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문학관 시동인 언령(言靈)
<언령(言靈)>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소재하는 구상문학관의 시창작교실 강좌를 수강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2007년 발족한 시동인이다. ‘언어는 신령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구상 시인의 지론을 줄여서 <언령(言靈)>이라는 동아리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칠곡, 구미, 대구에 거주하는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구상 시인 추천으로 1984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온 김주완 교수(대구한의대)가 언령 결성 이후 2016년까지 지도시인을 맡았으며 2017년부터는 강좌를 <언령(言靈)> 회장인 김인숙 시인이 넘겨받아 이끌고 있다.
언령(言靈)에서 수강한 사람은 2007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연인원 190여명이다. 김인숙, 김선자, 이연주, 김정숙, 김점숙, 이세미, 신미경, 최인희, 김재용, 고분임 등이 전국단위 공모전 대상을 1~5회 수상하였으며 발간한 개인시집은 개인별로 1~3권에 이른다. 신미경은 동시집이 2017 세종도서 문학나눔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언령(言靈)> 동인지는 연간으로 결호 없이 제12집까지 발간하였다. 구상문학관 2층 사랑방에서 매주 1회 3시간씩 연중무휴로 시창작 스터디를 이어가고 있는 회원들은 오로지 시적 역량 강화에 매진하고 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박찬선
1940년 경북 상주 출생. 1976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돌담쌓기」, 「상주」, 「세상이 날 옻을 먹게 한다」, 「도남 가는 길」, 「우리도 사람입니다」, 평론집 「환상의 현실적 탐구」.
지난밤 꿈에 먼 신라 적
상주 사벌에서 일어선 원종과 애노*를 만났습니다.
두 분을 꼭 시로 써야 한다는 초조함으로
똑같은 꿈을 세 번이나 연거푸 꾸었으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나도 사람입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
이 말이 딱 좋다고 거듭 거듭 이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말이 떠오르지 않은 채
애를 태우다가 깼으니······
땀에 젖은 가마니가 실려 갈수록
잘 익은 호박빛 얼굴로 오는
꿈에 시로 나타난 사람이 있습니다.
흙을 걸우던 옛 사벌 사람이 있습니다.
* 진성왕 3년(889)에 원종(元宗)과 애노(哀奴)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왕이 나마(奈麻) 영기(令奇)에게 명하여 붙잡아오도록 하였다. 영기는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였다. 촌주(村主) 우련(祐連)은 싸우다가 죽었다. 왕은 영기의 목을 베고 우련의 아들에게 촌주의 직을 잇게 하였다.
- 『삼국사기』 권11 「신라본기」 11 진성왕 3년
사람의 시대
김인숙
경북 고령 출생. 「월간문학」 등단. 시집 「꼬리」, 「소금을 꾸러 갔다」, 「내가 붕어빵이 되고 싶은 이유」.
사람의 시대가 온 듯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 어느 때보다 사람이 강조되고 있다. 논의 중에 있는 헌법 개정안에도 사람에 대한 명시적 규정이 들어갈 것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삶이다. 우리말의 구조에 있어서 사람을 줄인 말이 ‘삶’이지 않은가. 삶이 사람이라면 한순간 한순간 살아있는 존재가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냥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식물이나 동물, 짐승과는 다르게 살아있는 존재가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사람다운 삶이 되는가? 모든 생명은 종속적 존재이다. 먹이사슬과 환경과 자연법칙에 종속된다. 사람도 동물의 일종이기에 그와 같이 종속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람은 종속이 전부가 아니다.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탈피하고자 하는 존재가 사람이다. 묶여 있으면서도 벗어나고자 하는 존재가 사람이다. 달리 말하면 자유를 추구하는 존재가 사람인 것이다. 사람은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건다. 그러니까 사람은 ‘자기 자신에서 말미암는’ 자유이다.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긍정하면서 산다. 자기가 자기를 만들어 가면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면서, 짓밟힘에 항거하면서, 억울함을 항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다운 삶인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면서 살아가는 사회구조에서는 약육강식이라는 밀림의 법칙이 등장하게 된다. 강자는 약자를 도구화 하고 수단화 한다. 소수의 지배자만이 사람의 생활을 누리고 다수의 피지배자는 사람이 아닌 짐승의 지위로 전락한다. 