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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분석

한 언어의 구조를 알면 다른 언어의 구조가 보인다

작성자짜르르|작성시간22.02.13|조회수181 목록 댓글 0

한 언어의 구조를 알면 다른 언어의 구조가 보인다

모국어를 '제대로' 알면 외국어가 보인다

9개 국어 술술… 언어의 규칙 풀었다

 

김필영 한국학자

 

영어·프랑스어·중국어·러시아어 등 ‘8색 언어’로 세계 각국에 한국학 심기에 혼신류 지 원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김필영(56) 강남대 카자흐스탄학과 교수는 학계에서 소문이 자자한 ‘외국어통’이다. 프랑스 파리대학에서 유학한 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문학을 연구한 그는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중국어, 아랍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카자흐스탄어, 하카스어 등 무려 9개 국어를 구사한다.

 

더욱이 모든 언어 실력이 수박겉핥기 식이 아니라 학문 연구가 가능할 만큼 수준급이다. 경북 예천 태생인 그가 외국어를 처음 접한 것은 막 우리 말에 익숙해질 무렵.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마을 교회의 미국인 목사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배운 것이 시작이었다고 김 교수가 말했다.

 

“워낙 어렸을 때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목사님과 웃으면서 대화할 정도는 됐어요. 알파벳 문자도 떼기 전에 입부터 트인 거죠.” 중학교에 입학해 영어 수업을 받게된 뒤로는 해외 펜팔을 하는 데 푹 빠졌다. “지금도 잊지 못하죠. 미국 켄터키주에 사는 애니스란 소녀와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영작문에 대한 기초도 없이 무작정 편지를 교환했어요.”

 

서점에서 구입한 ‘펜팔 영작문’에 나온 문장을 베껴 쓰고 대본을 읽듯 달달 외우기도 했다. “자기소개법 같은 문장들은 그대로 외워서 써먹었어요. 문장을 많이 외우다 보니 같은 또래 아이들 중엔 영어를 잘하는 편에 속했어요.” 하지만 단편적인 암기엔 한계가 있었다.

 

문법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다양한 상황에서 써먹다 보니 실수투성이였다. 그때 영어 선생님이 그에게 문법 참고서를 건네줬다. “참고서 언저리가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붙들고 공부했습니다. 문법을 알고 나니 그동안 배웠던 엉터리 영어가 새록새록 틀을 갖추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의 영어는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수준이었다. 얼마 뒤 그가 다니던 중학교에 외국인 손님 한 분이 방문했다. 학교에서 영어 우등생인 그에게 외국인과 대화할 기회를 줬다. 하지만 ‘Don’t worry’라는 일상 대화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위축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그는 단파 라디오를 구해 BBC 방송을 들으면서 듣기 훈련에 매달렸다. “BBC를 계속 들어보니 같은 뉴스를 계속 반복해서 방송하더군요. 처음엔 거의 들리지 않던 문장도 반복해 듣다 보니 어느 순간 내용이 이해됐어요.” 1972년 대학 진학을 앞두고 김 교수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기로에 섰다.

 

사회문제에 적극적이었던 그가 국내 대학 대신에 해외 유학을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을 거쳐 프랑스에 도착해 파리대학에 입학한 그는 유럽 학생들의 언어 능력에 깜짝 놀랐다. 그들은 모국어 말고도 스페인어, 영어 등 2~3개국 말을 예사로 구사했기 때문이다. 24세라는 늦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한 그는 오기로 외국어 공부에 매달렸다.

 

“영어와 프랑스어 말고도 유엔 공식 언어는 다 정복하자는 목표를 세웠지요. 가장 먼저 도전에 나선 것은 중국어였어요. 한자를 아니까 현지 아이들보다 유리하겠다는 계산에서 전공을 중국어로 삼았어요.” 중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2학년 때는 아랍어에 도전했다.

 

맨 처음 영어를 공부했던 방식대로 문법과 듣기를 집중적으로 익힌 뒤 책과 신문을 읽고 쓰면서 공부에 매달렸다. 그는 아랍어를 공부하다가 어느 순간 묘한 깨달음을 얻게 됐다.

 

 “세상의 모든 언어엔 똑같은 원리가 숨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법적 명칭과 자잘한 쓰임새, 위치는 달라도 통사 구조의 바탕이 거의 같다는 것을 느꼈어요. 구체적인 실현 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 우리 문법과 비교하면 금세 이해할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This is the very book that I read last year’라는 문장이 있을 때 ‘that’을 영문법의 관계대명사로 외우기보다 ‘이것은 내가 지난해에 읽은 책이다’라는 번역 문장에서 관형어 ‘~은’과 문법적 기능이 같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한 언어의 문장 구조를 알면 다른 언어의 문장 구조도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이런 접근 방식으로 김 교수는 문법 구조가 가장 복잡하다는 러시아어를 9개 국어 중에 가장 쉽게 습득했다고 한다. 어학 공부에 적극 매달렸지만 중국어 전공에 확신이 없었던 김 교수에게 어느 한인 모임에서 만난 노신사가 충고했다. “앞으로 여기에 정착할 요량이라면 전공을 한국학으로 바꾸는 게 좋을 걸세.”

