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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읽기

[추모특집]추모시

작성자김명아|작성시간21.01.13|조회수1,177 목록 댓글 0

님 가시는 길에

- 이충이 시인님 영전에

주병오 시인

 

 

아! 님은 가셨습니다.

설산의 바람처럼 차갑게 떠나셨습니다.

떠나는 뒷모습까지도 사랑하는

이 마음을 아신다면

차마 그리하지 못하셨을 거예요.

 

굴곡진 생生의 여로에서

한 장의 책갈피 속 만남이

또 하나의 나를 만들 줄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은 눈부신 바람이었습니다.

 

정곡을 찌르는 바람의 언어들이

미열로 남아 내 혈관 구석구석

산처럼 쌓인 걸 아신다면

차마 발걸음 떼지 못하실 거예요.

여명의 바다가 산산이 부서져

알 수 없는 심연의 전설로 남아

넋 나간 바람들이 폭풍우 되어

잠들지 못하는 형벌을 내리시렵니까?

 

잠깐만 멈춰주세요.

캄캄한 길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이 뜨거운 가슴 등불로 살라

가시는 길 환히 밝혀 드리겠어요.

 

아닙니다. 보내지 아니하겠습니다.

당신은 내 안에 영원히 계십니다.

당신의 길이 아무리 험난할지라도

나는 오직 그 길을 따라 가렵니다.

 

 

 

 

 

 

부고

김재황 시인

 

 

나보다 꼭 한 살이 모자라는 나이인데

무엇이 그리 바빠 이 세상을 떠났는가

다시는 볼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네

 

몸집은 안 컸으나 어느 때든 당당했고

만나면 웃는 얼굴 못 잊도록 만들었지

남에게 베푸는 일을 첫 번째로 꼽았네

 

긴 병을 인연인 듯 지니고서 살면서도

오히려 내 건강을 챙겨 주기 일삼더니

저 하늘 깊어지도록 그 숨결이 가볍네

 

 

 

 

 

소천 召天

- 충이 아우에게

송희철 시인

 

 

하늘이 부르는 소리

그리 크던가

못 들었다 불청하지 그랬나.

 

아직

귀 막고 사는 나도 있는데

앞질러 가다니

불경이네 고약한 일이네.

 

당장 불러세워

뒤로 가라 혼내주고 싶지만

놓쳐버렸네

천생 자네는 빠르고 내가 느린 것을 어쩌겠는가.

 

그래도

한번은 뒤 돌아 보시게

그대가 일궈놓은 글밭에 서서

아직도 손 흔들며 눈물짓는 사람들을.

 

오십여 년 전

죽음의 베트남전에서 돌아와

업고 다니던 내 아들 완이가

나 대신 충이 삼촌 영전에서 울었다는 것을.

 

보았는가

무심한 사람아

따라 울던 말고

그냥 손만 흔들며 훠이훠이 미련없이 가시게나.

 

 

 

 

 

 

 

문학텃밭을 버려두고 어디로 가시려는지…

- 이충이 시인의 소천 소식을 받잡고

이동희 시인

 

 

이충이 사백님~!

형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받잡는 날

하늘도 장마전선을 잔뜩 끌어올려

굵은 비눈물을 뿌렸고

바람도 주체할 수 없는 방향으로

거세게 울부짖는 듯했습니다.

 

이충이 시인님~!

당신의 삶은 온통 문학 텃밭을 김매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은 온통, 문학으로 시작해서

시와 산문을 동아줄 삼아

사람의 길목마다, 외로움의 길을 내는 일이었습니다

시와 산문을 밑거름 삼아

사랑의 나무마다 실한 열매를 거두는 일이었습니다

 

이충이 작가님~!

아직도 시와 산문은 당신의 호미질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시와 산문은 당신의 괭이질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어쩌시려고 그 호미와 괭이를 거두시려는 것입니까,

문학텃밭을 버려두고 어디로 가시려는 것입니까?

 

이충이 형님~!

시인조명이라는, 제 힘에 버거운 과업을 맡기시면서

용렬함을 여쭙는 제 고백을 들으시고,

당신께서는 힘주어 말씀하셨지요!

아우님만큼 충실하게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어디 있는가

아우님만큼 정직하게 시를 풀어내는 안목이 어디 있는가

 

이충이 형님~!

저는 그때 그 말씀을 칭찬으로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렇게 들려주시던 말씀이

시와 산문의 텃밭을 일구는 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에서,

그 누구로부터 사람공부 더하라는—

곡진하신 당부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제는 어디에서,

그 누구로부터 사람노릇 더 잘하라는

따뜻한 질책의 말씀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충이 사백님~!

이제는 제 짧은 필설을 접어야 하겠습니다.

형님께서 척박한 문학 텃밭에 뿌리신 밑거름이

시와 산문의 거목으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그리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하여 외로운 사람들의 쓸쓸한 길목마다

향기로운 사람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문학텃밭에 거목으로 자란 나무들마다

사랑의 열매가 풍요로운 가난을 결실하게 될 것입니다.

 

이충이 형님~!

