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문헌 : 계구암집.계남집.계당집(최흥림.정회찬.유주목).계당초고.계동집.계미유고.계산집.계서문집.계서유고.계서일고.계서집.계암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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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구암집(戒懼菴集)
조선 중기의 학자 윤형로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학자 윤형로(尹衡老)의 시문집. 14권 7책. 신활자본. 증손 수연(守淵)이 편집, 간행하였다. 김병학(金炳學)의 서와 김학성(金學性)의 발이 있다.
권1은 시 139수, 권2∼4는 서(書) 43편, 권5는 서(書) 7편, 변(辨) 5편, 권6∼9는 차록(箚錄)으로 논어·중용도설(中庸圖說) 1편, 권10∼12는 존성록(尊性錄)으로 원성편(原性篇) 상·중·하, 권13은 복성편(復性篇), 잠 3편, 제문 5편, 가훈 9편, 독서장 13편, 극기장(克己章) 13편, 조심장(操心章) 17편, 검신장(檢身章) 12편, 권14는 사친장(事親章) 20편, 우애장(友愛章) 5편, 형처장(荊妻章) 12편, 교자장(敎子章) 6편, 근검장(勤儉章) 4편, 거향장(居鄕章) 10편, 교우장(交友章) 11편, 곤궁장(困窮章) 9편, 사환장(仕宦章) 8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시에는 대부분의 성리학자들의 시와 마찬가지로 차운시·경물시·감회시 등이 많다. 차록은 ≪논어≫·≪중용≫의 원문을 쓰고, 저자의 생각을 적은 뒤에 제자(諸子)들의 주(注)를 초록하였다.
변 가운데 〈외당심성설변의 巍塘心性說辨疑〉에서 이간(李柬)과 한원진(韓元震)의 심성설을 구분하고 의문점을 지적하면서도 절충점을 모색했다.
존성편에서는 주돈이(周敦頤)·정자(程子)·주자(朱子)·이이(李珥)의 학설을 인용하여 성(性)을 설파하고, 불교와 왕양명(王陽明)·양웅(揚雄) 등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단으로 배척하였다.
서는 김간(金榦)·박필주(朴弼周)·이재(李縡) 등에게 성리설의 의문점을 문의한 것이 대부분이며, 특히 〈여유회지서 與柳晦之書〉에서는 성도(性圖)·인물분속오행도(人物分屬五行圖)·심명목도(心名目圖)·성명목도(性名目圖)·천명이분도(天命理分圖) 등에 대해 별지로 성리설을 이이의 설을 인용, 설명하였다.
사환장에서는 과거의 학자들은 학문을 하다가 도리에 따라 벼슬했지만, 지금의 학자들은 학문에 힘쓰기보다는 오히려 벼슬자리와 승진에 급급하다고 비판하였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계남집(溪南集)
조선 말기의 학자 최숙민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 최숙민(崔璹民)의 시문집. 30권 10책. 목활자본.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연도를 알 수 없다. 권1∼4에 시 480여 수, 권5∼19에 서(書) 268편, 권20∼22에 잡저 41편, 권23∼25에 서(序) 16편, 기 18편, 발 19편, 권26에 명잠 4편, 사(辭) 5편, 상량문 2편, 축문과 제문 29편, 권27에 비명 1편, 묘표 3편, 권28에 묘갈명 7편, 묘지명 9편, 권29·30에 행장 11편,사장(事狀) 1편,유사 5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지기들과 수창(酬唱)한 것 외에 명승고적을 답사하면서 즉흥적으로 술회한 것이 많다. 서(書)는 사서에 대한 문목(問目)과 최익현(崔益鉉)과 왕복한 서찰이 많다. 그 중 〈상노사선생문목 上蘆沙先生問目〉은 ≪대학≫의 이기(理氣)·성심(性心)에 대한 문목이다.
〈답유종원 答柳鍾源〉은 유종원이 심(心)을 기(氣)로 보는 견해에 대한 답으로 경전내용을 인용, 심을 기 하나로 표현할 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여정재규 與鄭載圭〉도 성(性)과 심(心)에 대한 내용이다.
