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빵카페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저작권리는 글쓴 회원에게 있습니다.] ↑ 뉴빵인 권리 보호마크임. 지우지말고 글쓰세요~ [뉴빵카페 상표는 법적으로 보호받습니다] |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KjyCQ
니콜라이 2세의 부인,
본명은 알릭스 빅토리아 헬레나 루이즈 베아트리스 폰 헤센바이라인..
러시아의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로 더 잘 알려져있다.
1884년 러시아에 결혼식으로 참석한 알렉산드라는 당시 황태자였던 니콜라이황태자를 처음 만났다.
당시 둘은 6촌! 지간이었는데 (알렉산드라 12살, 니콜라이 16살)
니콜라이는 알렉산드라를 만났을때무터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라가 17세때 다시 러시아를 방문했을때, 더더욱 사랑에 불이 붙었는데,
알렉산드라의 외할머니인 빅토리아 여왕은 러시아와 사이가 안좋아서 니콜라이2세보단 자신의 친척과 혼인시키려고 했는데,
그때마다 번번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니콜라이가 황제에 등극하고, 1895년 모스크바에서 결혼식을 올려 정식 부부가 되었고,
예전의 이름을 버리고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로 불리우게 됩니다.
어머니 알렉산드라 표르도바(1872-1918)와,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1868-1918) 사이에서
올가 니콜라예브나(1895-1918)
타티아나 니콜라예브나(1897-1918)
마리아 니콜라예브나(1899-1918)
아나스타샤 니콜라예브나(1901-1918)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1904-1918)
다섯 남매가 태어납니다.
(올가 1895-1918) (타티아나 1897-1918) (마리아 1899-1918) (아나스타샤 1901-1918)
(알렉세이 1904-1918)
1895년, 올가 니콜라예브나가 니콜라이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사이에서 태어났다.
올가가 태어나던날, 아버지였던 니콜라이 2세는
"내가 영원히 기억하게 될 날이다. 9시 정각에 아기울음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딸아이의 이름을 올가라고 지었다."
라며 일기장에 남길정도로 첫아이에대한 애뜻함이 컸다고 합니다.
(올가 황녀와 알렉산드라 황후)
1895년, 타티아나 니콜라예브나가 니콜라이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사이에서 둘째딸로 태어났다.
첫애가 딸이였으니 당연히 둘째는 아들이라고 확신했는데,
타이아나가 딸로 태어나자 부부의 실망은 이로 설명할 길이 없었지만, 그래도 타티아나를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몸매는 쭉쭉빵빵이고, 얼굴이 아름다워서 궁정의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자매들의 리더 역활을했다고 합니다.
올가는 남성적으로 조금 활달하게 자라서 그런지
황제부부의 일기장에 자주 언급됬다고 합니다.
타티아나는 영국왕자와 혼담이 있었는데, 러시아를 사랑하니 러시아에 있겠다며 거부했다고 합니다.
(니콜라이2세, 알렉산드라 황후, 올가, 타티아나)
1899년, 마리아 니콜라예브나가 셋째딸로 태어났다.
황제는 셋째딸 이름을 마리아라고 지어줬는데, 유독 마리아를 예뻐했다고 합니다. (딸바보..)
마리아는 다른 자매들과는 달리, 온화하고 아름다운 성품을 가졌다고 합니다.
장난기도 많아서 황후의 식탁에서 과자를 훔쳐 먹기도 했는데,
알렉산드라 황후는 그것을 꾸짖고 방으로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니콜라이 2세가 장티푸스로 사경을 왔다갔다 할때, 마리아는 아버지의 초상화를 보며 울곤 했다고 합니다.
(타티아나, 마리아, 올가)
1901년 6월 아나스타샤는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비의 막내딸로 태어납니다.
아나스타샤가 태어나기전 프랑스의 마술사가
"뱃속의 아기는 황태자"
라고 점지해줬는데, 딸이 태어나자 황제와 황후는 그 마술사 잡아서 황태자가 아니지 않냐고 따지자
"원래를 황태자로 태어났어야 하나, 하늘의 점지로 공주가 나온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아이는 하늘의 선택을 받은 공주"
라고 하면서 죽을 위기를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늘의 선택을 받기는 커녕 총살당하고 말아요...ㅠㅠ)
그런데 아나스타샤 전에 태어난 황녀들(올가 티티아나 마리아)는 출중한 외모로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아나스타샤는 그와 반대로 못생겼다면서 백성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나스타샤는 네명의 황녀들중 가장 활달하고 귀염성이 넘치는 황녀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사진으로 증명하듯이 황실의 귀염둥이였다고 합니다.
백성들도 곧 아나스타샤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3년후, 비극의 씨앗이 되는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1904-1918) 가 태어나면서
황실의 운명은 KTX를 타게됩니다.