그날까지 시와 산문을 길동무 삼아 노니는 날,

그날까지 편안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향기 만발한 꿈의 동산에서

사랑의 열매 풍성한 하늘나라에서

우리 다시 만나 시와 산문을 가꾸는 그날까지

평안히 건너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길고 먼 잠, 편안히 잠드시기를……

 

 

 

 

 

 

 

숲 속으로 난 오솔길

- 고 이충이 형님을 추모하며

소재호 시인

 

 

애초엔 숲도 아닌 뻘건 황야

나무가 나무를 이끌고

바람이 바람을 데불고

온통 모여든 골짜구니

사람들도 왁자지껄 떼지어 들어오고

숲은 마침내 큰 숲을 세웠습니다

 

이충이 형님은 그래 놓고

빤히 오솔길을 숲 속으로 내었습니다

의미하며 뜻을 지으며

문학의 숲이라 이름하고는

삽상한 길 한 줄기 열었던 게지요

 

숲은 날로 번창하였고

당신의 뭄과 마음이 숲 속으로 난 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애를 빛나게 나부꼈고

한 시대를 견인하는 시인이 되었지요

 

참 서늘했습니다. 당신의 숲 속은

막힘이 없이 쪽허니 틔였습니다, 당신의 길은

 

아아, 애달파라

형님은 문득 당신의 숲을 떠나시고

길이 맞닿은 곳으로 아득히 형님 가시고

후인들은 당신이 낸 아득한 길을

울며불며 하염없이 오솔길 따라 갑니다

 

 

 

 

 

 

비바람 번개 천둥치고 광화문에 서 있던

큰 나무 한그루 쓰러지셨다

김양숙 시인

 

 

목숨만큼 시를 사랑해서

시 속에서 살다

시를 향해 떠나신 선생님

 

사무실에 비스듬히 비쳐든 햇살을 들쳐보며 견딘 시간이

늘 말씀 하시던 외로움이었습니까

외로움이 극에 달하면 치사량이 된다고 말씀하셨던 선생님

병보다 깊어진 외로움을 감당하시면서 삼켰을 병원에서의 시간

누군가의 기척을 기다렸을 당신의 귓바퀴를 생각합니다

 

얼음처럼 차가운 벽을 끌어안고

그리움이 흥건해진 병원 바닥에서

허리를 굽혀 줍던 기척들은 시와 문장이었습니까

 

오래전 광화문 약국에서 박카스를 따서 내밀던

선생님의 손등에서 빛나던 푸른 언어들을 기억합니다

광화문에서 독야청청 낮과 밤을 풀어놓아

하나님이 만든 세상인 녹색세상을 만드시려고 애쓰신 선생님

녹색시를 꿈꾸며 다녔을 광화문의 사무실과 우체국사이 그림자는

지금도 어느 건물을 배경으로 서있는데

포탄이 쏟아지던 젊은 날이 끝내 선생님을 삼키셨습니다

 

광화문의 지구본은 통째로 흔들리고

우리는 방향을 잃어 동분서주 합니다

선생님의 가슴에 새겨진 치사량의 고독을 보며

통곡에 통곡을 더 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신 그 중심에

선생님께서 이루고 싶었던 정통 시의 세계가 있고

그 가운데 서 계시는 선생님

언어의 사막인 광화문에 선생님이 뿌리내린

『시와산문』은 100호를 넘어 훌쩍 자랐습니다

그 그늘이 선생님이란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 닳아버린 단어 하나 팔매질하듯 던지지만

외로움에 닿지 못하고 저 혼자 부서지는 것이 시라고

우리들의 손을 끌어다 시의 불씨를 지펴주신 선생님

내 안에 있는 시에 대한 모든 것 가져가라고 하셨던 선생님

뭐가 그리 급하다고 서둘러 가시나요

아직도 우린 선생님께 배울 것이 많은데

어떤 우스갯소리도 문학적으로 받아주시던 선생님

이제 누가 우리들의 흰소리를 받아 문학적으로 풀어 줄까요

 

어디로 가셨나요 선생님

아침마다 깊은구지에서 광화문까지 선생님이 디뎠던 걸음수를 세어

연결해 보면 선생님이 가신 곳의 위치를 알 수 있을까요

 

얼마나 외로우셨으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들과 사랑하는 사모님에게 등을 돌린 채

반년의 긴 시간을 보내고서야 빗장을 열어주신 선생님

우린 결코 선생님을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고

우리 앞을 막았던 코로나19에게 핑계를 대어 봅니다

선생님 이 자리를 둘러보세요

선생님은 결코 외롭지 않았습니다

 

잘 가세요 선생님

그곳에서 영원히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시와 함께 하십시오

우린 이제 선생님의 손을 놓고 돌아갑니다

선생님 잘 가세요

 

 

 

 

 

 

 

첫 번째 잠

- 이충이 선생님께 바침

정승화 시인

 

 

