상형문자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 외에 각각의 단어를 조합해서 여러 가지 단어를 만든다.
예를 들어 배울 ‘학 (學)’자를 가지고 ‘학교’, ‘학생’, ‘학부모’, ‘학교재’ 등등의 단어를 만들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히브리어도 동일한 원리로 히브리 단어를 조합해서 만든다. 그렇다면 그들의 신인 ‘야훼’라는 글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야훼라는 글자의 조합을 보면 ‘손’, ‘사다리’, ‘못’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제3부에서 상징에 대한 설명을 했으니 먼저 그 부분을 참조해주길 바란다. ‘사다리’는 고대로부터 ‘무지개’를 상징하는 의미로 쓰였었다. 따라서 ‘사다리’는 ‘무지개’로 인식하면 된다. ‘손’은 ‘햇살’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무지개로부터 내려오는 햇살? 즉 ‘야훼’는 ‘태양신’인 것이다. 여기에 못을 쓴 것은 고대인들은 춘하추동의 절기에 낮과 밤의 길이가 한쪽이 더 길거나 같은 날이 3일간 지속되는 것을 태양이 하늘에 못박혀 있다고 생각했다. 즉 ‘야훼’란 ‘무지개 위에 고정된 태양’의 이미지를 상징화 한 문자이며 이러한 하늘의 태양신의 아들로서 지상에서 매개자 역할을 하는 샤먼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무당을 당골래 (탱그리)라고도 불렀던 것이다.
▶ 제6부 : 기독교와 유대교의 차이
▷ 설명 : 유대교 카발라(Kabalah), 불교 차크라, 영지주의 별자리, 천상열차분야지도, 불교 만다라, 기독교 만도리아, 타로카드...유대교는 기독교와 상당히 다른데 왜냐하면 기독교는 로마인들이 자신들의 기존 종교관에 유대교의 껍질을 붙였기 때문이다.
그 차이점을 들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 기독교관은 창조론, 종말론, 구원론의 구조를 가지는데, 유대교에는 종말론적 개념이 없다. 유대교의 시간에 대한 개념은 동양과 똑같이 봄-여름-가을-겨울처럼 순환적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말은 완전한 종말이 아닌 새로운 출발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둘째 : 기독교에서는 조상에 대한 제사를 이단시 하지만, 유대교에서 제사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이야말로 유대교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족보처럼 자신들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아담과 이브서부터 장문에 걸쳐 기록을 남겼다. 기독교에서 제사를 제거한 이유는 제사를 인정할 경우, 로마황제를 최고의 지위에 올려놓는데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다.
셋째 : 유대교는 천제를 지내지만 기독교에서는 천제를 지내지 않는다.
넷째 : 기독교 성경은 라틴어나 영어로 번역된 것을 쓰지만, 유대교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것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문장을 읽을 때는 한자로 쓰여진 책들처럼 각 단어의 의미를 음미하면서 전체 의미를 파악하기 때문에 어떤 구절은 기독교 성경과 전혀 다른 번역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바른 해석일까?
다섯째 : 유대교의 각종 종교의식은 천문현상과 매우 관계가 깊다. 그러나 기독교의 각종 종교행사는 천문학과 관계가 있지만 이러한 연관성을 부정한다.
(예 : 크리스마스, 부활절)
여섯째 : 유대교는 샤머니즘이나 일본 신토 등, 아시아계 종교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는 이들을 이단시 하고 적대시한다.
일곱째 : 기독교는 예수를 신으로 인식하지만, 유대교는 예수를 성인으로 인식할 뿐, 신으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견해는 영지주의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등등에서도 동일하다.
여덟째 : 유대교는 인체를 소우주로 보며 야훼와 만나기 위해 단전호흡을 하며 명상을 통해 만나고자 하지만 기독교에는 이러한 개념이 없다.
아홉째 : 유대교에서는 야훼가 우주뿐만 아니라 소우주인 인간의 내면에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모든 중생에게는 부처의 마음이 있다는 사상과 동일하다.
