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나무 이야기
아카시나무라고도 한다. 산과 들에서 자란다. 높이 약 25m이다. 나무껍질은 노란빛을 띤 갈색이고 세로로 갈라지며 턱잎이 변한 가시가 있다. 잎은 어긋나고 홀수1회 깃꼴겹잎이다. 작은잎은 9∼19개이며 타원형이거나 달걀 모양이고 길이 2.5∼4.5cm이다. 양면에 털이 없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5∼6월에 흰색으로 피는데, 어린 가지의 잎겨드랑이에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꽃은 길이 15∼20mm이며 향기가 강하다. 꽃받침은 5갈래로 갈라진다. 열매는 협과로서 납작한 줄 모양이며 9월에 익는다. 5∼10개의 종자가 들어 있는데, 종자는 납작한 신장 모양이며 길이 약 5mm이고 검은빛을 띤 갈색이다. 번식은 꺾꽂이와 포기나누기, 종자로 한다.
북아메리카 원산이다. 관상용이나 사방조림용으로 심으며 약용으로 쓴다. 가시가 없고 꽃이 피지 않는 것을 민둥아까시나무(var. umbraculifera), 꽃이 분홍색이며 가지에 바늘 같은 가시가 빽빽이 나는 것을 꽃아까시나무(R. hispida)라고 한다. 아카시아나무라고도 하는데, 이는 열대지방 원산인 아카시아(Acacia)와는 다르다. / 네이버 백과사전
아까시나무의 고찰(考察)
『아카시아를 잡목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건 아주 잘못된 상식입니다. 아카시아는 참 좋은 나무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에 있는 나무는 「아카시아」가 아니고 「아까시」입니다. 아까시 나무는 뿌리혹 박테리아가 있어 질소를 고정시켜서 토양을 비옥하게 합니다. 그래서 척박한 토양에 아까시를 많이 심는 거죠. 또 아까시는 생명력이 좋아 砂防사업용 으로도 쓰입니다. 아까시 나무는 나무가 단단하고 밀도가 높아 철도 침목, 수레 바퀴, 선박 선단 부분에 많이 쓰입니다. 우리는 참나무 소나무가 주 요 수종인데 헝가리는 아까시가 주요 수종이에요. 그런데 왜 우리는 아까시 를 천덕꾸러기 취급을 하느냐 하면, 그건 우리가 아까시가 제대로 자랄 수 있는 여건을 한번도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라기도 전에 베어버리고 또 잔가지와 잎사귀는 가축 먹이로 썼지요. 강원도 오지의 산에 가보세요.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란 아까시 나무는 엄청 좋아요』
『아까시는 根株(근주) 萌芽(맹아)입니다. 다른 나무를 베면 줄기에서 새싹 이 올라오는데 아까시를 베면 뿌리에서 싹이 나와요. 베면 벨수록 싹이 많 이 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속에 작은 아까시 나무만 많다고 생각할 수 도 있죠. 하지만 아까시가 있기 때문에 蜜源(밀원)으로도 연간 1천억원 정 도의 수입을 올리게 되는 거죠. 숲에 잡목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가꾸지 않은 나무만 있을 뿐이지요』
베어도 베어도 돋아나고 망출 수 없는 독종 그리고 산밭을 일구면 밭에까지 뿌리를 내려 농작물의 거름을 빼앗어 먹는 나무. 더구나 우리 조상의 산소까지 파고 들어온 나쁜 나무! 빨리 퇴치 해야될 수종! 이러한 인식들
산감이 온다고 하면 사립문을 걸어 잠그고 콩닥콩닥 뛰는 가슴으로 놀랜 토끼처럼 가슴을 졸여본 적이 있는가? 나이가 든 사람은 산에 지게를 지고 올라가서 어디가서 방을 따뜻하게 지필 나무를 해 올 것인가 고민 하던 때가 있었다. 앞산과 뒷산이 다 민둥산이던 시절 나무뿌리까지 캐어 방을 덮히고 비로 쓸은 듯이 말끔한 곳에서 나무를 하기란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금산읍 사람들은 진악산 수리너머재를 넘어 남이면 육백고지까지 갔고 남일면 부리면 사람들은 무주군 산골짜기까지 소달구지를 끌고 지게를 지고 가서 나무를 해왔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그 먼 길을 갔던 것이다. 50년대 사방사업이 시작되면서 아카시아가 심어졌고 아카시아는 우리 농민들에게 소중한 땔감이 되었다.