 

그는 유럽에서 한국학 연구를 이끌어온 파리7대학의 고(故) 이옥 교수였다(이인 대한민국 초대 법무부 장관의 아들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제껏 별다른 생각 없이 매달려 왔던 어학 공부에 목표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한국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모든 것을 해외에 알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외국어 실력은 필수적인 자질이었다. 김 교수는 전공을 바꿔 파리7대학과 파리 동방어문대학에서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마친 뒤 ‘정지용의 시적 미학’이라는 논문으로 프랑스 최초의 한국학 박사가 됐다. 1956년 파리대학에 한국학과가 개설된 후 처음이었다.

 

중앙아시아와의 인연은 이옥 교수가 창설한 유럽한국학회(AKSE)에서 비롯됐다. AKSE는 특히 동유럽이나 구 소련 학자들과 교류가 활발했다. 김 교수는 그들과 80년대 말부터 교류하면서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앙아시아에는 50만 명이 넘는 고려인이 살고 있는데 우리나라 재외동포 중에 가장 성공한 축에 듭니다.

 

정치인, 장관 등 고위급 인사가 숱하게 배출됐거든요.” 한국인의 뿌리가 살아있는 땅에서 한국학을 해보자는 각오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김 교수의 언어습득 목록에 카자흐스탄어와 하카스어가 추가됐다. 90년대 초 그는 고려인 연구의 개척자로 알려진 고 고송무 헬싱키대 교수와 손잡고 중앙아시아 한국학 연구사업에 뛰어들었다.

 

고 교수가 한국학술진흥재단의 후원을 받아 카자흐스탄에 파견 근무를 떠났고 김 교수는 파리에서 포도 농장과 호텔 사업을 벌여 자금을 마련했다. 92년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구 소련 지역 최초로 한국학 학술토론회를 열었고 93년 우즈베키스탄 국립 타슈켄트 동방학대학, 94년 국립 카자흐스탄대학에 차례로 한국학과를 개설했다.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이곳 역사학자들에게 한국학 책을 보내 한국 학자로 유치하는 작업도 벌였다(지금까지 김 교수는 200만 달러의 사재를 털어 한국학 사업을 후원했다). 99년 김 교수가 카자흐스탄대학에서 출판한 ‘현대 한국어문법’(러시아어판)은 지금도 구 소련 지역에서 한국어 교과서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 뒤 모교인 파리 동방어문대학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오가다가 김 교수는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강남대 카자흐스탄학과에 몸담고 있다. “요즘도 매일 아침 최소 6개 국어 신문을 봅니다. 언어라는 것은 가까이 하지 않으면 녹슬게 마련이거든요.” 처음에 배울 때 중급 이상으로 언어 실력을 닦아 놓으면 매일 공부하지 않아도 약간씩의 노출만으로도 실력이 유지된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요즘도 모든 논문을 영어로 쓴다. ““한국학은 우리나라의 보석 같은 문화와 전통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학문입니다. 국내에서만 떠들어봐야 별 소용이 없죠. 한국을 제대로 알리려면 다른 나라의 언어부터 먼저 배우세요.” 김 교수는 인터뷰를 마친 뒤 국내 오케스트라의 중앙아시아 공연을 추진하기 위해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영어 잘하는 노하우’

 

김 교수는 영어뿐 아니라 모든 언어의 습득 단계를 3단계로 구분했다. 김 교수는 대체로 한 언어를 배우는 데 1년 여가 걸렸다고 했다.

 

1 체계적인 문법 참고서를 마스터해라

 

중학교 3학년 수준의 문법책을 하나만 독파해도 그 언어의 문장 구조를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다. 문법 용어나 이론에 치중하지 말고 비슷한 기능의 우리말 문장 성분에 대입해 가며 이해해보자.

 

2 듣기 능력을 키워라

 

그 다음에는 배우고자 하는 언어의 뉴스 방송이나 일반 대화를 알아들을 정도로 듣기 능력을 키워야 한다. 라디오 방송을 반복적으로 청취하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3 쉽고 조리 있는 글을 많이 읽어라

 

처음부터 원서(책)를 읽는 것은 부담스럽다. 김 교수의 경우 비교적 짧고 문장이 좋은 신문 사설을 읽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또 처음 영어 논문을 쓸 때 어려움을 겪었던 김 교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몇 번이고 정독한 것이 영작 실력을 기르는 데 힘이 됐다고 말한다. 

 

김 필 영

파리7대학 한국학 박사 수료

파리 국립 동방어문대학 한국학 박사학위

1994~99년 국립 카자흐스탄대학

한국어문학과 학과장

2000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중앙아시아한국학회 초대 회장

2000~2005년 파리 국립 동방어문대학

한국학과 교수

현 강남대 카자흐스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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