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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다산 정약용은 누구인가

작성자물의나라|작성시간16.11.10|조회수78 목록 댓글 0

다산 정약용은 누구인가 

 

보낸사람 : 혜연 배영옥 카페 문학 운영자

 

다산 정약용은 누구인가


다산은 누구인가

다산 정약용은 누구인가

다산 정약용은 1762년 (영조38년) 경기도 광주군 초부방 마현리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에서 5남 3녀 가운데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丁載遠, 1730~1792)으로 압해 정씨이고, 어머니는 해남 윤씨(海南尹氏, 1728~1770)이다.

다산의 집안은 기호 남인에 속했으며, 다산의 선조 가운데 연달아 8대에 걸쳐 홍문관(옥당) 벼슬을 역임하여 ‘8대 옥당집안’이라고도 한다. 어머니 해남 윤씨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후손으로 학자이자 화가로 유명한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손녀였다. 학문과 벼슬로 이름이 높았던 호남의 대표적인 남인계 집안이었다.

정약용의 형제들로는, 가장 큰 장형은 이복(異腹)으로 의령 남씨 소생의 정약현(丁若鉉)이고 그의 첫 부인이 처음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이벽’의 누이였다. 그의 딸은 황사영과 혼인했다. 어머니 해남 윤씨 소생으로는 둘째형 정약전(丁若銓)과 셋째형 정약종(丁若鍾)이 있다. 그리고 누이가 이승훈(李承薰)과 혼인했다. 서모 김씨 소생으로 정약횡(丁若鐄)이 있다. 이승훈은 최초로 세례를 받았고, 정약종은 신유년에 순교했다.

다산은 유형원(柳馨遠), 이익(李瀷)으로 이어지는 실학을 계승했으며 북학파의 사상까지 받아들여 실용지학(實用之學)·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다산은 일생 500여권이 넘는 저술과 2,700여수의 시를 남기고, 1836년(헌종2) 75세의 삶을 일기로 고향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다산 생애(개관)

다산의 삶은 성장기(成長期) - 사환기(仕宦期) - 유배기(流配期) - 만년(晩年)의 네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성장기는 출생하여 자라고 공부를 시작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공부한 기간(22세~28세)까지이다. 사환기는 28세에 벼슬에 나아가 여러 관직을 거쳐서 39세에 고향에 내려온 시기까지이다. 유배기는 40세에 신유사옥으로 유배생활에 들어가 18년을 보낸 기간이다. 만년은 57세에 유배가 풀려 고향으로 돌아와 75세에 세상을 뜰 때까지이다.

1. 다산의 성장기

다산은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7세에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달라서라네” [小山蔽大山 遠近地不同] 라는 시를 써서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았다. 9세에 어머니 해남 윤씨가 별세하고, 10세에 부친에게서 경서와 역사서를 배우기 시작했다. 15세에 풍산 홍씨와 결혼하여 서울생활을 시작하였다. 홍씨는 병마절도사를 역임한 홍화보(洪和輔)의 따님이었는데, 당대 남인계의 명망 높은 집안이었다. 당시 남인계 소장학자들인 이가환(李家煥, 이익의 종손), 이벽(李蘗), 이승훈(李承薰)등과 교유하면서 실학의 증시조라 할 수 있는 이익(李瀷)의 유고를 읽게 되었는데, 깊은 감명을 받고 사숙하기로 했다.

이후 다산은 20세를 전후 해 과거공부에 본격적으로 힘을 기울였으며 급기야 22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이때 정조대왕을 만나게 되고 총애를 받게 된다. 이러한 만남을 풍운지회(風雲之會)라고도 한다. 23세 때 두미협으로 배를 타고 내려가면서 이벽에게서 천주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큰 감명을 받는다. 28세에 대과(문과)에 합격하여 벼슬길로 나아갔다.
 

       

2. 다산의 사환기(仕宦期, 벼슬시절)

28세때 벼슬에 나아간 다산은 규장각 초계문신(抄啓文臣)으로 발탁되는 등 정조의 총애 속에서 재주와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30세 때 진산사건(晉山事件, 1791)이 발생한 후로 정적들에게 시달리게 되었다.

