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환단고기』 연표
『환단고기』 북부여기 상·하에는 졸본부여 동명제가 졸본에서 즉위하는 과정부터 등장한다.
| ▲ 표4. 졸본부여 동명제와 고구려 동명성왕 주몽, 영품리왕 부루와 동부여 해부루 사이의 상관관계 © 편집부 | | 『환단고기』 북부여기 상에는 동명제가 그의 이름이 고두막한(3-1-46, 47)이라는 것과 천제자와 고열가의 후예로 북부여의 단군이 되는 과정(3-1-48), 그리고 해부루가 동부여를 건국하게 되는 과정(3-1-49~51)이 나온다. 『환단고기』 북부여기 하에는 동명제가 북부여 하왕조를 건국한 사실이 나온다. 원년 계유(B.C. 108년)에 졸본서 제1건국(3-2-4)하고, 3년 을해(B.C. 106년)에 5천 무리로 구려하를 건너 요동 서안평 옛 고리국(3-2-6)에 이르고, 22년 갑오(B.C. 87년)에 배천의 한나라 세력을 제압(3-2-8)했고, 23년 을미(B.C. 86년)에 천제지자로서 북부여 구도에서 제2 건국하고 해부루를 후왕으로 삼아 차릉으로 이거(3-2-9~10)시키며 가을 8월에 한나라 적들과 서압록하 상에서 싸워 이겼다(3-2-11). 49년 신유(B.C. 59)에 붕하니 졸본천에 장사하고 태자 고무서가 즉위했다(3-2-13). 단군 고무서가 즉위 1년 후에 사망하고 동명성왕 주몽이 왕의 사위가 되어 졸본부여에서 제1건국(-58)하고, 이어 모둔곡에서 제2건국(-40)하고 다시 비류수변에서 제3건국(-37)한다. 이상의 『삼국유사, 고구려』『후한서』『삼국지위지』 그리고『환단고기』 북부여기 하의 기록을 총정리하면 졸본부여 동명제의 전체상이 드러난다.
졸본부여 동명(=동명제)는 요동 서안평 고리국(=색리국=북부여국[소속])에서 영품리왕 부루의 시비와 천기(=천의 닭의 자식의 기)의 결합으로 태어나 저가와 마가의 지원을 받았었다. 그는 목마를 했었고, 활을 잘 쏘았었다.
부루왕에게 쫓겨서 "남 엄수[=개사수]=남 시엄수=구려하"에 이르러 활로 물을 흐려 물고기와 자라가 떠오르는 것을 보고 강을 건너 졸본에 도착하여 서기전 108년에 졸본부여를 제1건국 했고, 3년 후 무리 5천으로 다시 구려하를 넘어 요동 서안평 옛 고리국을 차지했었다.
건국 22년 갑오에 배천의 한나라 세력을 크게 쳐부수어 그 성과로 1년 후 천제지자 (해모수)를 자처해 북부여 해부루를 동부여로 쫓아내 이거 시키고 북부여 구도를 차지해 서기전 86년에 제2건국을 단행했었다.
사후 졸본천에 장사했었고, 그 후예가 졸본부여 단군 고무서이다. 졸본부여 단군 고무서의 사위가 졸본부여 동명왕을 계승한 고구려 동명성왕 주몽이다.
