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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분석

고구려의 언어에 대하여 : 3

작성자신으로|작성시간16.04.13|조회수337 목록 댓글 0

 

고구려의 언어에 대하여

 

甘彌忽 /kama-m i-kuru/

 

穴城 本 甲忽

 

''의 새김과 ''의 발음이 대응한다. 유창균(1980348)에서는 /kap-k l/로 읽었다. 이 자료로부터 고구려지명의 다음 예와 함께 ''을 뜻하는 고구려말을 찾을 수 있다.

 

穴口郡 (一云 甲比古次)

 

여기서 ''는 어떤 문법적인 형태소와의 결합형을 보여주는 것이며, ''을 뜻하는 고구려말의 낱말은 ''의 발음과 유사했을 것이다.

 

甲 見 葉 kap k p kap keap

 

이로써 추정되는 고구려한자음은 /kapa/이다. 따라서 ''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에 /kapa/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甲忽 /kapa-kuru/

 

遇王縣 本 高句麗 皆伯縣 景德王改名 今 幸州王逢縣(一云皆伯 漢氏美女迎安臧王之地 故名王逢)

 

'왕을 만나다'라는 뜻의 고구려말 '皆伯'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이기문(1968)에서는 이를 부여, 고구려의 관직명인 ''와 일치하며 신라의 ', '과 비교되는 자료로 보았다. 그러나 '''/ka/'와는 너무 차이가 크다. 한편 박병채(1968)에서는 ''/kai/, /kai i/로 읽고 중세국어 '()'에 이어진다고 보았으며, 유창균(1980301302)에서는 ''''의 고구려 새김이고 ''은 훈차자로 ' '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아 /k r-m ti/로 분석하였다. 이와 관련된 자료로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王岐縣 (一云 皆次丁)

 

여러 선학들의 분석결과를 종합할 때 '', '皆次'''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이고 ''''이 서로 대응된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추출할 수 있다.

 

皆 見脂 ked ker krer kei

 

상고음 제8운류 '脂質眞'부의 중심홀소리 [-e-]는 고대국어 홀소리체계상 / /에 가깝다. 그러므로 고대한자음에 / /로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다(최남희 1999ㄷ:151). 이에 따라 ''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 /로 볼 수 있다.

 

次 淸脂 ied i r jier ei  

 

최남희(1997)에서는 향찰 표기에 쓰인 이 글자의 신라한자음이 남방방언음을 기층으로 하여 / /, / i/의 두 가지로 발음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고구려말의 닿소리체계상 붙갈이소리 / /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의 고구려한자음은 /s /, /si/로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두가지로 추정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첫닿소리가 잇소리일 때 이어지는 여는홀소리 [i]는 흡수되고, 중심홀소리 [-e-(<- )]/ /로 반영되는 원칙(박병채 1971182191)에 따라 /s /를 추정할 수 있다. 둘째, '', ''부의 중심홀소리 [-e-]는 여는홀소리 [-i-]와 이어지면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상 가장 가까운 /i/로 반영된다는 원칙(최남희 1999ㄷ:150)에 따라 /si/를 추정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재구된 상고음의 홀소리로써는 두 번째의 추정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더욱이 이러한 상고음을 가진 글자들이 향찰표기에서 거의 한결같이 /i/로 읽히고 있음은 더욱 주목할 만한 증거라 할 수 있다.

 

(生之) [-i -]

 

史毛達只 將來呑隱日(우적)즈시 모 기 디녀오돈 날

 

臣隱愛賜尸母史也(안민)  실 어시야

 

耆郞矣 史是史藪邪(찬기)耆郞  즈시 이시슈라

 

(心支) [-ie-]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모죽)  됴히시온 즈시

 

 不喩 伊賜等(헌화)  안디 븟흐리시든

 

西方念丁去賜里遣(원왕)西方 장 가시리고

 

(淸脂) [-ie-]

 

栢史叱枝次高支好(찬기)자시가지 놉호

 

또한 차자표기 용례에서도 잇소리와 결합한 '', ''부 글자들의 고대한자음 홀소리가 /i/로 반영되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吉士(或云稽知, 或云吉次) <삼사38잡지>

 

思內(一作詩惱)<삼사32>

 

未叱希角干 一作未斯欣角干<유사1왕력>

 