당시 혈우병이라는 병은 악마의 병이라고 유럽에 파다하게 퍼졌는데, 당시 어머니 알렉산드라 황후의
외증조모할머니인 빅토리아여왕(1819-1901)이 혈우병 보인자였는데
그녀의 딸 헤센의 알릭스도 혈우병 보인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혈우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았던 알렉산드라 황후는
자신의 아들 알렉세이가.. 그렇게 딸을 주구장창 딸딸딸딸 만 낳다가 아들 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혈우병이라고 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라 황후의 시어머니 마리아 표드로브나(1847-1928)와 니콜라이2세
거기에 시어머니와 사이도 안좋았던 알렉산드라 황후였는데
하나뿐인 황실을 이어받을 손자가 매우 마음에 들지도 않는 며느리의 친정에서 옮긴 혈우병때문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시어머니였던 마리아황태후는 알렉산드라 황후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알렉산드라 황후는 꼭 알렉세이를 살려야했고, 혈우병을 고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의학으로는 혈우병을 고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파계승이였던 라스푸틴을 알렉세이의 전담의사로 고용합니다.
러시아를 실질적으로 무너트리는데 1등공신인 라스푸틴 (1869-1916)
라스푸틴은 황태자의 병을 고친다는 명분으로 니콜라이 2세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폭정을 자행했고,
정확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네명의 황녀의 순결을 황후한테 요구했고, 네명의 황녀의 순결을 빼앗았다는 소문도 돌정도였다고 합니다.
올가황녀는 황후에게 라스푸틴을 믿으면 안된다며 진언했지만, 믿지 않았고,
타티아나황녀도 황후와 같이 라스푸틴의 열열한 지지자였다고 합니다.
뭐 여튼, 알렉세이의 혈우병은 솔직히 기도한다고 없어지는 병도 아니고...
알렉세이가 다쳐서 피가 멈추지않아서 울고 불고 난리칠때도 다른 황녀들은 어쩔줄을 몰라했는데,
아나스타샤는 언제나 알렉세이의 손을 잡아주면서 알렉세이을 간호해줬다고 합니다.
(1911년 니콜라이2세와 가족사진)
그렇게 불운을 가지고 태어난 알렉세이의 병도 피만 안나면 호전되는거라 생각했던 황실은
알렉세이가 건강하니까(피가 안나니까) 단란해졌습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데,
니콜라이 2세가 전선으로 직접 향했는데, 황제가 없으니 당연히 국정은 황후가 전담했고
알렉산드라 황후는 라스푸틴의 열열한 응원자였고, 라스푸틴이 하라는데로 했다고 합니다
(당시 라스푸틴 죽이자고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되려 라스푸틴은 국정운영자인 황후를 이용해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 제거함)
국정은 개판이되고, 황실을 사랑했던 백성들은 라스푸틴과 황실, 특히 독일출신 황후를 증오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바로 반란이 안일어난 이유는
황녀들의 봉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황녀들이 다친 장교, 병사들을 치료해줬고, 러시아 백성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다고함)
(간호사로 일하는 타티아나 황녀)
그러다가 1917년 3월 결국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납니다.
9만명에 육박하는 노동자가 "빵을 달라" 며 시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그런데 로마노프 황실은 "체제안정에 유지해라"라며 무력진압을 명령했는데,
황실을 위한 기병대조차 시위대를 죽였다는 것에 자책감을 느껴 되려 황실에게 반기를 들었고,
니콜라이 2세는 제위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는데, 알렉세이는 너무 어렸고,
자신의 동생 미하일공은 황제와 다를게없다고 백성들이 난리쳤는데,
미하일공은 "난 폐하처럼 백성들에게 욕먹을짓 할수 없음" 이라며 황위를 거절했습니다.
당시 아나스타샤는 16세였는데, 러시아에선 16세는 어른이라며 세공된 보석을 2개를 받았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성인식..?)
하지만 당시 사정이 사정이니 아나스타샤의 16세 성인식은 물건너간거죠..
(유배중 니콜라이 2세)
혁명이후, 니콜라이2세는 군인들의 감시하에 우랄 산맥쪽에서 8개월간 같이 거처하게 됩니다.
알렉산드라 황후는 현실을 심하게 부정하다보니 신경쇠약에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삭발을 한 황녀들)
그런데, 당시 황실가족 7명은
단란하게 우랄산맥 쪽에서 지내며 현실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당시 황실의 부흥을 꿈꾼 백군이 그들을 구출하기위해 우랄산맥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황제가 구출되면 당시 백군이 우세했기때문에 자기들이 되려 죽임당할것을 우려한 적군(그 적이 아니라 붉은 적)은
니콜라이 2세의 가족들에게 사진촬영할테니 모이라며 예카테린부르크의 이파티예프 하우스에 강제오 감금시켰다고 합니다.
