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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분석

고구려의 언어에 대하여 : 2

작성자신으로|작성시간16.04.13|조회수344 목록 댓글 0

 

고구려의 언어에 대하여

 

. 차자표기의 구체적 분석

 

이제 지금까지 제시한 기본적인 자료접근을 바탕으로 [삼국사기] 35, 37의 고구려 지명 자료 183건 중 40건을 선별하여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도록 하겠다. 분석에 앞서 증빙 자료들 및 연구의 기준과 원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혀 두고자 한다.

 

음차자와 훈차자를 가려내는 일이 가장 선결문제이므로, 삼국사기에 나타난 차자표기 자료들은 같은 원칙과 정연한 체계에 따라 표기되었다는 전제하에 같은 글자들이 여러 자료들에서 나타나는 형태를 추적하여 음차자와 훈차자를 가려낸다. 선학들의 연구성과도 이에 중요한 도움이 될 것이다.앞서 제시된 바 있는, 음차자로 추정되는 글자들의 재구음표를 기본자료로 삼아 고구려한자음을 복원해 내고 그에 따라 자료가 나타내는 어휘를 재구해 낸다.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을 때 이를 하나의 단서로 삼아 다른 표기 자료에 적용한다.고대국어가 단일어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앞의 논의에서 밝혀냈으므로 지리지에 나타난 백제나 신라의 땅이름 표기 자료들과 향찰 표기 자료도 고구려말 표기 자료를 분석하는 데 방증자료로 활용하도록 한다. 다만 이 때는 방언적 차이를 배제하기가 곤란하므로 직접적인 적용은 피하도록 한다.

 

밝혀낸 고구려말 어휘가 중세국어 및 현대국어에 이어지고 있을 가능성을 찾는 데 주력한다. 이는 우리말의 역사적 단일성을 증명하는 데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지며, 국어사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이 될 수 있다. 다만 무분별한 대응과 추측은 과학적인 연구가 될 수 없으므로 철저히 배제하여 근거없는 어원론이 되지 않도록 한다.

 

犁山城 本 加尸達忽

 

이 자료에서는 '''加尸', '''', ''''이 각각 대응하고 있다. 그것은 뒤의 두 어휘가 다음의 예와 같이 다른 여러 표기자료에서도 '', ''이 일률적으로 대응되기 때문이다.

 

()

 

功木達 (一云 熊閃山)

 

兎山郡 本 高句麗 烏斯含達縣

 

土山縣 本 高句麗 息達

 

蘭山縣 本 高句麗 昔達縣

 

菁山縣 本 高句麗 加支達縣

 

山縣 本 高句麗 買尸達縣

 

松山縣 本 高句麗 夫斯達縣

 

僧山縣 (一云 所勿達)

 

高烽縣 本 高句麗 達乙省縣

 

高木根縣 (一云 達乙斬)

 

高城郡 本 高句麗 達忽

 

 

陰城縣 本 高句麗 仍忽縣

 

白城郡 本 高句麗 奈兮忽

 

赤城縣 本 高句麗 沙伏忽

 

水城郡 本 高句麗 買忽郡

 

車城縣 本 高句麗 上(一作 車)忽縣

 

邵城縣 本 高句麗 買召忽縣

 

戍城縣 本 高句麗 首 

 

童城縣 本 高句麗 童子忽峯城縣 本 高句麗 述 忽縣堅城郡 本 高句麗 馬忽郡

 

開城郡 本 高句麗 冬比忽

 

津臨城縣 (一云 烏阿忽)

 

水谷城縣 (一云 買旦忽)

 

冬音忽 (一云  鹽城)

 

內米忽 (一云 池城)

 

漢城郡 (一云 漢忽)

 

取城郡 本 高句麗 冬忽

 

母城郡 (一云 也次忽)

 

岐城郡 本 高句麗 冬斯忽郡

 

野城郡 本 高句麗 也尸忽郡

 

城郡 (一云 加阿忽)

 

高城郡 本 高句麗 達忽

 

淺城郡 (一云 比烈忽)

 

節城 本 蕪子忽

 

豊夫城 本 肖巴忽

 

新城州 本 仇次忽 (或云 敦城)

