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

광화문 한글현판 달기 반대자들에게 하는 말

작성자나라임자|작성시간26.02.10|조회수1 목록 댓글 0
https://blog.naver.com/idaero47/224178187533
[문화재위원들과 문화재청장에게 하고 싶은 말]
[문화재위원들과 문화재청장에게 하고 싶은 말] 한문 세상에서도 제 글자인 한글을 만든 세종을 보라! 광화...
blog.naver.com
[문화재위원들과 문화재청장에게 하고 싶은 말]

한문 세상에서도 제 글자인 한글을 만든 세종을 보라!


광화문 현판 문제는 문화재 복원보다 새 문화재 창조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광화문과 세종과 한글은 우리겨레와 나라의 상징


나라에서 돈을 들여서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은 부끄럽고 잘못된 지난날을 되살리고 이어가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 한아비들 삶과 잘잘못을 알고 잘못을 깨달아 더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목적이고 뜻이다. 또 문화재 복원보다도 새로운 문화재 창조가 더 중요하고 절실한 것이다.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중국 한자를 쓴 것은 사실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 글자인 한글을 만들고 쓰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다. 한글이 태어나고 570년이 넘었는데도 제대로 쓰지 않고 한자타령이나 하고 있는 것은 못난 일이고 슬픈 일이다.


더욱이 고종 때 임태영이 쓴 현판을 달고 나라가 잘 된 것도 아니고 바로 망해서 일본 식민지가 되었다. 그런데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들이 중국이나 일본처럼 한자를 계속 쓰고 그 굴레 속에서 살자는 한자 숭배자들에 둘러싸여 한글현판을 떼고 한자현판을 달려고 국민을 속였고 국고를 낭비했다. 문화재는 원형복원이 원칙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 것은 이해한다. 이제 지난날 잘못한 것을 국민에게 사죄하고 그 잘못 낀 첫 단추를 바로 끼워야 한다. 이 문제는 문화재복원 문제를 넘어 나라와 겨레 운명이 달린 큰 문제다.


그러니 다시 새 현판을 만들어 달기 전에 지난날 잘못된 현판을 만들기로 한 결정한 사람, 제작에 관여한 사람, 그리고 원형복원이 원칙이라며 국민을 속인 관계자들을 찾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건 또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함이다. 한자현판이 세 달도 안 되어 갈라졌고 땜질을 했으나 그 현판이 원래 빛깔과 다르다고 다시 만들기로 했다. 그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한 것인데 문화청장이나 문화재위원들은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없다. 이건 나라 체면을 그렇게 깎아 내리고도 잘못한 줄 모르거나 숨기는 죄악일 뿐이다.


문화재청은 나라 얼굴이나 마찬가지인 광화문현판을 누더기로 만들어놓고, 우리 겨레 보물이고 자랑이며 상징인 한글을 짓밟고도 오히려 잘난 체 큰소리치고 있다. 1968년 봄 나는 박정희 정부에 한글이 빛나야 이 나라와 빛난다고 외쳤고, 방송도 내 말을 하루 종일 뉴스에 내 보냈다. 그 때 정부는 국민의 소리를 들었고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문에 한글 문패를 달고 한글을 빛내는 정책을 폈다. 그리고 나라가 일어나 한강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런데 그 문패를 떼고 단 한자현판이 세 달도 안 되어 금이 가고 나라는 10년도 안 되어 국론이 갈려서 밤낮 싸우니 나라가 흔들리고 일본이 다시 우릴 넘보고 있다.