(우랄지방에서 니콜라이 2세, 알렉산드라 황후)
그들이 죽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이파티예프 하우스
그리고.. 그날밤,
1918년 7월 16일
군인들은 저녁에 잠자고있는 황제 가족을 깨워서 씻고 준비를 하게 했다.
황제와 가족들은 처음에 의심했지만 사진을 찍는것으로 착각한 가족들은
군인들의 말대로 씻고 새옷을 입고 군인이 안내하는 곳으로 향했다.
황제는 황태자를 한손으로 들고 있었고, 황후와 황녀들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밖에서 차 엔진소리가 요란하게 나기 시작했다.
(총소리를 감추기위해서)
"황제, 너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너희 가족을 구출하려다 실패한것이다"
"너희는 총살이다"
라며 총을 황실가족에게 가격하기 시작했다.
니콜라이 2세는 그자리에서 즉사했는데
황녀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코르셋이 유행이였는데, 드레스를 입었으니 당연히 코르셋을 입었는데
황녀들에게 총을 쐈는데, 황녀들몸에서 총알이 튕겨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군인들은 총검으로 찍어 죽인후 옷을 벗겨보니 다이아몬드가 전체적으로 박힌 코르셋을 입고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황제가족을 죽인 야고프 유로프스키는 사진기사였는데, 황제가족이 죽는 장면을 다 찍었다고 합니다]
황녀들이 죽으면서 신음소리를 냈고,
살인에 가담자인 G.메도우에프는 직접 총칼로 아나스타샤를 살해 했다고 합니다.
황제가족을 죽인 살인범들은 혹여나 누가 황제가족의 시신을 알아볼까봐
황산으로 온몸을 적셔 형태를 알아볼수 없게 만들었고,
당시 시간이 시간인지라 구덩이를 깊게 파지 못했는데 혹여나 시체썩는 악취가 풍길까봐
시체위에 흙과 석회를 뿌리고, 그 위에 판자를 덮고 또 흙을 덮어 차로 여러번 왔다갔다 지나다녔고
그렇게 시체가 있다는것조차 못알아보게끔 위장했다고 합니다.
(황제가족이 살해된 방)
황제 가족이 죽은후, 솔직히 예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은 힘들었고, 반란을 지휘해서 권력을 잡은 자들은
또 반란이 일어날까봐 거리에 군인들을 배치해 노동자들을 24시간 감시했습니다.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생각했는지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황제는 죽었지만 황녀가 살아있다"
그리고, 생존설중 가장 유명한 여자 안나 앤더슨이 나타납니다.
(안나 앤더슨)
안나는 자기가 아나스타샤 황녀라고 주장했는데,
중요한건.. 러시아 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고, 마리아 황태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안나 앤더슨은 황실의 주요 비밀을 훤하게 알고 있었고, 얼굴 형태도 비슷해서 그랬는지
많은 황실 사람들이 안나를 진짜 아나스타샤라고 착각 하고 지원하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건 마리아 황태후의 인정을 받지 못했죠..
여튼 안나 앤더슨은 자기가 끝까지 아나스타샤 황녀라고 주장한 상태로 사망합니다.
그리고 1991년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유해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11구의 유해가 발견되어야 했는데, 2구가 부족했고,
그래서 학자들은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유골이라고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9구의 유해를 분석한 결과, 니콜라이2세 가족의 시신이라는 것이 확실해졌는데,
없어진 2개의 시신은 누구것인지 알수 없었는데,
알렉세이는 확실했지만, 한구가 아나스타샤인지 마리아인지 확실하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로프스키가 기록한 황제가족 살해 당시의 노트가 발견됬고,
그 실종된 2개의 시신은 화장을 했다고 기록이 되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시신의 두개골을 복원해보니,
올가, 아나스타샤, 타티아나의 시신은 있는것으로 확정 되었지만
마리아의 시신이 없었고,
결국
알렉세이와, 마리아의 시신은 화장된것이라고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임을 당한 황제 가족들은 소련이 붕괴한후,
공식적으로 러시아의 니콜라이2세의 가족 시신을 찾았다고 공식 발표 되고,
황제 가족의 시신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베드로 바울로 성당에 안치 되었다.
2008년 10월 1일 러시아 대법원은 황제가 정치적으로 탄압당해 희생되었다는것을 판결했고,
네명의 황녀들에게는 여대공이라는 호칭이 주어졌고,
니콜라이 황제와 가족들은 정치적으로 복권이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니콜라이 황제와 가족들은 러시아 정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다고 합니다.
끝 -
힘들었어요 칭찬 해주세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