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순복 시집 『처음을 밀어내고』 해설>
비워내며 살아남는 오래된 것들의 노래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지금은 변화의 속도가 미덕이 된 시대다. 새로움은 곧 경쟁력이고, 젊음은 가능성의 에너지로 칭송된다. 업데이트는 개선으로, 리뉴얼은 진화로 포장된다. 사람은 늙으면 퇴장하고, 물건은 낡으면 폐기된다. 기억은 용량을 차지하는 데이터로 취급되고, 관계는 효율을 따지며 정리된다. 이런 세계에서 ‘오래된 것’은 대개 불편한 존재다. 느리고, 무겁고, 관리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거추장스러운 긴 시간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표순복 시인의 시집 『처음을 밀어내고』는 그 오래된 시간을 진솔하게 받아 적는 시집이다. 화자는 늘 오래된 자리로 간다. 고창 람사르 습지에서 꽃이 진 뒤 잎만 남은 수수꽃다리를 만나고, 만덕산의 동백 숲에서 불의 흔적을 더듬고, 산사 귀퉁이에 남은 밑동과 이끼와 버섯의 공생을 바라본다. 백양사의 고불매 앞에서는 “다섯 개의 의족”을 숨기지 않는 매화의 자세를 읽고, 쌍산재 고택 뜰의 비스듬한 소나무에서는 굽은 몸이 어떻게 지킴이 되는지 본다. 무안 백련지에서는 꺾이고 널브러진 줄기들이 다시 초록으로 옷 갈아입는 순환을 확인한다. 집으로 돌아오면 상자를 비우고 서류뭉치를 태우며 ‘처음’의 기억을 다루는 법을 배운다. 이 모든 자리에서 오래된 것은 단지 배경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래된 것은 말하고, 버티고, 비워내고, 다시 피어난다.
이 시집의 시들이 오래된 것들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과거에 대한 단순한 향수에 있지 않다. 오래된 것들은 대체로 상처를 품고 있고, 그 상처가 삶을 가르친다. 또한, 오래된 것들은 조금 더 더딘 선택을 한다. 새것처럼 번쩍거리기보다 결이 드러나도록 닳고, 사라지기보다 다른 생을 부르고, 끝내 비워내며 살아남는다. 그러니 이 시집의 핵심은 오래됨 자체가 아니라, 오래됨에서 끌어낸 사유에 있다. 버티는 힘, 돌보는 윤리, 비우는 지혜가 이 시집의 사유의 깊이를 만들고 있다.
2. 오래된 상처의 시간
오래된 것들은 대부분 다친다. 세월이 쌓인다는 말은 상처가 축적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표순복 시인은 상처를 경험이나 추억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상처가 남긴 형태와 촉감을 끝까지 만지며 되새긴다. 이 시집에서 상처는 자연의 사건으로도, 몸의 사건으로도, 삶을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도 나타난다. 그 압박감은 서로 다른 듯 보이나,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한 가지 깨달음으로 수렴한다. 그것은 살아 있음 자체가 곧 상처와 함께 가는 일이라는 그런 깨달음이다.
다음 시 「살아남아서」에서 상처는 불의 흔적으로 시작된다.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동백꽃,
툭툭 내려 내 맘 휘젓는 붉은 몸짓
수십 년 전 검은 불길
제가 키운 어린 가지 잎을 보내고
이백 년 버텨온 몸뚱이 남아
모진 힘 말아 쥐며 살아남은 동백
불 먹은 검은 껍질을 벗고
나이테 없는 그 속 비우지 못해
꼭꼭 감싼 기둥 몸 뒤틀며
밖으로 덜어낸 살덩어리
엄마의 젖가슴 된 나무와
울퉁불퉁 흉측한 나무
살아남아서
만덕산 천오백여 동백과 함께
삼월의 관광객을 맞는다
모습 남기는 관광객의 셔터 소리
눈에 담으며 만덕산 보물로
당당히 산다.
