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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특집]이제는, 꼬리뼈의 흔적만 외 2편 / 신경숙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18.11.05|조회수68 목록 댓글 0


이제는, 꼬리뼈의 흔적만 외 2편

신경숙

1962년 당진 출생. 2002년 「지구문학」 등단. 시집 「비처럼 내리고 싶다」, 「남자의 방」. 제 17회 「서울시인상」 수상.

 

 

수분이 날아간 발가락 사이에 비집고 앉는다. 엄지발가락과 용천 사이, 두터운 반원(班圓)을 그리고 두꺼운 발톱 속 감춰진 동굴, 차곡차곡 지층을 쌓아놓은 석회암, 고생대보다 먼저였을 먼지의 껍질, 부서지는 발톱 위에 누워있다.

바다전갈은 납작한 등딱지로 사이를 막아 놓는다. 굳은 전갈의 등딱지를 화산암으로 문지른다 반원의 동굴, 으깨진 족적을 찾아 발가락에 힘을 모은다. 굳은 살 벗겨내는 버릇은 골반을 틀어 무릎을 접는 일. 떨어진 석회가루는 동물 속, 전갈의 꼬리 가시처럼 독한 냄새가 난다.

화산암 구멍사이 발바닥 뒤집고 걸어가는 족적(足跡), 지층 사이에서 압사되는 마디, 이제는 꼬리뼈의 흔적만 남았다. 지하수를 따라 내려왔을 발자국들이 족장(足章)에서 튀어나와 출구를 찾는다. 18문() 작은 발, 불 속으로 뛰어들어 화석이 된다. 내게 스며든 물들의 유적(遺跡)을 찾다 발자국 화석을 만난다.





찰흙을 만진다

단단한 종아리 살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만지작거리기가 더해 질 수록 말캉한

볼살이 쫀득인다 턱선을 세우고,

안쪽에서 씨앗이 만져진다 들킨 숨소리

울대에 걸려 넘어 진다 곧 마르고

갈라질 것 같다 입술의 촉감으로

단단하게 세울 수 있다

 

사과는 작아졌다, 미리 생각했어야한다

여러 차례 말리고 구울 때

물을 버리고 단단해지는, 갈비뼈를

만든다 단단한 덩어리로 겨드랑 아래에

붙인다 뜨거운 열기로, 하나의 덩어리로,

견고 하게 붙어 있다

 

흙을 만진다, 얼굴에서 땀이 흐른다 무화과 잎을

만들어 벗은 몸에 덮어준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과를 만져본다 점점 살이 뜨거워

진다 흙을 오래 만지면 말랑해지고

부드러워지며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엎치락뒤치락 열 올리는 가마

 

이 촉감은 더듬이를 세우는, 빵

부스러기를 찾는 바퀴벌레의

축축한 알주머니, 만지고 있다

질긴 목숨 하나 만나고 있다






나는 가끔 두루마기를 빨고 싶다

― 용서 받은 자

살아서 갈 수 없는 강의 이름을 되뇌이며,

날개 돋을 것 같은 크레바스 양어깨와

무거워져 어깨에 대해서도 말했다 깊어지는

수렁, 더 늦기 전, 빛 가운데로 나아가

문밖에서 두둘기는 소리를 듣고 새 날의

 

마지막 장을 읽기로 했다 떡을 먹지 않기로

한 날, 돌덩이들이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며

말씀으로 살 것이라 했다 떨어지며 구름의

옷을 입은 발등, 크레바스의 어깨 위에

눈만 가득 쌓여 시침 끝에 매달린 틈 사이 늘

강 건너에서 서성이는데, 무너지는 한 생(生)이

뒷걸음질 치며, 발자국보다 빨리 움직이는 빙하(氷河),

 

꼬이고 삐뚤어져 흐르는 사라진 곳, 흔적이 없다

지나간 발목은 끊어내기로 했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리며, 문을 두드리며, 시작된 폭설로 옛사람을

지우고 이제, 낙타와 바늘구멍에 대해 줄을 친다

눈발이 곤두박힌 밥그릇 위에, 햇살을 동여 맨

나무 하나 심기로 했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푸른 강을

끌어와 무릎에 앉힌다 처음과 마지막의

 

어둠 속에서 펴놓은 두루마리를 읽는다







분갈이 해주고 빛을 끌어 온다

신경숙

 

 

 

1.

화분이 많다. 라디오에서 <벚꽃 엔딩>이 흘러나오고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남쪽 지방에는 벚꽃이 피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관광버스는 고속도로 전용하며 줄지어 달린다. 꽃마중을 나서기로 했다. 남사 꽃 도매시장에서 함수화, 귤나무, 으아리, 수국, 호야 큰 나무만 호명해도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사무실에 히야신스, 함수화 귤나무 꽃냄새가 봄으로 가는 통로를 가득 채운다. 꽃을 올리고 냄새를 얻기까지, 출근하면 먼저 물을 주고 화분을 들어내어 한 두 시간 잠깐 드는 빛을 받기 위해 오전이 늘 분주하다. 처음 구입했을 때 모종포터에 들어 있던 꽃에 거름을 해주고 큰 화분으로 옮기고 사무실에 두기에 번잡하면 시골 텃밭으로 옮겨 심는 행사를 치룬다. 꽃집인지 사무실인지 분간할 수 없다고 핀잔을 들으며 즐거이 꽃과 연애중이다. 첫 시집을 만들었을 때, 시(詩)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드는지 분간할 수 없는 좁은 식견으로 허둥지둥 만들었다. 꽃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시와 시시하게라도 연애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뜨겁게 열애하리라 믿는다.

 

2.

음성문학 (아웃사이더들의 모임)동인이다. 문단의 유명 시인은 술을 많이 마시라고 한다. 혼자 마시는 술은 안된다. *술이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이지 주정을 부리기 위한 약물이 아닌 것이다. 술을 마시며 지루한 일상 너머를 꿈꾸는 일은 시인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문학 단체에서 뜻이 같은 사람 몇 명이 사적인 모임을 만들었다 양성적 모임이 아니라 그냥 음성모임이라 한다. 술을 나누고 좋은 시 만들기를 이야기한다.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소통한다. 주당은 아니지만 자리는 즐기는 편이다. 음식이 맛있는 갤러리 주점이 아지트다.

 

3.

정체되어있고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갈이 하듯 스터디 모임에 참여한다. 시류에 휘말리는 것은 아니나 텍스트를 통해 시의 흐름을 알고 메타 텍스트를 만들고 내가 디자인한 시를 만든다. 신념을 가지고 나만의 색과 모양을 찾는다. 비록 상처받고 넘어져도 상처를 통해 고름을 짜내고 새 살이 돋고, 더듬더듬 봉사 문고리 잡듯 가슴 먹먹한 시 하나 만들고, 열심히 연애 중이다. 꽃과 사람과 내 눈길과 만나는 대상과 열애중이다. 연애하는 마음으로 감각을 열어놓고 부지런히 구애하다 보면 시 하나 만들겠지. 꽃비 내리는 봄밤, 늦게 사무실 불을 끄고 나가는 수요일, 돋보기와 컴퓨터 화면에 시달린 눈이 충혈 되었다. 이 오랜 습관을 고칠 수 없다. 한 주에 단 하루 나와 만나는 시간. 깰 수가 없다. 내 연하디 연한 시론과 이즘(ism) 그 광합성을 위해 목요일은 광화문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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