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지난호 읽기

[나의체험적시론]작은 고통으로 더 큰 고통을 위로하는 방식 / 임승환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19.04.15|조회수734 목록 댓글 0


작은 고통으로 더 큰 고통을 위로하는 방식

임승환

2017년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당선.

 

 

 

비유의 거리가 멀수록 시는 아름답다. 현실과 꿈의 거리도 그렇다. 하루를 겨우 살기 위해 죽을 뚱 살 뚱 뛰어다닐 때 꿈은 현실에서 얼마나 멀리 있었던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별, 도시화된 시대에 휘황한 불빛 속에서 별 한 번 쳐다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먹고 배부를 수도 없는 저 멀리 떠있던 별이 그 어둠 속으로 걸어갈 때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시도 그렇다. 내가 쓰는 시는 나에게는 큰 위안이 되지만 내 시를 읽고 위로를 받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시를 왜 쓰는가?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업보라거나 운명이라고 말하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나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해야 하나? 조선시대처럼 백일장에서 장원하면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던 실용학문의 시대는 멀어도 너무 먼 이야기인데 말이다. 다른 일을 글 쓰듯이 노력한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보면 계산이 서지 않고 웃음만 나오는 일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할 말이 많은데 들어주는 사람은 없고 해서, 스스로에게 하는 말의 형식으로 글을 썼다. 자신에게 하는 말에 형식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게 언제부터였을까, 참 오래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직업을 구해 떠난 부모님에게 편지를 쓴 게 처음 시작이었다. 어머니는 우표를 붙인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빈 와이셔츠 상자에 가득 담아서 보내주셨는데 나는 편지를 매일 써서 학교 가는 길에 우체통에 넣었다. 하루에 두 번 쓰는 날도 많았고 매일 한 통은 꼭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에 남아 우리 형제를 돌봐주신 할머니가 섭섭하셨을 것 같기도 하다. 할머니에게는 꼭 필요한 말만 하면서 매일 편지 쓰는 손자를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그리고 4학년부터 서울로 전학을 했는데 서울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일기를 썼다. 첫 날은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먹지 않는 풀-나물- 을 사람들이 시장에서 사는 걸 보고, 서울 사람들은 토끼에게 먹일 풀도 사간다고 쓴 게 첫 일기였다고 기억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책 읽고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결혼 직전까지 2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다. 일기장에 속마음을 숨김없이 쓰는데 아내가 보면 이상할 것 같아 그동안 쓴 일기장을 불태워버리고 중단 했다. 소중한 자료인데 지금 생각하면 아깝다. 그러다 용기를 내서 사람들에게 말을 하려니 형식이 필요하고, 그 중에서 설명이 필요 없는 시가 가장 적당했던 것 같다.

시를 잘 쓴다는 게 무슨 뜻일까?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아마추어와 프로가 있다. 문학이 멀어진 이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가깝게 즐기는 것이 음악이다.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도 경연을 하고, 누가 노래를 부르면 잘 부르고 못 불렀다고 평가를 한다. 시도 백일장부터 공모전, 문학상까지 다양한 걸 보면 차이가 있는 게 분명하다.

직업가수가 아니더라도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들의 노래는 다르다. 음정이나 박자가 중요하겠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다. 클래식이 아닌 대중가요도 음역대가 평균보다 많이 높거나 아주 낮게 부른다. 시도 잘 쓰려면 보통 사용하는 구어(口語)보다는 높거나 낮은 문장을 사용해야하는 게 아닐까? 아마추어가 쉽게 할 수 없는 전문가의 문장 말이다. 그래서 시가 도시의 별처럼 멀어지는 것일까?

시를 읽고 좋은 시로 구분 해주는 건 누구의 몫인가? 나도 좋은 시를 쓰고 싶다. 음악 경연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을 시청하다보면, 전문가라는 패널들과 비전문가인 나의 의견이 일치하기도 하고 다를 때도 있다. 예술을 수치화하는 게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누구라도 권한을 준다면 서열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를 전문가로 세상에 추천하는 일은 전문가의 몫이다. 그리고 차후에 평가하는 것이 대중들의 몫이다. 어느 것이 중요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순서는 확실해진다. 그 힘이 많은 부작용을 낳지만 시를 쓰는 것도 세상의 일이라 그렇다.

오래도록 기억되는 시는 좋은 시일 확률이 높다. 전문가들이 좋은 시라고 평가하면 문학사에 남을 것이고,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는 오래도록 애송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도 오래도록 기억될 시를 한 편이라도 남기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다. 유종호 선생님은 걸출한 시 단 한 편만을 남겼다고 ‘단벌시인’이라고 명명했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하겠다. 그래서 다작을 한다. 세상 모든 게 시가 된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열 편 정도의 시를 쓰면 그 중의 한 편이라도 쓸 만한 시가 있다’고 한 이승하 선생님의 말을 믿고 열심히 쓰다가 다시 읽어보면 실망뿐일 때가 많다. 그래도 나는 또 쓴다. 모든 게 시가 될 수는 있지만, 시의 완성도는 현재 실력 만큼이라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소위 천재 시인들처럼 놀라운 시를 뚝딱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쓰지도 못하면서 왜 쓰는가? 그래서 시는 내가 선택한 일은 아니라는 거다. 그래도 좋은 시를 쓰고 싶어 선배 시인들의 시를 베끼고, 흉내 내보고, 간신히 한 편 써보고 절망하는 일을 반복 한다. 예술이라는 것이 본래 혼자 하는 것이라서 고독한 게 맞지만, 좋은 방법이 있을까 하고 길을 찾는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시 공부하는 곳이 있으면 여기저기 기웃거려보는 거다.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지만 내가 둔하여 더디기만 한 여정이다.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도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즐겁게 쓰려고 노력한다. 즐겁게 쓴 시는 누군가 보고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내가 쓰는 시는 대부분 어둡고 우울하지만,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주사는 맞을 때 아프지만 더 큰 통증을 치료한다. 주사 놓기 전에 엉덩이를 찰싹! 때리면 주사의 따끔한 통증을 가볍게 해주지 않는가. 시도 작은 아픔으로 더 큰 아픔을 위로하는 방식 아니겠는가.

나무는 지상으로 자란 만큼 땅속으로 뿌리를 뻗어야 한다. 어두컴컴한 땅속으로의 여정이 나의 삶이라면 지상으로 솟아나와 하늘로 뻗은 나무는 시다. 그동안 해봤던 직업을 꼽아보면 30여 가지가 넘는다. 지나오는 동안 가족들에게는 고달픈 생활일 수도 있었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각해보면 축복 아니었을까 위안을 한다. 글을 쓰는데 삶이 평탄한 길이었다면 얼마나 초라했을까. 고난은 빛나는 자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가 평생을 함께 가야할 ‘동반자’라면 100세 시대에서 아직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첫 만남은 기쁨이었지만, 오랜 세월에 항상 좋을 수만 있겠는가. 좋은 부부처럼 토닥토닥하면서 그렇게 가는 거다. ‘권할 수 없는 행복’이라고 말한 안희연 시인의 말처럼, 누구에게 권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 행복한 시 쓰기…… 날개를 펴고 죽은 나비가 바람에 날려가는 걸 본 적이 있다. 날개를 편 자세는 달리는 자세다. 나도 그렇게 죽고 싶다. 시를 쓰며 달리는 자세로.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