배다리 설계에서 재주를 보인 다산은 31세에 부친상으로 여막살이를 하는 동안 정조로부터 수원화성(水原華城) 설계를 명령받는다. 33세에 경기북부 암행어사로 나아가 백성들의 참혹상을 목격하고, 권세를 휘둘러 민폐를 끼친 관리들을 처벌하도록 정조에게 보고했다.

1795년 4월에 중국의 소주(蘇州) 사람 주문모(周文謨)가 변복을 하고 몰래 들어온 이후 천주교도에 대한 압박이 심해졌다. 이를 빌미로 채제공(蔡濟恭) 등 남인세력에 대한 정치적 공세도 가열되었다. 정조는 이가환을 충주목사(忠州牧使)로, 정약용을 금정찰방(金井察訪)으로 좌천하여 임명하고, 이승훈은 예산현(禮山縣)으로 유배 보냈다. 천주교 혐의를 씻어주고자 정치적 공세를 벗어나게 한 것이었다.

1797년 6월 정조는 다산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임용했다. 이에 대해 다산은 ‘동부승지를 사양하는 상소문’을 올려 천주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솔직히 밝혔다. 이 상소는 다산이 한때 천주교에 경도되었지만 나중에 버렸다고하는 변명이자 고백이었다. 사직상소를 낸 다음 달 정조는 다산을 황해도 곡산부사(谷山府使)로 특별히 임명했다. 그때 세력을 잡은 자로 참소하고 시샘하는 자가 많아 다산을 몇 년 외직(지방직)에 근무하도록 하여 그 불길을 진정시키려는 것이었다. 곡산 부임길에 데모 주동자 이계심(李啓心)을 만났다. 다산은 관청의 행정에 항의하는 그의 태도가 오히려 관청이 밝은 행정을 하는 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위적 지배를 부정하고 백성의 고통을 해결해주려는 목민관의 자세를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다산은 곡산부사로 있은 2년간 직접 한 고을의 피폐한 민생을 구제하고 누적된 폐단을 바로잡는 행정을 펼 수 있었다.

38세(1799)때 정조는 다산을 다시 조정에 불러 형조 참의에 제수했다. 곡산부사로 있으면서 의심스러운 사건들을 명쾌하게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위의 정치적 공격도 고조되었다. 다산은 39세(1800) 봄에 처자식을 거느리고 마현(馬峴)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참소하고 시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벼슬을 하지 않고 낙향하면 공격받지 않으리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뜨면서 다산에게 이제는 아무런 보호막이 없었다.

낙향해 있던 다산은 노자의『도덕경』중 “머뭇머뭇, 겨울시내를 건너듯[與兮 若冬涉川] 조심조심, 사방을 두려워하듯[猶兮 若畏四隣]”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여유당(與猶堂)이란 당호를 짓고 세상과 거리를 두고자 했다. 그러나 정적들의 칼날은 피할 수 없었다.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한 ‘신유사옥’(辛酉邪獄, 1801)이 일어난 것이다.


수원화성 사진
동북포루와 동암문 내부 및 외부 사진

3. 다산의 유배기

신유사옥은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나이 어린 순조가 즉위하면서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고, 조정의 주도권을 노론 벽파가 장악한 가운데 발생했다. 천주교 배척을 명분으로 정적을 제거하기에 나선 것이다.

신유사옥으로 셋째 형 정약종은 순교하고, 한때 천주교를 받아들였다가 이제는 거리를 둔 둘째 형 정약전과 다산은 기나긴 유배생활이 시작되었다. 다산의 첫 유배지는 경상북도 장기(長*)였다.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서울로 다시 압송된 다산은 그해 11월 하순에 둘째형 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길에 올랐다. 형제는 나주 율정에서 눈물로 헤어진 뒤 서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채 형은 흑산도와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16년 후에 죽고, 다산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18년 후에 귀향했다.

다산은 유배기간동안 좌절하지 않고 역경을 기회로 바꾸었다. 내가 “이제야 겨를을 얻었구나!”라고 하면서 학문과 저술활동에 열중했다. 다산은 강진에서 네 곳을 옮겨 다니며 거처했다.

