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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힌샘 주시경기념관을 짓자

작성자나라임자|작성시간26.06.07|조회수2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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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힌샘 주시경 기념관을 짓자!
한힌샘 주시경 스승 뜻과 꿈을 되살리고 빛내자 한힘샘 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896년 배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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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사무실에 한힌샘 주시경 선생님 얼굴 찍그림을 걸고 한글날을 공휴일로 되찾은 글쓴이 이대로.

한힌샘 주시경 스승 뜻과 꿈을 되살리고 빛내자



한힘샘 주시경은 1876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1896년 배재학당에 다닐 때 서재필, 헐버트와 함께 한글로 독립신문을 만들었고 독립신문사 안에 한글 쓰기를 연구하는 ‘국문동식회’를 만들고 한글을 누구나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길을 찾고 만들기 시작해서 1907년에는 정부 안에 있는 ‘국문연구소’에서 책임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1908년에 민간 연구학회인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를 만들고 한글 길을 닦고 제자들을 길렀다. 이는 세종대왕이 만들어준 한글을 널리 쓰고 세종대왕의 뜻과 꿈을 이루려고 한 일로서 매우 잘한 일이고 고마운 일이다.


일찍이 세종대왕께서 훌륭한 우리 글자를 만들어주시면서 널리 쓰라고 했는데 중국을 섬기는 성리학자들이 이 나라를 이끌면서 조선 450년 동안 한자로 교육하고 공문서도 쓰고 관리도 뽑았고 한글은 제대로 쓰고 빛내지 않았다. 한힌샘은 그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쓰는 말글살이를 해서 튼튼한 나라를 만들려고 애썼다. 이는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든 것 다음으로 잘한 일이었고 말글살이 혁명이었다. 한힌샘이 태어난 150돌을 맞이해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한 한힌샘이 어떤 분이었고 그 분의 뜻과 꿈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한힌샘은 어떤 분이고 그 분의 뜻과 꿈은 무엇인가?



1. 한힌샘은 먼저 깨달았고 길을 연 혁명가였다. 조선시대 한글이 태어나고 성종 때까지 50여 년은 나라에서 한글을 살리려고 힘썼으나 조선 내내 모화사대주의자들인 성리학자들이 나라를 지배하고 한글을 제대로 쓰지 않았으며 세종정신을 빛내지 않았다. 이것은 잘못이기에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닫고 누구나 한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길을 닦았다. 스스로 깨닫고 이렇게 한 것은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든 것과 같은 큰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2. 한힌샘은 빼어난 한글학자로 한글 길을 열었다. 배재학당에 다닐 때 서재필, 헐버트와 함께 한글로 독립신문을 만들었는데 그때 그 신문사 안에 한글 길을 연구하는 ‘국문동식회’를 만들고 연구했고, 정부 안에 있는 국문연구소 책임 연구원으로 일했고. 상동교회에서 한글을 가르친 제자들과 함께 민간학회인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를 만들어 한글을 연구하고 훌륭한 제자들을 키웠다. 그리고 〈국문론〉을 시작으로 《국어문법》 《소리갈》 《말의 소리》 들 많은 저서를 남긴 훌륭한 한글학자였다. 이렇게 스스로 깨닫고 한글 길은 간 것은 위대한 일이다.


3. 한힌샘은 훌륭한 스승이었다. 스스로만 한글을 알고 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알아야 기에 온 힘과 마음을 다해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최현배, 김두봉, 김윤경, 이윤재, 최현배, 신명균, 김두봉, 권덕규, 정열모, 이규영, 장지영, 들들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길러서 돌아가신 뒤에도 제자들이 한글을 갈고 닦을 수 있게 했다. 수많은 학교에 한글 책 보따리를 싸들고 바쁘게 다니기에 ‘주보따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돈을 많이 벌어 저만 잘 살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한글을 널리 쓰게 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이 또한 매우 잘한 일이다.


4. 세종대왕 뜻과 꿈을 실천한 분이었다. 한글은 연산군 때부터 천대받고 제대로 쓰이지 않았다. 성리학자인 이퇴계, 이율곡, 송시열 들이 정치 지배자로서 한자만 섬기고 한글을 천시했고 정조 때 실학자라는 박제가는 아예 중국어를 우리 공용어로 쓰자고 하고 박지원과 정약용들은 중국을 닮자며 한자로만 글을 썼다. 이는 한글과 세종정신을 못살게 하는 얼빠진 잘못이었다. 그래서 한힌샘은 이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애썼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든 것은 한배검의 홍익인간 정신과 애민정신에서 나온 것으로 겨레와 나라를 살릴 일이기에 그 정신을 실천한 것이다.