 팽팽해진 긴장을 쓸어 내며 어지럽게 핀 꽃들을 지나서 눈에 들이고 심장에 새긴 이름 하나 고이 품고 새벽기도처럼 선생님 앞에 섰습니다 오늘, 꿈이 아닌 땅에 발을 딛고 환하게 웃고 계실 선생님을 이렇게 마주합니다 혼란의 시절 속에서 시혼의 중심으로 걸어가 비석에 새겨질 좋은 시 하나 낳고 오래오래 기억될 선생님의 이름이 드디어 안착할 주소를 찾아내셨습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의 눈동자는 정오의 사막처럼 뜨겁습니다 유월, 어둠 속에 뺨을 붉힌 장미로부터 시작된 떨림이 새끼손가락의 의중을 묻기도 전에 무엇이 그리도 급하셨을까요 여전히 우리의 달팽이관에서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복화술처럼 들려옵니다 아직 떠난 것이 아니라고 달이 환한 날에 바람이 달큰한 날에 아직 입술이 유월의 빨간 장미처럼 붉다는 새빨간 거짓말이 들리는 듯합니다 다시 농담 한마디 하신다면 세상 어떤 일보다 서럽고 눈물겹더라도 환하게 웃기도 하겠다는데 떨어진 꽃잎이 아직 곱다하여도 버린 목숨의 찰라적 유효, 그런 꽃조차 내년의 환생이 있겠지만 선생님의 구부러짐은 코의 생기를 놓친 뒷모습을 스스로 돌아봐야 하는 잔인한 애착. 미열만으로도 펄펄 끓는 재회의 순간에 선생님의 감겨진 눈 아래가 너무나 캄캄할까봐 날마다 우리의 숨은 불안하게 엉켰었습니다 돌아올 수 없는 일이 이토록 시무치는 일인데 자다 깰 밤들에 쏟아지는 선생님의 얼굴을 어찌 다 받아낼까요 고된 울음의 자리는 늘 행복했던 기억까지 순식간에 혼란에 빠뜨려 더 슬프게 하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그을린 목울대를 거쳐 나오는 울음 앞에서는 그 어떤 화려한 꽃들도 그저 한송이 흰국화꽃을 이길 수가 없나 봅니다 마치 생을 건너는 일은 산 자들의 울음소리로 다리를 만드는 것인 양 이토록 서러울까요 애초에 가벼워도 좋을 울음이란 없었나 봅니다 선생님 광화문에 새겨 놓은 깨끗한 문장 몇 줄의 생애가 툭 꺼졌습니다 선생님의 발 아래 다른 계절이 들어차니 광화문의 바람은 북극의 빙하보다 차가울 것입니다 이제 내일에는 없고 지금에도 없는 선명한 얼굴, 먼 어제에 깊숙히 둥지를 틀겠지만 시들지도 못하고 바래지는 건 더욱 못하는 추억들이 새날이 차곡히 많아도 가끔 새날보다 앞에 서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흔적조차 날아간 꽃들이 심장에서 다시 필 때 그것이야말로 제대로 핀 꽃, 있어야 할 자리를 이제야 찾아 핀 꽃입니다 선생님도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맥박에서 순교한 시들을 읊으며 선생님께서 발라 놓은 울음을 삼키고 이제 슬픔이 깊게 깔린 서쪽의 외침을 스승 삼아 살아가겠습니다 저희가 잠드는 날을 기다려 주십시오 선생님의 빛의 파종 마지막 문장을 낭송하며 선생님의 가시는 길을 배웅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싫지 않은 세상이 오리라

봄꽃이 핀 나뭇가지들은 고개를 들고

저 깨어나지 못한 깊고 푸른 어둠일지라도

이제 흐르는 강물은 온 몸으로 비상하리라

 

 

 

 

 

 

살아서 가지 못하는 나라,

살아서 가는 사람 있네

- 고 이충이 선생님을 그리며

강경순 시인

 

 

선생님 뵈러 들어서는 입구에

걸려 있는 시, 한 편

‘먼저 가는 자 빛으로 남고’

시의 길 걸으신 한 평생 오롯이 담겨

살아 오르는 문장들

안개꽃 같은, 별꽃 같은 맑은 빛깔

시인의 자화상, 미리 빚어 놓으셨다

 

인사드리고 나와 달리는 강변북로에

비가 내린다

흥건한 빗물에 반사되는 불빛들

휘황한 도로를 질주하는 저 무수한 차량들은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가

각기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가는 사람들

무엇을 그리워하며 살 것인가

물음 같은 비가悲歌,

비가 내린다

불어가는 저 한강물, 빗줄기에 피어나는

꽃처럼 숨 죽여 흐르고

강물 위 표류하고 있는 마음 쓸어

손 흔들어 주시는 빛 되어 흐른다

광화문 한 모퉁이 담벼락에

시의 등불 밝히던 한 사람,

강 건너 저편에서 다가오는 불빛

묵묵히 마주하며 걷고 또 걷던 어느 날

불어온 알 수 없는 바람

전신을 휘감아 날아오르고,

살아서 가지 못하는 나라, 살아서 가는

빛의 시인, 바람이 되어 ​바람이 되어

살아서 가지 못하는 나라, 살아서 가는

그, 한 사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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