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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

대영제국 후손들의 DNA 기원

작성자러브인|작성시간16.09.05|조회수488 목록 댓글 0

 

 

대영제국 후손들의 DNA 기원

 

6세기에 활약했던 것으로 알려진 아서 왕(King Arthur)은 실제인물이라기보다 전설 속의 영웅이다. 로마군대를 물리치는 그의 초인적인 맹활약을 담은 아서 왕 전설은 왕을 중심으로 한 갖가지 일화와 중세 로맨스로 이루어진다. 출생에 대한 일화, 기사들이 벌이는 모험, 왕비인 귀네비어와 기사인 랜슬롯 겨의 불륜의 사랑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한 뒤 아리마태아의 요셉에게 주었다는 성배이야기의 발단도 여기에서다. 왕비의 불륜으로 결국 원탁의 기사들 사이의 우정은 깨진다. 아서 왕은 결국 죽고 왕국도 파멸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영국은 아서 왕을 자랑스러운 조상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서 왕은 앵글로 섹슨 족이었을까? 고고학 뉴스 전문 사이트 헤리티지 키(Heritage Key)가 최근 “Genetic Britain: How Roman, Viking and Anglo-Saxon Make up the UK’s DNA”에서 영국인의 DNA를 해부했다. DNA과학과 함께 역사의 부침으로 얼룩진 영국의 역사를 감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

 

영국인들은 과연 누구인가? 영국인들이 유전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비단 이를 연구하는 학계뿐만 아니라 정치계에서 뜨겁게 논쟁의 대상이 됐던 주제이다.

 

영국인의 혈통에 대한 연구는 뜨거운 논쟁

 

영국은 앵글로색슨, 노르만족, 그리고 로마인의 침략 등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심하게 부침(浮沈)을 계속해온 격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러면 원래 영국의 원래 토착민족과 침략자들이 남긴 어떤 유산이 오늘날 영국인들의 DNA에 남아 있는 걸까? 최근 영국정치에 발판을 구축한 BNP(British National Party, 영국의 극우민족파 소수 정당)의 닉 그리핀(Nick

Griffin) 당수는 영국의 토착민(indigenous people)’을 대표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북아메리카와 뉴질랜드의 원주민을 현대의 잉글랜드인, 스코틀랜드인, 아일랜드인, 그리고 웨일스인과 비교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나 뉴질랜드의 경우 소위 토착민을 대표하는 당이 있듯이 자신도 영국의 토종을 대표하는 정당의 당수가 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그러나 오늘날 영국은 복잡한 족속들로 이루어진 멜팅 팟(melting pot)이다.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2006(영국의)다큐멘터리가 자신들이 ‘100% 잉글랜드인라고 굳게 믿는 8명에 대한 유전자 검사결과를 방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기대를 뛰어넘어 유전자검사에 응했던 모두가 부유한 유전적인 유산(rich genetic heritage)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유전자가 부유하다는 것은 유전적 형질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유전적 다양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또 많이 섞였다는 이야기다. DNA 감식방법의 진보와 함께 과학자와 역사학자들은 이 새로운 방식을 통해 영국의 역사를 좀 더 깊게 연구 조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DNA의 작은 가닥들이 과연 영국인들, 그들이 과연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해 줄 수 있을까? 또한 이러한 새로운 접근법들이 어떻게 기존의 영국역사의 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연대표(timeline)를 바꿀 수 있을까?

 

DNA 과학으로 접근해 보자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 같이 인간 유전자 연구는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혈통(ancestry)을 둘러싼 유전연구 분야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파도가 밀리면 또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듯이 영국은 이처럼 많은 이민족의 유럽인들이 바뀌고 또 바뀌면서 영국을 지배해 왔다. 옥스퍼드 대학의 인간유전학 교수이자 영국 하원의 과학기술 고문인 분자생물학자인 브라이언 사이크스(Bryan Sykes)는 처음으로 화석화된 뼈에서 DNA를 성공적으로 추출하는 데 성공한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96년 그는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 서머싯(Somerset)의 체다 협곡(Cheddar Gorge)에서 발견된 사람의 해골의 DNA를 추적한 결과 해골의 여대를 기원 전 7150년으로 추정하였다. 사이크스 박사는 연구소에서 실험한 DNA의 붕괴 비율을 기초로 줄 잡아 1만년 전 생물의 DNA 가운데 온전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주장의 연구논문을 네이처에 실어 세관의 관심을 끈 학자이기도 하다.