열번째 : 유대교의 많은 풍습은 동양의 풍습과 매우 유사하다. (예 : 야외에서 식사하기 전 음식을 던지며 ‘고샤루 (고시래)’라고 외치는 행위, 소금을 뿌려 정화하는 행동, 물 세례, 동물의 피를 이용한 제례의식, 신전을 갈 때 정수리에 모자를 쓰는 행위, 통곡의 벽에서 기도할 때 소원을 적어 벽에 집어넣는 행위 등등)
▶ 제7부 : 예수의 생애 = 태양의 주기
▷ 설명 : 12월 25일 천문 (북위 66.6도), 성모 마리아와 예수, 바이칼과 소욘산, 초승달과 금성, 물고기자리, 6월 25일 천문 (북위 66.6도), 황도 12궁, 십자가를 든 예수...
▷ 예수의 탄생
예수의 탄생신화는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내용자체가 12월 25일에 벌어지는 천문현상 그 자체이다. 일부 교회는 12월 25일이 예수의 탄생일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이라고 해서 실시하지 않는 곳도 있지만, 이미 구약에 예수(태양)을 찾아 동방박사(오리온)들이 동방의 별(시리우스)를 보고 왔다는 내용자체가 이미 12월 25일의 천문을 묘사하고 있어 ‘예수’의 정체가 태양신임을 알 수 있다.
▷ 예수의 일생
예수(태양)은 AD 0년 물고기자리의 시작과 함께 태어나서 12세 (황도12궁)까지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30세에 나타나 활동하다가 33세, 즉 AD 33년에 죽었다고 하는데 AD 33년 4월 3일은 예루살렘에서 일식과 붉은 보름달 (죽음을 상징)이 뜬 날이었다.
▷ 성모 마리아와 아기예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조합은 샤머니즘의 전형적인 상징인 어머니(초승달)과 아들(금성)의 조합과 동일한 상징을 가지고 있다. 마리아가 예수를 처녀잉태 했다고 하는데 동양의 모든 지도자들은 전부 처녀잉태 전설을 가지고 있다. 동명성왕, 주몽, 야율아보기, 알란고아, 징기스칸, 누르하치 등등. 왜냐하면 고대 지도자를 신격화하기 위해서 천문현상을 의인화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물고기자리시대(AD 0 ~ 2160)의 태양신이 주도하는 시대인데 물고리 자리란 ‘물고기자리-태양-지구-처녀자리’가 일직선이 되는 천문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물고리 자리의 태양신은 처녀자리의 기운을 받고 태어나는 것이다.
▷ 물 위를 걷는 예수
북방 샤먼의 성지, 북위 66.6도에 있는 레나강에 가면 6월 21일 하지 때에 백야현상이 일어나는데 이 지역의 백야현상은 다른 지역과 다르게 일몰이 되지 않고 강을 걷는 것처럼 스치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평행이동을 하다가 다시 하늘로 떠오른다.
▷ 오병이어(五餠二魚)
예수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다섯 개의 빵으로 모든 사람을 배불리 먹였다는데 이 말의 원래 의미는 물고기 자리(2월 19일 ~ 3월 20일) 봄에 씨를 뿌려 처녀자리(8월 23일 ~ 9월 21일) 가을에 추수를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는 의미이다. 그리스의 처녀자리를 유태인들은 빵자리(베들레햄, 다섯 개의 빵별)이라고 불렀다.
▷ 십자가를 든 예수의 고행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십자가를 들고 고행했다는 이야기는 진짜 한 일이 아닌 태양이 황도 12궁을 돈 현상을 의미한 것이다. 고대인들은 인간이 춘하추동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천문현상에 비교해서 설명을 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와 같은 예가 불교의 108번뇌이다. 숫자 ‘108’은 달을 상징하는 것으로 달의 반지름은’10,800’ 마일이다. 그래서 달이 상현달에서 다시 상현달이 되는 27.5일 동안 벌어지는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달의 주기변화에 비유해 설명했다.
