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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상

스승을 부모로 모시는 서원의 제향의례

작성자신으로|작성시간13.06.18|조회수95 목록 댓글 0

 

 

스승을 부모로 모시는 서원의 제향의례

 

 
▲ 옥산서원(사진 제공: 경주시)


[글마루=신정미 객원기자] 지난 호에 언급한 제향의례에 이어서 제향의 준비와 진행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자.

 

제향의 준비와 진행은 원장이 책임지고 하는 게 원칙이었다. 제향의례일이 다가오면 서원에서는 원장과 유사 등 원임과 유생들이 모여 당회를 열었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제관을 정하는 일이다. 제관은 헌관과 집사인데 헌관은 서원에 모셔진 선현들에게 잔을 올리는 제관 곧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으로 구분한다. 초헌관은 수령이 담당하도록 했지만 대개는 원장이 맡는 것이 보통이다. 아헌관과 종헌관은 고을 내 유력한 양반이 담당했다.

 

집사는 헌관을 도와 제례를 원만하게 진행토록 보조하는 하급 제관으로 직책에 따라 상급집사와 하급집사로 나눌 수 있다. 상급집사는 양반유생들이 맡으며 제례의 진행과 관련된 일을 담당했고, 하급집사는 액내원생(하급집사를 담당하는 원생)이 맡으며 제향에 쓸 제복, 제기, 제수 준비, 참석인사 안내 등 낮은 일을 담당했다.

 

원칙적으로 향교와 사액서원에 국한해서 지급된 제수는 제향 하루 전 원임이 노비들을 거느리고 관아에 가서 제물을 받아오면 헌관과 집사들이 서원 문밖에서 도열해 맞이했다.

 

제향은 모든 절차가 예(禮)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집례(執禮)가 창을 하면 그에 따라 제관들이 질서 있고 경건하게 움직이며 진행된다. 계단을 오를 때도 왼발부터 디디며 한 계단씩 올라간다. 사당의 중문은 신도(神道)로 여겨 제물과 제주가 드나드는 경우 외에는 출입을 금하고 항상 동문으로 들어가 서문으로 나온다.

 

서원마다 제향절차가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분향례(焚香禮), 전폐례(奠幣禮), 삼헌례(三獻禮), 음복수조례(飮福受胙禮), 망료례(望燎禮)로 이뤄진다. 분향을 하여 혼을 부르고 폐백을 드리는 예를 행한 다음 술잔을 세 차례 올리는데 초헌 즉 첫 잔을 올리고 나서 축문을 읽는다. 아헌과 종헌이 끝나면 초헌관이 제물로 술과 고기 일부를 맛보아 복을 받은 다음 축문을 태우면 제사의 주요절차가 끝난다.

 

제례를 끝마친 뒤 헌관과 집사는 물론 원임, 유생들이 서원에 모여 앉아 음복을 하고 제수를 나눠 가졌다. 이를 복주(福酒)라고 한다. 이어 유회를 열어 서원과 고을의 여러 가지 일을 논의했다. 원임 선출, 유생으로 받아들일 사람의 추천과 결정, 서원 건물의 수리와 중건 문제 등. 그 밖에 유림 사회에 현안이 될 만한 정치적인 문제, 윤리와 관련된 포상과 처벌 등을 결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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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부일체의 중심인 서원의 제향기능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성리철학을 바탕으로 성리학적인 이상 사회를 건설했던 조선사회. 세종·성종대와 영조·정조대 문예부흥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유문화를 창조해낸 근원은 무엇이었는가? 이에 대해 국민대 지두환 교수는 당시의 문화는 조선시대를 이끌어왔던 전기 주자성리학과 후기 조선성리학을 이해하는 게 기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문화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창덕궁과 종묘라고 자랑삼아 말하는 그에게 서원의 제향의례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나라 서원과 중국의 서원을 비교해 볼 때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제가 사상사 전공인데 우리가 처음에 중국 백록동 서원을 본받아서 주세붕이 백운동 서원을 세운 후 사액을 받아 소수서원이 됐다고 하니까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서원을 우리나라에서 5~600년이 지난 뒤에 세웠다고 전 국민이 알고 있잖아요? 그럴리가 없는데 악록서원 가서 교류를 하다 보니까 중국 송대의 서원은 최충(해동공자)이 고려 전기에 열어놓은 사학하고 같아요.