 

이것은 논란이 돼온 공룡의 재창조가 가능하다는 이론을 뒤집는 근거였다. 또한 멸종된 생물의 유전자 청사진을 재건하는 것은 외형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한 것이다.

 

체다협곡은 영국인 혈통연구의 중심 

 

체다 협곡은 석탄기시대인 28600~36000만년 경에 만들어진 지형으로 경이로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볼거리를 제공해 유명한 관광지이자 과학자와 고고학자들에게는 중요한 연구대상이다. 선사시대의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는 지역으로 잘 보존된 해골들도 많이 발견된다. 19039000년 전 인간으로 추정되는 완벽하게 보존된 인간 해골 체다 맨(Cheddar Man)’이 발견된 곳이다. 이 곳에는 석탄기와 빙하기를 거치면서 빙하시대의 녹은 물이 백 만년 넘는 속에서 만들어낸 동굴들도 많다. 과학자들은 이 지역이 살기에 적합한 동굴들이 많기 때문에 오래된 인간 해골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 15년 간 과학자들은 DNA를 통해 혈통을 추적하는 두 가지 핵심방법들을 채택하였다.

 

Y염색체는 남자의 혈통을 추적할 수 있는 반면 미토콘드리아 DNA는 여자의 혈통을 추적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질 때 Y염색체는 보통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나면 염색체에도 조그마한 생물학적 변이(돌연변이, 개체변이, 유전변이)들이 일어난다. 이러한 변이를 조사하게 되면 서로 다른 종족의 DNA가닥들을 추적할 수 있다.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에 위치한 해안침식으로 유명한 서퍽(Suffolk)주의 로우스토프트(Lowestoft) 해안에서 많은 고고학적 유물들이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물들을 분석한 결과 섬나라 영국에 인간이 처음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약 70만년 전으로 추정했다. 믿거나 말거나 당시 이 지역의 기후는 거의 지중해성 기후에 가까웠다. 서퍽은 고고학적 유물인 서턴후 분묘 유적(Grave of Sutton Hoo)으로 유명하다. 이는 앵글로색슨 시대의 무덤으로 1939년에 발견됐다.

 

수십 개의 분묘 가운데 가장 큰 분묘에서 길이 27m38명이 탈 수 있는 배가 발견되어 현재 복원돼 있다. 배의 내부에는 인골은 없었으나 보석과 장식품들이 있었고, 묘실(墓室)에서 일용집기와 개인장식품, 그리고 무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대다수가 앵글로색슨의 고유한 물품들이고 그 중에서도 버클이나 칼의 손잡이에 있는 장식은 앵글로색슨 특유의 동물의장(動物意匠)을 나타낸 것들이 많다. 알렉산드리아, 비잔틴 등 지중해 연안과 거래한 교역물품들로 보이는 품목이 있어 앵글로색슨의 문화와 교역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적이다.

 

런던 자연사박물관에서 영국 고대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거주관련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연구진들은 선사시대에 인간이 영국에 거주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7번의 실패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매번 인간들은 기후가 자주 변해서 감당하지 못해 실패했다. 영구적인 정착은 약 12000년 전인 마지막 빙하시대가 넘어서야 이루어졌다.

 

첫 번째 정착민은 유럽에서 온 켈트 족

 

영국역사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는 일반적으로 섬에 처음으로 정착한 사람들은 중앙 유럽 어디에선가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 켈트족이라는 주장이다. 켈트족이 바로 영국의 첫 조상이라는 것이다. 유럽에서 온 이들은 당시 선사시대부터 영국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몰아내고 영국의 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켈트족이라고 하면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를 일컫는 민족이다. 그들은 일반영국인들과 달리 머리가 검정색깔의 흑발머리다. 이에 대한 유전적 연구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켈트족은 원래 인도유럽어족의 한 일파로 켈트를 쓰는 유럽 민족을 가리킨다. 원주지는 청동기시대의 독일 남동부에 있는 라인강, 엘베강, 도나우강 유역이다. BC 10BC 8세기 무렵부터 이동하기 시작하여, BC 6BC 4세기 무렵 갈리아와 브리타니아(영국)에 진출하였다.