(1) 사의재 : 1801년 겨울부터 약4년
(2) 고성사 보은산방 : 1805년 겨울부터 1년 가까이
(3) 제자 이청(학래)의 집 : 1806년 가을부터 약 1년 반
(4) 다산초당(윤단의 산정): 1808년 봄부터 약 10년

다산이 강진에 도착했을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40세, 1801). 대역죄인이라 모두 접촉을 피했는데 이때 불쌍히 여겨 챙겨준 사람이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의 주모였다. 다산은 자신이 거처하는 누추한 방에 ‘사의재’(四宜齋)라는 이름을 붙이고 ‘네 가지 마땅함’ 즉 “생각은 맑아야, 용모는 장엄해야, 말은 과묵해야, 행동은 중후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학문에 열중하였다.

초기의 엄혹한 감시와 압박이 조금씩 풀리면서 다산은 1808년 다산초당(茶山草堂)으로 거처를 옮겼다. 다산초당은 제자들과 함께 학업에 정진하는 연구공간이 되었으며, 방대한 저술을 낳는 곳이 되었다. 다산의 제자에는 읍중시절에 수학한 제자(읍중제자)들과 다산초당에서 수학한 제자(다산 18제자)들이 있다. 다산의 제자들은 다산의 저술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다산은 4서 6경에 대한 연구에 하였으며 1818년 해배되기까지의 마지막 기간에는 경세학(經世學) 연구서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마쳤다.『경세유표(經世遺表)』,『목민심서(牧民心書)』등을 저술하였고 미처 끝내지 못한『흠흠신서(欽欽新書)』는 고향집에 돌아가 저술을 마친다. 또한 다산은 수많은 서정시 및 사회시를 지어 19세기 초반 강진일대의 풍속과 세태를 읊으며, 압제와 핍박에 시달리던 농어민의 참상을 눈물어린 시어로 대변해 주었다. 

        

다산초당 사진
천일각 사진
정석바위 사진 약천 사진 다조 사진 연지석가산 사진
4. 다산의 만년(晩年) : 해배 이후

18년 유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간 다산은 저술의 수정보완을 계속했다. 한편, 소론계의 석천(石泉) 신작(申綽), 노론계의 대산(臺山) 김매순(金邁淳), 연천(淵泉) 홍석주(洪奭周)등과 같은 석학들과 학문 교류를 했다.

다산은 회갑 때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을 썼는데, 여기서 자신의 호를 사암(俟菴)이라 했다. 이는 “백세 이후 성인을 기다려도 미혹됨이 없다”. [百世以俟聖人而不惑]에서 따온 이름이다. 학문적 자부심일 수도 있고, 훗날에 대한 기다림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1836년 회혼일(回婚日)인 2월 22일(양력 4월 7일) 회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다산의 묘소 사진 




실학박물관 특별전시
"하피첩의 귀향 - 노을빛 치마에 새긴 다산의 가족사랑"

장소 : 실학박물관(기획전시실 및 로비)  
기간 : 2016. 10. 17(월)~2017. 3. 23(일)

□ 주요 전시 유물 자료
하피첩 霞?帖
1810년(순조 10) | 필사본 | 24.8×15.6 |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하피첩(霞?帖)


노을빛 치마로 만든 소책자 이다.

 

 
다산 정 약용
 

 

2005년, 수원 어느 모텔 주인이 파지들을 마당에 내놓는데 폐품 모으는 할머니가 지나가다 달라고 했다. 주인은 할머니 수레에 있던 이상한 책에 눈이 갔고 그는 책과 파지를 맞바꿨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고 KBS '진품명품'에 내놓았다.

 김영복 감정위원은 책을 본 순간 "덜덜 떨렸다"고 했다.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이었다.

 

 
하피첩

 

'진품명품'은 감정가 1억원을 매겼고, 

?전전하던 이 보물은 2015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7억5000만원에 국립민속박물관에 팔렸다.

 

'하피'는 옛날 예복의 하나다. 붉은 노을빛 치마를 말한다.

 다산은 천주교를 믿었던 죄로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다.