2010년 광복절에 우리 겨레 상징인 한글로 쓴 광화문현판을 떼고 일본에서 가져온 보이지도 않는 찍그림(사진)을 복제해 모조품을 달고 원형 복원했다고 국민을 속였는데 세 달도 안 되어 그 현판이 금이 갔다. 이건 모두 우연스러운 일이 아니고 하늘이 우리에게 똑바로 하라는 알림이다. 문화재위원들은 이제라도 제 얼 차리고 또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2. 광화문 현판은 원형복원보다 새로운 자주 문화 창조로 보라.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들은 문화재복원은 원형복원이 원칙이고, 1997년에 고종 때 임태영이 쓴 현판을 복원하기로 결정했었다고 고집 부린다. 부끄럽고 잘못된 문화재를 돈 들여서 복원하는 것은 잘하는 일이 아니다. 고종 때에 무리하게 경복궁을 복원하다가 나라 재정이 파탄 나서 나라가 기울고 일본에 나라까지 빼앗겼다. 더욱이 그 때 현판 글씨를 썼다는 임태영이 복원 책임자였는데 복원하려고 모아 논 목재가 모두 불타서 임태영은 처벌 대상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한마디로 원형 복원한다며 내세운 그 현판을 달고 나라 망한 것인데 그게 좋다고 고집 부리니 답답하다. 나라를 일으킬 생각이 아니고 망치려고 하는 거 같다.


일제 강점기에 서울역을 처음 지었을 때 그 문패는 京城驛이라고 한자로 되었었다. 그리고 서울 지명이 옛날에는 漢城, 京城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에는 서울’로 바꾸었다. 이건 부끄러운 과거를 되살리자는 게 아니고 나라를 일으키자는 것이다. 우리는 그때 그 정신으로 오늘날 사람이 오늘날 지은 광화문에 다는 새 문패를 한글로 광화문’이라고 달자는 것이다. 그건 오늘날 시대정신과 자주정신을 담고 새로운 우리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화재위원들과 문화재청이 임태영이 쓴 한자를 고집하는 것은 일제 때 서울역 사진을 보니 京城이라고 썼다며 그 한자를 고집하는 것과 같다. 머리가 돌아가고 재치(센스) 있는 문화재위원들이라면 내 말을 바로 알아들을 것이다.

오른쪽은 처음 서울역을 지었을 때 문패 京城驛 모습, 왼쪽은 광복 뒤 서울역 문패 모습. 일제 때 지은 서울역에 한자로 그 이름을 썼지만 대한민국 때에 한글로 서울역이라고 그 이름을 바꾸어 써서 달았다. 그리고 경복궁 안에 일제 때 조선 총독부 건물이 있었고, 한동안 대한민국어서 그 건물을 중앙청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때려부수고 옛 궁궐 모습 기완집을 지었다. 이 모두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정신과 상황에 따라 바꾼 것이다.
3. 중국 자금성 천안문을 보라.




이렇게 알려주어도 이해 못하는 문화재위원들이 있을까봐 중국 이야기를 더 하련다. 중국 북경의 자금성 안 현판은 옛 한자와 만주글자로 된 것이 많다. 그러나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본래 문 이름은 오문(午門)이지만 오늘날 천안문엔 옛 한자와 만주글자가 없고 오늘날 중국 국가 상징 문양이 걸려있다. 또 그 아래에 정치 지도자인 모택동 사진과 옛 한자가 아닌 오늘날 중국 간체자로 구호를 써 놓았다. 중국인들이 문화재가 중요한지 몰라서 그랬다고 보지 않는다. 오늘날 중국이 한족 나라인데 만주족 글자가 있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고 나라를 일으키는데 걸림돌이니 오늘날 국가 상징과 오늘날 글자를 문에 걸었다. 그건 오늘날 시대정신과 실용정신, 국가 이익을 위해서 부끄러운 원형복원을 고집하지 않은 것임을 문화재위원들은 왜 모르는가! 광화문현판은 단순히 원형복원을 넘는 매우 큰 특별한 일이다!
오른쪽은 중국 북경에 있는 자금성 안에 있는 옛 현판,왼쪽은 오늘날 글자가 쓰인 천안문 모습. 중국 천안문은 옛 궁궐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문이지만 오늘늘 중국 상징이고 얼굴인데 옛 한자와 만주문자가 아닌 오늘날 글자인 간체자로 글을 쓰고, 오늘날 중국 휘장과 정치인 사진을 걸어놓고 나라를 일으켜서 미국과 맞서는 강국으로 일어났다.


