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곧 시작(終則有始)의 이치가 담긴 耑.과 艮
단서(端緖)를 잡다, 단정(端正)하다, 남단(南端), 북단(北端) 등에 쓰이는 端자는 ‘처음 단, 끝 단, 실마리 단’이다. 끝(終)과 처음(始)은 서로 상반되나 이치상 연결된 개념이다. 졸업식 축사 때마다 등장하는 연설내용을 상기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중학교를 마치지만 고등학교는 시작이오, 고등학교를 마치지만 대학교는 시작이며, 대학교를 마치지만 사회의 첫발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실도 마찬가지이다. 누에고치나 삼에서 뽑아낸 실을 엮어서 실꾸리를 만드는데, 이쪽 실의 끝과 저 쪽 실의 처음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것이기에 서로 정반대의 위치이지만 처음과 끝은 서로 통한다. 종즉유시(終則有始, 마치면 시작이 있음)를 중요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端의 ‘처음과 끝’의 뜻은 『周易』 선천 팔괘에서 山의 形象인 艮(☶)괘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端에 ‘끝’과 ‘시작’ 이라는 뜻이 있듯이, 산의 괘명인 艮이 終과 始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파자해(破字解)를 통해서 처음과 끝의 의미가 서로 통함을 살펴보자.
端의 본래 글자는 ‘설 립(立)’자가 빠진 耑(음은 端과 같음)이다. 耑에 대하여 『설문』과 주(註)에서는 “물건이 처음 나오는 앞머리다. 위는 나오는 모양을 본떴고, 아래는 그 뿌리를 본떴다. 가운데 ―은 땅이다(物初生之題也. 上象生形, 下象其根也. 中一地也).”라고 하였다. 8괘 중 하나인 艮(☶)은 해 (日)의 뿌리 (氏)를 의미하는 글자로, 北方水에서 東方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東北艮方 (山 = 土)에 해당한다. 오행상으로 동북간방의 土가 북방의 水를 막아서 (土克水) 겨울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게 끝맺음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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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동방 木이 동북간방의 土를 뚫고 나와 (木克土) 봄의 새싹을 돋게 한다. 동북 간방을 매개로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루로 표현한다면 이른 새벽으로 어두운 음이 완전히 물러가고 새 날(日)의 뿌리가 돋는 상이다. (‘한자의 기원과 문자형성 원리’ 참고)
이를 『周易』 계사전에서 ‘終萬物 始萬物者 莫盛乎艮(만물을 마치고 만물을 시작하는 것은 간방보다 성한 곳이 없느니라)’이라고 하였다. 艮에서 만물의 終始가 이루어진다(근원)는 뜻이다. 이는 艮이 終과 始를 상징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뿌리의 뜻을 가진 根(근)에 艮자가 들어가 있는 것도 이러한 이치가 있으며 역시 耑과 통한다. 간괘와 더불어 『주역』 18번째 山風蠱(산풍고:
바람이 들어 산 위의 나무들이 좀먹고 병들었지만 발 벗고 나서서 병든 원인을 찾아내 고치면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으므로, 세상이 병들었다는 고(蠱)괘에 오히려 희망을 담은 종즉유시의 이치를 담아둔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순환반복과 상대성 이치, 즉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되는 두 가지 상반된 특질이 동시에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