尼師今, 言謂齒理也 <유사1기이>

 

第四脫解(一作吐解)尼叱今 <유사1왕력>

 

脫解齒叱今(一作吐解尼師今) <유사1기이>

 

居瑟邯(或作居西干)<유사1기이>嘉瑟岬(或作加西, 又嘉栖, 皆方言也. , 俗云: 古尸, 故或云: 古尸寺, 猶言岬寺也. 今雲門寺東九千步許, 有加西峴, 或云: 嘉瑟峴)<유사4의해>

 

佐阿 西川(一云沙 祗之那)<삼사47열전>

 

이 자료들에서 문제의 '', '', '', '' 등의 홀소리는 '', '', ''의 홀소리와도 같았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들은 모두 /i/로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최남희(1999ㄱ:1316, 2022)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들 자료에서 '西, '의 대응과 ', '의 대응은 동음전사가 아니라 각각 ': ', ' :'의 유사음 대응인 것으로 논의되었다. 그것은 ', , , , , ' 등의 홀소리가 중세한자음에 / /로 나타나는 사실을 들어 상고음 단계의 고층 [- -(>-e-)]를 고대한자음에 / /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한 박병채(1971182191)에서의 주장에 동의한 까닭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 본 여러 차자표기자료가 말해주는 것은 이들이 / /의 흔적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i/로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들 글자의 상고음도 /i/로 음대응이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瑟 生質 set siet siet et

 

西 心脂 sied si r ser siei

 

次 淸脂 ied i r jier ei  

 

斯 心支 set siet siet s e  

 

叱 昌質 t iet t i t t jiet t t

 

이는 상고음 운미 [d]류를 고대한자음에 /r/로 반영하였다고 볼 때 /siri/, /tiri/로 정확한 음대응이 된다. 상고음 제8''부의 [-iet]는 최남희(1999ㄷ:151)에 의거하여 /iri/로 반영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고음 '', ''부의 중심홀소리 [-e-]는 고대한자음에 수용될 때, 잇소리와 결합할 때에도 /i/로 반영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의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si/로 추정한다.

 

이로써 ''을 뜻하는 고구려말 '皆次'의 발음을 /k si/로 분석한다. 이는 [광주본 천자문]'  ()'에서와 같이 중세국어까지 이어지는데, 신라왕의 표기에 나타난 '居西干''居西'와 일치한다고 볼 수 있으며, 앞서 지적한 '높은 곳'을 가리키는 '古尸/kusi/'와도 관련이 있는 낱말로 중세국어 '항것(상전)'''에 이어진다. 따라서 이 자료에서도 역시 고구려말은 남방의 백제, 신라말과 같은 언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을 새김으로 읽어서 ' '으로 보고 '-()'과 같은 동음어였다고 보는 견해(유창균 1980)보다는 백제 지명 자료인 '壁谿郡 本百濟伯伊(一作海)'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음차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p k prak peak

 

이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paka/이다. 이는 중세국어 '-()'에 이어지며, 여기에 어떤 활용형의 씨끝이 붙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끝에 이어진 /ka/는 끝홀소리가 /i/ 형태로 변이된 ''의 뜻을 가진 뒷가지로 해석된다. 따라서 '王逢'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어휘 /k (si)-pa/를 추정해 낸다. 이는 고구려말이 중세국어 및 현대국어와 같이 '부림말+풀이말'의 통어적인 순서를 가졌다는 명확한 증거가 된다.

 

皆伯 /k (si)-pa-ki/

 

心岳城 本居尸押

 

''을 뜻하는 고구려말 '居尸'가 추출되는데 이에 대한 다른 예가 발견되지 않는다. 유창균(1980346)에서는 /k s r/로 읽고 일본어 'kokoro'에 연결지어 본 바 있다.

 

''의 상고음 '見 魚 kia kio kja k a'로 보면 고구려한자음은 /ka/였을 것이다. 이는 최남희(1999ㄱ:11)에서 이미 논의한 바 있는데, 고대한자음 형성시기에는 여는홀소리의 영향력이 미미했으며 상고운미의 영향도 대부분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의 고구려한자음을 /ka/로 재구한다. 앞서 기술한 ''는 표기관습대로 /rV/를 표기하는 데 쓰이기보다는 음차자로 /si/를 표기하는 데 쓰인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 '居尸/kasi/'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신라말에 '  /m s m/'으로 나타나 대조적이지만, 오히려 중세국어 ' ()'에 이어지는 낱말로 해석된다.