 

{}城 本 波尸忽

 

大豆山城 本 非達忽

 

遼東城州 本 烏列忽

 

安市城 舊 安十忽(或云 丸都城)

 

甘勿主城 本 甘勿伊忽

 

屑夫婁城 本 肖利巴利忽

 

城 本 乃勿忽

 

牙岳城 本 皆尸押忽

 

鷲岳城 本 甘彌忽

 

積利城 本 赤里忽

 

木銀城 本 召尸忽

 

穴城 本 甲忽

 

銀城 本 折忽

 

似城 本 召尸忽

 

이는 고구려 지명자료의 대부분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압록강 이북의 지역에 대한 땅이름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가장 대응이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백제말 자료에서도,

 

寶城郡 本百濟伏忽郡

 

斌城縣 本百濟賓屈縣

城縣 本 

 

과 같이 나타나는 것은 고구려말과 백제말이 매우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또한 천소영(19903034)에서 논의되었듯이 고구려말 ''에 대응하는 신라와 백제의 표기자료에서도 다음 예와 같이 '', '珍阿', '等良', '等也' 등으로 표기되어, 고대국어에는 /tara//t r /의 방언차를 가진 동일한 어휘가 존재하였다.

 

獐山郡 祗味王時 伐取押梁(一作督)小國 置郡

 

梁縣 本高句麗僧梁縣 景德王改名 今僧嶺縣

 

鎭安縣 本百濟難珍阿縣難珍阿(一云 月良)<여람34진안>

 

高山縣 本 百濟 高山縣(一云 難等良)<여람34고산>

 

이로부터 '', ''를 의미하는 고구려말 ''''을 의미하는 고구려말 ''이 성립된다. 이 글자들의 당시 발음을 추적해 보겠다.

 

達 定月 t at/d - t t/d - t at/d- dat

 

이병선(198248)에서는 이 글자를 /*tara, *t r /의 표기로 보았고, 천소영(199026)에서는 /(tarV)/로 추정했으며, 박병채(1968), 손명기(1993)에서는 /tar/, 유창균(1980)에서는 /dal/로 보았다.

 

고대국어에 거센소리가 없었으므로, 첫소리 상고음 [t ]는 기의 자질을 잃고 /t/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a][ ]로 재구된 이 글자의 홀소리도 역시 고구려말에 있는 소리인 /a/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상고음 입성끝소리 [t]는 최초 수입 당시부터 우리말 음절의 환경 때문에 닫음소리로 나지 못하고 뒤에 홀소리를 붙여 발음했으며, 이 홀소리 사이라는 조건에서 [-d-]로 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계속하여 앞뒤 홀소리의 공깃길을 닮아가서 흐름소리 /r/로 변해오는 것을 고대국어의 표기자료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말에서는 한자음에서 [d]>/r/의 변화가 거의 완수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고구려말 ''의 경우에는 /tara/로 발음되었다고 볼 수 있다. 뒤의 홀소리를 앞 홀소리와 같은 것으로 보는 까닭은 다음의 예에서 닿소리로 끝나는 한자들이 발음될 때, 뒤에 붙이는 홀소리는 그 한자의 중심홀소리에 따라가는 경향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者 句麗城名也<북사, 양서 고구려>

 

張保皐(羅紀作弓福)<삼사44열전>

 

單密縣 本武冬彌知

 

溟珍縣 本買珍伊縣

 

甘蓋縣 本古莫夫里

 

'', ''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쓰였던 말로, 중세 및 현대국어 '양달', '음달(>응달)' 등에 자취를 남기고 있는데, 천소영(199028)에서 지적되었듯이 중세국어 ' -/ 아매-(·)'는 움직씨로 전성한 모습이고, '다락()'''에 뒷가지 '-'이 붙은 이름씨이며, '  ( )''+()+'로 분석되어 고구려말 /tara/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세국어 ' ㅎ()'와도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忽 曉物 w t xmw t xmw t xu t

 

박병채(196882)에서는 /hol/ 또는 /xol/</*kol/로 읽었고, 유창균(1980284)에서는 /k l/, 이병선(198285)에서는 /*k r /, 천소영(199043)에서는 // 또는 //로 각각 분석되었다.