- 「살아남아서」 전문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 동백꽃,”이라는 첫 구절은 익숙한 상징을 꺼내지만, 곧이어 그 상징이 상처의 실물로 바뀐다. “툭툭 내려 내 맘 휘젓는 붉은 몸짓”은 낙화의 움직임이자 마음의 동요다. 그런데 이 붉음은 곧 “수십 년 전 검은 불길”로 이어진다. 상처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의 촉감으로 되살아난다. 동백은 “제가 키운 어린 가지 잎을 보내고 / 이백 년 버텨온 몸뚱이 남아”서 살아남는다. 여기서 핵심은 ‘몸뚱이’라는 단어가 가진 물질성이다. 오래된 것은 신화가 아니라 육체다. 육체는 “불 먹은 검은 껍질”을 벗고도, “나이테 없는 그 속 비우지 못해” 뒤틀린다. 나이테는 시간이 켜켜이 남기는 기록인데, 불은 그 기록을 태워 지운다. 기록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공백이 아니라 응고된 통증이다. 그래서 동백은 “꼭꼭 감싼 기둥 몸 뒤틀며 / 밖으로 덜어낸 살덩어리”가 된다. 여기서 ‘덜어냄’은 치유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생존을 위한 고통스러운 절단이다. 이 시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상처를 덜어내고도 상처를 끌고 가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 시는 상처를 비극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동백은 “만덕산 천오백여 동백과 함께 / 삼월의 관광객을 맞는다”. 관광객의 “셔터 소리”는 상처를 이미지로 소비하는 현대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백은 거기서 사라지지 않는다. “만덕산 보물로 / 당당히 산다.” 당당함은 상처를 지웠다는 뜻이기보다는 상처를 가진 채 존재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태도다. 오래된 시간의 상처는 이렇게 버팀의 자세로 전환된다.
이런 자세는 「거룩한 일」이라는 시에서 더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이 시에서 상처는 부패의 형태로 온다. “한때 푸르게 세상을 살았지”로 시작한 존재는 “사연 많아 일찍 세상을 버리고 / 밑동만 남아 뿌리를 믿으며” 산사 귀퉁이를 산다. 위로 뻗던 생이 아래로 버티는 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부패는 공생으로 바뀌는 극적 변화를 맞는다. “비바람에 문드러지는 검은 육신을 / 세상에 내어놓고 잠에 들었는데 / 장기에 피는 초록 이끼와 그 이끼가 부른 / 너도마른진흙버섯 의좋게 살”면서 이 오랜 시간을 견디고 있다. 여기서 ‘검은 육신’은 숨겨야 할 오점이기보다는 다른 생을 부르는 토양이 된다. 거룩함이란 깨끗함이 아니라, 생의 조건을 끝까지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생긴다. 그래서 시인은 “분명 나는 / 잠들 수 없는 잠을 살고 있는 거지”라고 말한다. 죽음과 삶 사이, 멈춘 듯 이어지는 경계의 시간. 오래된 것은 그 경계에 오래 머문다. 그 오래 머묾이 상처의 다른 이름이고, 동시에 삶의 지속 방식이다.
불과 부패의 상처가 삶의 내부를 보여준다면, 이 시집 속 시들의 또 다른 상처는 자연으로부터 온다.
온도계의 기둥을 알아가기보다
같은 날 같은 지역 폭우 폭설 예보를 귀담기보다
한 장 남은 달력을 더 믿은 탓에
내 몸에 덧입혀진 여러 겹 옷이
대설 즈음, 곡우 같은 날씨로 헉헉거린다
위로 오르는 수은주가 눈 대신 비를
하루 이틀 사나흘 못비로 내려
벼 벤 그루터기 사이에 물을 채운다
모내기라도 다시 할까
떠나지 못한 계절이 겨울에 들었는지
갸웃거리는 동안
갑자기 뒤집힌 수은 기둥 폭설로 바뀌며
설국이 되었다는 고창 지역의 뉴스
폭설 속 매서운 냉기 날 얼리고 수도관을 얼려
여러 겹 옷 속에 또 파묻힌다
들녘 고인 물 고체로 몸을 바꾸고
혹독해야 일어서는 겨울 보리가
희끗한 눈 속에 푸르게 반짝이며
한해를 또 건너간다.
