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식양회에서 먼저 쓴 말, ‘신토불이’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모두 신토불이 /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야 / ······ / 우리 몸엔 우리 건데 / 남의 것을 왜 찾느냐 / 고추장에 된장 김치에 깍두기 / 잊지 마라 잊지 마 너와 나는 한국인 / 신토불이 신토불이 신토불이야
가수 배일호의 대표곡은 누가 뭐래도
‘신토불이’다. 그는 1990년대 초 KBS 〈6시
내 고향〉 촬영 차 농촌을 방문했을 때 동네 어귀에 걸린 신토불이라는 간판을 보고 이거다 싶어 서울로 올라와 작사자와 작곡자를 찾아다니며
신토불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 땅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좋다’라는 뜻의 제목과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모두 신토불이”라는 노랫말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마침 그때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이 한참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시기로 ‘우리 농산물 애용운동’ 붐과 맞물려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신토불이 덕에 가수 생활에 꽃이 피었고 2006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그의 고향 논산에는 신토불이 노래비까지 세워졌으니 그만큼 신토불이 덕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신토불이는 “몸과 땅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으로, 자기가 사는 땅에서 산출한 농산물이라야 체질에 잘
맞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점잖게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의 정확한 유래가 궁금한 한 누리꾼이 질문을 올리며 우리나라에서 신토불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경위에 대해 자신이 찾아본 내용을 소개했다. 그 내용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① 신토불이라는 말은 맨 처음 농협의 한호선
전 회장이 일본에서 들여다 썼다. ② 하지만 1980년대 반일 감정으로 이 말이 문제가 되었다. ③ 그러자 농협에서는 옛 문헌에 혹시
신토불이라는 말이 사용된 예가 있는지 조사했다. ④ 중국 원나라(13세기) 때 보도법사가 펴낸 《노산연종보감(廬山蓮宗寶鑑)》에서 “身土本來無二像(몸과 흙은 본래 두 가지 모습이 아니다)”라는 구절을 찾아냈다. ⑤ 농협은 이것을 기초로
삼기로 가닥을 정리했다. ⑥ 민중서림의 《엣센스 국어사전》은 1,375쪽에 신토불이를 올렸다. ⑦ 현재 농협은 초·중등학교 교재에 신토불이라는
말을 실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이 누리꾼은 《노산연종보감》의 구절은 몸과 흙의 본질이 같다는 것이지 우리 몸에는 우리 흙에서
난 농산물이 잘 맞는다는 말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하며 신토불이라는 말에 대한 좀 더 분명한 유래를 알고 싶다는 질문을 올렸다. 이에
대한 국립국어원 답변(2007년 10월 22일)이 재미나다.
“안녕하십니까? ‘신토불이’라는 말과 관련한 개념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나 身土不二라는 말 자체는 일본어에서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할 듯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 이 표현과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순화어를 제시한 바는 없지만 일부에서는 ‘身土如一(신토여일)’과 같은 표현으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신토불이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온 이상 자초지종을 확인하고 싶어 나는 손수 한국농협중앙회에 정식으로 질문을
했다. 그러자 2009년 9월 22일 답변이 왔다.
1. 신토불이라는 단어는 1989년 우루과이라운드협상 타결이 임박할 때 농협중앙회가 ‘우리 농산물 애용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당시
농협중앙회 회장이었던 한호선 회장이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어 일반에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2. 조선시대 의서인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서문에는 ‘기후풍토와 생활풍습은 같다’라는 표현이 있고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사람의 살은 땅의 흙과 같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책인 《노산연종보감》에는 ‘신토불이’라는 게송이 있는데 여기서 ‘몸과 흙은 본래 두 가지 모습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신토불이라는 말은 불교의 불이(不二)사상에서 나온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말이며 신토불이라는 용어는 이런 불이사상과 다산 정약용을
연구한 한학자인 이을호 선생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농협의 이야기만 들으면 마치
신토불이가 처음부터 한국의 농협에서 쓰기 시작한 말 같다. 앞에서 한 누리꾼이 소개한 신토불이의 말밑에 대한 내용에도 ‘신토불이라는 말은 맨
처음 농협의 한호선 전 회장이 일본에서 들여다 썼다’는 말이 있는데 농협의 답변에 이 내용은 빠져 있다.
일본 쪽 이야기를
들어보자.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말은 1907년 일본의 육군 약제감 이시즈카[石塚]가 식양회(食養会)를 만들면서 처음 사용했다. 식양회는 식사를 통해 건강을 지키자는 취지로 만든 단체이며
《노산연종보감》에 있는 말, 곧 ‘신토불이’를 ‘자기 고장의 식품을 먹으면 몸에 좋고 남의 고장 것은 나쁘다’라는 의미로 썼다. 그리고 이를
1989년 당시 한호선 농협 회장이 한국에 가져가 퍼뜨렸다는 것이다. 일본 쪽의 이러한 주장에는 일본에서 먼저 쓰던 말을 한국이 가져다 자기네가
처음으로 중국 불전에서 찾아낸 것처럼 알리는 게 못마땅하다는 눈치가 섞여 있는 듯하다.
신토불이라는 말을 누가 먼저 쓰기
시작했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농협은 그 경위를 감추지 말고 떳떳이 밝혀야 한다. 더구나 이 말은 일본에서 먼저 썼을
뿐 그들이 새롭게 만든 말도 아닌 원래 중국 불전에 있던 것이다. 따라서 전혀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그냥 ‘일본에서 먼저 쓰던 말’이라는
것을 밝혀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농협은 한국이 먼저 들여다 쓴 것처럼 스리슬쩍 일본 이야기를 뺐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의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토양마저 배반하는 행동이다. 일본말 찌꺼기를 청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른 척하거나 감추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의 유래를 분명히 알려주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한국 농협이 신토불이란 말의 유래를 분명히 짚어주었으면 좋겠다. ‘일본에서 먼저 쓴
말을 우리가 들여다 쓰고 있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신토불이라는 한자말을 계속 고집하기보다 우리 토박이말로 바꾸는 노력을 서서히
해나간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노견이 갓길로 바뀐 것처럼 신토불이는 ‘우리 땅엔 우리 것’ 정도로 바꾸어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