특히 금산지방의 사람들에게는 아카시아보다 더 고마운 나무가 없다. 온돌을 따뜻하게 덥혀줄 뿐 아니라 어떤 나무보다 인삼지주목으로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일이 끝이 나고 한유로워지면 산에 가서 올곧은 아카시아나무를 베어서 인삼지주목을 만들면 된다. 한번 베고 나서 이듬해에 가면 더 많은 아카시아가 돋아나기 때문에 대나무 밭에서 대를 베듯이 솎아다 사용하기만 하면 되니까 비싼 돈을 들여서 지주목을 살 필요도 없거니와 돈이 부족한 가난한 농민들에게는 인삼농사의 경영비를 줄여주는 고마운 나무였던 것이다.
금산에서 인삼농사를 지어본 사람치고 아카시아 지주목을 하나라도 써보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워낙 견고 하고 썪지 않기 때문에 인삼밭 위와 아래에 지주목 연목으로는 최고로 좋은 나무였다. 인삼농사를 두세 번 해도 썩지 않으니 얼마니 우리들에게 소중하였던가! 뭐니뭐니해도 녹비 작물로써는 아카시아나무가 최고이다. 아카시아잎이 너무나 기름지기 때문에 씨삼밭으로 사용할 곳에 아카시아나무를 여러 짐을 해다 놓고 불을 질러버리면 씨삼 농사에 좋다하여 우리 아버지들은 아카시아나무를 소중히 여겼다. 베어도 베어도 이듬해면 또 자라서 거름이 되어 주었던 아카시아 그 고마움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면서 산골길을 걸었던 가난했던 시절의 기억이 있는가? 아카시아 한 웅큼을 우물우물 먹으면서 주린 배를 채운적이 있는가? 아카시아 꽃을 따서 밀가루에 버무려 쪄서 떡처럼 먹었던 기억이 있는가? 그런 기억이 없는 사람은 아카시아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아카시아는 춘궁기에 굶주린 우리들에게는 곧 구황식물이었던 것이다. 아카시아의 소중함을 모르고 이 시대 민중의 아픔을 알 리가 없지 않은가
6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아카시아가 무성한 여름 방학숙제는 아카시아 잎을 따 가지고 오라는 것을‥‥. 사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학생들을 시켜서 아카시아 잎을 따오게 하였고 또한 아카시아 잎을 따서 파는 것이 돈벌이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농촌에서 자란 사람은 토끼를 한두 마리 먹여 보았을 테지만 토끼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아카시아 나뭇잎이기 때문에 방과 후에는 아카시아 잎을 따는 것이 일과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70년대 초에 까시가 없는 광엽 아카시아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질 좋은 아카시아는 어디에 심겨져 있는가?
1978년 우리가 수목원 한귀퉁이에 가두어 두었던 이 나무를 가져가 중국은 하남성에 200만 정보를 조성 하였다한다 어떻게 된 일인가! 우리나라 임학자가 그곳에 가서 감개무량하다 하였으니 이 땅에서 푸대접받고 외국에서 대접을 받는 소중한 우리 것이 어디 이뿐이랴
농촌에서 자란 사람들에게 아카시에 얼킨 추억을 하나 둘씩은 모두 갖고 있다 별로 놀이거리가 없던 그 당시 농촌 소년들에게는 아카시아 그늘에 앉아 아카시아 잎을 따서 꼬니를 두기도 하였고 풀파먹기 놀이도 하였다. 또 무료하면 손가락으로 잎을 탱궈서 아카시아 잎따기 시합을 하여 이마빡 때리기도 하였다. 아카시아에 대한 노래만 수십편이 되며 아카시아에 대한 시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아카시아는 이제 우리의 잠재의식 저편에 추억속의 꽃으로 피어있는 것이다.
아카시아의 고향은 일본이 아니라 북아메리카 캘리포니아주로 알려져 있다. 1897년 인천 공원에 처음으로 심겨졌고, 조선총독부의 초대 총독인 테라우치 마사타케가 독일 총영사 크루커에게 당시 노량진과 제물포간의 경인 철도 변에 심을 수종에 대해 자문을 구했기에 크루거는 중국 산동성의 독일령 청도(靑島)에 자국에서 옮겨와 심은 아까시나무가 잘 자란다고 했다. 테라우치는 중국으로부터 아까시나무 묘목을 들여왔다. 그러나 실제 본격 적으로 심기 시작을 한 것은 1955년부터 60년대까지 전국의 임야에 사방사업을 하면서 심겨졌던 것이다.