경복궁 광화문도 처음엔 이름이 오문(午門)이었으나 세종 때에 ‘광화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세종과 세종 때 분들이 문화재를 우습게 여겨서 처음 이름을 버리고 새 이름, 새 글자로 현판을 단 게 아니다. 중국 천안문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자주문화 창조에서 나온 일이다. 중국도 세종도 문화재를 국가 발전과 국민 자긍심을 높여서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정신으로 그런 것이다. 세종은 나라를 빛내자고 광화문이라고 바꾸고 나라를 진짜 빛냈다. 중국도 그렇게 문패를 달아서 국민을 똘똘 뭉치게 하고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뜻이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어서 오늘날 미국과 맛서는 힘센 나라가 되었다.

3. 한 건물에 앞에는 한글, 뒤에는 한문 현판을 단 우리 역사가 있다.


우리 한글단체는 2005년 새로 짓는 광화문에 한글현판을 뗀다고 할 때에도 광화문 위와 아래, 또는 앞과 뒤에 한글과 한자를 함께 달자는 제안을 한 일이 있다. 나라를 일으키겠다고 경복궁을 복원했지만 나라가 망하고 있던 1896년 중국 사신을 맞는 ‘迎恩門’을 부수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울 때에 북쪽엔 ‘獨立門’이라고 한자로 쓰고 남쪽엔 ‘독립문’이라고 한글로 썼다. 그 때 선배들은 중국 사신을 모시던 慕華館엔 ‘독립관’이라고 한글로 새 문패를 달았고 영은문도 부수고 세운 독립문 문패를 우리 글자인 한글로 쓴 것이다.


1897년 세운 독립문에는 앞에는 한글, 뒤에는 한자로 썼다. 왜 그랬을까? 본래 저 자리에는 영은문이라는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문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 속국에서 벗어나 독립국이 되자면서 그 영은문을 때려부수고 그 자리에 저렇게 독립문을 세우고 북쪽(중국 쪽)에는 한자로 이름을 쓰고 남쪽에는 한글로 독립문이라고 썼다. 옛 조선새대 광화문은 흔적도 없어서 다시 짓는 마당에 광화문도 중국 경복궁 안 쪽에는 한자현판을 달고 바깥쪽에는 한글현판을 다는 것이 바른 길이다.
대한제국 때 선열들이 바보요 못된 문화재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랬나! 그 때 오랫동안 중국과 중국 한문 속에서 살았지만 새로운 자주 문화 차원에서 한글로 독립신문도 창간하고 이렇게 독립문도 세운 것이다. 1968년 정부도 국민 소리를 받아들여서 한글전용 정책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광화문에 한글 문패를 단 것도 이 정신과 통하는 일이다. 또한 세종대왕 한글창제 정신을 살리는 일이었다. 문화재위원들은 얼빠진 언론인이 지지한다고 그러지 말라!


4. 한 건물에 두 개 현판을 단 문화재도 있다.


그 밖에 북한 국보 문화재인 대동문에 위와 아래에 다른 글씨체로 된 현판을 달았고 근래에 짓고 단장한 경북 기념물인 경주 서악서원도 한 건물에 두 개 현판이 걸려있고, 다른 곳엔 한글과 한자를 같이 쓴 현판도 있다. 만약에 오늘날 새로 지은 광화문에 한글이 태어난 곳이 경복궁임을 알려주고 한글을 빛내겠다는 시대정신과 자주정신을 담아서 광화문광장 쪽은 한글로, 경복궁 안쪽에는 한자로 달면 매우 큰 관광 이야기 거리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중국 관광객 해설사가 광화문과 경복궁 현판이 한자로 쓴 것을 가리키면서 한국은 옛날에 중국 속국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왼쪽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19호 경주 서악서원, 오른쪽은 북한 문화재인 대동문 모습이다.


