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미학적 가능성 ’ 예술로 풀어내다
페르낭 레제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병사’·‘카드놀이를 하는 병사들’
입체파로 떠오르던 시기에 참전
내 동료는 광부·토목공·목수…
다양한 사람 만나며 삶을 이해
전장서 경험한 군생활 3년 반
‘새로운 작품세계’ 스며들어
|
페르낭 레제,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병사, 1916, 캔버스에 유채, 130x97㎝. 출처=위키아트 |
|
페르낭 레제, 카드놀이를 하는 병사들, 1917, 캔버스에 유채, 129x193㎝. 출처=위키아트 |
몇 해 전부터 부쩍 ‘자기개발’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장병 여러분도 한번쯤 자기개발에 대한 생각을 해보셨을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란 무거운 중책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개발을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겠죠. 하지만 미술사 속에는 군인으로서 전쟁에
참가하면서도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해나간 자기개발의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화가이면서
조각, 영화제작 등 폭넓은 활동을 한 프랑스 사람 페르낭 레제(Joseph Fernand Henri Leger·1881∼1955)입니다. 레제는
기계의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에 주목해 이를 화폭에 담아낸 이로 유명한데요. 그가 기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바로 전쟁 때문이라고
합니다.
레제는 1914년 8월 프랑스군에 징집돼 3년6개월여 동안 복무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공병으로
전장에 서게 됐죠. 사실 입대 전 레제는 이미 주목받는 화가였습니다. 당시 그는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나 마르크
샤갈(Marc Chagall)과 같은 아방가르드 미술가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죠. 또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와 함께 ‘입체파(큐비즘) 운동’에 참가하며 입체파를 이끌고 있었죠. 레제는 미술의 흐름을 ‘구상’에서
‘추상’으로 바꾸는 획기적인 흐름을 이끌며 입체파의 대표 주자로 부상하던 시기에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군 복무는
어쩌면 전도유망한 화가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수도 있었죠.
아르곤(Argonne) 전선에 배치된 레제는
베르덩(Verdun)전투에서 ‘들것 운반병’으로 전선을 누볐습니다. 그는 전장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바로
기계입니다.
기계인간, 현대무기의 희생양… 비극 암시
이제 그림을 볼까요?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병사’는 베르덩 전선에서 한 스케치를 바탕으로 그가 남긴 첫 유화입니다.
기계장치처럼 보이는 몸통과 팔, 손은 이 병사를 마치 로봇처럼 보이도록 합니다. 금속성을 강조하듯 몸은 온통
잿빛이죠.
그런데 병사의 머리 부분에 붉은 물감의 흔적이 보이시나요? 이는 머리에 입은 부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아마
레제는 잿빛 진흙탕에서 자신이 옮겨야 했던 피투성이 부상병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레제가 피투성이 부상병을 기계인간으로 그렸을까요?
작품 속 기계인간으로 그려진 전우는 인간이 지닌 에너지와 힘을 가진 존재이면서 동시에 대규모 부대의 한 개체로서 기계화된 전쟁의 절대적인 힘에
순응하는 익명적 존재를 상징합니다. 레제는 바로 총·지뢰·가스·기관총·탱크 등 현대 무기의 가공할 힘 너머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익명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또 작품 속 인물이 그가 옮겨야 했던 동료 병사라는 점을 생각해보죠. 기계인간이 된 병사는 현대 무기의 희생양이 됐다는 점에서 그
존재 자체가 비극적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레제는 1917년 봄 에슨(Aisne)전선을 끝으로 전투 현장에서
물러납니다. 지루한 참호전의 돌파구로 개발된 독가스에 중독돼 파리 외곽의 발팽트(Villepinte) 병원으로 후송됐기 때문이죠. 야전병원을
전전하던 그는 결국 1918년 1월 의병제대를 합니다. 몸이 온전치 않은 상황에서도 레제는 틈틈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회복기에 그려진 작품이
바로 ‘카드놀이를 하는 병사들’입니다. 이 작품은 레제가 “인류의 신기원을 주제로 선택한 최초의 그림”이라고 자평하기도 한 대표작인데요. 군모와
철모, 훈장과 계급장 등을 통해 작품 속 인물들이 레제의 동료 병사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레제는 전쟁을 통해 현실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민중을 발견하고 그들과 유대감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전쟁 전 주로 파리의 엘리트 계층과 교류했던
레제는 전쟁을 겪으며 비로소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됩니다. 레제의 말을 들어볼까요?
다양한 색채, 종전·평화의 염원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프랑스의 모든 민중과 같은 수준에 있음을 발견했다. 공병부대에 배치된 내 새로운 동료는 광부, 토목공, 목수, 대장장이…. 나는
그곳에서 그들이 진정한 서민임을 이해하게 됐다.”
‘카드놀이를 하는 병사들’은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병사’에서 볼
수 없었던 변화가 보입니다. 바로 노랑, 빨강, 파랑, 초록 등의 다양한 색채가 나타난 것이죠. 이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레제에게 색의
사용은 종전과 평화를 의미합니다. 그의 회고록엔 이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참전 중 그는 “전쟁은 본연의 색을 감추기 위한 위장색과 생기
없는 잿빛만이 있다.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빛과 색은 금지됐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는 “때맞춰 색채가 나타나고, 인간은
재빨리 그것을 낚아챈다. 그것은 맹렬하게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평화로운 무기다. 그것은 불쑥, 그리고 전속력으로 출발했다. 모든 것이 색채로
물들고,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기 위해 그 강도를 높인다. 색채의 강렬함이 지금 태어나고 있는 중이다”라고 했죠. ‘카드놀이를 하는 병사들’이
1917년 겨울 레제가 독가스 중독으로부터 회복되던 시기에 그려진 작품임을 미뤄 볼 때 그림에 나타난 다양한 색채는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그의
염원이 담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레제가 군에서 3년 반 남짓의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 버렸다면 그는 잠시
주목받은 그저 그런 작가로 기억됐을 겁니다. 그러나 레제는 그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죠. 포화가 그치지 않는 전장에서 그는 삶의 지평을 넓힌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자기개발’의 끈을 놓치지 않았던 것으로 표현할 수 있겠죠. 단순한 개발을 넘어 삶을 바꾼 특별한
경험을 레제는 군에서 하게 됐습니다.
다행히 장병 여러분이 놓여있는 상황은 레제처럼 급박한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여전히 총을 든 군인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죠. 매일 계속되는 훈련, 끊임없는 긴장이 여러분을 감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한 행동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의 삶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오늘은
다시 한 번 그동안 생각해온 미래를 위해 신발끈을 조여보면 어떨까요?
<김윤애 문화역서울 284
주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