 

위에 제시한 ''의 상고음 재구음을 보면, 첫소리로 재구된 [x]는 고대국어의 닿소리체계상 /k/로 반영되고, 중고음에서 홀소리 [w ], [u ] 등은 여는홀소리 [u-]에 이끌려 한국한자음에 '/'로 반영되는 사실을 지적한 박병채(1971328334)의 논의에 따라 상고음에서도 같은 이치로 적용시켜 이 글자의 홀소리는 /u/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끝소리 [t]는 앞에서 분석한 ''과 같은 방법에 의해 /VrV/로 반영되어서 ''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uru/가 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면 ' '''은 다같이 /kuru/를 나타내는 다른 표기로 고구려말에서 ''을 뜻하는 낱말임이 확증된다. 이는 중세국어 '', ''과 이어지는 어휘이다.

 

이제 '''加尸'의 대응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박병채(1968)에서는 /kal/로 읽고 중세국어 '가래', '-()'에 이어진다고 보았고, 유창균(1980348)에서는 /kar r/로 읽고 ''의 새김 ' '로 해석하였으며, 손명기(199323)에서는 /kar/로 보았다.

 

여러 선학의 연구결과와 ''의 상고음 '見歌 ka k kra keai' 등을 종합해 볼 때 ''/ka/를 표기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에 대해서는 좀더 정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최남희(1999)에서는 ''의 상고음 기층 고대한자음은 ' (s l)', 남방방언음 및 중고음 기층 고대한자음은 '(si)'로 추정하였으며, 삼국시대 초기부터 고대국어 표기에는 ''로 음절 끝소리 '-'을 표기하는 습관이 관용화하여, 고유명사와 향찰은 물론 고려시대 석독구결에까지 계승되었다고 했다. 또한 극히 예외적으로 ''의 첫소리 '-''' 또는 '' 표기를 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 중심은 '-'을 표기하는 것임을 밝혔다. 이 연구결과를 받아들이고, 여기에 앞서 기술한 열린음절의 원칙을 적용시키면 ''는 상고음 /s r /의 약음차자로 /rV/를 표기하는 것이 고대국어 차자표기의 관습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를 뜻하는 고구려말 '加尸/kara/'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조선관역어>'種田 把敢大' 및 중세국어 '-()', '가래'에 이어지는 어휘임이 확실하다.

 

加尸達忽 /kara-tara-kuru/

 

菁山縣 本 高句麗 加支達縣 景德王 改名今 汶山縣

 

'''加支'의 대응에 대해 유창균(1980331332)에서는 /kaki/로 읽고 ''의 새김으로 보았으며, 최남희(1997ㄴ:146)에서는 /kati/로 읽고 중세국어 '가디'와 관계있는 고구려말로 보았다.

 

支 章支 k ie cie tjie c e

 

상고음에서 이 글자의 첫소리는 조음위치가 센입천장인 터짐소리 [c]였다. 이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말에는 있어 본 적이 없는 음소로 이를 반영하려면 터짐의 자질을 유지하기 위해 고대국어에 있던 터짐소리인 /k//t/로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센입천장 터짐소리 [c]/k//t/의 한가운데 자리한 소리이기 때문에 고대국어에서 /k/로도 읽히고 /t/로도 읽혀서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 ''자이다. 여기서는 최남희(1997ㄴ:146)의 연구결과에 따라 /ti/로 읽고, 중세국어 '가디'에 이어지는 고구려말 /kati/로 추정한다.

 

加支達 /kati-tara/

 

唐嶽縣 本 高句麗 加火押 憲德王 置縣改名今 中和縣

 

''''에 대하여 먼저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安峽縣 本高句麗阿珍押縣阿珍押縣(一云窮嶽)

 

唐嶽縣 本高句麗加火押

 

朽岳城 本骨尸押

 

牙岳城 本皆尸押忽

 

松岳郡 本高句麗扶蘇岬

 

이 예로부터 ', , , , '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는데 ''에 대하여는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었다.

