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토(가림다) 문자의 흔적을 찾아라
가림토(가림다)문자는 고조선 단군 갸륵 BC2181년에 만들었다.
가림토문자 38자중에서 28자 택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세계에 가림토문자와 같은 문자가 많다.
학계에서 가림토문자를 아직 인정 하지 않는다. (한글과 같고, 만든 년대 까지 있으나 의문점이 많고, 문자변천사에 맞지 않고, 아직 확실히 고조선 때 가림토로 쓰여 진 문자를 찾아 입증하지 못했다.)
1. 훈민정음은 고전은 모방하였다.
한글과 닮은 글자가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과 모음은 천지인의 천부경 사상에서 따왔다고 했지만 세종신록에 “훈민정음은 고전(古篆)에서 모방하여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최만리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에서 “전조선 때부터 전해오는 언문 을 빌려 쓰신 것이긴 하지만......”라고 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 지기전 분명 한글과 모양이 같은 글자가 민간에서는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고전 어떤 것인가를 써 주지 않았다. 그래서 세계의 학자들은 몽골의 파스파 문자에서 따왔다고 믿고 있고, 일본의 학자들은 한때 일본의 신대문자를 모방하였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2. 가림다(가림토)문자
단군세기(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이암(李巖)이 저술함)에 제3세 단군가륵이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한단고기의 단군세기편(임승국 번역, 정신세계사 출판 67쪽)에
“경자2년(BC2181) 당시 풍속이 같지 않고 지방마다 말이 서로 달랐다.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녹도문자)가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백리 되는 나라의 땅에서도 통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이에 삼랑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正音)38자를 만들케 하니 이를 가림토(加林土)라 하였다.”
가림토 문자는 기록대로라면 4200여 년 전의 글자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영어 알파벳보다도 1000년이나 더 오래 된 글자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녹도문자
가림토 문자 이전에 단군조선 이전시대인 배달국으로부터 계속 사용해온 진서(眞書), 즉 녹도문자(사슴의 발자국을 형상화한 문자)가 있었다. 그러나 문자 체계가 이루지지 않아 배움이 부족한 일반 백성들이 녹도문을 사용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3.가림토문자에서 훈민정음이 만들어졌다.
가림토문자는 4200여 년 전 고조선 단군갸륵 때 만든 글자로 가림토문자 38자중에 28자의 모양을 따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세종신록에 보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하자 최만리 등이 반대하는 상소문에는 훈민정음은 언문을 빌려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민간에서 쓰던 언문이 가림토문자 였을 것이다.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用音合字盡反於古實無所據(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근본 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전혀 옛 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借使諺文自前朝有之以今日文明之治變魯至道之意尙肯因循而襲之乎(전조선 때부터 전해오는 언문 을 빌려 쓰신 것이긴 하지만, 지금은 한자를 써야 할 때인데 어찌 지나간 것을 따르려 하시오니까?)
諺文與文字誓不干涉專用委巷俚語者乎 (언문은 한자와는 서로 아무런 상관됨이 없는 시골 것들이 쓰는 말일 뿐이옵니다.)
조선 세조때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28자의 근본이『징심록』의 가람토문에서 취해졌다.”고 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4. 가림다문자에서 파생된(?) 세계의 문자들
가림토 문자와 거의 같은 문자는 일본, 인도, 몽고 등 단군조선의 영향력이 미치는 나라에 많이 남아 있다.
1) 인도 구자라트 문자
인도 남부 구자르트 지방의 구자르트 문자모양은 한글과 거의 같다.
이 지역은 고대에 우리 민족이 인도로 이동해가서 세운 것으로 추측되는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 드라비다족의 후예가 사는 지역이다. 이 시대에 가림다 문자를 가져가가서 구자라트 문자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구자라트인들이 사용하는 타밀어는 문자뿐만 아니라 발음과 뜻이 비슷한 단어들(나-난, 너-니, 엄마-엄마, 아빠-아빠, 보다-봐, 날-날, 오다-와, 나라-나르, 너 이리와-니 잉게와 등)이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산스그리스트어도 우리 언어와 비슷하다.