- 「마침내」 전문
이 시에서 화자는 기후의 교란을 몸으로 겪는다. “같은 날 같은 지역 폭우 폭설 예보”가 공존하는 시대, “한 장 남은 달력”을 믿어 여러 겹의 옷을 덧입은 몸은 겨울인데도 봄 같은 날씨에 당황해한다. 감각의 나침반이 흔들리고, “위로 오르는 수은주”가 “눈 대신 비”를 내리게 하다가 “갑자기 뒤집힌 수은 기둥”이 “폭설로 바뀌”어 “설국이 되었다는 고창 지역의 뉴스”가 도착한다. 자연의 변화는 뉴스로 전달되지만, 몸은 뉴스보다 먼저 얼고 젖는다. 이 시는 기후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 감각을 바꾸는 폭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마지막에 시는 한 존재의 모습을 조용히 강조한다. “혹독해야 일어서는 겨울 보리가 /... / 한해를 또 건너간다.”고 하여 혹독함은 생을 꺾는 힘이기도 하지만, 어떤 생을 일으키는 조건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상처는 버티는 힘의 원천이 된다.
또 다른 시 「눈에 갇히다」는 그 조건을 더 일상 가까이 끌어온다. “언덕을 굴러가는 일은 무섭다”는 이 시의 한 구절은 단순한 미끄러짐의 공포가 아니라, 삶이 통제 불가능한 방향으로 굴러갈 때의 공포를 보여준다. “예보한 눈이 삼일 동안 쌓”이고, “쓸고 쓸어 모습 드러내는 주인 앞에 / 다시 쌓이는 높이로 나는 덮”인다. 인간의 노동은 이 자연의 반복적 폭력 앞에서 무력해진다. “모두 헛일이다”라는 단정이 나오지만, 헛일 속에서도 “주인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서 자연의 가혹함에 사회적 압력이 포개진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화자가 자신을 ‘나’로 말하면서 동시에 ‘주인’을 분리해 부르는 방식이다. “주인을 태운 나는 가볍게 언덕을 넘는다.” 이때 ‘나’는 사물인 차량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사물에까지 스며든 두려움과 상처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감각으로 확장된다.
다음 시에서 상처는 표순복 시인의 시학이 된다.
우리의 시가 깊어져야 한다고
신년 시모임 첫날,
대표께서 말씀하였다
흰 머리띠 묶고 한 곳으로 정신을 쏟아도
수렁에 빠져 잡아 올리지 못할 헛된 다짐 같아
산책길 답을 찾아 나선다
천변 물줄기가 봄빛으로 흐르다가
바다까지 닿는 사계절 그것이 깊은 길일까
나목의 망울진 싹이 햇볕과 바람에 눈을 틔우며
잎을 키우는 것이 깊어지는 것일까
철없는 아이가 부모가 되고
부모의 인생이 골골이 파여 결을 만드는
그것이 깊어지는 것일까
골이 더 패이고 더 늘고
고통이 많아지는,
인간이 슬픔에 잠기는 것
그것이 혹시
깊어진다는 뜻은 아닐까
- 「깊어진다는 것은」 전문
시가 깊어져야 한다고 시 모임의 대표가 말한다. 깊음은 흔히 성숙의 덕목으로 칭송되지만, 시인은 그것을 의심한다. 깊어지는 것이 “천변 물줄기”가 바다까지 닿는 길인지, “나목의 망울진 싹”이 잎을 키우는 일인지, “부모의 인생이 골골이 파여 결을 만드는” 일인지 시인은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골이 더 패이고 더 늘고 / 고통이 많아지는, / 인간이 슬픔에 잠기는 것 / 그것이 혹시 / 깊어진다는 뜻은 아닐까.”라는 질문에 도달한다. 깊음은 상처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된 시간은 깊어지고, 깊어지는 만큼 상처는 선명해진다. 곧 시가 깊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된 깊은 상처가 있다는 말이다. 시는 상처의 깊이에서 태어나는 언어이다.
