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탄생
소년 지구 : 희미한 생명의 흔적을 찾아서

지구 최초의 생명을 찾아서
현재 지구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물이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지구를 생물이 살도록 특별히 창조된 장소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45억 년 전 지구가 탄생한 뒤 수억 년 동안 지구에 생물이 살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홍해의 산호초 모습
지구는 탄생 직후 이글거리며 끓고 있는 마그마바다로 덮여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그마바다로부터 지각이 만들어지고, 해양과 대기가 생성되었다. 지구에 바다가 존재하기 시작한 때는 44억 년 전 무렵으로 추정되며, 그때의 대기 성분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이러한 원시지구에서 그리고 태양으로부터 들어오는 생명에 치명적인 광선(예를 들면, 자외선)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환경 아래에서 생명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생명의 기원에 관한 논의
생명이 언제 어떻게 태어났는가 하는 질문은 인류가 오래전부터 궁금해했던 명제였다. 기원 전 학자들은 생물이 진흙으로부터 우연히 생겨난다고 생각했고, 그러한 자연발생설은 큰 거부감 없이 오랫동안 받아들여져 왔다.
19세기 루이 파스퇴르(LouisPasteur)의 유명한 실험(멸균한 고기즙을 플라스크에 넣었을 때, 외부와 차단된 플라스크에서는 미생물이 생기지 않았지만, 외부와 연결된 플라스크에서는 미생물이 생겨난 실험)이 알려지면서 자연발생설은 사라지고 생물속생설(생물은 생물로부터 생겨난다는 생각)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러시아의 생화학자 오파린(AlexanderOparin)이 생명은 무기물질의 합성에 의하여 탄생하였다고 하는 화학진화설을 제안한 후, 현재는 이 가설에 바탕을 둔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밀러와 유리의 실험장치
오파린의 화학진화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원시지구에 존재했던 무기물들이 반응하여 간단한 유기화합물을 만들고, 이 유기화합물들이 합쳐져 좀 더 복잡한 유기물 복합체를 이루었다. 이 유기물 복합체는 어떤 막 구조에 의하여 주변과 격리되었고, 한편으로는 막 바깥 물질을 흡수하거나 두 개의 개체로 갈라지기도 했다. 오파린은 이 유기물 복합체가 독자적인 생화학적 기능을 했기 때문에 생명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유기물 복합체를 코아세르베이트(coacervate)라고 불렀다.
오파린의 가설은 1955년 발표된 미국의 밀러(StanleyMiller)와 유리(HaroldUrey)의 실험 연구에 의하여 강력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들은 당시에 원시대기의 주성분으로 알려졌던 메탄, 암모니아, 수증기, 수소의 혼합기체를 밀폐된 실험기구에 넣고, 일주일 동안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 후, 실험기구의 바닥에 고인 액체를 분석하여 아미노산, 지방산, 당류 등 유기물질이 생성되었음을 발표하여 과학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아미노산은 단순한 유기화합물로 생명체가 아니며, 생명의 기본 구성물질로 중요한 것은 아미노산보다 더 복잡한 유기화합물인 단백질(蛋白質)이다. 이론적으로 아미노산을 농축시키면 단백질이 생성될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 실험실에서 단백질을 합성한 적은 없다.
단백질과 DNA, 어느 것이 먼저 출현했나?
생명의 기본단위는 세포(細胞)다. 생명이 성장하는 것은 새로운 세포가 늘어나는 일이며, 세포가 늘어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단백질이 생성되어야 한다. 단백질의 생성은 각 세포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한 유전정보를 해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유전정보는 세포 내 핵산(核酸)에 들어 있다. 핵산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DNA고, 다른 하나는 RNA다. DNA는 이중나선구조로 이루어진 매우 복잡한 물질인 데 비하여, RNA는 한 가닥으로 이루어져 비교적 간단하다.
DNA와 RNA의 구조
DNA에는 생물이 성장하고 번식하는 데 필요한 유전정보가 들어 있으며, RNA는 이 유전정보를 읽고 전달하는 일을 담당한다.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같은 구조의 DNA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때 DNA의 유전정보를 읽고 운반하는 일을 RNA가 담당하며, 그 정보를 해독하여 새로운 단백질을 만든다. 그런데, DNA에 들어 있는 유전정보를 읽기 위해서는 효소로 작용하는 단백질의 도움이 필요하다.
문제는 단백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DNA의 유전정보를 필요로 하는데, 그 유전정보를 읽으려면 촉매로 작용하는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DNA가 먼저 출현했느냐 아니면 단백질이 먼저 출현했느냐 하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질문처럼...