 

카이사르는 켈트족을 갈리아인이라고 불러

 

BC 4세기 초에는 이탈리아 로마를 침공한 후, 포강 유역에도 정주했으며 BC 3세기에는 멀리 소아시아에도 진출하였다. 라텐문화를 낳은 민족으로 특이한 철기문화를 지녔고 호전적이며 목축경제사회를 형성하였다. 한때 널리 유럽을 지배했으나 갈리아는 BC 1세기에 카이사르에 의해 브리타니아는 1세기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아직도 풍습과 언어가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아일랜드, 웨일스, 브르타뉴로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켈트족은 유럽에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켈트이베리아 전쟁이 바로 현재 스페인에 정착했던 켈트족이 로마를 상대로 벌인 전쟁이다. 무려 20년간 계속된 이 전쟁에서 끈질긴 켈트족을 물리친 로마는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어쨌든 영국 본토인이 된 켈트족은 결국 로마인들에게 오랫동안 지배당하면서 영국 주인이 바뀌었다.

 

로마의 지배에서 앵글로색슨으로, 다시 바이킹과 노르만으로

 

서기 6,7세기경 로마의 세력이 크게 후퇴하면서 로마가 영국에서 철수하자 독일과 네덜란드로부터 온 앵글로색슨인의 유입으로 대체되었다. 바로 이 때가 켈트족 출신으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아서 왕의 전설의 무대다. 원탁의 기사가 등장하고 성배가 등장한다. 로마군대를 물리치고 색슨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결국 왕비의 불륜으로 허망하게 죽으면서 그의 왕국 종말을 맞는다. 다시 영국은 바이킹과 노르만족의 침략을 받아 지배권이 이들에게 넘어 간다. 영국인의 혈통은 더욱 복잡하게 변해갔다. 앵글로색슨은 5세기에 독일 북서부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게르만족의 한 일파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 영국인의 주류를 일컫는 이 말은 원래 잉글랜드의 색슨인을 유럽의 색슨인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노르만이 영국을 정복하기 전의 영국인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미국인을 앵글로 아메리칸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영국을 상징하는 앵글로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앵글로색슨도 그런 의미다.   최근의 유전학에서의 연구는 이러한 전통적인 견해, 다시 말해서 이러한 역사의 부침 속에서 혈통이 많이 섞였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이에 대해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대체적으로 두 개의 주요 학설이 있다. 한 쪽은 영국인의 유전자 풀(gene pool)이 침입자들의 유입으로 심하게 영향 받았다고 주장한다.

 

아서 왕의 유전자는 지금도?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영국인의 유전적 구성이 시간이 지났지만 별로 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고유한 유전자가 지금까지도 때묻지 않은 채 계속돼 왔다는 것이다. 아서 왕의 유전자는 지금까지도 그 순수함을 잃지 않고 영국의 피 속에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말 그런가? 유전자 풀은 집단유전학에서 쓰이는 용어로 어떠한 생물 종이나 개체 속에 있는 고유의 대립형질의 총량을 말한다. 쉽게 말해 어떤 생물집단 속에 있는 유전정보의 총량을 말한다. 유전자 풀이 크다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1951년 러시아 출신의 미국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Theodosius Dobzansky, 1900~1975)가 제창한 것으로 유전자 풀의 변화에 의해 생물이 진화한다는 내용이다.

 

초파리를 재료로 유전학적 연구를 하여 생물의 진화에 염색체이상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였고 집단유전학 연구 분야를 개척한 학자다. ‘앵글로색슨인의 전멸’. 중세암흑기에 대한 퀴즈 쇼의 이름이 아니다. 앵글로색슨 족이 영국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이론이다. 앵글로색슨이 전멸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본토인의 DNA 전멸시켰다는 이야기다. 로마인들은 영국점령으로 무역과 문화, 그리고 기술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영국으로 실제 이주해서 산 적은 별로 없다.

 

AD 400경 로마가 철수한 이후 영국은 암흑기에 접어 들었다. 따라서 영국은 자연히 외부 세력에 의한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유럽인들의 물결이 영국 원주민들을 대체하게 되었다.