잡저의 〈명덕변 明德辨〉은 ‘명덕이 심’이라는 설에 대한 논술이며, 〈노산만록 蘆山謾錄〉은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통분하여 왜적들의 잔혹한 행위를 폭로한 것으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국민 각자가 충간의담(忠肝義膽)을 가다듬어 일사보국(一死報國)의 민족정기를 발휘해야 됨을 논술하였다.
〈심설 心說〉은 심통성정(心統性情)에 대하여 심·성·정은 하나이면서 명칭만 다를 뿐임을 논술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계당집(溪堂集)
조선 중기의 학자 최흥림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학자 최흥림(崔興霖)의 시문집. 1권 1책. 활자본. 1804년(순조 4) 그의 11대손 학수(學洙)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환기(宋煥箕)의 서문과 권말에 학수의 발문이 있다.
시 12수, 명·제문·유사 각 1편, 부록으로 제계당운(題溪堂韻)·가장·묘표·묘지명·개기축문(開基祝文)·계당중수상량문·계당기와 창수첩후(唱酬帖後)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부분이 조식·성제원·노수신(盧守愼) 등과 화답한 것이다.
〈재종질수우당명 再從姪守愚堂銘〉은 재종질 영경(永慶)의 호인 수우당에 대한 명문으로, 안자(顔子)의 청빈낙도를 표방, 분수를 지키고 외식(外飾)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우(愚)’를 찬미하였다. 이는 수신과 안분의 좋은 자료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계당집(溪堂集(정회찬)
조선 말기의 학자 정회찬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 정회찬(鄭悔燦)의 시문집. 7권 3책. 목활자본. 아들 구규(龜奎)가 편집해두었던 것을 1858년(철종 9) 증손 희청(希淸)이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치규(宋穉圭)·송흠준(宋欽俊)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기정진(奇正鎭)의 발문이 있다.
권1∼3에 시 580수, 권4·5에 서(書) 1편, 설(說) 7편, 가칙(家則) 1편, 계(誡) 7편, 잠 4편, 부 1편, 문 3편, 변 1편, 묘결(妙訣) 1편, 통문 1편, 전제(田制) 1편, 병제(兵制) 1편, 사법(四法) 1편, 방납산결(防納散結) 1편, 권6에 서(序) 7편, 발 5편, 상량문 2편, 축문 5편, 제문 9편, 비문 3편, 권7은 부록으로 가장 1편, 만사 96수, 시 12수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온아하며 중후하고, 비유가 많은 것이 특색이다. 〈노화설 爐火說〉은 이기의 상호작용을 불이 일어나는 것에 비유하면서, 불이 섶에 의해 일어나는 것을 이가 기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섶에 불이 붙게 하는 것은 기가 이에 의해 작용하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답존양성찰전후설 答存養省察前後說〉은 존양과 성찰을 음양의 동정과 사물의 본말에 결부시켜 설명하면서, 존양은 음양의 정(靜)과 사물의 본과 같고, 성찰은 음양의 동과 사물의 말의 원리와 같아, 존양의 공부가 먼저이고 성찰의 공부는 나중임을 주장하였다.
〈전제〉는 ≪맹자≫에서 주장된 조법(助法)에 기초하여 정전(井田)제도를 행할 것을 주장하면서, 이미 우리나라에도 평양의 기전(箕田)과 같이 시행된 사례가 있다고 지적해 시행이 어렵지 않음을 강조하였다.
〈죽원자설 竹圓子說〉은 ≪서경≫의 기삼백(朞三百)과 선기(璿璣)를 연구하여, 죽원자(璿璣玉衡의 별칭)를 천지와 일월성신의 궤도에 맞도록 모형을 만들고 그 이용의 방법과 동기 등을 설명하였다.
이밖에 인심이 사물을 접할 때 천리에 맞도록 할 것을 주장한 〈도량설 度量說〉과 우리 나라 군대제도의 개선을 주장한 〈병제〉가 있고, 열 가지의 금지조항으로 자손을 훈계한 〈십무자유계 十毋字遺戒〉와 열 가지의 실천조항을 담은 〈십필자유계 十必字遺戒〉 등이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계당집(溪堂集)
조선 말기의 문인 유주목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문인 유주목(柳疇睦)의 시문집. 16권 8책. 석인본. 이 문집은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연도가 확실하지 않다.