5. 우리말글로 이름을 짓고 쓴 선구자요 개척자였다. 5천 년 전부터 쓴 우리말이 있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우리 글자가 있는데 우리말글로 이름을 짓지도 않고 적지 않았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기에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 우리말을 우리나라 말이라고 할 수 없고 우리 글자를 우리나라 글(국문)이라고 할 수 없으니 우리말 이름을 ‘한말’, 우리글자 이름을 ‘한글’이라고 짓고 당신의 이름도 ‘한힌샘’이라고 바꾸어 부르고 큰 딸 ‘송산’은 ‘솔메’로, 큰아들 ‘삼산’은 ‘세메’, 둘째 아들 ‘춘산’은 ‘봄메’, 셋째 아들 ‘왕산’은 ‘임메’라고 한말글 이름으로 바꾸었다. 이 일도 참 잘한 일이다. 이 밖에도 잘 한 일이 많지만 줄인다.


한힌샘 주시경 기념관을 짓자!


한힌샘은 겨레와 나라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세종정신을 실천한 분이었다.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해야 우리말과 얼이 살고 빛난다는 것을 알고 우리 한말글을 지키고 갈고 닦았으며 한말글로 글을 쓰고 빛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에도 한힌샘 제자들을 중심으로 애국지사들이 조선어학회(한글학회)에서 한글날을 제정하고, 한글맞춤법을 만들고 표준말을 정했으며 말모이도 만들었다. 그래서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한말글로 교육하고 공문서도 쓸 수 있게 되어서 국민 모두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고, 그 바탕에서 나라가 빨리 일어나 선진국으로 일어났다. 이런 한힌샘을 제대로 모시고 받들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나라가 일어난 것은 모두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할 수 있어서 된 일이고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과 한글을 갈고 닦은 한힌샘과 그 제자들 덕분이다. 문맹자가 90%인 한자를 쓰던 조선시대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5천 년 우리 역사상 한글을 만든 조선 세종 때와 한글을 살려서 쓴 대한민국 때가 가장 나라가 일어났고 백성들이 잘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수 천 년 동안 우리 글자가 없을 때에 한자를 쓰면서 뿌리 내린 한자말과 일본 강점기에 길든 일본식 한자말이 우리 말글과 한힌샘의 뜻과 꿈을 피어나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다. 한글이 태어나고 58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중국 한문으로 이름을 짓고 한자로 적자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한힌샘은 세종대왕 뜻과 꿈을 이루려고 우리말로 이름도 짓고 예부터 쓴 우리말을 한글로 적는 말글살이를 하려고 애썼다. 이제 ‘한힌샘기념관’을 짓고 한힌샘 뜻과 꿈을 살리고 빛내자. 광복 뒤 일본말을 버리고 우리말을 도로 찾아 쓰려고 했다. 그때 ‘문법’이 아니라 ‘말본’이라고 했고 ‘명사’가 아니라 ‘이름씨’라고 했는데 일본 한자말을 쓰자는 이들에게 밀려 사라졌다. 이제 우리말로 된 말본 낱말부터 살려 쓰자. 그리고 나라 돈에 조선시대 한글을 못살게 군 성리학자들 얼굴 사진은 있는데 한글과 세종정신을 살린 분들은 없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한힌샘 얼굴 사진이 담긴 나라 돈을 만들자. 이 일도 ‘한힌샘기념관’을 짓는 것과 함께 한말글과 세종정신을 살려서 더 좋은 나라가 되는 일로서 빨리 꼭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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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세종정신을 업신 여기고 중국과 한문을 섬긴 성리학자들인 이퇴계 얼굴사진이 담긴 돈. 아래 사진은 이율곡과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 얼굴이 담긴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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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시경마당에 주시경기념물을 세웠다. 그러나 이제 한힌샘주시경기념관을 세우고 한글과 세종대왕의 뜻을 살리고 빛낸 주시경 선생 업적과 정신을 알리고 빛낼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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