井田’은 농경문화의 토대를 담아낸 글자
상고시대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井田法 혹은 井田制를 통해 토지(경작지)제도를 비롯한 각종의 사회제도를 정립하였다. 이후 정전제와 그 속에 담긴 원리는 국가운영의 기초가 되었다. (앞의 글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뜻글자인 한자는 글자 그 자체에 철학적인 의미와 역사적 배경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정전제의 井과 田의 뜻이 내포되어 있는 耕(밭갈 경) 思(생각 사) 佃(사냥할 전) 里(마을 리) 異(다를 이) 共 (같을 공) 界(경계 계) 甘(달 감) 丹(붉을 단)의 어원이 되는 井이나 田은 단순히 ‘우물’이나 ‘밭’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류가 농경생활을 하면서 문명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우물과 토지경작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물을 통해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받지 못하거나, 토지경작이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을(邑)자체가 형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농경사회에서는 샘물이 잘 나오는 우물과 농사짓기 좋은 토지를 중심으로 읍이 형성되었다. 그런 점에서 ‘井’은 상형문자이면서 농경사회의 특성을 잘 담고 있는 글자이다.
井의 原字인 ‘丼’의 가운데에 있는 ‘ ∙ ’은 샘물이 용솟음치는 깊숙한 물구멍을 뜻하며, 丼의 바깥 글자인 井은 우물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우물 안에 엇갈려 쌓은 침목(枕木)의 모습을 본뜬 글자이다. 농경사회에서 식생활의 근본은 곡물을 생산하는 토지경작에 있다. 이에 곡물을 생산하는 논밭을 마을 사람들에게 적절히 잘 배분하는 것이 중요하였다. 이때 실시된 토지분배제도가 井田法이며 이에 井田制가 농경생활의 초기부터 이루어진 제도임을 알 수 있다.
정전도 그림에서 보듯이 정전제는 가운데(田)를 중심으로 총 아홉 구역의 경작지를 조성하여 여덟 집을 한 단위로 하여 경작케 하는 제도를 말한다.
< 그림의 정전도본은 也山 李達(1889~1958)선생이 정전법과 관련된 문헌을 두루 살펴 만든 것이며 현재 (사)동방문화진흥회의 로고로 사용한다>
여덟 구역의 경작지는 각 집이 농사짓는 사전(私田)에 해당하며, 가운데(田) 한 구역은 여덟 집이 공동으로 경작하는 공전(公田)이다.
‘公’자가 八+厶(사사로울 사)로 이뤄진 것 역시 정전법의 이치를 담고 있다. 사전과 공전을 경작하는 여덟 집은 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한 단위의 읍을 이루기도 한다. 따라서 田에는 정전도에서 보듯이 밭의 개념뿐만 아니라 ‘한 가운데’ 즉 ‘중심’이라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가령 ‘理’는 나라 가운데(田)에 있는 임금(王: 王자 또한 田자에서 왔다)이 땅(土)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에 정전제 원리는 국가 운영과 토지제도에 널리 적용되었다.
『천자문』의 ‘九州禹跡(구주우적) 百郡秦幷(백군진병)’은 정전법에 의거해 전국의 행정단위를 나누고 토지를 분배하여 조세수입을 거두어 국가를 운영했음을 나타낸 구절이다. 맹자는 등문공이 나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묻자 하ㆍ은ㆍ주의 토지ㆍ조세제도를 거론하며 정전법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나라 한 가운데에 수도 한양을 두고 전국을 팔도(八道)로 나눈 것이나 궁궐을 구중(九重) 궁궐이라고 칭하는 것 또한 정전법에 의거한 것이다.
「世宗御製訓民正音(세종어제훈민정음)」에 나오듯이 한글의 자.ㆍ모음 또한 모두 정전도에서 따왔다. 井田圖에서 한자의 어원이 유래하고 있는 사례도 많다. ‘一’부터 ‘十’까지의 글자는 물론 앞에서 예시한 글자를 포함하여 기본이 되는 한문의 여러 글자들이 모두 井田의 이치에 근거하여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