≪계당집≫ 권1에 시 111수, 권2에 소(疏) 3편, 권3∼7에 서(書) 280편, 권8에 서(序) 33편, 권9에 기 18편, 발 11편, 권10에 제발 23편, 설 5편, 명 5편, 자사(字辭) 1편, 전(傳) 1편, 권11에 잡저 44편, 애사 4편, 권12에 제문 19편, 비명 4편, 권13에 묘갈명 21편, 권14에 묘지명 7편, 묘표 2편, 묘갈음기(墓碣陰記) 4편, 권15·16에 행장 2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당집≫ 중에 〈의상육조소 擬上六條疏〉는 아버지가 1872년(고종 9) 판중추부사로 치사(致仕)한 뒤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올린 것이다. 당시 조정의 문란한 정치기강과 열강의 진출에 대비하는 방책을 근성학(勤聖學)·엄사금(嚴邪禁)·득현재(得賢才)·수무비(修武備)·청사로(淸仕路)·정민지(定民志) 등 여섯 조목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그리고 사교를 배척하고 파벌을 없애며 국방을 엄하게 할 것을 요구하였다.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지은 것이지만 평소 지니고 있던 정론(政論)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계당집≫ 잡저 중에 〈계당강회절목 溪堂講會節目〉에서는 17조목으로 교육목표와 강학활동의 절차 및 행동규범을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제문 祭問〉에서는 제례에 대하여 ≪가례≫·≪남계예설 南溪禮說≫·≪사계예설 沙溪禮說≫ 등에서 논의되지 않았으나, 실제로 행사하는 데는 없어서 안 될 사항들을 가려서, 자기의견을 첨가하여 문답형식으로 설명하였다. 그 ≪계당집≫에는 이준(李埈)의 공로와 학행을 열거하여 시호를 내려줄 것을 청한 〈창석이선생청증시소 倉石李先生淸贈諡疏〉와 박세채(朴世采)의 문집을 간행하게 된 경위를 설명한 〈남계집서 南溪集序〉가 있다.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켜 국가수호에 공헌한 김각(金覺)의 사실을 칭찬한 〈석천김선생창의사실발 石川金先生倡義事實跋〉과 효자 강천(姜天)의 효행을 기록한 〈서강효자사 書姜孝子事〉가 있다. 전주대학교 도서관과 현곡서원(玄谷書院) 등에 있다.
계당초고(溪堂草稿)
조선 말기의 학자 신낙기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 신낙기(申樂起)의 시문집. 불분권 1책. 필사본. 시 215수, 서(書) 10편, 논 1편, 기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귀서파작 歸西坡作〉은 산촌의 풍경을 나타낸 것이고, 〈청우 聽雨〉는 농촌의 실태를 그린 작품이다.
〈청적 聽笛〉에서는 달 밝은 밤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옥적의 청아한 음향을 묘사하였다. 논 가운데 〈매류쟁춘론 梅柳爭春論〉에서는 매화와 버드나무는 도리(桃李)·송황(松篁)과 마찬가지로 제각기 품성이 다른 것인데, 봄을 다툰다고 하는 쟁춘지설은 황당한 일이라고 논평하였다.
기의 〈경수기 鏡水記〉는 고흥의 녹도(鹿島)에 대하여 쓴 글로 사슴이 물을 마시러 달려가는 형상이므로 녹도라 이름하였고, 그 물이 청정하여 경수(鏡水)라 하였으며, 왼쪽에 금화(金華)·노량(露梁), 오른쪽에 진도(珍島)·금릉(金陵), 앞에는 탐라(耽羅)가 있어 해방(海防)의 요새지라고 입지적인 여건을 설명하였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계동집(溪東集)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전경창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전경창(全慶昌)의 시문집. 2권 1책. 목판본. 1859년(철종 10) 후손 치현(致賢)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휘준(李彙濬)의 서와, 권말에 서찬규(徐贊奎)의 발이 있다.