 

 경기도 양평에 남았던 아내 홍씨는 남편 귀양 10년째 되는 해

,1807년 봄, 홍씨 부인은 유배 생활중인 남편 다산선생에게 시집올 때 입었던 붉은색 비단치마를 보냈다. 다산 선생은 그 오래된 비단 치마를 말라서 1807년부터 1809년까지 두 아들에게 경계의 말을 적어 보내면서, 이것을 《하피첩》이라 명명하였다. 《하피첩》은 원래 4첩으로 이루어졌는데, 현재 3첩만 남아 전한다.


 

다산은 치마 한 조각을 남겨

매화와 새를 그린 족자를 만들어 시집가는 딸에게도 주었다.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한평생 써도 닳지 않을 것이다"라고

 

어머니 치마에 아버지가 사랑을 담아 쓴 글씨,

세상에서 이보다 값진 보물이 있을까.

 

다산 부부의 애절한 사랑을 담고 세상을 떠돌던

하피첩은 국립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

정약용 필적 하피첩의 서문

'하피첩'의 서문은 다음과 같다.
余在耽津謫中 病妻寄?裙五幅 蓋其嫁時之?? 紅已浣而黃亦淡 政中書本 遂剪裁爲小帖 隨手作戒語 以遺二子 庶幾異日覽書興懷 ?二親之芳澤 不能不油然感發也 名之曰霞?帖 是乃紅裙之轉?也 
嘉慶庚午首秋 書于茶山東菴 ?翁

"내가 강진(耽津은 古號)에서 귀양살이하고 있을 적에 병든 아내가 낡은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는데, 그것은 시집올 때의 훈염(??, 예복)으로 붉은빛은 흐려지고 노란빛은 옅어져 글씨 쓰는 바탕으로 알맞았다. 이것을 잘라서 조그만 첩(帖)을 만들고, 손이 가는 대로 훈계하는 말을 써서 두 아이에게 준다. 훗날 이 글을 보고 감회를 일으켜 두 어버이의 흔적과 손때를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그리는 감정이 뭉클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하피첩(霞?帖)’이라고 이름지었는데, 이는 곧 홍군(紅裙, 붉은 치마)을 달리 표현한 말이다.
가경(嘉慶) 경오년(1810, 순조 10) 7월에 다산(茶山)의 동암(東菴)에서 쓰다. 탁옹(?翁, 정약용의 호 가운데 하나)"

하피첩에는 선비가 가져야할 마음가짐, 남에게 베푸는 삶의 가치, 삶을 넉넉하게 하고 가난을 구제하는 방법 등 자손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삶의 가치관이 담겨있다.



매화병제도 梅花倂題圖
1813년(순조 13) | 필사본 | 38.5×17 |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1813년 7월 유배기에서 다산 정약용은 시집가는 딸에게 매화와 새를 그린 그림을 보내준다. 두 마리의 새처럼 다복한 가정을 꾸미고 풍성한 열매를 맺어 집안이 번창하기를



  •  

    梅花倂題 圖 ( 매화병제도 )

    翩 翩 飛 鳥 , 息 我 庭 梅  (편 편 비 조 , 식 아 정 매 )

    有 烈 其 芳 , 惠 然 其 來  (유 열 기 방 , 혜 연 기 래 )

    爰 止 爰 樓 , 樂 爾 家 室  (원 지 원 루,  락 이 가 실 )

    華 之 旣 榮 , 有 賁 其 實  (화 지 기 영,  유 분 기 실 )


    펄펄 나는 저 새가 ,

  • 우리집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 꽃다운 그향기 짙기도 하여,

  • 즐거이 놀려고 찾아 왔도다. 


  • 여기에 올라 깃들어 지내며,

  • 우리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 꽃이 이제 다 피었으니 ,

  • 열매도 많이 달리겠네



.



받은 메일중에서...


 

 

천일각 사진

정석바위 사진 약천 사진

 

다조 사진 연지석가산 사진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이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다산선생이 시름을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천일각,정석,약천,다조,연지석가산은 우리에게 보고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타임캡슐 인것입니다.

 

 

연지석가산 사진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은 고대 중국의 수학 및 천문학서인 ‘주비산경’에 나오는 ‘둥근 것은 하늘에 속하니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 인것입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

 

사람이 죽으면 어디 간다고 하나요? 하늘天나라 간다고 하잖아요?