3. 낡은 것들이 빚는 빛
상처가 있다고 해서 빛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시집에서 빛은 상처의 반대말이 아니라, 상처가 시간을 견딘 뒤에 생기는 윤기다. 새것의 광택이 아니라, 닳아서 드러난 결의 빛. 그래서 표순복 시인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대개 결함을 감추거나 지운 완전함이 아니라, 결함을 드러낸 채 버티는 품격에 가깝다. 그의 시에서 빛은 세 방향으로 흘러간다. 비워낸 몸의 품격, 굽은 형상의 아름다움, 순환이 만들어내는 생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세 방향은 서로를 부른다. 비워내어 남은 결은 굽힘을 받아들이게 하고, 굽힘을 견디는 존재는 순환의 시간 속에서 다시 빛난다.
다음 시에서 ‘고불매’는 그 빛의 중심에 서 있다.
이십 년을 살아온 뜰 안 매화를 두고
진달래와 개나리 수선화는 제쳐두고
산자고 현호색 흰털제비꽃... 야생화를 지나쳐
한쪽 구석 자리한
속 비워 쭈글쭈글한 고불매를 만난다
다섯 개의 의족으로 선 백양사 고불매
기적처럼 수백 년을 비워내고
손에 손에 카메라를 든 방문객
매화향 곁을 떠날 줄 몰라
코끝 실려 오는 향기 전신을 감아
나도 틈에 끼어 몇 컷 찍어둔다
우화루 쪽마루 앉아 흘러온 삼백오십 년을 가늠하는데
속을 다 비워낸 어머니의 세월이
고불매 안에 들어있어
열 자식 품어 키운 그 속 쩍쩍 갈라져
바람 든 허깨비로 살아도 더 고매한 고불매
고불매는 스스로 의족을 치우지 않는다
- 「비워내고」 전문
시인은 “이십 년을 살아온 뜰 안 매화를 두고 / … / 속 비워 쭈글쭈글한 고불매를 만”나러 간다. 화려함을 쫓기보다는 속이 비어 쭈글해진 매화를 택한다. 고불매는 “다섯 개의 의족”이라는 버팀목에 의존하고 있는 존재다. 결함을 감추기보다 드러내고 서 있다. “기적처럼 수백 년을 비워내고”라는 구절은 비움이 결핍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임을 말해준다. 속을 비워야 오래 산다. 그러나 그 비움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바람 든 허깨비”라는 비유가 이 고불매의 그로테스트한 형상을 말해준다. 차마 아름답다고만 말할 수 없는 형상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더 고매하다”고 한다. 이때 고매함은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을 넘어선 사유적 깊이를 획득한다. 마지막 문장 “고불매는 스스로 의족을 치우지 않는다”는 구절이 이를 잘 말해준다. 의족은 결함의 표식이면서 동시에 버팀의 장치다. 고불매는 자신의 버팀을 숨기지 않는다. 고불매의 고매한 아름다움은 바로 그 숨기지 않음에서 빛난다.
이 숨기지 않음은 「쌍산재 고택 소나무」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고불매가 의족으로 서 있다면, 소나무는 굽은 몸으로 선다. “비스듬한 소나무 / 혼자만 높이 설 수 없어 반쯤 누웠는가.”라는 구절에서 굽음은 패배가 아니라, 지킴이의 자세다. “굽은 몸 휘어버린 가지 뿌리 깊게 묻고 / 청청 푸르게 고택을 지키는 나무.”에서 보듯 그것은 지키기 위해 굽는다. 지키기 위해 버틴다. 그리고 이 시에서 소나무의 굽음은 “기역자의 몸으로 살아오신 어머니의 모습”과 겹친다. 어머니는 오래된 것들이 가진 지혜를 대표한다. 버티는 법, 지키는 법, 아픔을 감추지 않는 법. 고불매의 의족과 소나무의 굽음은 결국 이런 지혜의 다른 표상이다.