▷ 예수의 부활
북위 66.6도에 가면 12월 21일부터 태양이 사라져 22일~24일 3일간 밤이 지속되다 25일이 되면 태양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예수(태양)의 부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록을 하려면 성서기록자는 어디에 살았어야 하는가? 예루살렘 아니면 시베리아?
▶ 제8부 : 야훼 (As above so below)
▷ 설명 : 왼쪽부터 야훼상징, 아훼의 의미, 야훼의 72가지 모습, 야훼를 보호하는 72명의 천사이름, 수비학으로 푼 야훼 72, 히브리문자와 숫자, 부처, 예수, 천상열차분야지도, 전시안1, 전시안2... 5부에서 이미 언급했다시피 ‘야훼’는 ‘태양신’이다. 그렇다면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 야훼의 상징 – 구약을 보면 예수를 비롯한 야훼를 빛으로 많이 묘사하는데, 그 이유는 야훼(태양)던 예수(금성 = 태양의 아들)이건 모두 태양신이기 때문에 태양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유럽에 있는 모든 성당을 가봐도 다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더욱이 예루살렘 모리야(Moriah)산에 있는 유대교 사원에 가면 아예 전시안을 장식해서 야훼가 ‘태양’의 이미지 외에 ‘북극성(삼신)’ 또한 의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둘째 : 야훼의 의미 – 고대 히브리문자는 수메르 상형문자를 기반으로 했다. 그래서 각각의 히브리 문자는 물건을 의미했다. ‘야훼’라는 단어는 ‘손’ + ‘사다리’ + ‘못’ + ‘사다리’로 묘사하는데 그 이유는 무지개 위에 뜬 태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5부 참조) 또한 ‘야훼’의 글자에 사다리가 두 개가 있는 것은 은하수와 황도가 만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고 그 가운데 있는 북극성으로부터 내려오는 빛(정기)를 상징하기 때문에 프리 메이슨들은 이를 전시안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셋째 : 야훼와 숫자 72 – 위의 그림을 보면 야훼를 삼각형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북극성과 태양의 상관관계를 함께 묘사했기 때문이다. 지구가 23.5도 기운상태에서 세차운동을 하기 때문에 북극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26,000년 주기로 변한다.
마찬가지로 태양도 12개의 별자리를 25,920년 주기로 이동한다. 즉 북극성과 태양의 황도12궁의 주기는 거의 같다. 태양이 한 별자리에서 다른 별자리로 이동하는데 2,160년(25,920년 / 12궁)이 걸리는데 72년에 1도(25,920년 / 360도)씩 이동해서 다음 별자리로 이동한다. 그래서 숫자 72는 태양과 북극성이 다음 번 별자리로 이동하는 기본 연도를 상징한다. 유대교에서 야훼를 묘사할 때는 태양처럼 묘사하면서 72개의 햇살을 가진 야훼 혹은 야훼를 둘러싼 72명의 천사로 묘사한다. 이는 태양신 야훼를 묘사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이다.
넷째 : 야훼와 수비학 – 히브리문자는 고대 수메르문자처럼 각각의 문자에 숫자가 부여되어 있다. 이 숫자에 근거해서 피라미드의 야훼 이미지에 ‘야훼’ 이름을 써 넣으면 그 문자 수의 총합이 72가 나온다.
다섯째 : 동양의 천인합일 (天人合一) 사상처럼 유대교도 야훼를 우주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소우주인 자신의 인체에서 야훼를 찾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5부 &6부 참조) 따라서 야훼는 우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도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우리나라에서 ‘천지인 (天地人)’ 사상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 ‘As above so below (하늘처럼 땅도 같이).’ 이다.