 

그러나까,천天은 죽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디서 살아가나요? 땅地에서 살아 가잖아요?

 

그러니까,지地는 삶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아,

 

천원지방(天圓地方)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을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선지식인분께서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천일각 사진 

 

천일각天一閣?

 

각閣

10.다락집. 누각().

2.주변의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대체로 문과 벽이 없이 사방으로 트여 있다.

3.동서남북 사방을 바라(관찰 할수) 볼수있게 지어진 집.(사전에 없음.)

 

사람이 죽으면 어디 간다고 하나요? 하늘天나라 간다고 하잖아요?

 

그러나까,천天은 죽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디서 살아가나요? 땅地에서 살아 가잖아요?

 

그러니까,일(一)은 삶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아,

 

천일각天一閣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을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선지식인분께서 "천일각天一閣" 이름으로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석바위 사진 

 

丁 넷째 천간 정,소리 정 (다른 표현: 고무래 정, 장정 정) 

 

石 돌 석 
1. 돌
3. 비석

 

비석 碑石 
무덤에 묻힌 사람의 이름 및 행적을 나타내거나 어떤 사적(史蹟)이나 업적 또는 사실(事實)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돌에 글을 새겨서 세우는 것.

이와같아,

 

돌의 소리를 들으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다시 말씀 드리면 돌을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비석 碑石  <==죽음 상징.

 

죽음의 소리를 들으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다시 말씀 드리면 죽음을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돌의 소리가 무엇일까요?

 

오늘도 맛있게 잡수셨나요?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우리는 매일 먹어야 살아갑니다.

 

 

내장 [內臟]

 

당신 몸뚱아리 입니다.

 

당신이 살기위해 먹는 음식입니다.

 

위의 사진은 뇌의 구조와 대망과 복부내장 인체해부도와 유리병과  줄입니다.

 

유리병속에 줄을 넣읍니다.그러면 어떤 모양일까요? (유리병속에 줄을 넣는 모습 동영상을 만들줄 몰라 이렇게 설명드립니다 ㅠ 님들 상상력 좋지요 상상해보세요) 유리병속에 줄을 넣으면 쌓이면서 꼬이고 뒤틀리고 하겠지요. 그리고 위의사진  뇌의 구조와 대망과 복부내장 인체해부도의 모양은 유리병속에 줄을 넣어 쌓이면서 꼬이고 뒤틀린 모양과 닮았지요.

 

 

 

 

 

 

자연 현상중에 비가오면 물은 산에서 개울로,개울에서 냇가로,냇가에서 강으로,강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 가면서, 이때 토사가 함께 운반되어 바다에 삼각주가 생기며 ,그것이 굳어져 곧 새로운 땅이 만들어 진다는 사실을 익히 배워 잘알고 있을 것입니다.모든 동물과 사람들도 이와같이 몸안에 삼각주(떵배)라는것이 만들어지고 있었읍니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섭취하여 영양분을 취하고, 배설을 하는 과정을 반복 해야 합니다.그런데, 예를들어 섭취한 양을 100%로 하고, 영양분을 취한 것을 30%라고, 할 때 배설을 70%해야 하는데, 그렇게 될까요? 이때 노폐물이 생기게 되며 노폐물은 몸안에 쌓여 많은 역 기능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입니다.(生老病死) 자연 현상에서는 새로운 땅이 생겨 모든 생명체에 이익을 주지만,생명체 안에 생긴 노폐물(땅)은 생명체(인간)를 원하지도 않는것을 만들었던 것이지요.(生老病死) 곧 생명체에 모든 부작용은 노폐물이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나이 먹은 세월동안, 먹고 살았으니,그 세월 동안 노폐물은 얼마나 많이 몸안에 쌓였을 것이며 나이 먹은 세월동안 쌓였으니 얼마나 산(山) 처럼 쌓였고,얼마나 굳어져(경화,바위덩어리) 되어 있겠습니까?

 

경화 [硬化]

물건이나 신체 기관의 일부가 단단하게,딱딱하게 굳어짐.