 

영국으로 이주한 세 개의 주요 종족이 있었다. 북부 독일의 앵글리아(Anglia, Angeln) 지방으로부터 온 앵글(Angles), 독일의 작센 지방에서 온 색슨족,

그리고 유틀란트 반도로부터 온 주트(Jutes)족이었다. 얼마나 많은 앵글로색슨인이 도착해 정착했고, 또한 원주민들과의 충돌이 얼마나 격렬하게 전개됐는지에 대해 말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로마의 정치적 지배를 받았지만 는 지배 안 받아

 

역사적인 출처는 단지 소수의 기록에 제한되어 있으며, 게다가 그들 중 대부분은 사건 후에 쓰여진 것이다. 예를 들어 6세기의 성직자 길다스(Gildas, 516570)는 영국인들과 앵글로색슨인 간의 일부 전쟁에 대해서는 기술하였지만, 확실한 정보는 짧게 요약되어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중세 역사가인 그가 남긴 대표 저서가 브리튼의 파괴에 대한 비난의 책(Book of Complaint

Touching the Destruction of Britain)’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앵글로 색슨족이 침입하여 영국문화를 붕괴시킨 사실을 다루었다. 그리고 애드머(Eadmer, 10601124)그의 시대의 역사(The history of his own time)’에서 영국 교회사를 다루면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포함시켰는데 편견에 사로잡힌 서술을 했다.

 

윌리엄(William of Malmesbury, 10961143)영국 왕들의 업적(Acts of the English Kings)’에서 색슨인의 침입으로 부터 1128년까지의 사건을 다루었고 현대사(Modern History)’에서는 1142년까지 서술하면서 비교적 공평하게 노르만인의 영국 정복 사건을 다루었고 극적 묘사가 훌륭하고 역사적 판단도 날카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앵글로색슨인의 대량 이주는 몇 세기가 흐르면서 원래 영국인들의 유전자 풀을 희석시켰을 것이다. , 그렇다면 무엇인가, 유전학은 앵글로색슨인의 침입에 대해 어떤 설명을 해줄 수 있는가? 유전학이라는 과학은 주인이 자주 바뀌었던 영국의 복잡한 역사를 설명할 수 있을까?

 

당시 무려 50만 명의 앵글로색슨족이 이주

 

2002UCL(University London College)대학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 현재의 영국인들과 고대의 앵글로색슨인 사이를 연결해 주는 증거를 찾았다. 연구팀은 영국의 중부지방에 사는 현대 남자들과, 앵글로색슨인의 고향이라고 생각되는 현재 네덜란드 지방의 프리슬란트(Friesland)에 사는 남자들의 Y 염색체를 비교하였다. 연구는 두 집단 사이의 놀랄만한 유전적 유사성을 발견하였고 대량 이주 사건이 암흑기에 일어났음에 틀림없다고 결론 내리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대량의 앵글로색슨인이 (본토의) 잉글랜드인의 유전자 풀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의 유사성은 웨일스 국경에서 갑자기 멈췄다. 수천 년 간의 공유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인과 웨일스인 간에 뚜렷한 유전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 연구에서 나타났다.

 

앵글로색슨인의 광범위한 유전자 확산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인구수준을 감안할 때 침략자수가 적어도 50만 명은 됐을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 수치는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집단의 이동이었다. 앞서 한 이야기는 영국으로 이주한 앵글로색슨의 수가 엄청나 결국은 영국의 유전자 풀을 지배하게 됐다는 내용이다다시 말해서 인해전술로 결국 앵글로색슨이 영국을 지배하게 됐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영국이 앵글로색슨 국가가 됐다는 이야기다.

 

인종차별정책을 썼다?

 

그러나 UCL이 진행한 2006년의 다른 연구는 또 다른 설명을 제공한다. 앵글로색슨은 단순한 숫자의 힘이라기보다 인종차별 정책을 써서 유전자 풀을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설명하자면 앵글로색슨이 원주민에게 적대적인 정책을 써서 그들을 짓눌렀다는 내용이다. 앵글로색슨의 수가 원주민을 대적할 정도에 이르자 그들은 원주민을 강제적으로 변방으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적 계급을 강등시켰다. 따라서 원주민의 수는 별로 불어 나지 않는 반면 침략자인 앵글로색슨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게 됐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유전자 풀은 자동적으로 원주민에서 앵글로색슨으로 넘어갔다.