| ‘엄리대수’는 일부가 주몽이 건넌 ‘차릉수’이고, 남쪽 일부가 동명이 건넌 ‘구려하’이다. 동명왕의 영토는 주몽왕과 달리 배천, 남 시엄수(=구려하), 졸본천으로 구성된다. 졸본부여의 고유명이자 신왕호는 '동명'(『후한서』, 『삼국지위지』)이고, 구왕호는 '[북부여 구도의] 해모수' '[북부여 구도의] 천제지자'(『삼국사기』고구려), '단군'(『북부여기 하』), 대인환웅(『삼국유사』), 천왕환인('동명제':『삼국유사』)을 계승한다. 결국 세 명의 부루가 한 명의 부루가 되고, 두서 명의 동명왕이 한 명의 동명왕으로 혼동 되면서 졸본부여의 역사가 위축되는 것이 북부여의 역사를 위축시킨 것이 좀 더 분명해진다. 왕호 천제자는 하-은-주-진․한나라에서 유래하며, 천제에서 천제지자로 넘어가는 시기는 서기전 87년 한나라 세력을 물리치고 서기전 86년에 북부여 구도를 차지한 동명부터이다. 4. 북부여 계승계보 위축변천과정: 해모수
북부여의 천제 해모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이상국, 동명왕편』, 『제왕운기』를 기록을 분석해보면, 한 명의 ‘천제 해모수’와 두 명의 ‘천제지자 해모수’이지만 두 명이나 심지어 한 명의 천제지자 해모수로 ‘축소’되어 상대로 가면 해모수가 세 명이고 후대로 가면 해모수가 두 명이나 한 명으로 위축되는 현상이 발견된다. 이것을 북부여 해모수 계승의식 위축변천과정의 역사라고 지칭하겠다. 북부여 해모수왕의 왕호 ‘해모수’는 고유명이자 신왕호이다.
| 1)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세 명의 해모수(북부여 구도와 우발수의 두 명의 천제지자 해모수, 천상 상제와 북부여 천하 천제 해모수) 전승과 해부루 전승(북부여 해모수의 아들) 앞서 살펴본 『삼국유사』 북부여편에서 알게 된 북부여 ‘천제 해모수’와 그의 아들 해부루를 염두에 두면,『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시조 동명왕편에는 위축되어 그의 아들 해부루(동부여 해부루)만 나오고 생략된 한 명의 ‘천제 해모수’와 위축되어 자칭이 추가된 두 명의 ‘천제지자 해모수(①북부여 천제지자 해모수; ②구도의 자칭 천제지자; ③고구려시조 주몽의 부친 자칭 천제지자)’가 등장한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제1, 시조 동명성왕시조 동명성왕의 성은 고씨요 휘는 주몽이다. 처음에 부여왕 해부루[해모수 왕1 계보]가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는 하늘이 나에게 좋은 후계자를 주심이라" 하고 데려다 길렀다. 이름을 금와(금개구리)라 하고 장성하자 태자를 삼았다....아란불이 드디어 왕을 권하여 그 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동부여라 하였다. 그 옛 수도에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자가 자칭 천제의 아들 해모수[해모수 왕2 계보]라 하고 도읍하였다. 해부루가 돌아가고 금와가 그 왕위를 이었다. 이 때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만나 내력을 물으니 "나는 하백의 딸로 이름은 유화이다. 여러 아우들과 함께 나와 놀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자칭 천제의 아들 해모수[해모수 왕3 계보]라 하고 나를 웅심산 아래 압록 가의 집 속으로 유인해 관계한 후 곧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삼국사기』 권 제 13 「고구려본기」 제 1 시조 동명성왕14년 가을 8월, 주몽왕의 어머니 유화가 동부여에서 죽었다. 그곳의 왕 금와가 그를 태후의 예로 장례지내고, 그의 신묘를 세웠다. 겨울 10월, 사신을 부여에 보내 토산물을 주어 그 은덕에 보답하였다. 제시된 『삼국사기』 기록에서 동부여왕 해부루의 아버지 북부여 천제 해모수와 구도의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는 계보가 전혀 다른 인물이고 적어도 해모수는 두 명이라고 해석해야 맥락상 이해하기 쉽다. 만일 동부여왕 해부루의 아버지 북부여 천제 해모수와 구도의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를 동일인으로 해석하면, 아버지 천제 해모수가 아들 해부루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다시 그곳에 나타나 아들을 몰아낸 후에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라고 한 꼴이니 매우 기묘하다. 