경상도에 사는 어떤 여성시민운동가는 자신은 지방에 살기 때문에 서울에 광화문에 한글이든 한자이든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봤다.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위원들 수준도 그런 의식 수준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한글단체가 광화문 문패 글씨를 한글로 달자는 것은 광화문이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문이니 한글이 태어난 곳임도 알리고 자랑하고 한글을 빛내자는 차원에서 그렇게 하자는 것이고, 이 일은 한문 세상일 때에 우리 글자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자주문화 창조 정신과 그리고 그 뜻을 이어서 살린 독립신문과 독립문에 한글을 쓴 정신, 주시경 선생과 여러 한글 선열들 독립정신을 살려서 어깨를 펴고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뜻이다. 광화문이 조그맣지만 그 상징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문화재위원 몇 사람 생각대로 할 일이 아니다.


문화재위원들은 한글이 우리에게 가장 귀중한 문화재인데 한글이 태어나고 570년이 넘었는데 안 쓰는 건 부끄러운 일이란 것도 느끼지 못하는가! 한글난체는 다시 힘주어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 문인 광화문에 훈민정음체로 광화문’ 이라고 문패를 달고 세종 때처럼 나라를 일으켜서 후손에게 물려주고 인류문화발전에도 이바지 합시다. 광화문에 한글문패를 달고 한글을 자랑하고 빛냅시다. 한글이 빛나면 한겨레와 나라가 빛납니다.“라고 외치고 호소한다. 이 외침과 호소는 내 한 사람 생각이나 말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세종대왕과 겨레가 잘되길 바라는 선열들 뜻과 한글을 사랑하는 국민들 생각을 전하는 것이다.


한말글문화협회 이대로 대표 글
------------------------------------------------------------------------------------------------------------------------
문화재 [文化財] 문화 활동에 의하여 창조되어 그 가치가 높다고 인정되는 유형, 무형의 축적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문화 활동에 의하여 창조되어 그 가치가 높다고 인정되는 유형, 무형의 축적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문화재 보호법이 정하는 유형 문화재, 무형 문화재, 민속 문화재, 인간문화재, 기념물, 전통적 건조물 등이 있다.


한자 복원, 우리가 중국 속국이었고, 한글이 태어나고 400년이 지났는데도 한글을 안 쓰고 한자를 쓰고 있었다는 부끄러운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재청이 광화문현판을복원했다고 했는데 복원이 아니라 한자속국 재현이며 부끄러운 역사 재현이다. 그리고 추정과 상상으로 복제품을 달고 문화재를 복원했다고 했다. 국민을 속인 것이다. 언론은 그 속임수에 가담하고 거들었다. 감사원도 마찬가지다 나라의 부끄러움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걸려있는 한글현판은 우리 자주문화재요 창조문화재였는데 부끄러운 우리 역사를 재현하자고 그 창조 자주 문화재를 헤손해버렸다. 그 시대 유물이고 산업시대 문화재 원형이고 역사인데 처음 것만 문화재라고 생각하는 모자라는 문화재위원들에 의해서 자주 문화재가 짓밟힐 것이다.