RNA 세계와 최초의 생물
그런데, 최근 RNA가 유전정보를 읽고 전달하는 일 외에 자기복제의 기능이 있고, 또 촉매로 작용하여 특정한 단백질을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원시지구에서 비교적 간단한 RNA가 먼저 만들어진 다음, 유전정보를 전달하고 스스로 복제하고 단백질을 만드는 일이 가능했음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시작되었으리라고 추정되는 지구 최초의 생물계를 RNA세계(RNAWorld)라고 부른다. 그리고 한참 지난 후, 구조적으로 복잡하지만, 화학적으로 안정된 DNA가 RNA 역할의 일부를 대신하면서 지금처럼 DNA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생물계가 형성되었다는 시나리오다.

RNA의 세계RNA분자(a)가 자기복제를 한 후(b) 단백질을 합성하기 시작하였으며(c), 단백질이 촉매로 작용하면서(d) DNA가 RNA의 역할을 대신하였다(e).
단백질과 RNA 그리고 DNA가 생겨났다고 해도 이들은 아직 생명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들이 생명체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특별한 장치(예를 들면, 생물체의 막)가 필요하다. 유기물질을 모으고, 이들을 생물체의 막으로 감싸기 위해서는 촉매가 필요했을 텐데, 점토나 광물알갱이가 그러한 기능을 담당했다는 주장이 있다.
점토광물의 표면에 유기물질이 부착된 모습
원시지구에서 생성된 단백질과 핵산과 같은 유기물질이 막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면, 이를 지구 최초의 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형성되었으리라고 추정되는 지구 최초의 생명을 원세포(protocell原細胞)라고 한다.
희미한 생명의 흔적
그러면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랜 화석기록은 무엇일까? 지구상에서 알려진 가장 오랜 암석은 캐나다의 아카스타 편마암이다, 그런데 이 편마암은 원래 화성암이었던 듯하다. 그러므로 그 암석에서 화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카스타 편마암 다음으로 오랜 암석은 약 38억 살 전후의 편마암으로 그린란드와 캐나다에서 발견되었다. 그린란드의 잇사크(Itsaq) 편마암복합체와 캐나다의 누부악잇턱(Nuvvuagittuq) 습곡대의 암석이 그것이다. 두 지역에는 모두 퇴적암이 분포한다. 그러므로, 만약 38억 년 전 이전에 생명체가 출현했었다면, 이곳에 화석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다.
잇사크 편마암복합체는 그린란드 서남부 해변에 분포하며, 대표적 암석은 호상(縞狀) 편마암이지만 그 밖에도 여러 가지 화성암과 퇴적암이 함께 들어 있다. 잇사크 편마암복합체의 나이는 38억 7000만∼36억 2000만 살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호상(縞狀) 철광층을 포함한 퇴적암이 잘 드러난 곳으로 이수아(Isua) 습곡대가 유명하다. 약 38억 살인 이수아 습곡대는 일찍이 가장 오랜 생명의 흔적을 간직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화석 자체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이수아 습곡대의 퇴적암 속에 들어 있는 탄소동위원소 비율이 오늘날 생명체에 들어 있는 비율과 비슷하다는 점2)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생명의 기록으로 교과서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서 새로운 실험기법을 사용하여 탄소를 분석한 결과, 이수아 습곡대의 탄소는 생명이 만든 것이 아니라 변성작용이 일어날 때 무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41억 살의 지르콘 광물 알갱이
그런데 2015년 10월, 41억 년 전에 생성된 지르콘 광물 속에서 생명의 흔적을 찾았다는 놀라운 소식이 발표되었다.4) 미국 UCLA대학의 지구화학자인 마크 해리슨(MarkHarrison) 교수 연구팀은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의 잭힐스(JackHills) 역암에 들어 있는 지르콘 광물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다. 그중에서 흑연 덩어리를 가진 지르콘 광물알갱이를 고른 다음, 흑연 덩어리의 탄소동위원소 비를 측정하였다.
그 결과, 41억 살의 지르콘 광물 속에 들어 있는 흑연 덩어리로부터 생물 기원의 특성을 보여주는 탄소동위원소 비를 얻었다. 그 흑연 덩어리는 지르콘 광물이 생성될 때 들어갔기 때문에 생명은 그 이전에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그때까지 알려졌던 가장 오랜 생명의 기록을 3억 년이나 앞당긴 연구결과였다. 앞으로 이 연구결과에 대한 혹독한 검증이 이루어지겠지만, 만약 이 주장이 맞는다면 생명은 지구 탄생 후 4억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출현한 셈이다.
35억 년 전 화석에 관한 진위 논쟁
이수아 암석 다음으로 오랜 것은 약 35억 살의 퇴적암으로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오지에 잘 드러나 있다.5) 그곳의 이름은 ‘노스폴(NorthPole)’로 직역하면 ‘북극’인데, 남반구의 뜨거운 아열대지방에 ‘북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점이 흥미롭다.
