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의 구품연지
발굴조사를 통해 청운교와 백운교 정남쪽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 구품연지는 동.서 길이 약
40m, 남.북 길이 약 26m의 타원형 연못으로 깊이는 2~3m 정도였다. 통일신라시대 기와와 와당을 비롯해서 조선시대 유물까지 출토됐고,
1908년 일본에서 발행한 10전짜리 주화가 수습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지의 발굴.복원은 밀려드는 관광 인파와 발굴지역 주변에
무성한 소나무군(群) 제거 문제 등이 걸려 연지의 존재와 규모만 확인하고 복원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원상태로 묻어둔 것이다. 역시 지금 생각하면
당시 여러가지 위험과 악조건을 무릅쓰고라도 원상으로 복원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못 내부를 완벽하게 조사하고 연못
가장자리인 호안(護岸)을 따라 마련된 석축 등을 정밀 조사했어야 했다. 발굴조사를 통한 추정 결과, 처음 통일신라시대에 마련된 구품연지는 주로
불국사 대웅전 등 사찰의 주요 건물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이는 연못 구실을 했는데 퇴적토가 쌓이면서 규모가 점점 축소됐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연못
기능을 상실한 후 매몰됐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시대에 불국사는 미술사적인 가치가 인정되어 재건됐지만 연못은 완전히 폐기돼 그
흔적조차 없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연못 자리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도 자라지 않아 우리나라 소나무는 습한 곳에서는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기록을 보면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때인 751년에 국왕의 명을 받든 김대성(金大城)에 의해 창건됐는데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이 사는 이상향으로, 말하자면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국보 20호인 다보탑(多寶塔)의 조각 수법은
8세기 신라인의 최고 걸작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
불국사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그 법등(法燈)이 꺼지지 않았으나 조선
선조(宣朝)때인 1592년 임진왜란으로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 그후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다가 일제시대인 1925년께 법당 등이 중수되고 다보탑을
해체.복원하는 큰 공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탑 속에 보관되어 오던 사리(舍利)와 사리장치(舍利藏置)는 물론 함께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귀중한 유물들이 사라져버렸다. 뿐만 아니라 탑의 돌계단 네 곳에 있었던 돌사자(石獅子)가운데 세점이 없어져 지금도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이때 사라진 귀중한 우리의 문화재들은 분명 일본 어딘가에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보고서 등 일절
기록을 남기지 않아 행방을 전혀 알 길이 없다. 유감이다.
광복을 맞은 후 불국사는 우리나라 최대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옛
건물을 복원하지 못하고 현상유지만 해오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신라통일시대의 주요 건물 터를 대부분 찾아서 복원했고 1973년 7월 마침내
복원 준공식을 갖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