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복 (伏)날의 의미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우리 사회는 전통적 가치관과 철학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버려두고,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신토불이 (身土不二)’이라 하여 전통을 고수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서구 열강이 동양사회를 침탈하는 시기에 궁여지책으로 나온 동도서기론 (東道西器論)도 아닌 서도동기론 (西道東器論)이라 더욱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뜨거운 여름 복날에 먹는다는 개장국은 동물 애호론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매우 인기를 끌고 있다. 그것도 허해진 몸의 기운을 보충한다는 의미로 보신탕 (補身湯)이라고 하면서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복날 때 쯤 이면 개도 지쳐 별 영양가가 없을 것 같은데, 옛날부터 정말 복날이면 개를 잡아먹었을까?
조선 헌종 때 나온 ‘농가월령가’에서 여름철의 노래를 아무리 뒤져봐도 개고기 먹는다는 구절은 없다. 오히려 팔월령의 노래 가운데에 추석명절을 쇤 뒤, “며느리 말미 받아 친정집에 근친 갈 때 개 잡아 삶아 건져 떡 고리와 술병이라, 초록 장옷 남빛 치마 차려 입고 다시 보니, 여름 동안 지친 얼굴 회복 되었느냐, 중추야 밝은 달에 마음 놓고 놀고 오소.” 하였듯이 개고기는 오히려 친정 가는 며느리에게 보내는 사돈집의 선물로 쓰였음을 볼 수 있다.
반면에 유월령에서, “삼복은 속절이요, 유두는 좋은 날이라. 원두밭에 참외 따고 밀 갈아 국수하여 집안 사당에 천신 (薦新)하고 한때 음식 즐겨 보세.” 라고 하였다.
곧 삼복에는 속절 (俗節), 곧 민간에서는 제삿날 이외에 철이 바뀔 때마다 사당이나 조상의 묘에 차례를 지내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상고시대부터 농경사회 문화가 정착되면서 전해져오던 풍습이다. 이렇듯 복날과 개고기는 별 관계가 없고, 다만 복날을 뜻하는 伏자에 ‘개 견 (犬)’자가 들어있어 오늘날 복날의 본래 의미는 사라진 채 애꿎은 개들만 몽둥이세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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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伏)자는 ‘사람 인 (人)’자에 ‘개 견 (犬)’자를 더하여 개가 사람 앞에 ‘엎드려 있다’는 모습으로 ‘복종하다, 숨다’의 뜻으로 쓰인다. 절기상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골목에 初伏(초복) ·中伏(중복) ·末伏(말복)을 두고 있는데 이때 伏의 뜻은 ‘숨길 복’이다. 오행상 가을의 단단한 金이 나오기 위해서는 한여름 땅 속에 金을 감춰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
오행에서 金에 속하는 천간 (天干)으로는 경 (庚)과 신 (辛)이 있는데 庚은 일곱 번째(홀수)이기에 陽金, 辛은 여덟 번째(짝수)이기에 陰金에 속한다. 복날의 伏에는 뜨거운 여름날에 가을의 陽金 기운이 녹지 않도록 땅 속에 잘 감춰 두었다가 단단하게 나오도록 한 것인데, 이것은 가을날 곡식이 잘 영글기를 소망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음력상 끝 여름인 6월 중순부터 가을이 시작하는 7월초에 걸쳐 간지 (干支)상 3개의 庚日에 복날을 두고 있는 것이다. 앞서의 다른 글들에서 살펴보았듯이 황하문명권에서는 책력상으로 매 계절 사이마다 토왕지절(土旺之節)을 두어 과불급 (過不及)을 조절한다. 특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토왕지절은 완성되어 생산된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매우 중요하기에 특별히 삼세판으로 세 번의 복날을 두고, 사당에 제사를 지내면서 가을에 곡식이 잘 영글기를 조상님께 기원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