 

''은 우리말로 '古尸'라 이른다. 그러므로 혹 말하기를 '古尸寺'라 하는데 이는 '岬寺'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이 훈차자로 쓰인다는 점과 이를 읽을 때 '古尸'로 읽는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는 기사인데, 실제로 고대국어 표기 자료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菅城郡 本古尸山郡

 

 穴縣 (一云 烏斯押)

 

大楊菅郡 (一云 馬斤押)

 

岬城郡 本百濟古尸伊縣

 

[삼국유사]의 설명대로 '古尸'''의 대응이 ''으로 확대될 수 있으므로 '古尸'의 해독이 중요한 열쇠가 되겠다. 먼저 ''의 당시음을 분석해 보겠다.

 

古 見魚 ka ko k ka

 

만일 이처럼 상고음의 기층을 충실하게 반영했다면 고구려한자음은 /ka/로 발음되었을 터인데, 최남희(1997)에서 논의된 바와 같이 신라향가의 표기에는 중고음 기층의 한자음인 /ku/가 철저하게 반영되었다. 지명 표기에는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살펴 보기로 한다.

 

고구려 지명의 예

 

獐項口縣(一云古斯也忽次)泉井口縣(一云於乙買串)穴口郡(一云甲比古次)楊口郡(一云要隱忽次)獐塞縣 (一云 古所於)玉馬縣 本 高句麗 古斯馬縣鵠浦縣 (一云 古衣浦)

 

다른 지명의 예

 

固城郡 本古自郡

 

昆湄縣 本百濟古彌縣

 

古祿只縣(一云開要)

 

甘蓋縣 本古莫夫里

 

龍山縣 本古麻山

 

其都曰居拔城, 亦曰固麻城<북사94열전-백제>

 

으로 볼 때 고구려말 표기에 쓰인 '(=)'자는 /ku/로 읽혔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다음의 고구려 사람이름 표기자료에서도 드러난다.

 

新大王 諱伯固(固一作句)

 

즉 신대왕의 이름에서 ''의 동음대응을 확인할 수 있는데, ''''운부 중심홀소리 [-o-]로서, 고대국어에 /u/로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의 고구려한자음을 /ku/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에 대해서는 앞서 논의한 대로 상고음 기층의 고대한자음 /s r /에 의해 약음차된 /rV/의 표기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가 기록될 당시 한자음은 중고음에 의해 많은 변고를 입어 한국한자음의 규범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이므로, 일연의 기록 '古尸'''를 상고음 기층의 /s r /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비록 향찰표기에서는 관행적으로 //을 표기하는 데 쓰였지만 여기서 일연이 당시 우리말을 기술하는 데 쓴 ''는 그러한 것과 좀 거리가 있다고 본다. 더욱이 최남희(1999)에서 논의된 바에 따르면 차자표기에서 ''는 약음차자로 //표기에 쓰이기도 하고, 중고음 기층의 한자음 /si/의 음차자로도 쓰였다. 이에 따라 '古尸'의 발음을 /kusi/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의 중세국어 새김은 ''로 나타나는데, 이 낱말은 고대국어에서는 /kusi/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kusi>*kuzi>*kori>kol'의 변천과정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 ' '높은 곳'을 지칭하는 낱말로, 양주동(194294)에서는 현대국어 '봉곳하다''()+고지()'의 합성어인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또한 김승곤(1984207)에서는 [일본서기]'천손이 내린 산'이름 '久士布流多氣(kuzifurutake)' 등에서와,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龜旨峰'에서 '龜旨''높은 곳'을 뜻하는 /kusi/의 표기라고 하였다. 결국 이 /kusi/는 고대 삼국에 공통하게 존재했던 낱말이다. 이는 다시 중세국어에 그 흔적이 보이고 있는데, 천소영(1990127)에서처럼 중세국어 '항것''()+거시>한것>항것'으로 분석될 수 있으며, '주인' 또는 '상전'을 뜻하는 칭호로 설명된다.

 

그러므로 [삼국유사]에서 증언하고 여러 지명 표기 자료에 나타난 '古尸(, )'/kusi/의 표기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은 옛지명의 ''에 대응하여 /kusi/로 읽는다.