권1은 부(賦) 1편, 시 5수, 소 3편, 잡저 2편, 권2는 부록으로 행장 1편, 묘표 1편, 봉안문 1편, 만사 35편, 제문 14편, 제가기술(諸家記述) 6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의(經義)에 대하여 논술한 것은 없고, 소에서는 승려 보우(普雨)를 극형에 처하라는 내용이 있고, 또한 왕계(王系)를 변무(辨誣)하러 간 변무사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자 변무사를 전사(專使)로 보낼 것을 상소한 것도 있다.
〈가헌 家憲〉 25개 조목, 〈가령 家令〉 14개 조목을 지어, 가정에서 지켜야 할 일을 후손에게 남겨주었다.
계미유고(溪湄遺稿)
조선 말기의 학자 김병수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 김병수(金炳洙)의 시문집. 4권 2책. 목판본. 1916년 그의 손자 문진(文鎭)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중곤(李中錕)·김학진(金鶴鎭)의 서문과 권말에 김영한(金寗漢)·김호근(金浩根)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詩) 58수, 권2·3에 서(書) 18편, 서(序) 1편, 기(記) 4편, 발(跋) 3편, 상량문 1편, 잡저 3편, 제문 14편, 권4는 부록으로 애모록(哀慕錄) 1편, 행장 1편, 만사 16편, 제문 8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서(書)에는 지방관들에게 선정을 베풀 것을 촉구한 글이 여러 편 있는데, 특히 1838년(헌종 4) 그가 향임(鄕任)의 직을 맡고 있을 때 안동부사 이석(李0x9A60)에게 올린 글에서는 부내 삼정(三政)의 폐가 적지 않음을 지적하고, ① 제반독납(諸般督納), ② 인귀분간(人鬼分揀), ③ 환폐견감(還弊蠲減) 등 세 가지를 바르게 시행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는 당시 지방관에 대한 향임들의 견제기능이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보는 데 참고가 되는 자료이다. 잡저와 발에 수록된 〈서용천안의사전후 書龍川安義士傳後〉 및 〈효자이모와규진전 孝子李慕窩奎鎭傳〉 등은 후세에 잊혀져가는 이규진(李奎鎭)의 효행과 병자호란 때 큰 공을 세우고 끝까지 청나라에 항거하다가 마침내 1641년(인조 19) 반청(反淸)을 꾀하였다는 죄목으로 억울하게 처형당한 안극함(安克諴)의 충절을 적은 것이다.
그 밖에 〈수락대기 水落臺記〉·〈병암정기 屛巖亭記〉 등에는 산천을 소요하며 명승을 소개한 기문들이 수록되어 있어 그 때의 경관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계산집(桂山集)
조선 말기의 학자 신지익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 신지익(辛志翊)의 시문집. 2권 1책. 석판본. 1957년 그의 종증손 문식(文植)이 편집, 간행했으며, 권두에 김종하(金鍾河)·김재화(金在華)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종증손 문식과 신용호(辛容鎬)의 발문이 있다.
권1·2에 시 173수, 서(書) 21편, 서(序) 3편, 기 5편, 발 2편, 문(文) 2편, 축문 5편, 상량문 4편, 제문 14편 등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고, 부록으로 만사 40수, 제문 12편과 가장·행장·묘지명·묘갈명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매우 평이하면서도 깊이 있는 서정을 노래한 것이 많다. 〈감춘 感春〉·〈춘해 春解〉·〈동지〉·〈하청 夏晴〉 등은 계절의 변화를 감수성 높게 표현한 것으로, 봄의 화려함 속에 인생의 허무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흑매 黑梅〉·〈괴석〉·〈산사 山寺〉·〈파초〉 등 영물(詠物)·서경의 시에 있어서도 감회를 곁들여 시적인 정취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서(書)의 〈여안경옥 與安景玉〉은 수신과 학문의 방도를 설명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기의 〈청량정일기 淸凉亭日記〉는 사마광(司馬光)의 〈유산록 遊山錄〉을 읽고 충동을 느껴 친구들과 함께 14일 동안 청량산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이다.
〈칠계서원발문 漆溪書院發文〉은 칠계서원이 최흥원(崔興遠)을 봉안한 곳이나, 학문적인 연원으로 보아 최흥벽(崔興璧)을 함께 배향해야 된다고 주장한 글이다.