자유가 없이 핍박 받으며 가진 것을 뺏기면서 살아야 하는 피지배자는 억울한 마음으로 절규할 수밖에 없다. 박찬선의 시 「우리도 사람입니다」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시인의 연민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시의 소재인 원종과 애노의 비극은 1,100년 전인 신라 적 일이다. 무자비한 수탈에 항거하는 농민 봉기로서 신라 정부에 반기를 든 첫 사례로서 의의를 가진다. 원종과 애노의 난은 박찬선 시인이 지키고 있는 안태 고향 상주(옛 동사벌주)에서 일어난 반란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시인의 뇌리에 머물렀으면 그것도 처연한 분노와 공감으로 머물렀으면 꿈을 세 번이나 연거푸 꾸었겠는가. 그것도 원종과 애노의 절규로서 “나도 사람입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꿈에서 떠올렸겠는가. “우리도 사람입니다” 이 말은 온몸에 전율을 불러온다. 얼마나 사람대접을 받고 싶으면, 얼마나 무시당하고 짓밟히면서 살았으면, 얼마나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았으면 “나도 사람입니다, 우리도 사람입니다”라고 소리치겠는가. 신라 정부에서 빼앗아 가는 “땀에 젖은 가마니”는 원종과 애노의 것이면서 동시에 만인의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흙을 걸우던 옛 사벌 사람”으로, “꿈에 시로 나타난 사람”으로 원종과 애노를 규정한다. 역도가 아니라 양민으로 다가오는 원종과 애노는 바로 우리들, 사람대접을 못 받는 사람들의 초상이다.
사람대접을 못 받는 사람들의 억울함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폭발하면 민란이 되고 혁명이 된다. 우리가 역사에서 얻는 교훈이다. 원종과 애노의 난이 그러하고 동학과 4ㆍ19가 그러하며 10ㆍ1 사건이 또한 그러하다.
박찬선 동학시집 「우리도 사람입니다」에 대한 김주완의 해설을 옮겨 본다.
「우리도 사람입니다」는 동학의 실상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는 말이다. 핍박 받는 자의 처절한 말, 억울한 사람이 하는 절박한 말을 우리는 여기서 만난다. “우리도 사람입니다”-이 말은 말이 아니라 말 이전의 원초적 절규이다. 지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솟는 가장 숭고하고 장엄한 부르짖음이다. 아무나 소리 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진실하게 사람이 된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가장 진실하고 절실한 사람의 말이다. 생생한 이 말들이 모이면 함성이 된다.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놀라는 혁명이 된다. 개벽이 된다. 눈이 뜨이고 새날이 열린다. 일순에 미명이나 암흑을 걷어내고 천지에 광명이 가득한 새 세상이 열린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나 꿈이며 이상에 머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나 꾸는 꿈이 아니라 깨어 있는 자만이 꿀 수 있는 꿈이다.
― 김주완,「사람을 모시는 신인(神人)」 부분
그렇다. 우리는 의식이 깨어 있어야만 새날을 열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모두 사람대접을 받으면서 사는 사회는 아직 미완성이다. 소수의 특수적인 인권은 유사 이래 지배자들이 누려온 권력이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거나 혹은 그 잔재가 군데군데 도사리고 있다.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사람의 지위를 누리고 사람의 권리를 행사하며 사람대접을 받는 보편적 인권이 실현되는 시대는 여전히 멀다. 이즈음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이 이를 반증한다. 그동안 조선 유교사상 아래 남성중심의 사회가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이 운동이 양적·질적으로 확장되어 남성이건 여성이건 아이건 노인이건 무시되지 않는 사회,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 사람의 자유, 삶의 자유가 실현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존감이 우수한 사회, 행복감이 만연하는 사회는 인간존중의 바탕이 튼튼해야만 건설할 수 있다. 미래의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책임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가 되도록 깨어있는 의식이 천지에 꽃피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정치적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구호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엄한 가치이다.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명실 공히 사람의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언제나 이상에 머무는 꿈일지라도 우리는 그 꿈을 꾸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