 

본래 원주민들은 하층계급으로 전락

 

영국 원주민들은 이류(二流)의 지위로 떨어졌다. 반면 앵글로색슨은 보다 큰 번식의 성공(reproductive success)’을 만끽했다. 그들은 지배당하고 탄압받는 기존의 본토인들보다 더 자주 그리고 더 성공적으로 많은 아기를 가질 수가 있던 것이다. 연구진들은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가지 증거들을 내놓았다. 역사를 통틀어 있었던 다른 종류의 인종차별정책과 원주민을 차별한 앵글로색슨의 차별정책을 비교할 수 있는 역사적 증거들을 제시했다. UCL 연구팀은 이런 이론을 제시했다. 20만 명의 침입자들(앵글로색슨)의 세력이 단지 15세대라는 기간 내에 유전자 풀을 지배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1세대는 보통 20~30년을 보통 일컫는다.

 

원주민, 앵글로색슨의 압박으로 본토에서 도망쳐

 

원주민(켈트 족)들이 영국 본토에서 번성하지 못하게 된 역사적 자료가 있다.

그들은 로마제국 말기부터 서기 1000년에 이르는 중세 암흑시기에 외부의 적(특히 앵글로색슨)과 싸워 패배했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브르타뉴와(Brittany)에 거주지를 만들기 위해 본토에서 도망쳤다. 이 이름은 브리튼(Briton)으로부터 유래되었다. 브리톤 족이라는 말도 있다. 앵글로색슨의 침입 전에 있었던 영국의 토박이 민족을 일컫는 말로 주로 켈트 족을 지칭한다. 그들은 또한 스페인의 갈리시아(Galicia)에 본거지를 세우기 위해 본토에서 달아나는 등 암흑기 동안 켈트족이 영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이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켈트 족의 영향은 오늘날에도 이 지역

들의 문화에서 볼 수 있다.

 

흑사병 또한 원주민들의 수를 급감시켜

 

또한 역사가들은 유스티니아누스 역병(plague of Justinian)과 같은 전염병들로 말미암아 암흑기 동안 영국 토착민의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고 설명한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란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 재위기간 가운데 541~542년에 일어난 림프절 페스트(bubonic plague)를 말한다. 훗날 흑사병(Black Death)을 일컫는다. 전 유럽을 강타한 이 병이 절정을 이루었을 때는 동로마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만 하루에1만 명이 죽었다. 기록에 따르면 묻을 땅조차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수도가 이럴진대 수도를 벗어난 변방에서의 참혹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잠잠했던 이 흑사병은 다시 14세기에 일어나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로 인해 켈트 족의 수는 급속히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역병은 가난하고 계급이 낮은 하층민을 한꺼번에 쓸어가는 병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영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집단이 다른 집단으로 바뀌게 됐다는 것이다. 즉 켈트 족을 대신해서 앵글로색슨이 영국이라는 유전자 풀의 주인이 된 것이다.

 

아서왕이 진정한 조상?

 

유전자 풀은 9세기의 바이킹과 11세기의 노르만족의 침입과 함께 새로운 압력을 받게 된다. 이들 역시 유전자 풀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유전학 연구자들은 아직도 앵글로색슨과 그 이후의 침입자들 간의 Y 염색체를 구별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는 바이킹과 노르만이라는 이 그룹이 오늘날 앵글로색슨을 대표하는 영국의 유전자 풀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판단하기가 곤란해졌다는 내용이다. 토착민이라고 할 수 있는 켈트 족과 앵글로색슨과의 관계는 DNA를 통해 어느 정도 밝힐 수 있지만 여기에 바이킹과 노르만이 끼면서 점점 복잡해지는 것이 오늘날 영국인의 유전자 풀이다. 이렇게 따진다면 로마를 물리치고, 색슨족과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은 아서 왕이야말로 영국의 진정한 DNA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성배이야기는 픽션이라고 해도 말이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앵글로색슨인 전멸이론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있다.

 

유전학계 세계적인 권위자인 옥스퍼드 대학의 분자생물과 교수인 브라이언 사이크스(Bryan Sykes)와 역시 유전학자인 스테판 오펜하이머(Stephen Oppenheimer)가 장본인이다.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두 학자는 영국인의 유전자 풀은 12천년 전에 영국으로 첫 번째 정착자가 도착한 이후로 크게 변하지 않은 채로 유지되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 모두 모두 켈트족이 중앙 유럽에서 기원했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반박하고 이베리아 반도-특히 바스크 지역 출신이라고 주장한다. 아서 왕의 유전자가 여전히 영국인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유전자 풀이라는 것이다. 원래 영국에서 자리를 틀고 거주한 사람들로 알려진 아일랜드 사람들과 웨일스인들, 그리고 영국 서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현대의 바스크인들과 80%까지의 유전적인 유사성을 공유하는 것으로 발견됐다.