◇복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하지만 복원만이 당연한 결정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인 파르테논 신전을 떠올려 보자. 장중한 기둥들이 늘어서 있지만 완전한 모습은 아니다. 건축양식은 물론 건축물의 재료까지 대부분 확인할 수 있지만 복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념건조물과 유적지의 보존과 복원을 위한 국제 헌장인 「베니스 헌장」(1964)에는 “추정(conjecture)이 시작되는 순간 복원은 멈춰야 하며, 불가피한 변화의 경우 그 흔적을 남겨야 한다”고 돼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청에서 2009년 정한 「역사적 건축물과 유적의 수리복원 및 관리에 관한 일반원칙」에도 “복원은 고증에 의해 충분하고 직접적인 증거를 통해 역사, 문화적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경우에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화재와 관련된 기본 원칙은 복원이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우선 복원은 수리, 수복, 복원 등 다양한 보존 방법 중에서도 가장 큰 정도의 변화이기 때문에 자칫 후대에 왜곡된 역사를 남겨줄 수 있다. 복원은 일부분을 고치는 수준이 아니라 특정 시점으로 전체 또는 일부를 되찾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김봉렬 교수(한국예술종합대학 건축과)는 “복원된 건축물은 100년 후에는 곧 역사가 돼 후세에 꼼짝할 수 없는 것이 된다”며 무분별한 복원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또 건축물의 터 자체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역사를 기억해 온 장소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김 교수는 “장소(site) 자체가 역사적인 건축물이기 때문에 그나마 있는 것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건축물을 세우는 것이 오히려 유적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0년 넘게 발굴돼온 경기도 양주 회암사지의 사례를 들어 “회암사 박물관에서는 이미 영상과 모형 등을 통해 시각적으로 회암사를 보여주고 있다”며 “아무도 살지 않는 폐사지에 굳이 건물을 세울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복원이 이뤄지는 이유들=이런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복원이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복원의 충분한 자료가 있는 경우가 있다. 『화성성역의궤』의 도면을 토대로 복원된 수원화성 복원과 사진 및 실측자료를 바탕으로 복원된 숭례문이 복원된 그 사례다. 이 경우 문화재의 미적, 역사적 가치를 살리기 위해 복원하게 된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당대의 필요에 따라 복원이 이뤄지는 경우도 잦다. 국가에서는 건축문화재가 민족 문화의 상징물로서 가치가 높기 때문에 복원을 추진하고자 한다. 또 지방자치단체 역시 관광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복원을 실행해오고 있다. 우리가 복원을 당연하게 여길 만큼 자주 복원이 돼 온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복원이 전통 기술 및 문화 보존 방법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강근 교수는(서울시립대 건축학과) “전통 기술은 사용되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복원 작업이 전통 기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이번 숭례문 복원 과정에서 전통방식으로 기와를 굽는 등 여러 전통 기술들이 주목받은 사례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복원이 필요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에 복원 담당자들의 합의를 통해 복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김 교수는 적절한 합의를 통해 성공적으로 복원한 사례로 1980년대 경주 안압지 복원을 꼽는다. 안압지의 경우 못 주위로 26개의 건물터가 발굴됐는데 여기에 26개소의 건축물을 세우는 대신 3개소의 건물만 복원하고 나머지 터에는 이곳에 건물이 있었다고 표시하는 데 그쳤다. 현대인들이 건축물을 새로이 세운다고 해서 완전하게 원형을 되살리는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하되 건축물의 재현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미적가치와 터가 주는 상상력을 같이 살린 것이다.(그림 ①)

[출처] 문화재 복원 논란|작성자 비타민짱




덕수궁 안에 석조전은 조선시대 것이 아니라고 나무로 짓은 것이 아니라고 부술 것인가 묻고 싶다.


그러나 이희봉 교수(중앙대 건축학과)를 비롯한 고건축, 역사 전문가들은 다양한 증거를 근거로 이를 반박했다. 이들은 시와 그림 등 인문학적 증거를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판벽을 설치해버리면 옛 문인들이 경포대에서 볼 수 있다고 기록한 증봉낙조(甑峯落照, 증봉으로 지는 해넘이)가 보이지 않고, 정자가 훤히 드러나게 그린 옛 그림들과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누각 문화에서 판벽을 설치하는 일이 드물고, 관람이라는 건축물의 목적에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로 2011년 열린 심포지엄은 판벽 제거를 찬성하는 측의 우세로 마무리됐다. 당시 경포대 판벽 제거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공개 심포지엄을 주도한 이희봉 교수는 “공개 심포지엄에서 논의된 결과에 따라 과감하게 원상복구 할 수 있도록 구속력이 따르게 해야 한다”고 절차상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경포대는 판벽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이다.