이런 지혜는 자연의 순환을 읽는 시에서도 확인된다. 이를테면 「한세상 이루며 사는」에서 삼월의 무안 백련지는 “연잎 녹고 연실 둥둥 떠 있는” 풍경으로 시작한다. “기역자로 꺾은 줄기 널브러진 곳”에서 화자는 “흔들리는 검은 대”를 찾아간다. 그 검은 대는 죽음의 징후처럼 보이지만, 한 달 뒤 같은 자리는 “검은색 벗고 초록 옷 갈아입”는다. “늪 깊은 곳에서 내내 수작이더니 / 새 생명 솟고 / 수면 가득 초록이 푸릇푸릇.”이라는 구절이 보여주듯 순환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 오래된 것들이 제 속도로 준비해온 결과로 온다. “막 솟은 연잎 위에 물방울 굴러 / 흔들흔들 젊고 싱싱하여라.”에서처럼 젊음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연의 젊음은 늙음의 연장선에서 발생한다. 늙어야 다시 젊어진다, 늙음이 젊음을 가능케 하는 토양이 된다는 사유, 바로 오래된 낡은 것들의 빛은 이 사유의 깊이에서 온다.
다음 시는 이 순환을 더 압축해 보여준다.
봄 이르게 목련이
잎도 없이
그리움 하얗게 쏟아붓더니
저 꽃무릇, 잎 먼저 보내고
서늘한 9월
대궁 위에 홀로 붉었네
목련도 꽃무릇도 지켜보는 우리도
아프게 흔들리며
한 생애를 살아가고 있네
- 「꽃무릇 16」 전문
목련은 “잎도 없이 / 그리움 하얗게 쏟아붓”고, 꽃무릇은 “잎 먼저 보내고 / 서늘한 9월 / 대궁 위에 홀로 붉”다. 순서가 다르고 방식이 다르다. 그 차이 속에서 시인은 한 가지를 확인한다. “목련도 꽃무릇도 지켜보는 우리도 / 아프게 흔들리며 / 한 생애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빛은 안정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나온다. 상처를 통과하는 흔들림, 굽음을 받아들이는 흔들림, 비움이 만든 빈자리를 견디는 흔들림. 그러니 아름다움의 빛은 결국 상처와 떨어져 있지 않다. 상처를 견딘 존재만이 낡은 빛을 갖는다. 그 빛은 광택이 아니라 결이다. 고불매의 갈라진 속에서, 소나무의 기역자 몸에서, 연잎의 물방울에서, 꽃무릇의 홀로 선 대궁에서 그 결이 드러난다. 이것이 ‘낡은 것들이 빚는 빛’이다.
4. 비움에서 피는 새로움
이 시집에서 새로움은 방금 도착한 상품처럼 새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 시집의 시들에서 발견한 새로움은 비워낸 자리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갱신이다. 그래서 표순복 시인의 새로움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씁쓸하고 조용하며 오래 남는다. 이 새로움을 발견할 때 오래된 것들이 다른 의미로 보이기 시작한다. 감각을 갱신하기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 이 시집의 시들에서 이 비움은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지지만 결국은 하나의 확실한 진실에 도달한다. 그것은 비움이 삶을 다시 갱신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수수꽃다리」는 그 사실을 혀끝의 감각으로 시작한다. “수수꽃을 닮아 수수꽃다리 / … / 꽃은 가고 잎만 남은 수수꽃다리를 만났다.” 꽃이 졌다. 남은 것은 잎이다. 아름다움이 사라진 자리에서 화자는 어머니의 기억을 불러낸다. “잘 익은 수수 모가지 꺾어 자식 챙기던 어머니 / 도시락으로 배고프던 시절 / … / 수수 가닥 뜯어내 알갱이 혀끝으로 골라 삼키던.” 그 시절의 배고픔은 이미 끝났는데, 그때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입안에 톡톡 수수”에서처럼 기억은 관념이 아니라 촉각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시인은 해설사의 권유대로 수수꽃다리 잎을 씹어 쓴맛을 경험한다. 여기서 새로움은 ‘쓴맛을 받아들이는 감각’으로 온다. 비움은 꽃의 부재이며, 새로움은 잎의 쓴맛이 남기는 긴 여운이다. 바로 이렇게 쓴맛을 입에서 확인하는 일, 바로 그 경험으로 시인은 수수에 관한 기억을 새로운 감각으로 갱신한다.
