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인도 ‘타지마할’
22년 공들여 지은 무슬림 건축의 백미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물인 타지마할은 샤 자한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지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으로 건축예술의 걸 작품이다. ‘모든 빛, 모든 각도에서 그녀의 얼굴은 다르다. 허공에 떠 있는 듯 하거나, 때로는 빛을 발하거나 소름 끼칠 정도로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다.’
타지마할을 소개하는 관광안내 문구다. 낮에는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모습을, 해질 무렵에는 노을에 붉게 물든 금빛으로, 보름달이 뜨면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물이다. 네 귀퉁이에 우뚝 솟은 첨탑과 대리석 돔 양식의 건축물은 한 송이 꽃 봉우리처럼 허공에 떠 있어 ‘마할의 왕관’이란 별칭이 썩 어울린다.
인도 북부의 아그라는 6~19세기에 걸쳐 인도를 점령한 무굴제국의 3대 황제 악바르 대제가 수도로 정한 유서 깊은 도시다. 1638년 5대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델리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1세기 동안 융성했던 무굴제국의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다.
1629년 샤 자한이 남부 인도 데칸고원으로 출정한 사이 뭄타즈 마할 왕비는 15번째 왕자를 출산하다가 38세의 나이로 숨졌다. 절세의 미인 아내를 잃은 샤 자한은 묘궁를 지어 그녀를 위로하려 했다. 페르시아 건축가가 설계하고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장인들이 동원됐다. 중국, 러시아에서 가져온 건축자재를 코끼리가 운반했고, 2만여 명이 동원되어 22년 동안 공들여 1653년에 완공된 무슬림 건축의 백미다.
무한권력의 헛된 꿈, 아들에게 쫓겨
상아빛 색조의 대리석은 시리도록 눈부시다. 360여 년이 지났어도 변하지 않는 대리석 문양은 정교하고 화려하다. 햇빛의 방향과 밝기에 따라 색깔과 모습을 달리하는 풍경은 타지마할이 왜 2007년 세계의 경이적인 문화유산 7곳 중 하나로 선정됐는지 짐작이 간다.
벽면을 화려하게 수놓은 보석과 문양, 코란을 들러본 뒤 안으로 들어서면 약간 어두운 묘당 한 가운데 뭄타즈 마할의 석관이 있다. 나중에 죽은 샤 자한의 관은 서쪽에 놓였다. 두 관은 허당(虛堂)이고 진짜 관은 이곳 지하에 있다.
샤 자한은 이에 그치지 않고 타지마할 맞은 켠 강 언덕에 자신이 묻힐 똑같은 묘궁을 지어 구름다리로 연결하려했다. 재정은 바닥나고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졌다. 샤 자한은 결국 첫 번째 왕비 소생 아우랑제브에 의해 폐위되어 아그라 성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36년에 걸쳐 70만 명을 동원하여 자신이 묻힐 황릉을 조성한 뒤 후대에 찾지 못하도록 인부들을 모두 죽였다. 샤 자한 또한 타지마할과 같은 건축물을 짓지 못하도록 수많은 전문 기술자들을 죽이거나 인부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진시황제가 거대한 황릉을 만들어 영생을 꿈꾸었듯, 샤 자한도 왕비와 함께 극락왕생을 누리려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었으니 백성들의 아픔은 안중에도 없는 무한권력의 헛되고 헛된 꿈일 뿐이다.
‘포로의 탑’에서 타지마할을 바라보다 아내 곁으로
타지마할에 담긴 샤 자한의 정한은 야무나(Yamuna)강을 따라 아그라 성까지 흐른다. 타지마할에서 서쪽으로 약 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그라 성은 붉은 사암으로 축조한 견고한 요새다. 1983년 타지마할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아그라 성은 1565년 무굴제국 최고의 황제로 불리는 악바르 대제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샤 자한 때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중으로 된 2.5㎞ 길이에 높이 20m의 성벽을 해자가 둘러싸고 있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다. 성벽 안에는 무굴제국 역대 황제들과 그 가족이 생활하던 궁전과 모스크와 접견실 등 유적이 남아 있다.
아그라 성에 유폐된 샤 자한은 성 안쪽 별궁의 대리석 팔각 타워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에 갇혔다. 무삼만 버즈는 이름 그대로 ‘포로의 탑’이다. 손바닥만 한 목욕탕이 딸린 침실은 창살 없는 감옥과 마찬가지다. 샤 자한은 손으로 뻗으면 닿을 듯한 지척의 거리에 있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다 1666년 죽어서야 아내 곁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