그때는 제자들을 기르기 위한 것이어서 제향기능은 없었어요. 이게 명나라 때 가면 사학이 관학으로 되며 중국에서는 서원, 우리나라에서는 향교라고 했죠. 그래서 성균관처럼 공자도 모시고 사배위 십철(공자 제자 중 뛰어난 10인), 송조육현(중국 송나라 6인의 유학자)도 모시게 됩니다. 중국에서는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그 서원을 그대로 유지했단 말예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향교가 전국에 있으면서도 따로 서원이 세워졌으니 우리나라 같은 서원이 중국엔 없다는 게 가장 큰 차이죠. 중국 서원은 우리나라 군현, 도에 있는 큰 향교와 규모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공자부터 송조 육현까지 모시고 우리나라 향교에 동방 18현을 모시는 거나 같단 말이죠. 중국에 가서 서원을 보면 우리나라 향교와 같아요.

 

우리나라 서원이 중국 서원과는 차별화되고 독자적인 가치를 따져볼 때 세계유산적인 가치를 어떻게 보십니까?

 

세계유산이란 종묘처럼 전 세계에서 아주 수준 높은 유산으로 남아야 하잖아요. 중국의 주자성리학을 배워가지고 그걸 가르치는 중국 서원 같은 것을 우리나라에 세웠다고 하면 중국서원이 세계유산이 돼야죠. 그 얘기를 하려면 중국에서는 주자성리학(의리명분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을 가지고 관학화된 서원이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관학화된 향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성리학(의리명분은 물론 심성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이 발달하니까 그것에 입각한 서원이 새로 만들어졌다.

중국은 우리나라처럼 심학화된 성리학이 나오다가 없어져서 이학(理學, 이치에 궁극적 가치를 두는 학문) 정도에서 그쳤고, 우리나라는 이학에서 보다 깊이 있는 심학(心學, 마음에 궁극적 가치를 두는 학문)으로 발전됐기에 이런 서원이 중국에는 있을 수가 없다. 이래야지 중국하고 차별화되고 중국서원보다 한 단계 문화적 가치가 있는 걸로 되는 거죠. 그걸 모르는 상태에서는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이 돼야 한다는 논리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 퇴계선생을 추모하는 도산서원에서의 춘추향사 때 향례를 치를 유사들은 향례 2~3일 전 서원에 들어와 강당인 전교당에 모여 헌관, 축(祝), 집례 담당자를 의논하고 결정한다. (사진 제공: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등재 추진단)
우리나라 서원과 중국의 서원은 성리학의 수준에서도 깊이가 어떻게 다릅니까?

중국에서는 주자 이후 이학단계가 300년이 지나 정민정, 왕양명이 나오면서 심학까지 한 단계 끌어올리지만 고증학에 빠져버리니 성리학이 더 이상 발달하지 못하고 그전 거를 계승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주자성리학은 성종때까지 다 썼고, 퇴계, 율곡은 그걸 심학화된 성리학으로 발전시키죠. 그게 주자성리학에서 한 단계 올라가는 조선성리학, 확실히 얘기하면 율곡 성리학인데 이황, 이이가 나오고 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이 나와서 완전히 조선성리학을 집대성하게 됩니다.

조선성리학을 학파별로 계승하려니까 남인·북인, 노론·소론이 만든 서원이 다 따로 있죠. 조선성리 학자는 똑같은데 심성문제를 가지고 퇴계학파(이원론)와 율곡학파(일원론)로 나눠져서 동인 중에서 남인이 퇴계학파, 서인 중에서 노론이 율곡학파가 되죠. 두 양대 산맥의 성리학자들이 학문적 토론을 열심히 하니까 붕당정치(사림들이 붕당을 이루어 상호 비판하고 견제하면서 행하던 정치)가 발달해서 아주 훌륭한 영·정조 문예부흥기를 만들어 가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세종대왕 다음으로 조선 영조대의 문화가 세계 최고수준이에요. 우리나라 서원에서는 조선성리학을 호락논쟁(성리학에서 인성과 물성이 같은가, 다른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날 정도로 굉장히 심화·발전시켰고 중국에서도 발전하지 못한 성리철학이 우리나라에서 조선성리학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죠.

서원에 사당을 세우고 스승을 제사지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모가 자식의 육신을 낳았지만 그 정신을 낳아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스승인데 그때의 스승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과는 달라요. 부모가 육신을 낳아줬기 때문에 효도하고 그 정신을 낳아주는 스승을 만나니까 부모처럼 제사를 지내는 거예요. 스승을 잘못 만나면 인생을 망치고 가문을 망치는데 옛날로 말하면 선비집안에서 태어나느냐, 노비집안에서 태어나느냐의 차이만큼이나 큰 거죠. 그러니 서원에 부모님처럼 받들 훌륭한 스승을 모셔야 그 정신을 제대로 배워가지고 나라를 끌고 갈 것 아니에요? 그런 스승을 향교 가서 모실 수는 없죠.