이 밖에 〈유화왕산성기 遊火旺山城記〉는 임진왜란 때의 전적지 화왕산성을 돌아본 기록이며, 〈기두신문 祈痘神文〉은 역신에게 물러가라고 달래는 축문이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계서문집(谿栖文集)
조선 후기의 학자 이만숙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 이만숙(李晩淑)의 시문집. 4권 2책. 목활자본. 권두에 이중철(李中轍)의 서문과 권말에 이중균(李中均)의 발문이 있다. 1934년 후손 원술(源述)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1에 시 66수, 소 1편, 권2·3에 서(書) 26편, 잡저 1편, 기 2편, 제문 3편, 뇌문(誄文)·유사·행략(行略) 각 1편, 권4는 부록으로 기·만사·애사·제문·행장·묘갈명·행략·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연원십영 淵源十詠〉·〈은일십영 隱逸十詠〉 등은 서경시로서 역작이다.
그 밖에는 대개 여행시가 많다. 〈상팔조소 上八條疏〉는 대인작(代人作)으로 군학(君學)·시무(時務)에 관한 8개항의 건의내용이 들어 있다. 서(書)에는 스승 강필효(姜必孝)와 유치명(柳致明)에게 보낸 글이 많다.
예학과 성리학에 관한 문목(問目)·별지(別紙)도 상당수 있어 그의 학문적 심도를 짐작할 수 있다. 잡저의 〈유청량산록 遊淸凉山錄〉은 기행문으로 비교적 문학성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평가된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계서유고(溪西遺稿)
조선 후기의 학자 백진항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 백진항(白鎭恒)의 시문집. 5권 2책. 1913년에 목활자본. 그의 후손 형일(亨一)·형두(亨斗)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책머리에 기우만(奇宇萬)의 서문과 권말에 증손 후인(厚寅)·장인(璋寅) 등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115수, 권2에 소(疏) 1편, 권3에 서(書) 13편, 발(跋) 2편, 제문 1편, 잡저 1편, 권4에 가사별록(家史別錄) 13편, 권5에 부록으로 서(序) 5편, 제현기증시(諸賢寄贈詩) 17수, 사우왕복서(師友往復書) 3편, 만장 42편, 제문 3편, 가장 1편, 묘갈명 1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상농폐소 擬上農弊疏〉는 의작(擬作)으로 농가의 폐단과 노고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밭이 묵은 땅이며 개간하지 않아서 농산물이 감축된다고 전제하고, 백성들이 농사에 힘쓰지 않는 것은 모두 부역과 세금이 과중하기 때문인데, 새로 개간한 밭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면 자연 농사에 힘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권농잡지 勸農雜識〉에서는 농민이 농사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수리시설을 갖추고 농기구를 완비하여야 하며, 우선 산림정책에 힘쓰고 금죽령(禁竹令)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권농하는 방법으로는 농서를 더욱 많이 간행하여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고, 또한 검소한 생활을 숭상하게 하여 백성들의 생활기반을 안정시키는 것이 제일이라고 강조하였다. 그 밖에도 자기의 가계에 대한 역사를 기록한 〈가사별록〉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계서일고(溪西逸稿)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성이성의 시문집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성이성(成以性)의 시문집. 2권 1책. 목활자본. 1863년(철종 14) 8대손 종진(鍾震)에 의해 간행되었다. 권말에 종진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16수, 교서 2편, 제문 3편, 소 2편, 계사 7편, 서계 2편, 서(書) 14편, 연행일기(燕行日記) 1편, 권2는 부록으로 행장·묘갈·묘지 각 1편, 만사 34수, 제문 1편, 그리고 오천서원봉안문(梧川書院奉安文)·상향축문·계서초당기(溪西草堂記)·청백인정비명(淸白仁政碑銘)·의정부계(議政府啓)로 구성되어 있다.
〈교경상도관찰사이만서 敎慶尙道觀察使李曼書〉는 경상도관찰사 이만에게 왕을 대신하여 쓴 것으로, 관찰사의 임무가 막중함을 강조해 소임을 다할 것을 촉구하면서, ‘속오군급보법(束伍軍給保法)’을 철저히 시행하도록 당부하였다.