 

居尸押 /kasi-kusi/

 

瑞谷縣 本 高句麗  谷縣 景德王 改名今因之; 谷縣 (一云 首乙呑)

 

'瑞谷'' '은 연관성이 적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 '이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한자로서 중국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김종훈 1983). ' ''首乙'이 대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우선 ''''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고구려 지명에서 ''이 나타나는 것은 다음과 같다.

 

 郡本高句麗 大谷郡 景德王改名今 平州大谷郡 (一云多知忽)

 

檀溪縣本高句麗 水谷城縣 景德王改名今 俠溪縣水谷城縣 (一云買旦忽)

 

鎭瑞縣本高句麗 十谷城縣 景德王改名今 谷州十谷縣 (一云 德頓忽)

 

五關郡本高句麗 五谷郡 景德王改名今 洞州五谷郡 (一云 弓次云忽)

 

翊谿縣本高句麗 翼谷縣 景德王改名今因之於支呑 (一云 翼谷)

 

習谿縣本高句麗 習比谷縣 景德王改名今  谷縣習比谷 (一作 呑)

 

沸流谷, 帛愼土谷, 加太羅谷, 改谷, 梁谷<태왕비>

 

이들 예로부터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는 사실은 ''', , , ' 등의 글자들이 대응하고 있는 점이다. ''''을 잘못 쓴 글자라고 보기가 어려운 것은 이러한 대응관계 때문이다. 따라서 뒤엣것들은 음차자이고 ''은 훈차자임이 확실하다. ''의 새김에 대해서, 중세국어에서는 ''이지만 고대국어에서는 이처럼 읽히지 않았다는 증거들이 이기문(197264)에서 논의되었다. 이에 따르면 신라말에서 ''은 새김이 ''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말에서는 신라말의 ''에 해당하는 동의어가 따로 있었던 것로 생각된다. 천소영(1990179180)에서는 '', '', ''에 해당하는 고대국어 어휘는 네 가지로 ', , , 가비'가 있었으며, '''가비'는 고구려지명에서만 나타나고 대신 일본어와 비교되기 때문에 전형적인 북방계어라고 추정하였다. 각 글자들의 고구려한자음을 추정해 보겠다.

 

旦 端元 tan t n tan tan

 

頓 端文 tw n tw n tw n tu n

 

呑 透文 t n t n t n t n  

 

만일 이와 같은 상고음을 충실하게 반영했다면 고구려한자음은 각각 /tana/, /tunu/, /t n / 정도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이는 같은 말에 대한 여러 지역적인 방언차이거나, 표기의 차이일 것이다. 이를 유창균(1980175176)에서는 ''을 대표형으로 잡아 /t n/으로 읽었다. 그런데 고대한자음에서 '' 끝소리 글자들이 어떤 변화를 겪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分津縣 本 高句麗 平唯{}押縣平淮押縣 (一云 別吏波衣)

 

眞寶縣 本 柒巴火縣

 

賓汶縣 本 比勿

 

軍那縣 本 屈奈

 

子春縣 本 高句麗 乙阿旦縣

 

海曲縣 本 高句麗 波旦縣波旦縣 (一云 波豊)

 

貴旦縣 本 仇斯珍兮

 

安賢縣 本 阿尸兮縣(一云阿乙兮)

 

道安縣 本 刀良縣

 

永安縣 本 下枝縣

 

喜安縣 本 百濟欣良買縣

 

irikasumi伊梨柯須彌(淵蓋蘇文) <일본서기23, 24>

 

泉井口縣 (一云 於乙買串)

 

泉井郡 (一云 於乙買)

 

에서 '''', '''', '''', ''''이 서로 통하여 쓰인 것을 알 수 있고, 에서는 '''阿旦'의 대응에서 중세국어 새김 ' '과 이어짐이 확인되므로 ''//끝소리로 발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波旦縣 (一云 波豊)'에서 ''의 끝소리에 ''가 대응함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이는 중세국어 ' ()'에 이어지는 낱말로 볼 수 있다. 더욱이 '貴旦縣 本仇斯珍兮'에서 ''''의 대응이 확인되는데 ''은 차자표기에서 ', 돌오' 등으로 읽히는 글자이다. 에서는 ''의 발음에 대한 자료인데, 역시 /r/ 소리를 가지고 있었음이 드러난다. 또한 에서도 ''의 고구려한자음이 끝소리에 /rV/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상고음에서 [-n] 끝소리를 가진 일부 글자들이 고대한자음에서 /-rV/로 읽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첫소리에 올 때조차 /i/가 이어지는 조건에서는 /n/, /r/이 서로 통용되고 있다.