 

박병채(1968)에서는 고구려말 '加火'''의 의미로 보아 ''를 차자표기의 일반적인 형태로 훈독하여 /kap l/로 읽고 중세국어 '가온 '에 이어지는 고구려말의 표기로 보았다. 이는 유창균(1980321)에서도 같은 견해로 해석되고 있는데 /kab r/로 읽고 ' → →가온'과 같은 발달을 상정했다.

 

''에 대한 다른 예를 찾아보기로 한다.

 

고구려

 

曲城郡 本 高句麗 屈火郡

 

(一作 椽)武縣 本 高句麗 伊火兮縣

 

綠驍縣 本 高句麗 伐力川縣 景德王 改名今 洪川縣

 

縣 本 高句麗 伊伐支縣

 

신라

 

大丘縣 本達句火縣王欲移都達句伐 未果<삼사8신문왕>

 

比屋縣 本阿火屋縣(一云幷屋)

 

火王郡 本比自火郡(一云比斯伐)

 

音汁火縣 婆娑王時 取音汁伐國置縣

 

伐休(一作發暉)尼師今

 

백제

 

完山(一云比斯伐 一云比自火)

 

水軍不使入伎伐浦(卽長  又孫梁 一作只火浦 又白江)<유사1기이>

 

富林縣 本伐音村

 

淸音縣 本百濟伐音支縣

 

에서 고구려말에 쓰인 ''를 훈독해야 할 것을 확인하며, 그 새김은 ''의 고구려한자음에 가까웠을 것임을 알 수 있다. , 에서도 ''''과 대응되고 있는데, 도수희(198490107)에서는 백제지명 '所夫里'' '에 대하여 분석하고, 신라지명에 나타난 ''과 같은 백제말이 '夫里'로 나타나고 있음을 증명하였다. 따라서 ''의 고구려한자음을 복원하여 ''를 훈독하는 것이 타당한 방법이 될 것이다.

 

  b iwat b iw t biwat b wat

 

이 글자의 상고음 기층 신라한자음에 대해 최남희(1999ㄱ:35)에서는 '/pal/'로 추정하였다. 이것은 상고음 제7'歌月元'부의 중심홀소리 [-a-]가 강력하게 작용하여 고대한자음에 /a/로만 반영된다는 설명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여는홀소리 [i]는 흡수될 수 있지만, 앞뒤의 [w][t]는 어떤 식으로든 중심홀소리에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서 조음위치를 약간 끌어올려서 / /로 반영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반영의 조건은 '[w]-[t]' 사이의 [a]로 한정된다. 이는 또한 지명 자료에서 중세국어 //와 이어지는 홀소리의 표기에 쓰이고 있어서 하나의 방증이 된다.

 

闕城郡 本闕支郡 景德改名 今江城縣

 

駒城 (一云 滅烏)

 

'/상고음 kiwat/'는 후대의 지명에 ''과 대응되는데, 중세국어에 '  ,   '으로 나타난다. 또한 ''도 중세국어 ' 야지'로 나타나 ''의 홀소리가 / /로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고대한자음에 상고음이 반영될 때, 합구음 여는홀소리 [w]와 끝소리 [t]사이의 [a]는 조음위치가 위쪽으로 이끌려 / /로 반영되는 규칙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 고구려한자음은 /p r / 정도로 읽혔을 것이다.

 

따라서 '加火'/kap r /로 읽을 수 있고 그 뜻은 박병채(1968) 및 유창균(1980321)에 따라 ''으로 보며, 중세국어 '  ()'에 이어지는 어휘로 생각된다. <조선관역어> 자료 '江心 把剌 噴得 剛沈<085>'에서 ' '은 권인한(1995)에서 'ka-p n'의 차음으로 분석된 바 있으며, '  '15세기 국어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이 어휘의 원형을 ' -'로 회고할 수 있다. 따라서 '  ''+ + '로 분석되어 고구려말 '加火/kap r /'에 매김법 씨끝이 붙고 이름씨 ' ()'가 이어져 한 낱말로 굳어진 것으로 본다.