이유는 첫째, 동부여 해부루의 아버지 북부여 천제 해모수와 유화부인이 우발수에서 만난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는 같은 인물이 아니다. 만일 같은 인물이라면 금와왕은 유화부인을 어머니 항열인 태후로 대접할 수 없고 할아버지 항열인 태태후로 대접해야 예에 맞다. 둘째, 구도(졸본부여)의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와 유화부인이 우발수에서 만난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가 같다면 이들은 북부여 천제지자 해모수의 후손 해부루와 그 아들 금와왕 계보와는 관계가 없어 태후의 예가 성립할 수 없다. 셋째, 금와왕이 유화부인을 태후의 예로 대접하기 위해서는 천제 해모수-해부루와 유화부인이 우발수에서 만난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는 동일 계보여야 한다. 이런 이유로 구도의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의 계보와 유화부인이 우발수에서 만난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의 계보는 달라야 한다. 결국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동명성왕 편의 해모수는 한 명의 천제와 두 명의 천제지자로 세 명이고, 천제 해모수의 아들에 [천제지자] 해부루가 있었다. 『삼국유사』1권, 기이2, 동부여와 고구려조의 기록을 『삼국사기』에서 얻은 지식을 이용해서 분석해 보면 역시 한 명의 천제 해모수와 두 명의 천제지자 해모수로 해모수가 되어 세 명이다. 동부여조에는 꿈에 나타난 천상의 천제와 지상의 천제지자 동명, 그리고 ①해부루가 등장한다. 고구려조에는 동부여 해부루와 금와왕 계보와 ②자칭 천제지자 해모수를 만난 유화부인 및 그의 아들 주몽 계보가 등장한다. 『삼국유사』는 ③구도(졸본부여)의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 계보와 우발수에서 유화부인이 만난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 계보가 둘인지 하나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없다. 다른 사서인 『삼국사기』에서는 금와왕이 유화부인을 태후의 예로 장사했다는 구절로 양자가 다른 계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삼국유사』권1, 기이2, 동부여북부여왕(北夫餘王) 해부루(解夫婁)[해모수 왕1 계보]의 신하 아란불(阿蘭弗)의 꿈에 천제(天帝)가 내려와 말하기를 장차 내 아들로 하여금 북부여 수도에 나라를 세우고자 하니 너는 이를 피해(일연주: 동명(東明)[해모수 왕2 계보]이 장차 일어날 조짐을 이른다) 동해의 해변에 가섭원(迦葉源)이란 땅에 가면 토양이 기름져서 왕도를 삼을 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란불이 왕에게 권하여 도읍을 가섭원으로 옮기게 하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東夫餘)라고 하였다. 『삼국유사』권1, 기이2, 고구려국사(國史) 고려본기(高麗本紀)에 이르기를 "시조 동명성제(東明聖帝)의 성은 고씨(高氏)이고 휘(諱)는 주몽(朱蒙)이다. 처음에 해부루가 이미 동부여(東夫餘)[해모수 왕1 계보]로 자리를 피하였고 부루가 죽자 금와(金蛙)가 왕위를 이었다. 이때 태백산(太白山)의 남쪽 우발수(優勃水)에서 한 여자를 얻어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나는 본래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은 유화(柳花)이다. 