 

 忽縣 (一云 首泥忽)

 

內乙買 (一云 內 )

 

이는 고구려말에서 /n//r/이 자주 통용되는 소리였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으며, 적어도 '', '' 등의 글자들이 /r/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 '', ''의 고구려한자음은 /t r /이고, 이에 따라 ''의 고구려말 새김을 '/t r /'로 추정한다.

 

다음으로 '首乙: '에서 ''자는 음차자일 경우와 훈차자일 경우를 예상할 수 있는데, 다른 표기자료들에서도 음차자와 훈차자 양쪽 다 쓰인 것으로 보인다.

 

戍城縣 本 高句麗 首 

 

 忽縣 (一云 首泥忽)

 

牛岑郡 (一云 牛嶺 一云 首知衣)

 

首知縣 (一云 新知)

 

牛首州 ( 首 一作 頭 一云 首次若 一云 烏根乃)

 

首原縣 本買省坪

 

유창균(1980331)에서는 음차자로 보고 /sur l/로 읽었으며, 박병채(1968)에서도 음차자로 보아 /sjul/로 읽었고, 천소영(19903437)에서도 음차자로 읽어 '수리()'계 어휘에 귀속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응의 근거를 뚜렷이 제시한 부분을 찾을 수 없어 명확하다고 보기가 어렵다. 해결의 열쇠는 ' '에 있는데 이 글자가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글자임은 앞에서 말했거니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글자의 발음이 곧바로 '창고'를 뜻하는 고구려말이었음이 확실하다. ' '에 대한 상고음은 중국에 없던 글자이므로 당연히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고구려에서 이 글자를 만들 때 한자 형성의 원리에 의거해서 ' '을 뜻기호로 삼고 ''을 소리기호로 삼았을 것이므로 ' '의 고구려한자음은 ''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이 글자가 만들어진 것은 상고음 시대가 분명하므로 중고음 [ki ]이 아니라 상고음 [kia ]을 반영했을 것이다. ' '의 고구려한자음은 /ka / 정도였을 것이며 따라서 '창고'를 뜻하는 고구려말도 역시 /ka /, /puka /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 ''首乙'의 관계는 같은 말의 표기가 아니라 다른 이름의 표기임이 드러나게 된다. 이에 따라 '首乙'에 대한 해석은 보다 명확한 증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미루어 두도록 하겠다.

 

∴  /ka -t r /

 

喬桐縣 本 高句麗 高木根縣 海島也 景德王 改名今因之高木根縣 (一云 達乙斬)

 

'高木根達乙斬(喬桐)'으로부터 ', 達乙''木根'의 대응을 추출해 낼 수 있다.

 

乙 影質 i t i t i t et

 

이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상고음 기층의 고구려한자음은 /iri/이다. 그런데 이 글자는 차자표기에서 독특한 표기자로 쓰인 것으로 논의되어 왔다. 우선 신라향가에 쓰인 것으로 보면 이 글자는 ' /' 또는 '-'을 표기하는 데 쓰였다. 지명표기에서 이 글자가 쓰인 자료들을 검토해 보면 다음과 같다.

 

泉井口縣 (一云 於乙買串)

 

高烽縣 本 高句麗 達乙省縣

 

內乙買 (一云 內 )

 

鐵圓郡 (一云 毛乙冬非)

 

高木根縣 (一云 達乙斬)

 

赤木縣 (一云 沙非斤乙)

 

子春縣 本 高句麗 乙阿旦縣

 

道臨縣 (一云 助乙浦)

 

仇乙峴 (一云 屈遷) 

 

安賢縣 本阿尸兮縣(一云阿乙兮)

 

加知奈縣(一云加乙乃)

 

이를 종합해 볼 때 '은 음차자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대체로 지명 표기에서 /iri/, /ri/ 정도의 소릿값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손명기(19931516)에 의하면 ''은 오히려 ''에 대응하며, 고구려말에서 ', '을 뜻하는 말은 오직 '' 하나로만 표기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의 문제점은 ''''이 대응한다는 근거가 '赤木縣 (一云 沙非斤乙)'에 있는데, 이것이 좀 막연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다음의 자료와 비교할 때 오히려 '沙非, 斤乙'의 관계가 추출되기 때문이다.

