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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분석

漢字와 한글 혼용을 최초 고안한 사람

작성자마이피|작성시간19.01.20|조회수148 목록 댓글 0


漢字와 한글 혼용을 최초 고안한 사람


'한글'을 최초로 학교교육에 도입해 체계적으로 가르치도록 한 것은, 日本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였다. 당시 조선은, 왕궁이나 관료 등 일부 지식인이 한문(漢文)으로 읽고 쓰기도 했지만, 일반 민중들은 이것이 불가능하여, 방치되고 있었다. 한글은 15세기에 발명되었지만, 문자(文字)를 독점하던 특권계층의 반대에 막혀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다. 조선의 한글을 재발견(再發見)하여, 기존 日本의 '漢字-가나(仮名,일본어)혼용문'에 착안해, '漢字-한글 혼용문'을 고안(考案)한 것은 일본의 선각자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였다.
  
이후,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는 소학교(小学校) 단계에서부터 한글 교육용 교과서를 준비하여, 日本이 한반도에 세운 5200개의 소학교(小學校)에서 한글을 학습하도록 했다. 日本은 조선인(朝鮮人)으로부터 언어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조선인(朝鮮人)이 자신의 모국어(母國語)를 제대로 읽고 쓸 수 있도록 문자(文字)를 정비(整備)했다. 
  
아울러, 합병 당시, 한국인(조선인) 평균 수명은 24세였는데, 日本통치 기간 중에 2배 이상으로 수명이 늘었고, 인구(人口) 절대수 또한 배증(倍增)했다. 쌀(米) 수확량은 3배(倍)가 되었고, 아사(餓死)가 근절(根絶)되었다. 벌거숭이 산(山)에는 6억(億) 그루의 수목(樹木)이 재배되었고, 100킬로미터였던 철도가 6000킬로미터로 연장되었다. 수풍(水豊) 댐은 당시 세계 최대급의 수력발전소였다. 
  
이러한 한반도 지역 발전에 소요된 자금은, 당시 日本정부(日本국민 세금)가 모두 부담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0조 엔(円) 이상의 막대한 자금이 당시 한반도에 투입되었다. 본국(본토)으로부터 이러한 막대한 자금을 끌어다 식민지를 近代化 시킨 케이스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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