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 스키타이
신라의 문화는 고구려, 백제와 달리 독자적인 양상을 보여주는데 스키타이-알타이의 북방유목민적 요소를 많이 보인다. 이는 신라 지배층이 흑해-중앙아시아-몽골고원으로 이어지는 초원의 길을 통해서 이주한 이들로서 그 경로를 통해 서양문명세계와 무역을 했다는 것을 추정가능하게 한다. 유라시아북방유목민이 우리 민족으로 초원길을 따라 이동해 갔고 후에 여러 정치적 변화에 의해 이들이 다시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원래 SKYTAI는 SKYTHIA지방에 살고 있는 주민을 말한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BC 5세기경 흑해지방을 답사하고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을 ‘스키트인’이라고 기록하였다.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스키타이인은 이란어를 쓰는 유목민으로 BC 8세기 흑해북안에 이주해온 사람들로서 페르시아인들은 이들을 사카라 부르고 있어 대개 총칭하여 스키타이, 사카족이라 불린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이었던 스키타이인(人) 중에서 남하하여 인도에 정주한 한 종족 사카족(Saka)이라고도 한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난 종족 이름인 샤카(?kya)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석가란 샤카를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며칠 전(2015-09-22) 신문기사 제목이 이채롭다. "신라 무덤의 비밀을 품고 있는 중앙아시아 고분을 발굴하다."기사내용은 이런 것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 7~8월 카자흐스탄 고고학연구소 아스타나지소와 공동으로 카자흐스탄 남동부 지역의 '카타르 토베 고분군'을 발굴하였다. 이번에 발굴한 고분은 중앙아시아의 적석계(積石系) 무덤과 신라 상위계층의 돌무지덧널무덤을 비교 연구할 수 있는 형식으로 주목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고대 사회의 문화 교류 양상과 발전 과정 등을 밝혀 한반도를 둘러싼 '고대 문화 네트워크'를 복원하고자 종합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반도 내에는 많은 수의 적석계 무덤이 분포하고 있다. 특히 돌무지덧널무덤의 경우 그 기원을 중앙아시아 초원과 알타이 고원에 존재하는 적석계 무덤에서 찾기도 한다. 이번 조사는 카자흐스탄 초원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적석계 무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신라 돌무지덧널무덤과의 관련성을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카타르 토베 고분군은 천산산맥(天山山脈)과 인접한 지역으로, 해발 2,300m 고원에 펼쳐진 넓은 초원 중앙에 위치한다.
매장 시설을 지하에 배치한 구조로, 묘광(墓壙) 안에 나무덧널을 설치하였으며 묘광 위에 통나무 4겹을 중첩되게 놓아 뚜껑으로 사용하였다. 나무덧널 위에는 흙을 두껍게 쌓아 높이 2m가량의 봉분을 만들었으며, 다시 그 위에 냇돌을 2~3겹 깔아 마무리하였다.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어 금제 귀걸이와 구슬, 청동제 팔찌, 토기 등 소량만 출토되었다. 고분 내에서는 다수의 목재와 인골 1개체분이 확인되었는데, 향후 인골에 대한 디엔에이(DNA) 분석 등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를 통해 더 많은 정보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중형 고분은 형태,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보아 사카문화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사카문화는 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경까지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한 중앙아시아 일원에 형성되었던 고고 문화이다. 소형 고분은 봉분 지름 12m가량의 원형 평면으로 오손문화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카자흐스탄 카타르 토베 고분군 발굴조사는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카자흐스탄 고고학연구소가 처음으로 실시한 공동 발굴조사이다. 카자흐스탄 내에서 고분 축조 과정 전반을 밝혀낸 첫 번째 조사라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이번 조사를 통해 신라 돌무지덧널무덤과 비교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의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스키타이와 흉노 그리고 신라. 이에 대한 많은 설들이 무성하다. 흡사 바람같이 소문만 무성할 뿐 기마유목민은 오랜 기간 세계사의 중심무대에서 활약해왔으나 의외로 기록이 취약해서 역사가 별로 남아 있지도 않고 평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광활한 대초원 지대에서 말을 기동력으로 하여 생활의 근거를 자유로이 이동했던 그들의 삶의 형태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알다시피 고려를 3차에 걸쳐 침공을 하며 국력을 소진하고 퇴각한 거란족은 금에 의해 멸망 후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 흔적도 찾을 길이 없다. 반면 만주 동북부가 본거지인 여진은 금 멸망 후에도 자신들의 터전에 남아 살다 약 400년 후 후금을 세워 중국 최후의 왕조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근거지도 없는 기마민족은 바람 같은 존재가 아닐까.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BC 12세기 무렵부터 유목민이 활동한 것으로 보여지고 BC 9세기말 경에는 말의 기동력을 활용한 전투 집단이 등장했다 한다. 기마군단이 최초로 역사에 기록된 것은 스키타이로 아시아 유목민이 BC 8~7세기경 볼가강에 진출하여 우크라이나·중앙아시아 지역에 강대한 부족국가를 건설한 것이다. 이들 기마군단은 기동력과 마상궁술을 무기로 드넓은 초원지역에 산개하여 바람같이 나타나 도발하고 상대를 초토화시키는 위협적인 전술을 구사하면서 공포의 대상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스키타이는 BC 674년 메데를 정복하고 BC 514년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왕의 70만 대군을 제압한다. BC 4세기의 전성기를 거쳐 BC 3세기경 사르마트에 패해 쇠락한다. 이후 크림반도 등지에서 농경생활로 전환되어 부족을 유지하다 로마에 흡수된다.