 

정석바위 사진 

 

정석(丁石)은 우리에게 죽음의 소리를  깨닫다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조 사진

 

다조茶造

 

茶 차 다, 차 차 
1. 차
2. 소녀(小女)
3. 차나무
4. 차나무 싹
5. 차잎을 달인 차

 

茶 차 다, 차 차  <==생명 상징.

 

이와같아,

 

생명과 돌덩이를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생명이 돌덩이가 되어 죽게 되니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약천 사진 

 

약천藥泉

 

藥 약 약, 더운 모양 삭, 간맞출 략 
1. 약
2. 더운 모양
3. 간을 맞추 다
4. 독(毒)
5. 치료하다

 

1..약.
병을 고치는 데에 효과가 있는 것의 총칭.

泉 샘 천 
1. 샘
2. 돈(錢)
3. 저승
4. 물이 솟아나오는 근원

1..

물이 솟아나오는 근원.

 

이와같아,

 

물이 약이니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저승가지 않게 하는 약이 "물"이니 깨닫고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이들어서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젊어서부터 건강을 지키고 살아야 합니다.

 

자기가 잘 낫다고 말 않 듣구 살면,고통속에 살다 저승 가는것 뿐이 없다는것만 아시면 됩니다.

 

 

나이 들어가면 누구도 고노병사孤老病死에서 벗어날수 없고 벗어나려면 젊어서부터 건강챙기며 사십시오.

 

20세 이상 나이 들어가면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하여 여기저기 아픈곳이 나타나고 세월가면 갈수록 당신 몸은 병들어 고통뿐이 없습니다.

 

조계사

 

연꽃위에 부처님이 저런 모습을 하고 앉아 있습니다.

 

불상은 우리에게 깨닫고 살으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타임캡슐인 것입니다.

 

이사람이 보는 불상에 대하여 말씀 드립니다.


 

연꽃이란 물에서 수생하는 식물로서, 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부처는, 우리에게 물을 깔고 앉으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오른손 손가락 세개를 펼쳐 보인것은,삼십년에 세월을 실행하라는 것이고,이마에 빛나는 보석은 그렇게 실행하면 깨달음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우리에게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앉아만 계십시요(좌욕).

하루에 오전,오후30분이상 실행 하며,매일 습관을 들이는것이 중요합니다.

(오래 앉아 있을수록 좋으며,1분1초라도 더 물에 앉으면 자신에게 좋은 것이나, 힘이들때는 쉬어가면서 하세요)<==이것도 못해 먹겠다고요?

아픈것도 못 아프겠다고 해서 않 아플수 있으면 좋으련만,죽는것도 못죽겠다고 해서 않 죽으면 좋으련만,마음대로 않되지요.

 

모든 병든자,장애인분은 현대 의학의 가장 적합한 치료 방법과 병행해서 실행 하십시오.

 

인연이 있으면 기쁨이 있게 될것입니다.
정상인 처럼 생활 할수있게 될것입니다.
실행과 극복 없이 기쁨은 없습니다.


사람마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니 모두에게 꼭 좋은일이 있다고 말씀 드릴수는 없으나,인연있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나이들어서 질병의 고통과 죽음에서 벗어나려면 젊어서부터 정신 차리고 건강을 지키고 살아가야 합니다.

 

단,노력과 극복없이 기쁨은 얻을수 없습니다.

 

대단히 잘난 당신이 죽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면,물에 앉는것을 실행 않하고 살아도 됩니다.

 

그냥 살다가 죽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물에 앉는것을 실행 않하고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대단히 잘난 당신이 죽음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없다면,물에 앉는것을 실행 하고 살아가십시오.

 

그냥 살다가 죽을 생각이 없는 사람은,물에 앉는것을 실행 하고 살아가십시오.

 

죽어서 수의 일찍 입고 싶지 않은 사람은 믈에 앉는것을 실행 하며 살아 가십시오.

 

 

당신은 하늘(天)님이며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난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대단하게 태어난 분이신데 건강이 없어 병들고 죽어 무덤속에 들어가면 될까요?

 

당신이 젊어서부터 아무런 노력도 않하고 질병과 죽음에서 벗어날수 있을까요?

 

잘난 당신 죽고 싶지 않으면 물에 앉으며 살아 가십시오.

 

 

이와같아,

물에 앉으라고 말씀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산茶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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