현대적 융통성 어디까지 허락될 수 있나=「베니스 헌장」에서는 “증축(첨가)은 건물의 중요한 부분, 전통적 환경, 구성의 균형과 주변과의 관계를 바꾸지 않을 때에만 허용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현대적인 변형은 일차적으로 지양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의 무분별한 첨가의 사례로는 석가탑 상륜부가 있다. 석가탑의 경우 발견 당시 상륜부에 아무런 장식이 없었으나 60년대 복원 때 다른 탑의 꼭대기 장식을 모방해 임의로 장식물을 꽂아 넣었다. 우리가 답습해서는 안될 잘못된 변형인 것이다.

그러나 2010년 광화문 현판 사례처럼 현대의 변형이 근거가 있으면서도 건물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경우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문화재청은 2010년에 사진자료를 토대로 현판을 달았지만 곧 균열이 생겼고 현판을 다시 제작하게 되면서 한자 현판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광화문이 국가적 상징물인 만큼 단순히 한자 현판으로 복원할 것이 아니라 한글로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한글 현판을 지지했던 전봉희 교수는 “대외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자리인데 이 문을 단지 지나간 왕조의 궁궐 정문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며 한글 현판을 지지하는 근거를 밝혔다.

또 전 교수는 “현판은 건축물 자체와 달리 역사상으로도 당대적 요구에 따라 훨씬 더 손쉽게 바뀌어왔다”며 문화재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논란 끝에 문화재위원들은 2012년 12월 “한글 현판은 문화재 복원 정신에 맞지 않다”며 1885년 사진에 나온 글씨를 근거로 한자 현판을 제작할 것을 결정했다.

또 기술적인 문제로 복원에 융통성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신응수 대목장은 경복궁 근정전 해체 보수를 맡았던 당시 옛 방식의 지붕이 추녀와 기둥에 큰 하중을 주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때문에 30년마다 건축물을 해체, 보수해야 해 문화재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는 지붕 속을 채우는 전통기술 대신 덧집을 설계하는 현대적인 공법을 제안했고 전문가들의 동의로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바람직한 복원을 위한 개선점들


우선 문화유산 보존 및 복원 논의와 관련해 투명성이 제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현재 문화재 사안에 관한 최고 심의자문기구는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이며 이들의 결정은 복원 여부에 강한 영향을 끼친다. 문화재위원 자격 요건에는 불교계, 언론계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재 전문가들이 위원회로 임명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위원 대다수가 전, 현직 교수로 이뤄져 있다. 전봉희 교수는 문화재위원회의 권한을 고려해 “인원구성이 좀더 다각화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는 공개적인 공청회나 심포지엄 등도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된다. 성공적인 복원으로 꼽히는 베니스의 페니체 극장 복원 당시에는 2년간 4차례 이상의 공개 심포지엄을 거쳤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희봉 교수는 “문화재 관련 공무원 주관 심포지엄에는 구색 맞추기 인원을 구성하지 반대론자들은 초청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찬성과 반대 측이 골고루 참석하는 심포지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문화재 보존∙복원과 관련된 지방자치단체 직원들의 전문성도 요구된다. 현재 지역 문화재를 담당하고 있는 각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재 담당 직원들은 순환보직으로 인해 문화재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가지기가 힘들다. 전봉희 교수는 또 “문화재 담당이 되면 한직으로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경향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숭례문 화재 사건의 경우도 관리를 맡은 중구청에 전문가가 있어서 빠른 판단을 내렸다면 피해를 훨씬 더 줄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며 전문가 배치가 부족한 상황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복원은 과거 건축물에 대한 불확실한 추측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부족한 점을 보완해 좀더 나은 복원이 가능하다면 이를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출처] 문화재 복원 논란|작성자 비타민짱

* 위 글을 십여 년 전 문화재복원 전문가들이 누리통신에서 문화재복원 토론을 하면서 "비타민짱"이라는 분이 내가 쓴 글을 본보기로 내세우고 쓴 글을 갈무리해 두었었는데 요즘 광화문에 한자와 한글을 두 현판을 다는 이야기가 있어 오늘 내 블로그에 옮겼습니다.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리대로 아룀.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