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품중정제와 위의 멸망
위나라를 유지시킨 두 가지 제도가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둔전제와 구품중정제라고 할 수 있다. 220년, 위나라가 한나라에게서 선양받은 이후 위나라에서는 한나라의 지지 세력을 걸러낼 필요가 있었다. 위나라의 주 지배 세력이었던 명사 세력은 이를 타계하기 위해 구품중정제라는 새로운 관리임용제도를 만들게 되었다.
이를 통해 위나라는 한나라의 지배 세력을 손쉽게 걸러낼 수 있었고, 새로운 국가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한나라의 향거리선 제도에 대치되는 구품중정제. 구품중정제는 지방의 군의 관리마다 중정이라는 관리를 선정(대체로 태수)하여 군내의 관리를 재능과 덕행으로 1품에서 9품까지 나누고 이를 향품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중앙에서는 관품이란 것이 있었는데 향품에서 +4를 한 것이 관품이 되었다. 이 구품중정제는 초창기에는 한나라 주 지배 세력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했지만, 후대로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중정으로 선발되는 지방의 유력자들이 주요 귀족들에게 청탁을 받고 유력자의 자제에게는 후하게 향품을 매기는 폐단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에 등장한 것이 사마씨 일족이다.
이 사마씨 일족은 사마의를 필두로 아들 사마사, 사마소, 후에 진나라의 무제가 되는 사마염에 이르기까지 위나라를 좌지우지했으며, 새로이 오호십육국시대를 열게 만든 주 원인인 일족이기도 하다. 사마의는 조조 때부터 조방 때까지 4대를 섬기면서 세력을 확대해나갔고 결국 아들들과 함께 조방 때 위나라의 실권자인 조상 형제를 실각시키고 실권을 잡게 된다.
사마의가 죽은 뒤 사마사가 그의 권력을 세습 받았고 사마사는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누리며 자신의 암살을 모의한 조방을 폐위시키기까지 하였고 이후 사마사가 눈 위의 혹이 악화되어 죽은 뒤, 사마의의 차남이자 사마사의 동생인 사마소가 실권을 잡고 자신을 죽이려 암살을 모의한 조모를 폐위시킨다.
이후 사마소는 조환을 새로운 황제로 세우고 자신은 진왕이 되었다. 그 이후 사마소는 전쟁을 준비하고 등애와 종회를 대장으로 세우고 촉한을 멸망시켰다. 사마소가 죽은 뒤, 사마염은 조환에게서 황제 자리를 찬탈하여 진무제가 되었고 오나라까지 멸망시키며 삼국시대는 종결되었다.
이를 정리하자면, 위나라가 세워진 뒤 한나라의 지배 세력을 걸러내기 위한 구품중정제가 결국 귀족 세력, 그 중에서도 사마씨 일족의 발흥을 불러왔고, 그것이 결국엔 위나라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되었다. 하지만 위나라 때 세워진 구품중정제는 그 의미가 퇴색되었어도 수나라에서 과거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계속 보수, 유지되면서 명맥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