 

赤城縣 本 高句麗 沙伏忽

 

赤鳥縣 本百濟所比浦縣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천소영(199028)에 의해 이 ''이 끝소리 /rV/의 표기로 매김꼴의 문법적 구실을 하는 것으로 분석하는 관점을 수용하기로 한다.

 

'木根'의 대응은 '楊根縣 (一云 去斯斬)'에서도 확인되는데, 이는 훈차자로서 중세국어 '불휘()''버히-()'에 이어지는 것으로 본다. 즉 고구려말에서 [ ], [ ]는 변별이 되지 않았으므로 / /로만 쓰여서 ''에 해당하는 고구려말이 /p r ki-/였고 이는 ''을 뜻하는 낱말과 동음어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표기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는 설명이 된다. 이는 앞서 논의된 바, /h/이 전기고대국어의 /k/에서 발달한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더욱 개연성을 가지게 된다. 이로써 ', '을 뜻하는 고구려말 동음어 /p r ki/가 각각 'p r ki>*p lki>*p lh i>pulhuj>p uri()''p r ki>*p r hi>p hi>p i>p j>pe-()'의 변화과정을 겪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추정의 근거를 다시 정리해 보면, ''의 대응이 두 번 확인되어 그 개연성이 높다는 점과, 고구려말에서 / /, / /가 변별이 되지 않고 홀소리에 / /만 있었던 점과, 우리말의 /h/는 전기고대국어에서는 /k/였다는 점, '善射朱蒙', '復舊土多勿' 등에서처럼 풀이씨 줄기가 이름씨처럼 자립성을 가졌던 점, 고대국어에서 'r>/V__V' 'V>/C__#'의 변화는 일반적이었던 점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고구려말에서 ''''을 뜻하는 낱말은 동음어로서 /p r ki/였음을 도출해 낸다.

 

達乙斬 /tarari-p r ki/

 

玉馬縣 本高句麗古斯馬縣 景德王改名 今奉化縣

 

''가 겹쳐 나타나므로 옛지명의 '古斯'''의 새김에 대응한다. 이는 이기문(1968) 및 박병채(1968)에서도 현대국어 '구슬'에 이어지는 어휘로 논의되었으며, 박병채(1968)에서는 /kosa/로 읽었고 유창균(1980326)에서는 /k s r/로 추정하였다. '古斯'는 여러 선학들의 연구결과에 따라 음차자로 보는 것이 온당하므로, 이 글자들의 당시 발음을 추적해 보도록 하겠다.

 

앞서(3) ''의 당시음이 /ku/였음은 이미 논의되었으므로 여기서는 ''의 발음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斯 心支 sie sie sie s e  

 

이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고구려한자음은 앞에서의(7) 논의에 따라 /si/로 추정된다. ''는 지명자료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松峴縣 本 高句麗 夫斯波衣縣

 

松山縣 本 高句麗 夫斯達縣

 

松岳郡 本 高句麗 扶蘇岬

 

火王郡 本比自火郡(一云比斯伐)

 

壽同縣 本斯同火縣

 

完山(一云比斯伐 一云比自火)

 

여기서도 '比斯比自'의 대응에서 중세국어 '()'에 이어지는 /pisi/를 추출해 낼 수 있기 때문에, ''/si/의 소릿값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을 뜻하는 고구려말 '古斯/kusi/'를 추출해 낸다. 이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계림유사]'珠曰區戌(208)' 및 중세국어 '구슬/ '에 이어지는 낱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구슬'//이 어떻게 해명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이는 원래 /kusiri/이었던 것이 ''와 결합되면서 /ri/가 탈락되었다고 본다. 이는 ''의 해석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고구려 지명표기에서 '''買省郡 (一云 馬忽)'에서 ''의 대응을 보여주는데, '綠驍縣 本 高句麗 伐力川縣'에서도 ''''이 그 새김이 같았음을 알려준다. 또한 다음의 자료에서

 

駒城 (一云 滅烏)

 

臂城郡 (一云 馬忽)

 

'滅烏', ''와 대응하는데, 여기서 ''의 고구려말 새김은 중세국어 ' '에 이어지는 낱말이었을 것이다. 이는 다음의 자료들로부터 '', ''의 새김과도 대응하고 있어서 그 개연성이 크다.