〈쟁론원종추숭소 爭論元宗追崇疏〉는 인조의 아버지 부(琈)의 왕위 추존을 반대하는 것으로, 법은 만세의 기강이기 때문에 지극히 공평해야 하며, 왕이라도 사사롭게 이용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역대 어느 왕조에서도 찾기 힘든 일을 한다는 것은 후세에 좋지 못한 영향을 남길 것이므로 추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청김자점의율죄계 請金自點依律定罪啓〉는 도원수 김자점이 직무를 태만히 해 청나라 군사 수백 명을 싸우지 않고 통과시킨 것은 대역죄라고 규탄하면서, 처벌로써 군기를 바로잡을 것을 주청하였다.
그 밖에도 충청도와 전라도의 민정을 시찰하여 생활의 실태, 생업분포, 세금의 과세, 삼정의 폐해, 탐관의 작폐 등을 보고한 〈암행어사시서계 暗行御史時書啓〉와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중국에 다녀오면서 중간에서 겪고 보고들은 것을 기록한 〈연행일기〉가 있다.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계서집(溪西集)
조선 후기의 학자 권규도의 시문집
조선 후기의 학자 권규도(權奎度)의 시문집. 2권 1책. 목판본. 1912년 손자 용하(庸夏) 등이 편집, 간행하였는데,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의 서문과 권말에 권상익(權相翊)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60여 수, 권2에 서(書) 17편, 제문 6편, 가장 2편, 부록으로 만사 8수, 제문 4편, 행장 1편, 묘갈명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는 주로 자연을 읊은 것이다. 서는 스승인 권방(權訪)에게 보낸 문안편지가 대부분이다.
그 중 유치명(柳致明)에게 보낸 편지에는 성리(性理)와 상례에 관하여 질의한 내용 등이 있다. 가장에서는 역대 조상들의 내력을 소상히 밝혔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 등에 있다.
계암문집(啓庵文集)
조선 말기의 학자 정득건의 시문집
조선 말기의 학자 정득건(鄭得鍵)의 시문집. 4권 1책. 석판본. 1930년 그의 문인 임대훈(林大塤) 등이 편집, 간행했는데, 권두에 김두운(金斗運)의 서문과 권말에 김효연(金孝淵)·정원옥(鄭元玉) 등의 발문 2편이 있다.
권1에 시 49수, 권2에 서(書) 29편, 권3에 설(說) 18편, 권4에 서(序) 2편, 기(記) 2편, 잡저 2편, 부록으로 전(傳)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시는 시상이 풍부하고 표현 기교가 뛰어난데, 특히 〈화유 花遊〉는 서정성이 두드러져 있다. 서(書) 가운데 〈상운암박선생 上雲庵朴先生〉에는 스승 박문일(朴文一)에게 관례(冠禮)의 절차에 관해 문의한 내용이 있고, 〈상족형성재 上族兄誠齋〉에서는 빨리 서재를 설립, 강회를 열어서 김평묵(金平默)과 같은 학자를 모시고 강학(講學)을 받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
설 가운데 〈경설 經說〉에는 선비가 항상 행해야 할 것들을 경서에서 발췌해 수록하고 있어, 그의 규범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서(序)의 〈가릉존도재학규서 嘉陵存導齋學規序〉에서는 오륜이 천하 고금에 통하는 가르침으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가 모두 이에 의하지 않으면 성취될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공자(孔子)·증자(曾子)·자사(子思)·맹자(孟子)가 창도하고, 정자(程子)·주자(朱子)가 부흥했으며,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는 이황(李滉)·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 등으로 정맥(正脈)을 이어서 이항로를 통해 박내준에게 정전(正傳)된 것이니, 이 학규는 마치 주자가 만든 〈백록동규 白鹿洞規〉와 같은 의의가 있다며, 자신이 도학 연원의 적통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 밖에 〈학계서 學契序〉에서도 오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를 선양하기 위해서는 학계(學契)를 만들고, 학사(學舍)를 설립해 교육에 힘써야 됨을 주장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