 

加火押 /kap r -kusi/

 

連城郡 高句麗 各(一作客)連城郡 景德王 改名今 交州客連郡 (客一作各 一云加兮牙)

 

'(一作客)''一云加兮牙'의 이표기와 <태왕비>'各模盧城', '勾牟客頭' 등과 같이 쓰인 것으로 보아 '', '', ''는 음차자임이 분명하나 뜻은 명확하지 않다. 유창균(1980329330)에서는 '加兮'/ka r/로 읽고 '()'/kal r/로 읽어서 중세국어 ' ()'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皆尸押忽-牙岳城'의 자료에서 ''의 고구려말 새김이 /k r/일 것으로 보고 ''의 새김 /ki/의 이형태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의 고구려말 새김이 /k r/일 것으로 본다고 해도 /ki/의 이형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구려지명에서 ''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長淺城縣 (一云 耶耶 一云 夜牙)

 

牙岳城 本 皆尸押忽

 

이 자료만으로는 음독자이거나 훈독자라고 단정내릴 수가 없다. 다른 지명표기자료에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殷正縣 本赤牙縣 景德王改名 今殷 

 

陰峯(一云陰岑)縣 本百濟牙述縣 景德王改名 今牙州

 

이렇게 놓고 보면 고대국어 표기에서 ''자는 음차자로도 쓰고 훈차자로도 썼다는 결론으로밖에 나올 수가 없다. 만일 고구려지명에 훈차로 쓰였다면 '皆尸'를 그 새김의 음차 표기로 보아야 하며, 음차자로 쓰였다면 ''와 통용됨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차자표기의 원칙상 앞글자는 음독하고 뒷글자를 훈독하는 예는 찾기 어려우므로 여기에서는 음차자로 쓰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의 상고음을 살펴보겠다.

 

牙 疑魚 a ra ea

 

한국한자음에서 '[ ]'모 글자들은 대체로 반영되어 있지 않고 다만 한자말에서 개주(改鑄)된 귀화어에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그 이전 시기의 한자음에서 반영된 적이 있을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우리말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이 여린입천장 콧소리 / /이 말머리에 오는 것은 음운환경의 제약에 의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 고구려한자음은 '/a/' 정도였을 것이다.

 

다음으로, 고구려지명에서 ''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白城郡 本 高句麗 奈兮忽 景德王 改名今 安城郡

 

三峴縣 (一云 密波兮)

 

峴縣 (一云 斤尸波兮)

 

(一作 椽)武縣 本 高句麗 伊火兮縣

 

海阿縣 本 高句麗 阿兮縣

 

滿若縣 (一云 沔兮)

 

이는 다른 지명표기에도 여러번에 걸쳐 나타나 음차자임이 분명하다.

 

日谿縣 本熱兮縣(或云泥兮)

 

芼兮縣(一云化 )

 

南畿停 本道品兮停

 

新復縣 本加尸兮縣

 

八谿縣 本草八兮縣 景德王改名 今草谿縣

 

蘇泰縣 本百濟省大兮縣

 

秋成郡 本百濟秋子兮郡

 

珍原縣 本百濟丘斯珍兮縣

 

森溪縣 本百濟所非兮縣

 

務安郡 本百濟勿阿兮郡

 

菓支縣(一云菓兮)

 

奈西縣 本奈西兮

 

貴旦縣 本仇斯珍兮

 

皐西縣 本秋子兮

 

壁谿郡 本百濟伯伊(一作海)

 

이 자료들을 종합해 보면 ''는 음차자로 /k-/첫소리를 가진 글자였음이 드러난다. 또한 '', '谿'와 대응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과 ''의 발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兮 匣 支 ie e e

 

상고음에서 여린입천장 갈이소리 [ ] 또는 터짐소리 [ ]로 재구된 갑모(匣母) 첫소리는 우리말 음운체계에 따라 /k/로 반영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지운(支韻)의 중심홀소리 [e]는 첫소리가 잇소리일 때는 / /로 반영되고 그 밖에는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상 가장 가까운 홀소리인 /i/로 반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상고음 기층의 고대한자음은 '/ki/'였을 것이다. 그것은 다음의 대응 예에서도 /i/를 가졌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南畿停 本道品兮停

 

菓支縣(一云菓兮)

 

