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를 어지럽히면 거인이라도 용서 못해
거인의 몰락, 줄리오 로마노 작, 1524년, 이탈리아 만토바 팔라초 델 테 소장.
사람들은 거대한 존재에 대해 선천적으로 경외심을 갖거나 공포를 느낀다.
같은 사람끼리도 덩치가 엄청 큰 사람에게 위압감을 느끼는데, 몇 배 몇십 배나 큰 존재를 만나면 어떨까.
세계 각국의 신화에는 어김없이 거인이 등장한다. 거인에 대한 공포나 경외심은 먼 조상 때부터 있어온 것이라는 말이다. 거인은 때로 풍자나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분수를 모르고 까불다가 곤욕을 치르는 일에 빗대는 것이다.
현대에도 인류는 거인과 공존하고 있다. 거인은 사람들에게 고마운 존재도 있고 인간 사회를 파멸로 몰고 가는 엄청난 괴물인 경우도 있다.
최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쫓기던 한 그룹사 가족의 말로를 ‘거인의 몰락’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은 것은 그래서이다. ‘거인의 몰락’은 경제 침체와 방만한 경영 등으로 대기업이 파산하는 경우에 쓰는 말이기도 하다.
태풍으로 남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거인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수많은 거인이 등장한다. 그중 가장 큰 거인은 가이아의 자식인 ‘티폰(Typhon)’이다. 티폰(티포에우스)은 불을 뿜는 강하고 무서운 거인이라고 한다.
반인반수로 머리에서 허벅지까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람의 머리 대신에 눈에서 번개와 불꽃을 내뿜을 수 있는 100개의 뱀의 머리가 돋아나 있다.
허벅지 아래로 두 개의 대퇴부에서 시작해 뱀 꼬리를 지닌 형상이다. 티폰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온몸을 뒤덮고 있는 깃털은 항상 그 자신이 일으키는 격렬한 동풍 때문에 휘날리고 있다. 그의 어깨는 하늘에 닿고, 100개의 머리는 우주에 있는 별을 스치며, 두 팔을 벌리면 세계의 동쪽과 서쪽의 끝까지 닿는다고 한다.
또한 산과 땅을 찢고 가를 정도로 힘이 세어, 아무리 신들이라 해도 티폰을 감히 당해낼 이가 없었다 한다.
티폰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나무들이 부러지고 흙이 파헤쳐지며 모든 것들이 날아가버리거나 혹은 타 버려서 생물의 그림자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이 거인이 인류를 괴롭히는 태풍으로 아직도 남아 있나 보다.
거인은 인류에 도움이 되기보다 공존해서는 한쪽에 해를 끼치는 존재였나 보다.
제우스가 벌한 거인은 사라졌는데…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화가로 활동한 줄리오 로마노(Giulio Romano, 1499~1546)의 그림 중에 <거인의 몰락>이 있다. 줄리오 로마노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뭔가에 대한 조롱의 시선을 보낸 듯하다.
쓰러지고 바위에 눌린 거인들은 신화를 소재로 했으면서도 현실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니 말이다.
화가가 그림에 담아낸 신화는 무엇인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추정하건대 제우스가 거인족에게 내린 형벌을 그린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 중에는 거인족이 신에게 대항해 도전했다가 번개를 맞고 땅에 갇힌다는 내용이 있다. 우주의 지배자인 제우스는 모든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로서 올림포스 산정에서 세상을 굽어보며 모든 일을 다스렸다.
제우스는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욕심을 내어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았다. 거인이라 해도 질서를 어지럽히면 용서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어떤가. 질서를 어지럽힌 거인들 때문에 애꿎게 선한 국민만 생존을 위협받는 형국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확대 해석하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어쨌거나 나쁜 거인은 몰락해야 한다. 제우스가 단죄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