미국의 대외 원조기관인 U.S.O.M의 미국의 농사고문 이었던 유소 선교사가 남한의 황폐한 땅에 아카시아 수종으로 사방조림하도록 적극 권장하여 오늘날 한국아카시아의 모태가 되었던 것이다. 일본이 터무니 없이 우리 강토를 못쓰게 하기 위하여 심었다는 것은 아무 근거가 없는 말이다. 만약에 아카시아나무를 외국에서 들여온 나무이기 때문에 베어야한다는 단순논리를 펴며 국수주의적인 발상을 갖고 있다면 미국에서 들여오는 밀가루로된 제품도 먹지 말아야 하며 수입한 곡물이 주재료로 만들어진 사료를 먹여 기른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먹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포도도 외국에서 들여왔기 때문에 뽑아없애 버려야되고 사과나무도 다 캐어 버려야된다. 대부분의 사료를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지 않은가?
외국에서 들여온 것 가운데 어떤 것은 사용하고 어떤 것은 없애야된다는 이율배반적인 생각 자체가 모순이 아닌가? 대부분의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식물과 동물을 약탈하다시피 수집해간 유전자를 가지고 국익을 키워가고 있는 이 시대에 식물에 국경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는가? 진짜 아카시아나무가 가치가 없다면 당연히 퇴출시키고 베어야 된다. 그러나 아카시아나무를 베어야한다는 황당한 사람의 생각보다 아카시아는 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
백년대계를 생각하고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다시한번 생각해 볼일이다. 손자놈이 고맙다고 생각할지는 미지수이다. 팔아먹을 수 있을 런지 쓸데없는 나무를 심었다고 욕을 하지는 않을 런지 모르니 말이다. 아니 단 10년도 바라보지 못하면서 백년을 바라본다는 것처럼 황당한 일은 없다. 미국에서 낙엽송을 들여왔을 때 사람들은 선망의 대상과 고소득을 가져다줄 나무로 바라보았다. 전봇대로도 쓰고 건축물 비계목으로도 사용하며 해태목으로도 사용하며 용도가 다양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쓸모가 없는 나무가 되어버렸다.
리기다가 그렇고 또한 포풀라와 현사시가 그렇지 않은가? 앞으로 문화가 어떻게 발전되어 갈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쏘시개로 도시락으로 그리고 펄프원료로 유용하게 쓰일것이라던 포풀라 와 현사시 그러나 그렇게 경제성이 높지 않을뿐더러 리기다와 현사시는 우리에게 큰 덕을 주지 못하면서 빈 땅만 차지하고 있다.
먼저 아카시아나무는 대기오염에 대한 저항성이 높을 뿐 아니라 토양의 산성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울산 등 대기오염이 강한 지역에서 다른 수종에 비하여 저항성이 강하다는 보고서가 있으며 강원도 태백등 폐광지역에 녹화수로 조성되고 있으며 실제 메탄의 발생이 많아 다른 나무가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대규모 쓰레기 매립장 이었던 서울의 난지도 등에서 어느 수목보다 아까시나무는 일찍 스스로 뿌리를 내렸다. 산림토양이 산성비등에 장기간 영향을 받을 때 수목의 생육에 피해를 준다고 하였는데 토양의 산성화를 방지하며 산림생태계의 건전한 관리를 위해서 아카시아나무를 식재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카시아는 심은지 4년후부터는 꿀을 준다. 8-9년이 되면 한그루당 5되 정도의 꿀을 주고 아름드리가 되면 한말씩 펑펑 쏟아진다. 아카시아나무의 밀원으로써 가치는 우리나라 양봉 생산물의 80%를 차지한다 우리군의 경우 양봉농가가 20,000호에 달하며 현재 보유하고 있는 벌통수가 5800군에 이른다. 5800군에서 군당 한말을 생산한다고 볼 때 640드럼을 생산하게 되며 한 드럼 당 평균 2,000,000원을 잡을 경우 아까시아꿀에 의한 수입만 12억원이나 된다는 통계가 나온다.(우리 금산군에서만) 한종류의 나무에서 목제가치와 기타 수목이 가지는 공익적 가치를 제외하고 이 정도의 소득을 창출할 수 있다면 보호육성 할 만하지 않은가 생각 된다.
많은 나라들이 특히 우리나라와 기후조건이 비슷한 헝가리에서는 아카시아 나무를 밀원용 목재용 등으로 개발하여 심고 있고 북한도 해마다 대대적으로 심고 있다. 꿀이 펑펑 쏟아지는 나무를 왜 외면하는가? 어느 수종과 비교 하여도 목제로서 뒤지지않는나무 공해를 유발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척박한 산림토양을 기름지게하여 자연을 보살피는 아카시아 그렇다면 아카시아는 이 땅에 있는 나무 중에서 가장 경제성이 높은 나무인 것
이다.