여러 동생과 나와 함께 놀던 중 한 남자가 자칭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해모수 왕3 계보]라고 하며 나를 유혹해 웅신산(熊神山) 아래 압록(押綠) 강가 방에서 관계하고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내용을 정리 해보면 『삼국유사』의 북부여조에서 등장한 “상제와 천하의 천제 해모수, 그리고 그 아들 부루” 전승은 동부여와 고구려조에서 모두 천제 해모수 없이 해부루만 단독으로 등장해서 해부루라는 명칭 자체가 천제지자라는 선행전승이 사라졌고, 또한 ‘상제/ 천제’ 전승에서 상제가 사라지고 ‘천제/ 천제지자’ 전승으로 변화되었다. 이런 천제 해모수와 그 아들 해부루 전승이 묵시화되어 위축된 것이 선행전승으로서 조선의 단군과 그의 아들 부루의 전승을 위축시켰다. (계보 위축 심화과정)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을 보면, 해부루의 아버지 북부여 천제 해모수와 구도의 천제지자 해모수와 웅심산의 천제지자 해모수가 모두 등장하지만 『삼국사기』처럼 해부루의 아버지 천제 해모수가 생략되어 위축되고, 또 구도의 천제지자 해모수와 웅심산 천제지자 해모수가 좀 더 분명하게 동일 인물처럼 취급되어 위축의 정도가 강화된다. 결국 동명왕편은 천제지자 해모수가 거의 한 명인 것처럼 전개된다. 『동국이상국집』권3, 고율시, 동명왕편「본기(本紀)에 이르기를 부여왕(夫餘王) 해부루(解夫婁)[해모수왕 계보1, 위축]가 금개구리 형상의 작은 아이를.....길러 금와(金蛙)라 하고 태자로 삼았다. 정승 아란불(阿蘭弗)이 말하기를 하루는 천제(天帝)가 제게 내려와서 장차 내 자손(子孫)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려 하니 너는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동해 가에 가섭원(迦葉源)이란 땅이 있는데 오곡이 잘 되니 도읍할 만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란불은 왕을 권하여 옮겨 도읍하고 동부여(東夫餘)라 하였다. 옛 수도에는 해모수(解慕漱)가 천제의 아들[해모수왕 계보2]이 되어 와서 도읍하였다. 『제왕운기』를 살펴보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나타난 세 명의 해모수 기록을 버리고 후대의 기록인 『동국이상집』 「동명왕편」에 따라 천제지자 해모수를 거의 한 명처럼 해석한다. 『제왕운기』권하, 「동국군왕개국연대」 한사군급열국기동명본기(東明本紀)』에 따르면"… 의 신하 아란불(阿蘭弗)이 말하기를 '하루는 하늘에서 저에게 내려와 장차 내 아들[해모수왕 계보2]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고자 하니 너는 이를 피하여 동해의 해변에 가섭원(迦葉源)이란 땅이 있으니 토양이 오곡에 마땅하여 가히 도읍을 삼을만 하다'라고 하였다. 王에게 권하여 도읍을 옮기게 하고 나라 이름을 동부여(東夫餘)[해모수왕 계보1, 위축]라고 하였다...." 이상 사서들의 전승을 종합정리 해보면 네 개의 국가계보인 북부여, 동부여, 졸본부여(동명본기), 그리고 고구려의 계보를 설명하고 있다. 첫째, 천제 해모수가 북부여를 건국하고 해부루가 동부여를 건국하는데 천제 해모수와 해부루는 부자 관계이고, 구도에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가 졸본부여를 건국하고, 다시 후에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의 아들인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다. 둘째, 하지만 한 명의 천제와 두 명의 천제지자인 총 3명의 해모수가 원래의 전승이었지만 마침내 한두 명의 천제지자 해모수로 위축되었다. 셋째, 세 명의 해모수 중 구도의 졸본부여 해모수가 우발수의 천제지자 해모수로 압축되면서 졸본부여 동명왕과 고구려 동명성왕 주몽왕의 관계(사이)가 한 명으로 혼동이 일어난다. 넷째, 세 명의 해모수가 우발수의 자칭 천제지자 해모수 한 명으로 축소되면서 북부여 천제 해모수와 해부루 관계와 북부여사가 고구려사 속으로 사라진다. 단락정리를 해보면 북부여 천제 해모수와 그의 아들 동부여 해부루 사이의 관계가 원래 기본이었다. 이 기본전승은 상제와 천제가 천제와 천제지자로, 두 명의 천제지자 해모수가 한 명으로, 천제 해모수와 그 아들 해부루 사이 부자관계로 위축전승되었다. 『삼국사기』에서 가장 먼저 천제 해모수와 그의 아들 해부루 사이의 부자관계가 위축되는 것은 그 이전 역사에서 조선의 단군과 그의 아들 부루 사이의 부자관계전승이 위축되는 효과를 미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