 

아일랜드와 웨일스인은 바스크인과 유사성 많아

 

그러나 앵글로색슨인과 바이킹의 영향을 비교적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 영국 동부 지역 사람들과의 유사성은 약 65%까지 떨어진다. 오펜하이머 박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섬나라 영국이 로마인의 침략 당시 거주자들이 유전자가 다른 종족과 별로 섞이지 않은 대부분 순수한 켈트 족이었다는데 대해 의문점을 던진다. 그는 영어에서 켈트어가 별로 없다는 것, 그리고 지명에서도 켈트어가 없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영국이 실제로는 켈트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의론에 따르면 로마인들이 도착했을 당시 영국 남부지역이 벨기에의 갈리아와 연관성을 갖고 있는 독일어를 말하는 부족에 의해 점령 받았다는 것이다.

 

카이사르, “갈리아 사람들과 비슷한 방언을 써

 

로마제국의 실권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기원전 50년경 영국을 두 번이나 들렀다. 그는 이 지역 사람들이 갈리아 사람들과 비슷한 방언을 쓴다는 보고서를 <갈리아 전기>에 쓴 적이 있다. 오펜하이머는 유전학적 증거를 제시하면서 바이킹이 침략하기 오래 전에 영국 북부와 동부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스칸디나비아에서 왔을 거라고 주장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오펜하이머가 진행한 특정한 유전자 유형에 대한 조사에서 앵글로색슨인의 DNA는 영국의 남성에게는 최소한 5%를 기여하였고, 여성에게는 기여했다는 증거가 사실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 영국인들과 앵글로색슨인의 유사성은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공통조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화적 유산은 노르만 영향이 커

 

만약 DNA가 아직은 명확한 답을 제공할 수 없다면, 역사가들은 이 문제를 좀 더 전통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국에 상륙한 침략자들은 영국 섬에 유전적 도장(genetic stamp)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겼다. 그들은 마을과 요새를 건설했으며 문화를 바꾸고 언어를 급격히 변형시켰다. 로마인들은 런던을 창건하였고, 도로, 목욕탕과 수로, 정비된 무역을 만들었으며 화폐제도를 도입했다. 바이킹은 영국으로 오면서 오늘날까지도 영어에 남아있는 고대 노르웨이어에서 단어들을 가져왔다. 그것들 가운데 일부는 공격적인 단어가 많다. (knife), 약탈하다(ransack), 죽다(die) 등의 단어가 그렇다. 또 아주 기초적인 단어도 있다. 남편(husband), 하늘(sky), 아이(북 잉글랜드영어 bairn), 받다(get), 부르다(call)와 같은 단어들이 고대 노르웨이어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는 말들이다. 노르만족은 확실히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단어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군주의 계보(monarchical lines)를 설립하였고, 정치와 법체계를 정비했다. 오래된 적 로마와 천 년이나 걸친 전쟁을 시작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말을 합쳐 오늘날 영어를 탄생시켰다.

 

오리지널 영국인은?

 

그러나 어떤 연구도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유전적으로 영국 섬을 침입한 어떤 세력이 오늘날 영국에 거대한 기여를 했는지 완벽히 측정할 수는 없다. ‘오리지널 영국인에 대한 개념은 특정한 정치적인 요소에 계속 집착할 지도 모르지만 그는 아서 왕(앵글로색슨인의 전멸에 대해 아마도 뭔가 할 말이 있었을) 만큼이나 신화적일 것 같다. 그렇다면 영국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대답은 그들 안에 있는 것이 명백하다. 여기에서의 인생은 거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UCL의 과학자 닐 브래드만(Neil Bradman)과 마크 토마스(Mark Thomas)Y 염색체에 관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만약 우리가 아주 먼 옛날로 돌아간다면, 모든 남자들은 동일하게 태어난 것뿐만 아니라 부계(父系)적으로 연관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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