▶ 제9부 : 케레이 비밀의 역사 = 프리 메이슨의 역사
▷ 설명: 케레이 명칭의 다양한 파생어들, 케레이의 대 거란항쟁시기,
▷ 음지에서 움직이는 세계의 그림자정부
지면 관계상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요약하면, 케레이(겨례)들은 대홍수 이후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좌우로 흩어져서 살았었다. 이들은 유라시아의 주요 성스러운 산에 신전을 건설하고 종교적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문명을 전파했다. 케레이들에 의한 세계의 그림자 지배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케레이들이 전 세계에 건설했던 대제국은 매우 많다.
우리가 배우는 세계사에 나오는 모든 나라가 다 케레이들이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심지어 미국조차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세계의 모든 종교도 사실 케레이들이 만든 샤머니즘의 카테고리 안에서 돌고 있다. 우주의 주기가 바뀌면 바뀐 주기에 맞춰서 소위 ‘메시아(미륵)’의 역할을 할 사람을 내세워 신흥종교를 세우며 구 세력을 축출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종교통합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의 한 줄기에 지나지 않는다.
케레이들은 유라시아 대륙에 광범위하게 분포해 살면서 어느 한쪽의 정치세력이 커져 주변을 일방적으로 압도할 만큼 강한 세력이 나오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주요 정치인들을 매수하기도 하고 조종하기도 하고 때로는 암살하면서 장막의 뒤에서 ‘힘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였다.
▷ 케레이족의 대이동 (발해유민의 이동)
12세기 테무진이 친척들의 살해위협으로부터 도망쳐 다니던 시절, 케레이족의 옹칸이 테무진의 됨됨이를 보고 자신의 사위로 삼으면서 테무진의 운명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테무진을 키워준 케레이족들은 현재 카자흐스탄에 약 100만 명 정도가 있는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족보에 의하면 이들의 기원은 8세기 후반 만주로부터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당시 만주에 살았던 케레이들은 거란족(요나라)의 침략에 의해 멸망했는데, 그 이후로도 몇 번의 독립운동을 했으나 독립에 실패해서 결국 만주를 포기하고 몽골초원으로 갔다가 징기스칸과 함께 중앙아시아의 호라즘을 공격해서 점령하던 당시 이주해 와서 현재의 위치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의 독립운동의 연도는 발해국의 독립운동연도와 거의 1~2년의 차이밖에 안 날 정도로 유사하다. 그렇다면 당시 동시대에 같은 장소에서 요나라를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던 케레이와 고구려인들은 동족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첨부한 그림 참조)
이 두 민족이 같은 민족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유라시아 대륙에 산재한 케레이들의 명칭을 보면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자세한 것은 표를 참조하기 바란다. 간단히 말하면 중국인들이 ‘케레이’들을 ‘커리예 (克烈)’라고 부르는데, 러시아인들은 한국인들을 ‘까리예츠 (Корейч)’라고 부른다. 따라서 비교음운학적으로 이들은 동일한 명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재로 현재까지도 카자흐스탄의 ‘케레이’들 중에는 자신들이 한국인과 혈연관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노인들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웅칸의 보호로 성장하게 된 징기스칸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력해져 몽골초원의 균형이 깨지자 케레이들은 징기스칸을 견제하려 하다가 오히려 징기스칸에게 숙청을 당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케레이들은 징기스칸에 항쟁하며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서쪽으로 대대적인 이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앙아시아에는 케레이들이 오기 전에 이미 ‘카자리아 (Khazar khanate, AD 618~1048년)’라는 나라가 존재했었다.
카자르인들은 슬라브계의 ‘키에프 루스’에게 나라가 멸망 당한 후, 독일과 폴란드 지역으로 피난 가서 살고 있었는데 카자르인들이 오늘날 서양인들이 음모론을 말할 때 나오는 아슈케나지 유태인의 조상이다. 주치와 바투한의 유럽원정 때에 유럽으로 간 나이만과 케레이들은 이곳에서 먼저 와있었던 케레이들과 만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