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전쟁과 의화단의 난 때의 미 해병대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대외팽창은 노골화되기 시작했고, 하와이와 사모아 제도, 웨이크 섬, 미드웨이 섬 등에 진출하였다. 이 과정에 선봉에 선 군대가 해병대였고, 일부 섬에는 주둔하기도 했다. 이처럼 해병대가 미국의 이과 관련된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주가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월스트리트 경찰대’라는 별명까지 얻기에 이른다.
1898년, 충천하는 새로운 강대국 미국은 스페인 식민제국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전쟁을 시작한다. 미국으로써는 최소의 희생으로 중남미의 패권을 장악하고 아시아에 기반을 마련한 최대의 효과를 거둔 전쟁이었는데, 이 전쟁에서도 해병대는 선봉을 맡아 맹활약했다. 특히 관타나모에 상륙한 해병대대의 활약이 돋보였는데, 쿠바가 공산화된 지금까지도 이 항구는 해병대가 차지하고 있으며, 호화 캐스팅으로도 유명한 영화 <어 퓨 굿맨>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20세기가 시작되자마자 중국에서 의화단의 반외세 봉기가 일어났다. 55일간 포위된 북경에서 일본해군 육전대와 영국 해병대 그리고 소수의 다른 나라 수비병과 함께 미국 공관을 지켜낸 주역이 해병대였다. 그 전에도 해병대는 외국 주재 공관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지만 이 전쟁 이후로는 완전히 해병대 고유의 임무로 정착되었다. 참고로 공관 방어를 위한 전투행위는 의회의 승인 없이 행정명령만으로 가능하다. 이 전쟁은 <북경의 55일>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는데, 큰 스케일과 멋진 주제곡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벤허>의 주인공이었던 찰턴 헤스턴이 해병대 지휘관으로 주연을 맡았다. 중국과의 진짜 싸움은 반세기 후에 중국 땅 밖에서 이루어진다.
의화단 전쟁이 끝나자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은 더욱 노골화 되었고, 미국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영토 요구는 하지 않았지만 선교사들과 상인들은 황하와 양자강 깊숙하게 진출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미군은 홀수선을 낮춘 하천용 포함을 배치했고, 해병대는 이 포함에 배치되어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최선봉에 섰다. 이들은 태평양 전쟁 직전까지도 중국에서 임무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