2) 일본의 신대문자
일본의 신대 문자(아히루문자)도 자기들 주장대로 년대가 700년대가 맞다 면 우리 유민이 가져간 가림다 문자일 것이다. 일본은 단군조선 이래 한민족이 건너가 세운 나라라는 것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일본인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일본의 학자들은 거꾸로 한글이 아히루문자를 모방했다고 선전하다가 가림다 문자를 보고 또 신대문자의 제작연대의 불확실성에서 모방설을 취소했다.
3) 파스파 문자
쿠빌라이 칸의 명을 받아 티베트 출신 승려 파스파(1235~1280)가 만든 몽골어 문자. 몽골어뿐 아니라 중국어,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투르크어 등을 표기하는 데 쓰였다. 자음 30자, 모음 8자, 기호 9개로 이뤄진 표음문자다. 은나라갑골문자
이 문자도 가림다 문자의 영향을 받아 글자 모양이 한글과 비슷하다.
4) 은나라 갑골 문자
은나라 BC(1500~1000)시대의 유물에서 출토된 소의 어께뼈에 새겨진 갑골 문자에 가림다문자와 비슷한 문자가 새겨져 있다.
5. 가림다 문자 고증을 찾아라.
한단고기에 나와 있는 가림다 문자는 그 신빙성에 문제를 삼아 학계에 의하여 아직 인정받지 못했다. 가림다 문자가 실존 했으며 고조선 때 만들어 졌음을 입증해야만 글자뿐만 아니라 세계문화에 영향을 끼쳤을 우리 고대의 문화를 찾을 수 있다.
단군세기에 이외 나오는 가림토 문자의 기록으로는.
이태백전서(李太白全書)에 “대진국(大震國:渤海)에서 가림토 정음표기로 당(唐)나라에 글을 보낸바 있었는데, 조정에서 해독하는 사람이 없어 이태백이 해독해주었다”는 내용도 함께 실려 있다.
경북 경산 영마산 바위에 새겨진 글자
일본서기 민달왕(敏達王) 원년(AD572)에 고구려가 국서를 일본에 보냈을 때 조정대신과 사관이 해독치 못하여 백제의 왕진(王眞)이 해독해 주었다
위의 두 내용은 가림토로 쓰여 진 국서였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영토였던 만주에는 가림토 문자 비석이 있다 . 그 비석을 탁본한 것이 높이 2m, 폭이 32㎝인 것이라니 비석은 이보다 더 클 것이다. 가림토 문자의 증거로 제시되는 탁본의 원래 소장자는 이상백 교수로 1930년대 만주에서 탁본을 했다고 한다
만주지역에서는 옛 토기 파편에서 가림도 문자가 세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명마산 중턱에 있는 바위(가로1.8m,세로3.4m)에서 가림토로 추정 되는 문자 다수가 새겨진 것이 발견 되었다.
이 바위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이나, 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삼천포 남쪽에 있는 남해 섬에는 우리나라의 고대 문자로 추정되는 "남해각서’가 있다.
위와 같이 가림토 문자가 옛 부터 있어 왔다는 여러 가지 증거가 있지만 학계에서는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찾고 있어 아직 인정을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옛 서적이나 바위에 새겨 진 글자나 발굴되지 않는 옛 무덤에서 가림토 문자가 나올 수도 있다. 학자 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가림토 문자가 먼 옛날부터 우리민족이 만들어 써왔다는 고고학적 근거를 찾고 그 문자가 우리의 민족의 권역이였던 동남아뿐만 아니라 인류에 문화에 끼친 영향을 찾아야겠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우리 역사를 왜곡하여 고조선 자체를 만주 벌판을 제외한 한반도로 축소한 반도사관과 식민사관을 써왔다. 해방 후에도 우리는 일본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의 역사를 그 데로 배워 온 부분이 많다.
중국은 공공연히 우리민족의 역사를 자기들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하여 국가지원 사업으로 동북공정을 추진하여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역사로, 만주의 고구려 유적지를 중국이 옛 역사로 세계 문화유산에까지 등재 시켰다.
가림토 문자에 대해 누구도 반대 할 수 없는 확실한 역사적 고증을 찾는 일은 10년,100년, 아니 그 보다 수백 년이 걸릴지 모른다.
가림토 문자를 찾아 고증하여,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자 한글의 근원을 찾고, 그때의 기록을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문자를 가졌고 광활한 만주벌판과 요동과 한반도에 걸친 큰 영토와 인류문명 발달에 큰 영향을 가졌을 우리의 역사도 바로 찾아 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