이곳의 퇴적층은 와라우나층군(WarrawoonaGroup)으로 불리며, 주로 석회질과 규질 퇴적암으로 이루어진다. 와라우나층군에서는 남세균(cyanobacteria)들이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얇은 층들이 겹겹이 쌓여 이룬 퇴적구조)처럼 생긴 구조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발표 당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와라우나층군의 암석(스트로마톨라이트)과 화석
와라우나층군으로부터 더욱 흥미로운 연구결과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인 1993년 발표되었다. 미국 UCLA의 제임스 스코프(James W. Schopf) 교수는 와라우나층군의 에이펙스 처트(ApexChert)로부터 남세균 화석을 발견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와라우나층군으로부터 남세균 화석의 발견은 당시 과학계에 엄청난 소식이었다.
왜냐하면, 남세균은 광합성을 하는 생물이고 따라서 지구의 대기에서 중요한 기체인 산소의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증거였기 때문이다. 이후 와라우나층군의 남세균 화석은 지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랜 화석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되었다.
과학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일이지만, 대부분의 새로운 학설 또는 발견들은 반드시 신랄한 검증을 거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 어떤 형태로든지 공격을 받게 된다. 에이펙스 처트의 가장 오랜 화석도 그러한 공격을 피할 수 없었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에이펙스 처트 남세균 화석의 실체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사람이 등장하였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마틴 브레이저(MartinDavidBrasier) 교수로 영국 자연사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스코프 교수의 연구 표본을 자세히 검토한 후 에이펙스 처트의 남세균 화석이라고 알려진 표본은 생명의 흔적이 아니라 변성작용이 일어날 때 생성된 작은 결정들의 집합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 논문은 지질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가져왔다. 당시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가장 오랜 화석으로서의 기록과 산소의 출현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모두 새롭게 들여다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두 연구팀은 에이펙스 처트 남세균 화석의 진위에 관한 치열한 과학적 논쟁을 벌였고, 그 논쟁은 최근까지도 이어졌지만, 스코프 교수의 남세균 화석은 그 위상이 많이 훼손된 듯하다. 그러다가 2011년 브레이저 연구팀에서 에이펙스 처트 화석산지로부터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인 스트렐리 풀(StrelleyPool)에서 34억 살의 미생물 화석을 보고하면서 지구상에서 알려진 가장 오랜 화석이라는 주장을 펼쳤다.8) 스트렐리 풀의 화석은 형태가 구형이거나 타원형이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세균의 모습에 가까웠다.
스트렐리 풀에서 보고된 34억 살의 미생물 화석
이 화석 생물은 산소가 없고, 메탄,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황화수소 같은 유독한 가스로 채워진 환경에서 황(S)에 의존하여 살았던 미생물로 추정되었다. 적어도 남세균의 특징은 보여주지 않았다.
사실 35억 년 전의 지구환경을 그려 보았을 때, 지구상에 가장 먼저 등장한 생물이 산소를 방출하는 광합성 활동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2011년 가장 오랜 화석으로 새롭게 등장한 표본도 몇 년 후에 또 다른 공격을 받지는 않을까?
지구 최초의 생물은?
생물이 맨 처음 어떻게 출현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지구 최초의 생물은 아마도 산소가 없는 물속에서 생활하면서 물속에 들어 있는 영양분을 섭취하던(잡아먹던) 원핵생물(세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생물이 빠르게 번성함에 따라 심각한 먹이 부족을 겪었을 것이며, 결국 생물은 스스로 영양분을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생물들은 당시 지구에서 풍부했던 이산화탄소와 다른 성분들을 이용하여 유기물을 만듦으로써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었을 것이다.
시생누대의 지구환경을 고려해 보았을 때, 이 시기의 생물은 이산화탄소(CO2)와 수소(H2)를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는 메탄생성세균(methanogen) 또는 이산화탄소(CO2)와 황화수소(H2S)를 이용하여 광합성 활동(산소를 방출하지 않는)을 했던 황세균(sulfurbacteria)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수소(H2)나 황화수소(H2S)는 양이 비교적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단계에서는 거의 무한한 자원인 이산화탄소(CO2)와 물(H2O)을 이용하여 광합성 활동(산소를 방출하는)을 하는 생물이 등장했을 것이다. 뒤에서 자세히 알아보겠지만, 산소를 방출하는 광합성 활동을 하는 생물(남세균)은 늦으면 고원생대 초(24억 년 전)에 이르러서야 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구 최초의 생명은 무엇이었을까?
지구상에서 생명의 출현과 관련된 기록을 요약하면, 41억 년 전의 지르콘 광물에 남겨진 탄소의 흔적은 생명의 활동에 의하여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화석 기록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오지에서 발견된 34억 년 전의 생물이 가장 오랜 것이다. 그 생물은 원시적인 세균(細菌)에 속했을 것이다. 산소를 방출하는 광합성 활동을 하는 미생물은 (아직도 논쟁 중이기는 하지만) 고원생대에 들어가서야(24억 년 전 무렵)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