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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읽기

[동인의 추천시]사는 이유 / 최영미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19.05.01|조회수454 목록 댓글 0




사는 이유


최영미

1961년 서울 출생. 1992년 「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활동 시작.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 외 다수.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 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 종이가

창 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투명한 것과 불투명한 것이 공존하는 삶



최인희

경북 경주 출생.

 

 

벌써 네 번째 원고를 보내고 있다. 마지막 시인을 어떤 분으로 할까 많은 고민 끝에 최영미 시인을 선택하게 되었다. 잘 알려진 시인이라 조금 조심스럽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그래서 대중매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련다. 시를 공부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작품만 보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10년 전쯤 최영미 시인의 시집을 처음 읽게 되었다. 전공시간 교수님께서 나희덕 시인을 비롯한 유명한 시집의 목록을 선정해 주시며 리포트를 써 오라고 하셨다. 그 당시 20대 중반인 내가 고른 시집이 바로 최영미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였다.

 

서른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었을까?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하더라도 서른이라는 나이는 여자들이 피하는 숫자였다. 서른이 넘은 여자는 처녀가 아닌 것처럼 인식되었던 시대였기에 친구들은 서른이 되기 전 떠밀리듯 결혼을 했고 나 역시 마지못해 결혼을 했으니 말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원래 이 시집의 원제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이었다. 아마, 그랬다면 나는 선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시집의 전체적인 내용은 사랑, 삶, 혁명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그 중에서 『지하철에서 1』에 대한 연작시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나는 보았다 / 밥벌레들이 / 순대 속으로 / 기어들어가는 것을”이라는 시구는 압축적이면서 함축적이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그녀의 자유분방함과 솔직함은 시어 곳곳에 흩어져 있다. 1994년에 출간된 시집이지만 지금 읽어도 파격적이다. 그래서 속이 더 시원하다. 한편의 시에는 시인의 감정과 사상이 깃들기 마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녀의 문체에서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집에서 오늘 내가 소개할 시는 그런 그녀의 솔직함과 투명함을 잘 보여주는 시이다. 독자들도 대중매체에 귀 기울이지 말고 그녀의 시집을 천천히 읽고 작품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1연에서 시인은 투명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 술, 아가의 걸음마, 안부 없는 사랑 이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물들지 않은 것, 순수함, 솔직함, 정직함,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없는 것들이다. 아니, 모두가 그렇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내가 만나본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오히려 이용하려 들었다. 여기서 순수한 것과 순진한 것은 투명한 것 같지만 역설적이게도 뒤집어보면 불투명한 것들이 한데 모일 때 더욱 빛난다. 결국, 삶은 투명한 것과 불투명한 것들이 한데 어우러질 수밖에 없고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줄 아는 솔직함을 배워야 한다. 시에서 시인은 누군가와 싸울 때 투명해지고 비어가며 투명해 진다고 말하지만 나는 싸움만이 해결책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화와 타협, 용서와 이해가 공존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내가 시 공부를 한다고 하자, 미투 사건의 영향 때문인지 ‘시인들은 모두 음흉하다는 말’을 하며 비아냥거렸다. 순간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등단하지 않은 내가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마음이 불편했고 사람들은 더 이상 문학을 순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회의를 느꼈다. 나는 한 번도 시를 써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독자들은 말과 글이 일치하는 시인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반신(半神)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다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존경하는 시인들에게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다. 문학의 순수한 본질은 바뀌지 말았으면 좋겠다. 최영미 시인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면 이 시집을 읽어보길 권한다.

 

마지막으로 독자는 시에서 시인의 얼굴을 상상하고 인격을 읽는다는 걸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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