 

買忽 (一云 水城 )

 

德水縣 本 高句麗 德勿縣

 

水谷城縣 (一云 買旦忽 )

 

이는 신라 지명 '泗水縣 本史勿縣', '淸川縣 本薩買縣' 및 백제 지명 '其買縣(一云林川)'에서도 확인되어서 '', ''을 뜻하는 고대국어가 '', ''의 당시 한자음과 같이 발음되었음을 실증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이 그 원형이고 도수희(1999)에서 지적된 것처럼 'r>/V__V'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들 '', '', '' 등을 뜻하는 낱말이 다 동음어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비슷한 음상을 표기한 유사음 대응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의 고구려 새김은 /m r /로 추정된다. 이는 '駒城 (一云 滅烏)'가 가장 원형에 충실한 표기로 볼 때, 뒤에 홀소리가 하나 있어서 두 음절로 발음되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古斯馬'는 고구려말 /kusim r /를 표기한 것이 되며, ''의 새김 /kusiri/의 끝 음절 /r //m r /와 연결되면서 탈락된 형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古斯馬 /kusi(ri)-m r /

 

朽岳城 本骨尸押

 

앞에서 논의된 ''''의 대응으로부터 '''骨尸'의 대응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유창균(1980347)에서는 /k s r/로 읽고 ''의 중세국어 새김 '-'과 부합되지 않는다 하여 일본말 'kusaru'과 연관지어 분석하였다.

 

그러면 '骨尸'의 발음을 추적하여 보도록 하겠다.

 

骨 見物 kw t kw t kw t ku t

 

여러 학자들의 재구음이 대부분 일치하고 있는데, 상고음 [w ]는 합구음인 여는홀소리에 이끌려 /u/로 반영되는 원칙(1)에 의하여, 상고음 기층 고구려한자음은 /kuru/ 정도로 발음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앞서(1) 논의된 표기자료 ' 城縣 本 ' '骨正(一作忽爭)'과 연관지어 볼 때 ''의 고구려한자음과 동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게 된다.

 

''는 앞서 본 것처럼 약음차자로 /rV/를 표기한 것으로 본다면 약음차자 '' 앞의 글자 끝소리는 무시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骨尸'/kuru/를 표기한 것이 된다. 그런데, 최남희(1999ㄴ:212213)에서는 ''에 대하여 고구려지명 ' 川郡 (一云 也尸買)'에서 ''는 고구려한자음 /si/로 읽혔음을 논증한 바 있다. , 고구려에서는 이 글자가 상고음 기층의 /s r /와 중고음 기층의 /si/ 두 가지로 읽혔다는 설명이 된다. 이러한 논의에 비추어 본다면 '骨尸'''/si/로 읽혀서 /kurusi/를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의 고구려 새김이 중세국어 '-()'과 관련된다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낱말은 그 원형을 '-<* ㅎ-<고로시-'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그것은 이름씨 '고롬()'' +()+'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骨尸'''를 뜻하는 고구려말 /kurusi/를 표기한 것으로 해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낱말은 소리의 바뀜과 더불어 뜻 범주도 바뀐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무가 썩은 상태'를 뜻하던 낱말이 '동물의 육질이 썩은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 그 범주가 옮겨진 것이다.

 

骨尸押 /kurusi-kusi/

 

荒壤縣 本高句麗骨衣奴縣 景德王改名 今 壤縣

 

이 자료에서 '-骨衣' '-'의 대응을 얻을 수 있는데, 우선 '-'의 대응은 다음과 같이 지명자료에서 비교적 풍부하게 나타난다.