지금도 금산에 가면 서민들은 겨울철을 이용하여 아카시아를 베어서 인삼지주목으로 사용하는데 인삼지주목으로 아카시아만한 나무가 없다. 일반 나무는 지주목으로 사용하면 다시 조림을 해야되지만 아카시아는 대나무처럼 계속 돋아나기 때문에 벌목 후에 별도로 식재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올이 곧고 내습성이 강하여 여러번 사용할 수가 있다. 숲 가꾸기를 하면서 아카시아나무 위주로 간벌을 한다는 것은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카시아는 우리 지역민들이 지금도 유용하게 써먹는 외화를 절약할 수 있는 유일한 나무이기 때문이다.
아카시아는 사료로서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일년생 목초는 계속 씨앗을 뿌리거나 비료를 주어야하지만 아카시아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한번 심어놓고 베어 먹이기만 하면 된다. 또한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진 콩과식물이기 때문에 거름을 주지 않고도 가꿀 수가 있다
아카시아 목제는 무늬가 아름다울뿐더러 나무가 강하고 습기에 강하여 잘 썩지 않는다. 무늬가 아름다워 학교와 주택용 마루판과 외부의 계단재로써 훌륭하며 현재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철도침목, 차량상판재, 가구재 등도 잘만 가꾸면 외화를 절약할 수 있다. 아카시아는 목재의 비중이 높고 수분과 재의 함량이 낮아 열량이 높고 연소율이 좋은 바람직한 수종이다. 헝거리 같은 나라는 아카시아 목재칩을 대량 생산하여 특수 고안된 보일러 용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화석연료의 고갈 등에 대비하여 아카시아를 식재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 이라고 하겠다.
이 땅의 모든 생물들은 멘델의 유전법칙을 멘델 이전부터 알고 있다. 그래서 근친상간을 싫어하고 있다. 딸기 재배 농가들이 벌통을 딸기밭에 들여 놓는 것은 벌이 없으면 딸기들은 하는 수 없이 근친교잡을 하게 되어 기형의 못생긴 딸기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벼와 보리등 풍매화를 제외한 모든 작물들은 벌이 없이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만약의 경우에 사과나 배꽃이 필 무렵에 벌과 나비가 없다면 사과나 배도 기형으로 열리게 되고 수확량이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양봉에 의한 꿀의 생산이 우리나라 농업 소득에 차지하는 비중이 1이라고 볼 때 벌의 화분매개로 인하여 생산되는 농산물의 양은 99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농업을 위해서 벌의 존재는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우리의 주장이 과연 터무니 없는 억지 주장일까
아카시아나무 꽃 개화시기
지난번 의료대란이 일어났을 때 많은 환자들이 고생을 하였다 그러나 의사들은 국가에서 자격증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통제를 할 수 있었지만 벌의 경우는 다르다. 정부에서 지원을 하여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양봉에 대하여 통제를 할 수 있는 법이 없다. 만약에 벌이 멸종하게 된다면 우리 농업이 받는 타격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사실 양봉의 역할이 이처럼 우리 농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정부에서 하여 준 것은 무엇인가? 중국과 같은 나라는 양봉대학을 세워서 꿀벌의 품종개량과 밀원식물의 개발등 새로운 기술의 보급에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우리 정부기관에서 한 일은 거의 없다. 가장 많은 덕을 보고 있는 과수농가와 일반농가에서 무분별한 농약살포(개화기에 농약살포)로 인하여 양봉농가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벌의 입장에서 보면 이 땅의 농민들에게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농산물의 증산을 위하여 화분을 매개하여 주는 벌들에게 농약을 뿌려 몰살시키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배은망덕 하다는 생각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계속해서 아카시아 나무가 공공근로의 희생양이되고 행정적 실적위주의 퇴출대상이 된다면 딸기묘를 심고 비닐하우스가 만들어지고 딸기꽃이 필 무렵 딸기재배 농가에서는 벌통을 빌리려올 것이다. 금산군의 양봉인들은 벌통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며 아카시아나무의 무분별한 벌목을 하고 있는 금산군에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 한국양봉협회소속 회원들의 협조하에 금산지역에 벌의 반입을 통제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딸기농가는 고사하게 된다. 그들은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것인가. 벌통은 사유재산이고 또한 법적으로 제재를 할 수 있는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2년 4월에는 전국이 지방선거로 들끓게 될 것이다. 금산군 양봉농가들은 4월 사과와 배가 꽃이 피기 전에 금산군에 있는 벌통들을 모두 다른 지역에 옮겼다가 꽃 이 진 다음에 금산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사과와 배등 과수농가에서는 충분한 수정을 못하기 때문에 꽃한송이 한송이에 인공수정을 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폐농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벌들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