처음에는 비어 있었다
시간 지나 5칸의 상자에 채워지는 물건들
상자는 좁아졌다
아이들은 상자를 두고 떠나고
몇 년 가도 찾지 않는 물건이 가득
상자를 정리하는 부부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는
가구며 옷가지 책과 그릇을 버린다
버려지는데도 명분과 소속이 필요한데
이도 저도 아닌 것
쓰레기차 폐기물 통에 던져두고
머릿속 채웠던 상자를 덜어낸다
유품 정리하듯 비우지만
앞으로 또, 어떤 물건 들어찰지
큰 상자 안에 작은 상자 들여놓고
더 큰 상자 바라며 살아가는 현실
육십 고개 중반에
비우는 중이다
비워내는 상자 속에서 머릿속을 정리 중이다
- 「상자」 전문
이 시는 생활의 구조를 갱신한다. “처음에는 비어 있었”던 상자가 곧 채워진다. 그리고 상자는 좁아진다.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남는 것은 “몇 년 가도 찾지 않는 물건”들이다. 오래된 것들은 소중하지만, 동시에 삶의 공간을 잠식한다. 이 시는 그 모순을 회피하지 않는다. 비움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현실에서 부딪히는 노동이다.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는 / 가구며 옷가지 책과 그릇을 버”리지만 “버려지는데도 명분과 소속이 필요”하다는 구절에 주목해야 한다. 버리는 행위에서조차 정체성을 확인하는 언어가 요구된다. 물건은 단지 물건이 아니라, 나를 설명해왔던 기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움은 물건을 버리는 일이면서 동시에 ‘나’를 다시 분류하는 일이다. 시인은 그 현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큰 상자 안에 작은 상자 들여놓고 / 더 큰 상자 바라며 살아가는 현실.”이라는 문장이다. 비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비워도 다시 채워지고, 채워지면 다시 비워야 한다. 새로움은 바로 그 반복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비움의 반복은 표제시 「처음을 밀어내고」에서도 나타난다.
처음을 밀어낸다
처음을 꺼내는 동안 불이 꺼진다
첫날은 꺼내보지 말자고
다른 계단으로 발을 옮긴다
묵은 서류뭉치를 꺼내 태운다
서랍 속 펼쳐보지 않은 처음이 탄다
처음을 버리고
기름때 같은 찌꺼기 걷어
무처럼 끊어낸 단면이 번듯하다
버려야 할 것과 품어야 할 처음을 나누며
아무렇지 않은 듯
처음을 밀어낸다
- 「처음을 밀어내고」 전문
처음을 꺼낸다는 것은 기억을 꺼내는 일이고, 기억은 종종 어둠을 동반한다. 그래서 시인은 “첫날은 꺼내보지 말자고 / 다른 계단으로 발을 옮긴다.”고 적는다. 언뜻 회피처럼 보이지만, 이는 감당 가능한 방식으로 기억을 다루기 위한 자신만의 조절 행위이다. 이어지는 장면은 좀 더 단호하다. “묵은 서류뭉치를 꺼내 태운다”에서 태운다는 행위는 흔적을 지우는 폭력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삶을 다시 살기 위한 결단이기도 하다. 다만 시인은 완전한 소거로까지 가지 않는다. “버려야 할 것과 품어야 할 처음을 나누며 / 아무렇지 않은 듯 / 처음을 밀어낸다.”에서처럼 전면 폐기가 아니라 밀어내서 비우는 것이다. 비움은 선별이다. 새로움은 그 선별의 기술에서 피어난다. 기억을 다 비우지 못하더라도, 기억이 삶을 압도하지 않게 만드는 방식. 그것이 이 시집이 말하는 갱신의 지혜다.