   
▲ 서원에서 지내는 제례(사진 제공: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등재 추진단)

그래서훌륭하고 충절을 가진 스승을 모시기 위해 자기 지역에다 사당을 세웠어요. 자기가 공부하는 서원의 사당에서 이분들의 제사를 지낸 것은 심학이 발달해서 조선성리학을 실천했던 방법으로 스승을 부모처럼 모시기 위한 것입니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듯이 스승을 받드는 군사부일체가 최고로 발달한 게 조선시대고 그 센터가 바로 서원이기에 당연히 스승에 대한 제사를 지냈고 그 제향기능이 굉장히 중요했죠. 군사부일체라고 해서 스승이 아버지 같은 존재라면 스승은 제자가 자식 같은 존재가 되잖아요. 그 스승이 아버지 같고 제자를 자식처럼 교육시킨 나라는 전 세계에 우리나라뿐이라는 거죠. 이게 서양교육이 들어오면서 계약관계로 변하니까 교육이 안 돼요. 그래서 서양에서도 이걸 배워가야 됩니다.

 

스승과 제자와의 만남의 의미는 어떻게 이어져 왔습니까?

서원에 가서 사제관계를 보면 부자관계보다 더 돈독해서 자기 스승을 부모처럼 제사를 지내는 게 남아있는데 그게 도통이죠. 스승과 제자와의 만남 안에 서는 스승을 부모처럼 받드는 효도인데 학문과 행실을 배우는 분하고 사제관계가 됐으면 좋은데, 힘 있는 데 가서 붙는 것은 사제관계의 본질하고 다르잖아요. 그래서 서원에 모시면 안 되는 사람에 대한 논쟁이 현종, 숙종때 일어났어요. 그때는 기준이 있었는데 정조때 가면 기준이 없어져서 스승 대신 자기 집안사람을 모시는 문중서원이 나와 남설이 됐죠. 마을에 모실 분이 없으면 어떤 인연으로든지 유배 간 사람들(오현 등)을 모시고 서원을 만드는데 이게 중심이 돼 전국에 퍼지면 전국이 이상 사회가 되는 것이기에 서원을 설립하는 게 중요하죠.

 

서원이 있느냐, 그 모셔진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마을 풍토가 달라져요. 그 분의 정신을 받들어서 살고 생활하니까. 그래서 차원이 높아지다 보니 종손을 적장자로 문중에서 문중재산을 가지고 종법에 의해 조상과 부모에 대한 제사공동체를 만든 것처럼 제자들이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사제 간에 한 지역을 끌고 갈 공동체를 만들어서 이어갑니다. 조선 후기에는 서원에서 배운 사람들, 붕당에서 추천된 최고의 사림들이 경연에 들어가서 나라의 임금을 가르치고 나라를 이끌어 가죠. 그 대표적인 예로 우암 송시열이 옛날 자기 스승 사계 김장생이나 이이 율곡에게 배워가지고 나와 경연에 들어갔지요.

 

현재 9개 서원에서는 퇴계 이황(李滉, 도산서원), 회헌 안향(安珦, 소수서원), 서애 류성룡(柳成龍, 병산서원), 회재 이언적(李彦迪, 옥산서원), 한헌당 김굉필(金宏弼, 도동서원), 하서 김인후(金麟厚, 필암서원), 사계 김장생(金長生, 돈암서원), 일두 정여창(鄭汝昌, 남계서원), 고운 최치원(崔致遠, 무성서원) 등 을 모시고 있다.

 

지두환 교수는 이분들이야말로 학문적으로나 행동으로나 서인이든 남인이든 모두 본받고 존중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율곡 이이의 자운서원이나 우암 송시열(宋時烈)의 화양동서원이 세계유산 잠정목록에서 제외된 것을 아쉬워하며 자운서원 같은 경우 단지 유적지가 남아 있지 않고 새로 세워 원형이 문제되지만 파주 묘정비 하나로도 세계유산 등재가 가능하다고 언급한다.

 

서원의 제사 또한 공동체를 형성해서 나라를 끌고 간 것이 우리나라에서 중국보다 더 발달됐고 중요한 것이며, 제사와 관련된 예송논쟁도 붕당정치가 발달해서 이뤄진 훌륭한 이념논쟁이었음을 천명한다.

 

아울러 주자성리학과 조선성리학이 발달해서 조선시대를 부흥시켰는데도 당쟁만 하다가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수정돼야 하고, 사상사도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성리학적 근거를 통한 서원의 건축, 교육, 군사부일체의 정신으로 스승을 모시는 제사의례까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서원문화가 세계적으로 가꿔가야 할 수준 높은 문화유산임을 고스란히 드러낼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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