유목민의 기마군단에 대한 최초기록은 앞서 말하였듯 BC 424년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헤로도토스의 「역사 : Histories」에서 스키타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헤로도토스는 고대 그리스인으로 BC 485년 오늘날 터키 남동부 에게해 연안의 Bodrum에서 탄생했고 대여행가로서 들은 대로, 전해지는 대로 기록하여 「역사」라는 역작을 남겼다.
키케로는 그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BC 145년경 출생)보다 300년 이상 앞선 세대다. 그는 스키타이에 대해 “스키타이족은 아시아에 살던 유목민이라는 것이 가장 그럴듯하다.”, “그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쟁기질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아는 모든 부족들을 능가한다.”, “그들이 추격하는 자는 아무도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무도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없다.”, “그들은 도시도 성벽도 없고, 집을 수레로 싣고 다니고, 말을 타고 활을 쏘기에 능하고, 농경이 아니라 목축으로 살아가는데 그런 사람들이 어찌 다루기 어려운 불패의 부족의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키타이족의 나라는 정사각형인데 동서남북이 각각 4000스타디온(약800km)이 된다”라고 쓰고 있다.
아주 정확한 묘사다. 스키타이는 성경에서도 언급된다. BC 629~588년에 기록된 구약 예레미야 6장은 “보라 한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니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자비가 없으며… 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같이 다 항오를 벌이고 딸 시온 너를 치려 하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신약 골로새서 3장에서는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 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민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라고 하고 있다. 「스구디아」가 바로 스키타이다. 사도바울이 이 서신서를 AD 64년에 썼으므로 당시 스키타이의 존재는 미미할 때이나 이방세계에 강력한 인상을 심었던 것 같다.
스키타이 문화는 초기철기문화로 그들의 흔적은 흑해 북부에서 서부 몽골지역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①스키타이문화는 거대한 고분(kurgan)으로 대표된다. 땅속의 목곽 위에 돌무지와 흙으로 덮은 무덤으로 이 속에서 무기·마구·동물장식 등 많은 청동유물이 발굴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무덤은 중앙아시아와 내몽골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어 스키타이 문화의 연원이나 전파를 말해준다.
②스키타이인들은 황금을 숭배 대상으로 하여 카자흐스탄과 신장 위구르 북부지역에서 스키타이인들의 금동기구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들 기구는 금박을 두들겨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스키타이의 황금문화는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도 스키타이 황금 문명전이 열린 바 있다. 이후의 아시아 유목국가들도 황금문명의 전통을 이어온 것 같다. 몽골 국립박물관에서는 흉노·돌궐로 이어지는 황금장식유물을 볼 수 있다.
③ 마지막으로 바위에 새겨진 그림, 암각화다. 유목민이 본격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알타이는 중앙아시아 고원지대로 몽골·중국·카자흐스탄·러시아 4국의 국경이 접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고대 도로는 수많은 민족의 이동 경로가 되었고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한다. 알타이 지역에서 기념비·고대비문·쿠르간(고분)·석상 등이 오래전부터 발견된 바 있는데, 이 지역에서 다양한 양식과 기법의 암각화가 수백 군데에서 발견되고 있다. 알타이 암각화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나타나지만 청동기 시대 및 초기 철기시대에 집중되어 있고, 특히 초기 스키타이시대(BC 8~6C)의 암각화도 발견되고 있다.
그렇다면 스키타이와 그 이후 초원의 기마국가와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될까.
스키타이는 스키토-시베리아 문화라고 명명되는 흔적이 유라시아 스텝지역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은 이동성·집단성과 가공할 전투력을 특징으로 하는 특유의 군사집단으로 이들의 생활풍습이나 전술·전법은 후대에 등장하는 기마유목민들의 국가인 흉노· 선비· 돌궐· 위구르· 몽골 등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스키타이는 BC 3세기말 몽골지역을 통일한 흉노와 이후의 돌궐 등과도 문화적인 친연관계가 이어지고 기마유목군단의 전통도 확실히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와의 친연성이다.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도 ①많은 적석총(돌무덤)의 유적과 유목민속의 흔적 ②신라의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금관을 비롯한 화려한 황금문화 ③울주군의 천전리 암각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등에서 알타이 암각화와 관계가 있다고 보여지는 다수의 암각화 등은 우리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BC 24세기경 건국한 고조선과 이후 여러분파로 갈라진 기마민족들, 몽골고원·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일찍이 서진하여 활약한 스키타이, 이어지는 흉노 그리고 몽골고원 동부에서 활약한 정통고대국가 체제의 기마군단국가인 고구려, 몽골 고원 서부지역에서 활약한 고대국가 돌궐, 그리고 이들을 계승한 많은 기마민족국가들은 어떤 관계로 생각해야 할까. 이제는 보다 열린 시각으로 유라시아 역사와 세계사를 보면서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야할 대목이라 생각한다.
‘흉노-신라의 유전자 친연성, 가야지역인 김해 대성동 고분의 북방계 유물들 알 수 없는 그래서 더욱 궁금해지는 북방민족이고 스키타이다. 그렇다면 스키타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일까. 나는 시베리아 바이칼지역의 선사 유적지와 청동기문화를 이루던 안드로노보 청동기문화를 주목한다. 이는 상상이지만 개연성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