이에 따라 ''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을 '/ki/'로 인정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하여 볼 때 '加兮牙'는 전부 음차자로 쓰인 것으로 분석되며, /ka-ki-a/로 읽혔다는 결론을 내오게 된다. 이 중 /ka-k/을 음차자 '()'에 대응하는 것으로 본다면 그 나머지 부분 /i-a/''의 새김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경덕왕 개명의 한자식 이름이 '連城'인 것으로 보아 개연성이 크다. 이 말이 중세국어 '-'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連城 /kakia-kuru/

 

鷲岳城 本 甘彌忽

 

유창균(1980347)에서는 /kam r-k l/로 읽고 중세국어의 '가마괴'에 이어진다고 보았다. 여기서 ''은 한자식으로 붙인 것이거나, ', '의 음상을 덧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다음의 예로부터 ''의 쓰임을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松岳郡 本 高句麗 扶蘇岬

 

朽岳城 本 骨尸押

 

牙岳城 本 皆尸押忽

 

大麓郡 本百濟大木岳郡 景德王改名 今木州

 

이 자료들은 신지명의 '-岳城'이 이전지명에서 '-岬忽'에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로써 ''', '과 대응하며, '甘彌忽'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이제 ''의 새김과 '甘彌'의 발음이 대응되는데, 이에 대한 한자음을 추적해 보겠다.

 

甘 見談 kam k m kam kam

 

이로부터 ''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ama/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재구되었다.

 

彌 明 脂 mier mi r mjier m ei

 

이를 충실하게 반영했다면 고구려한자음은 /mi/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 운모를 가진 다음 글자들의 용례에서 /m/ 성모 아래에서 / i/로 반영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買召忽縣 (一云 彌鄒忽)

 

內乙買 (一云 內 )

 

昧谷縣 本百濟未谷縣

 

이는 ', , , , '의 발음이 같았다는 전제를 성립시키는 자료인데, 향찰 표기에서 ', '' /'로 읽히는 글자들이다.

 

去隱春皆理米(모죽)간봄   

 

咽嗚爾處米(찬기)목몌 외지 

 

此矣有阿米次 伊遣(제망)  이사  멈흘이고

 

秋察尸不冬爾屋支墮米(원가)⇒      너오히 디 

 

自矣心米(우적)저의    

 

郞也慕理尸心未(모죽)야 그릴    

 

心未際叱  逐內良齊(찬기)⇒         아져

 

於內秋察早隱風未(제망)어느    이른    

 

今呑藪未去遣省如(우적)  더메 가고  

 

따라서 최남희(1997)에서 논의된 바에 따라 ''의 신라한자음 ' /(m i/m i)', ''의 신라한자음 ' (m i)'와 고구려 지명자료 '買召忽縣 (一云 彌鄒忽), 內乙買 (一云 內 )'에 의거하여 ''의 고구려한자음 ' /m i/'를 확증할 수 있다. 그러므로 '甘彌'/kama-m i/로 해독해 낼 수 있다.

 

''의 새김은 '수리'이다. 그런데 [훈몽자회]의 이 글자에 대한 기록은 주목할 만한 실마리를 주고 있다.

 

수리 츄 又呼 黑鷹<자회15>

 

''자에 해당하는 새김은 '슈리'이고 또한 '검은 매(黑鷹)'라고도 부른다는 것이다. '甘彌'는 바로 이 '검은 매'에 그대로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검은 매()'를 뜻하는 고구려말이 /kama-m i/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낱말의 표기로 확인되는 자료가 백제지명에서도 '馴雉縣 本百濟甘買縣'으로 나타나 고구려 북부지역의 말과 백제말에 동일한 낱말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한편 이 고구려말 /kama-m i/는 합성어로서 풀이씨의 줄기 '-()'이 곧바로 ' ()'에 붙은 것으로 분석되며, 중세국어의 시각에서 본다면 통어론적 짜임새에 부합되지 않는 비통어적 합성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구려말에서 그러한 합성이 통어적이었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아직 확언할 수 없다. 오히려 고대국어에서는 풀이씨의 줄기가 중세 및 현대국어보다 더 자립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러한 합성이 자유로웠던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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