마지막으로 새로움은 전승의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오래된 것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새롭게 하는 기술이 된다. 이 시집의 마지막 시 「이리 오너라 소리 하자」는 판소리의 계보를 길게 풀어놓는다. 신재효와 진채선, 궁중의 축하연, 다섯 마당, 창과 아니리와 너름새, 악보 없이 입으로 전해온 서사 등, 설명이 많아 보이지만, 이 시의 핵심은 정보가 아니다. 몸과 입으로 전해지는 방식 자체가 새로움이다. “글자를 몰라도 서너 시간 긴소리 머릿속에 집어넣고 / 악보 없이 입으로 전해오던 대서사시”에서처럼 기록보다 몸이 먼저 기억한다. 그러니 전통은 낡은 것의 보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다시 울려 퍼지는 삶의 소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5. 맺으며
표순복의 『처음을 밀어내고』는 늙음을 찬미하는 시집이 아니다. 오히려 늙음이 가진 불편함—상처, 부패, 자연의 가혹함, 관리의 죄책감, 반복되는 정리의 노동—을 정확히 바라본다. 그럼에도 이 시집이 오래된 것들을 소중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오래된 것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새것은 대개 빛나지만, 그 빛을 위해 지불해야 할 고통이나 비용을 말하지 않는다. 오래된 것은 고통과 비용을 숨기지 않는다. 불 먹은 껍질, 나이테가 지워진 나무의 속, 의족으로 버티는 다리, 기역자로 굽은 몸, 바람만 드나드는 지붕, 버려야 하는 상자 이런 아프고 슬픈 오래된 형상들 속에 삶은 진실이 들어있다.
표순복의 시는 오래된 것을 박제하지 않고, 오래된 것의 현재성을 붙잡는다. 동백은 상처를 가진 채 관광객을 맞고, 고불매는 의족을 숨기지 않은 채 향을 낸다. 소나무는 굽은 몸으로 고택을 지키고, 지붕은 폐허에서 숲을 만든다. 연지는 검은 대를 벗고 초록으로 다시 솟으며 하루를 연다. 그리고 이 모든 오래된 것들의 중심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스며 있다. 쓴맛과 단맛을 꾹꾹 담아 자식을 살피는 마음, 굽어도 끝내 지키는 마음, 고생의 의미를 알아보는 마음. 이 마음이 이 시집의 바탕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을 밀어내고”라는 시집의 제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처음을 밀어내는 행위는 시작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다. 펼쳐보지 못한 처음을 태우고, 비워야 할 상자를 비우고, 꽃이 진 자리에 남은 잎의 쓴맛을 받아들이고, 막힌 곳을 덜어내 흐름을 열어두는 것. 그런 반복 속에서 삶은 새로워진다. 새로움은 새것의 형태로만 오지 않는다. 대개는 낡은 것의 내부에서, 비워낸 자리에서, 오래 남는 삶의 쓴맛과 세월의 잔향과 아련한 추억의 그림자로 온다. 표순복의 시들은 이 오래된 것들의 구체적인 몸을 보여주고, 그 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려준다. 이 비워내며 살아남는 오래된 것들의 노래는 위로이기도 하지만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가장 현실적인 목소리이기도 하다.
황정산 : 1992년 『창작과비평』으로 평론 활동 시작. 2002년 『정신과표현』으로 시 발표. 시집으로 『거푸집의 국적』, 저서로는 『주변에서 글쓰기』, 『소수자의 시 읽기』 등이 있다. 현재 계간 『상상인』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