 

槐壤郡 本 高句麗 仍斤內郡

 

於斯內縣 (一云 斧壤)

 

黑壤郡 (一云 黃壤郡 )本 高句麗 今勿奴郡

 

穀壤縣 本 高句麗 仍伐奴縣

 

休壤郡 (一云 金惱)

 

이들 자료에서 '', ''을 뜻하는 고구려말에 해당하는 표기자가 ', , , ' 등으로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낱말의 의미에 대하여 이기문(1972), 유창균(1980), 이병선(1975) 등에서는 중세 및 현대국어 '나라()', '누리()', '(, )' 등의 동원어임에 동의하고 있으며, 천소영(199074)에서는 하늘()에 대칭이 되는 막연한 땅()이나 세상(世上)을 나타내는 말로, ''을 뜻하는 고대국어와 동음어 관계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글자들이 어떻게 읽혔는지 검토해 보도록 하겠다.

 

內 泥微 nw d nw d nw nu i  

 

弩 泥魚 na no na na /

 

奴 泥魚 na no na na

惱 泥宵 n -- naw nau

 

첫소리가 /n/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홀소리가 각 글자마다 차이가 있다. ', '', ' 사이의 차이는 매우 큰 것으로 모인다. 최남희(1999)의 논의결과에 의하면 ''의 상고음 기층 신라한자음은 /n l/이며, 중고음 기층 신라한자음은 /n i/이다. 위의 고구려지명 표기에서 나타난 음 대응을 같거나 거의 비슷한 발음의 표기라고 전제한다면 '', ''는 상고음 기층일 때 고구려한자음은 /na/일 것이므로 ''''/nu/로 재구될 수 밖에 없다. 이는 같은 말의 방언적인 차이를 반영한 표기로 본다. 이로써 ', '를 뜻하는 고구려말 /na/, /nu/를 재구할 수 있다.

 

'骨衣'에 대하여, 경덕왕의 고친이름은 ''으로 되어 있고 고려초 지명은 ' '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경덕왕의 개명의 경위에 여러 가지 임의성이 개입된 것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을 임의로 반대되는 뜻의 글자로 써서 바꿔 놓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창균(1980301)에서는 고려초 지명 ' '의 중세국어 '-()'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는 ' '이 원래 뜻일 수도 있고 ''이 워래 뜻일 수도 있어서 단정하기 어렵고, 오히려 ''이 더 가까운 시기의 개명이다. 글쓴이는 ''의 뜻을 가진 고구려말이 '骨衣'로 표기된 것으로 본다.

 

''은 고구려한자음 /kuru/임을 앞에서(12) 밝혔고, ''의 당시음을 추적해 보겠다.

 

衣 影微 i d i r j r i  

 

이와 같은 상고음의 기층을 반영했다면 여는 홀소리와 끝소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는 그 중심홀소리가 [ ]이므로, 고대국어 홀소리 체계에 따라 / /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이 글자가 향찰표기에서 거의 한결같이 ' /'로 읽히는 것은 중고음의 영향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 자료에 상고음의 고층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앞서(1), 한자음의 [t]끝소리는 처음 받아들일 때 입성으로 나지 못하고 뒤에 홀소리를 붙여서 /tV/로 소리났음을 밝혔다. 그러한 흔적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述川郡 (一云 省知買)

 

單密縣 本武冬彌知

 

玄雄縣 本百濟未冬夫里縣

 

加知奈縣(一云加乙乃)

 

바로 이러한 /tV/의 흔적이 일부 한자들에 남아 있음을 상기할 때 ''의 고층음은 /kutu/가 된다. 또한 ''의 상고음 입성끝소리 [d], [r]를 받아들여 고층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가정할 때, 이 글자의 발음은 / r /가 되므로, '骨衣'를 그러한 음대로 읽게 되면 /kut r -/가 된다. 한편 신라말 표기자료인 '居柒夫(或云荒宗)'에서 '居柒'을 찾아낼 수 있는데, 이것이 고구려말 '骨衣'와 같은 어휘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임병준(1999)에서 논의된 것처럼 't/-i,j'의 센입천장소리되기가 일어나지 않은 고구려말의 특성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며, 고대국어에서 ''을 뜻하는 그림씨 줄기가 센입천장 붙갈이소리 / /의 생성으로 인하여 '/kut r -/>/k ir-/'로 변화해 갔음을 보여 준다. 이는 다 같이 중세국어 '거츨-'에 이어지는 고대국어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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